이북도서 「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중에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장군의 도천리를 비롯한 장백현 하강구일대의 지하정치공작의 주요목적은 압록강을 사이에 둔 국내의 신파통로개척을 위한데 있었다.

신파지구는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조국광복회조직을 국내에로 확대하기 위한 사업을 지도하시면서 매우 중시하신 곳이였다.

이 지구는 조선인민혁명군사령부가 국내혁명조직들과의 련계를 실현하고 로동계급이 집결되여있는 흥남공업지대와 련계를 맺는데 유리한 위치에 놓여있는 곳으로서 동해안남부지역과 내륙깊이에로 혁명조직을 확대하는데서 발판으로 삼을수 있는 거점이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그 대안인 도천리를 혁명화된 지역으로 만드시는것으로 신파통로개척을 위한 준비를 완료하신데 이어 신파지구에로 활동무대를 옮기시였다.

도천리에서 30리를 걸어 13도구 삼수골의 깎아지른듯 한 산밑을 돌아가면 압록강나루터가 나진다. 거기서 바라보이는 강건너 서향으로 앉은 거리가 신파이다. 함경남도 삼수군(오늘의 량강도 김정숙군 김정숙읍)에 속하는 이 거리는 당시 1 000여호가 들어앉은 곳으로서 일제의 군사요충지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의 맹렬한 활동에 겁을 먹은 일제는 신파에 내륙지대의 한개 군경찰서인원에 해당한 70여명의 경찰을 두었고 헌병대와 조선주둔 제19사단소속 국경수비대를 배치해놓고있었다.

주체26(1937)년 5월 26일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일제의 삼엄한 국경경비진을 뚫고 장날을 리용하여 신파에 나오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신파에서의 활동을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방법으로 진행하시였다.

능동적이며 창조적인 방법으로 사업하는것은 지하공작자체의 중요한 요구였다. 현대적인 통신수단도 없이 쪽지편지와 같은 수단을 리용하여 사령부와의 련계를 취할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실정에서 정치공작원들은 현지에서 자체의 판단과 결심에 따라 능동적으로, 창조적으로 사업하여야 하였다.

더우기 적들의 밀정들이 살판치고 각이한 계층의 사람들이 많이 집결되여있는 국경상업도시 신파땅에서 능동적이며 창조적인 방법으로 활동하는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우선 기성의 조직을 옳게 리용하여 혁명조직을 내오고 확대하는 사업부터 힘있게 밀고나가시였다.

신파지구에는 이미 장해우를 핵심으로 하는 삼수공산주의자공작위원회가 활동하고있었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이미 신파로 나오시기 전에 이곳에서 활동하고있는 삼수공산주의자공작위원회의 활동정형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었다. 그 핵심인물인 장해우는 지난 시기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시였던 김형직선생님의 지도를 받은적도 있어 위대한 수령님과 친분상으로 가깝게 련결되여있는 사람이였으며 한때 독립운동관련자로 체포되여 감옥살이도 한바 있고 일정한 투쟁경력도 가지고있는 사람이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신파지구에서 이미 장해우를 핵심으로 하는 삼수공산주의자공작위원회가 활동하고있는 조건에서 그들을 실천투쟁속에서 료해하고 검열한 기초우에서 이 조직의 핵심성원들로 조국광복회 신갈파지회를 결성하실 결심을 하시고 먼저 장해우를 만나시였다.

행상인으로 가장한 공작원과 함께 장보러 가는 사람들속에 끼워 압록강을 건느신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첫걸음부터 달라붙은 밀정의 미행을 따돌리고 장마당을 거쳐 석전양복점으로 가시였다. 당시 신파에 조직되였던 반일지하단체인 삼수공산주의자공작위원회는 바로 이 석전양복점을 거점으로 활동하고있었던것이다.

석전양복점에서 장해우를 만나신 김정숙녀장군께서는 그에게 위대한 수령님의 친서와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전달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친서를 받아보고 감격에 넘친 장해우는김일성장군이 김형직선생의 자제분 김성주라니 이 장해우는 형직선생을 따를 때처럼 장군을 따르겠소.》라고 서슴없이 자기의 소신을 밝히고 조직의 활동정형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였다.

