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일화중에서

주체63(1974)년 어느날 미국주재 남조선《유엔대사》였던 림창영선생이 평양을 방문하였다.

림창영선생은 식민지민족의 불우한 운명을 안고 태여난 수난자의 첫 세대였다. 그는 평양에서 출생하여 193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바니아의 라파이에트대학을 졸업하고 도산 안창호의 국민회의에 가입하여 항일구국의 열도 올려보고 뉴욕 웨체스타 《한》인련합감리교회의 초대목사로도 있어보았으며 장면《정권》때에는 남조《정부》의 유엔대사로도 《활약》하였었다.

그러한 그가 평양을 방문하게 된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시기 어느날 림창영선생은 나치스의 반유태인정책에 의하여 도이췰란드로부터 추방되여 미국 프린스톤시에 와있던 세계적인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교수와 조선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이런 질문을 받았다.

《조선의 위대한 김일성장군은 어떤분이십니까?》

그때 림창영선생은 아인슈타인의 이 질문에 만족한 대답을 주지 못하였다.

사회정치학자로서 림창영선생에게는 항일의 전설적령장 김일성장군님에 대하여 아는것보다 모르는것이 더 많았던것이다.

1955년 림창영선생과의 마지막상봉시에도 아인슈타인은 북과 남으로 갈라진 조선의 현실과 조선인민의 위대한 수령이신 존경하는 김일성주석에 대하여 또다시 문의하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존함과 높고 높은 명성은 지구의 서쪽끝인 미국땅에 사는 물리학자도 관심을 가질만큼 세상에 자자했다.

림창영선생은 이때에야 자기자신이 알고있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하여 민족의 미래와 결부시켜 설명하였다. 하지만 사회정치학자인 자기로서도 위대한 수령님에 대하여 깊이 알고있지 못하다는것을 느끼게 되였다.

그후 림창영선생은 오랜 세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간절한 흠모로 가슴을 불태워왔으며 결국은 평양방문을 하게 되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평양에 찾아온 림창영선생을 몸소 만나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림창영선생에게 먼 이국땅에서 통일을 위해 수고를 많이 하는분이라고 높이 치하하시면서 우리 함께 허심탄회하게 민족의 전도와 통일문제에 대하여 의논하자고 말씀하시였다.

미국땅에 살면서 오래전부터 그이의 명성을 많이 들어왔고 또 불후의 저작들을 통하여 위대한 사상과 천품에 감복하였던 그는 수령님을 직접 뵈옵는 순간 몸둘바를 몰랐다.

위대한 수령님은 지금까지 림창영선생이 민족을 위한답시고 다니던 시절이나 미국땅에서 많이도 보아온 정객이나 위인들과는 판이하게 류다른분이시였다.

림창영선생은 대번에 온몸의 긴장이 풀리여 지난날의 많은 이야기들을 해올렸고 아인슈타인이 주석님에 대하여 몹시 알고싶어 했다는것까지 숨김없이 말씀드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귀중한 시간을 림창영선생을 위해 바치시였다. 그이께서는 우리 함께 손을 맞잡고 하루빨리 통일을 이룩하자고 말씀하시였다.

림창영선생은 그이의 말씀이 너무도 고마와 눈물을 흘리며 나는 주석님을 《민족의 사표(덕행이 높아 스승으로 되는 사람)》로 삼고 눈에 흙이 들어가는 날까지 통일성업에 매진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후 림창영선생은 여러차례나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옵고 통일위업실현에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한 그이의 가르치심을 받아안았으며 자기의 남은 여생을 초불처럼 태우며 애오라지 통일을 위해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