장해우의 이야기를 들으시며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신파땅에도 혁명조직을 확대발전시킬수 있는 지도핵심들을 꾸릴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에게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전체 인민을 김일성장군님의 두리에 굳게 묶어세워 하나의 단합된 력량으로 만들 때 강도 일제를 때려부시고 나라의 해방을 이룩할수 있으며 때문에 우리는 모든 힘을 다하여 신파지구의 인민들을 조국광복회의 두리에 굳게 묶어세우기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려야 한다고, 무엇보다도 신파지구에 하루속히 조국광복회조직을 내와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나서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조국광복회조직을 내오는 사업은 충분한 준비가 없이 몇명이 모여앉아 조직을 무었다고 공포하는 방법으로 할수는 없을것이니 먼저 삼수공산주의자공작위원회 성원들이 각계각층 군중속에 깊이 들어가 그들을 장군님의 조국광복사상으로 무장시키고 실천투쟁속에서 단련시킨 기초우에서 조국광복회조직도 내오고 여러가지 반일조직들을 내오도록 하는것이 좋지 않겠는가고 겸허하게 활동방향을 주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조국광복회조직을 내오는것과 관련한 기본문제를 진지하게 토의하신 다음 그에게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진공작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적들의 동태와 무력배치정형을 알아볼데 대하여 당부하시였다.

김정숙녀장군의 정력적인 활동으로 삼수공산주의자공작위원회의 활동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조직성원들은 대중속에 들어가 그들을 장군님의 조국광복사상으로 무장시키는 활동과 함께 적들의 동태에 대한 자료수집도 적극적으로 벌렸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삼수공산주의자공작위원회의 활동정형을 세세히 료해장악하고 지도하시면서 그들이 보내오는 적정자료를 유격대원호물자와 함께 지체없이 사령부로 보내군 하시였다.

신파지구의 혁명조직들을 결성하기 위한 사업을 더욱 적극적으로 밀고나가시던 시기에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력사적인 보천보전투승리에 대한 소식을 들으시였다. 어떻게 하면 보천보전투승리에 발맞추어 자신의 지하공작에서 더 큰 승리를 거둘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잠 못 이루시던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유리하게 조성된 정세를 능동적으로 리용하여 국내지하공작을 더욱 정력적으로 밀고나갈 결심을 안고 6월 중순 압록강을 다시 건느시였다.

6월 11일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석전양복점에서 신파지구혁명조직 핵심성원들의 비밀모임을 지도하시였다.

신파지구핵심들이 다 모이자 김정숙녀장군께서는 그동안 국내에서 많은 수고를 하였다고 하시며 적들의 삼엄한 경계속에서도 애국의 뜻을 굽히지 않고 반일운동을 하고있는것은 참으로 장한 일이라고 치하하시고나서 《오늘 우리는 신파지구에 김일성장군님께서 조직하시고 령도하시는 조국광복회의 지회를 조직하는 뜻깊은 모임을 가지려고 합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방안은 감격에 설레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신파지구에 조국광복회 지회를 내오려고 하는 목적과 취지에 대하여 언급하신 다음 우리의 당면과업은 김일성장군님의 보천보진공작전의 승리로 인민들의 반일기세가 급격히 앙양되고있는 유리한 정세를 리용하여 신파지구에 조국광복회 하부조직들을 꾸리고 확대강화하는것이라고 하시면서 이를 위해 삼수공산주의자공작위원회 성원들을 기본으로 신파지구의 첫 조국광복회조직인 조국광복회 신갈파지회의 결성을 선포하시였다.

그후 김정숙녀장군의 지도밑에 조국광복회 신갈파지회성원들은 적극적인 활동을 벌려 짧은 기간에 그 산하에 상장구, 하장구, 강안동분회를 조직하였고 이어 박주평, 동흥, 아안리분회를 내왔다.

신파지구에 조국광복회 하부조직이 우후죽순처럼 자라자 김정숙녀장군께서는 6월 22일에는 석전양복점에서 투쟁속에서 검열된 핵심성원들로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직속 신갈파지구 당소조를 결성하시였다.

조국광복회 신갈파지회의 결성과 신갈파지구 당소조의 조직, 이것은 력사적인 보천보전투를 계기로 국내에 앙양된 유리한 혁명정세속에서 김정숙녀장군께서 진행하신 국내공작의 귀중한 첫 결실이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신파지구의 실정에 맞게 분회조직사업도 힘있게 밀고나가시였다.

신파지구에는 상인, 기업가, 적기관복무자들가운데 반일정신이 강한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 지난 시기 교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혁명의 동력이 아니라 대상이였다.

그러나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일제를 반대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조국해방의 기치밑에 묶어세울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들고 상인, 기업가, 적기관복무자들과의 사업을 대담하게 진공적으로 벌려 신파에 조국광복회 분회를 내오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지하공작원들의 활동거점과 련락장소를 꾸리기 위한 사업도 주도세밀하게 조직하시였다.

비밀거점을 어떻게 설정하고 리용하는가에 따라 안정된 위장조건에서 적구공작을 적극적으로 벌려나갈수도 있고 정체가 로출되여 돌이킬수 없는 피해를 입을수도 있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적들의 코앞에 자리잡고있으면서도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자연스럽게 모여들수 있는 장소들인 광선사진관, 석전양복점, 샘물터국수집, 신갈파객주집, 사발상점, 물방아집 등에 활동거점과 비밀련락장소를 꾸리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이렇게 곳곳에 꾸려놓은 수많은 비밀거점들을 엇바꾸어 리용하시였다.

특히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자신께서 직접 조직하신 오함덕분회와 아안리분회를 원호물자를 조선인민혁명군에 보내고 혁명조직성원들을 국내의 여러 지방에 파견하는 중요한 통로로 리용하시였다.

그리하여 부전, 장진, 신흥, 흥남일대에 파견되는 지하혁명조직성원들은 주로 아안리분회 책임자의 집에서 그리고 갑산, 덕성, 북청, 단천일대로 가게 되는 성원들은 오함덕객주집에서 임무를 받고 떠나갔다.

김정숙녀장군의 능동적이며 창조적인 활동과 지도밑에 신파지구는 여전히 적들의 거미줄같은 경계망속에 있었으나 보이지 않는 지하조직망은 신파땅의 곳곳으로 끊임없이 확대되여나가고있었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또한 도천리와 신파일대에 꾸린 당소조를 비롯한 혁명조직들에 의거하여 국경주변 적들의 일거일동을 빠짐없이 장악하여 제때에 사령부에 통보하심으로써 조선인민혁명군의 군사작전수행에 크게 기여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정숙녀장군에게 적정찰임무를 따로 주지 않으시였다.

그러나 김정숙녀장군께서는 혁명임무수행에서 높은 창발성을 발휘하시여 신파지구에 있는 적들의 병력과 군사시설배치상태, 무장상태를 조사장악하고 압록강의 너비와 깊이, 흐름속도, 지어는 도하와 철수에 유리한 지점까지 확인한 다음 필요한 략도까지 작성하여 사령부에 보내시였다.

특히 보천보전투직후 일제가 조선주둔 제19사단소속 함흥74련대를 혜산에 도착시킨 정보와 적들의 움직임과 도하날자, 병력수 등을 알아내시여 사령부에 통보하시였다.

6월 30일, 간삼봉에서는 하늘땅을 진감하는 총소리가 하루종일 울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정숙녀장군을 비롯한 정치공작원들과 혁명조직들에서 보내온 정보자료에 기초하여 적들의 기도와 움직임을 손금보듯 환히 꿰드시고 간삼봉일대에 미리 빈틈없는 전투진을 펴시였다가 이곳으로 기여드는 적들에게 무리죽음을 안기시였던것이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이날 총소리를 들으시면서 간삼봉의 높은 령마루에서 대원들을 섬멸전에로 부르실 위대한 수령님의 영상을 그리며 깊은 감동에 잠기시였다.

참으로 김정숙녀장군의 신파에서의 능숙한 지하공작은 지하정치공작의 빛나는 모범으로 되였으며 신파통로가 개척됨으로써 이 지구를 거점으로 함경남북도를 비롯한 국내 넓은 지역에 조직을 확대해나갈수 있는 돌파구가 열리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