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중에서

어느해 추석(한가위)날 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오늘 이렇게 동무들과 같이 모여앉아 유난히 밝은 보름달을 바라보며 한가위이야기를 하게 되니 지난날의 잊지 못할 일이 떠오릅니다, 어느해인가 나는 산소에 가서 어머님분묘앞에 진달래를 심어놓은적이 있었습니다라고 하시며 잊지 못할 어머님에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진달래는 어머님께서 제일 사랑하시던 꽃이라고, 동무들이 항일혁명투사들의 회상기를 보아서 알겠지만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조국진군의 길에 오르신 어머님께서 5호물동을 건너 조국땅에 첫걸음을 옮기셨을 때 감격의 눈물을 흘리시며 제일먼저 품에 안은것이 붉게 핀 조국의 진달래였다고, 그때 수령님께서는 어머님께서 드리는 진달래꽃을 받아드시고 조국의 진달래는 볼수록 아름답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고, 어머님께서는 그때의 일을 두고두고 잊지 못하시여 정원에 늘 진달래를 곱게 피우시며 지난날을 감회깊이 회고하군 하시였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일군들은 형언할수 없는 격정에 젖어들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회억하신 5호물동의 진달래, 여기에는 참으로 얼마나 뜻깊은 사연이 깃들어있는것인가.

백두의 녀장군 김정숙녀사께서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5호물동을 건느신것은 바로 주체28(1939)년 5월 18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솔하신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남패자에서 북대정자에로의 력사적인 고난의 행군을 성과적으로 마친 후 항일혁명의 새로운 앙양기를 열어놓기 위하여 또다시 조국으로 진출한것이다.

일제의 침략전쟁과 극악한 폭압책동으로 하여 조선혁명이 가장 어려운 시련을 겪고있던 때에 붉은기를 펄펄 날리며 압록강을 건너온 민족의 장한 아들딸들을 반겨맞이한 조국의 진달래는 5호물동가에 온 천지를 덮을듯 활짝 피여있었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한달음에 달려가 격정의 눈물, 기쁨의 눈물속에 진달래포기들을 그러안으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 있어서 조국의 진달래는 그저 자연의 꽃이 아니였다. 그것은 왜적에게 강탈당한 조국의 한부분, 하나의 살점과도 같은것이였다. 그래서 그 꽃을 그저 진달래라고 하지 않고 조국의 진달래라고 불렀다. 조국의 진달래, 이 말속에는 조국과 인민을 끝없이 사랑하며 해방의 봄을 앞당기고 해방된 조국강산에 인민의 행복한 락원을 일떠세우려는 항일혁명투사들의 열렬한 념원이 담겨져있었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아침이슬을 머금은 진달래꽃가지들을 정히 꺾어 위대한 수령님께 드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진달래꽃묶음을 받아드시고 《조선의 진달래는 볼수록 아름답습니다!》라고 하시며 감회깊은 눈길로 조국의 산발을 이윽토록 굽어보시였다.

깊은 생각에 잠기신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고계시던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대원들에게 조국의 진달래는 볼수록 아름답다는 위대한 수령님의 뜻깊은 말씀은 우리모두의 가슴속에 조국에 대한 사랑을 더욱 뜨겁게 해주고있다고 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였다.

진달래는 엄혹한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오면 제일먼저 피여 봄을 알리는 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로부터 진달래를 그처럼 사랑했고 진달래와 깊은 인연을 맺고 살아왔습니다. 진달래를 보니 고향에 대한 생각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내 고향 오산덕기슭에도 봄이 오면 이렇게 아름다운 진달래가 활짝 피군 하였습니다. 아마 동무들의 고향에도 지금쯤은 진달래가 만발하게 피였을것입니다.…

그 말씀을 들으며 녀대원들은 어린시절 고향의 뒤동산에서 진달래꽃송이로 머리단장도 하고 꽃잎을 따서 부엌세간놀이도 하면서 봄을 즐기던 그날을 추억하며 부모형제들과 소꿉놀이동무들을 생각하였다.

그들이 얼마나 조국이 그립고 고향이 그리웠댔으면 조국땅에 피여난 한떨기의 진달래를 안고 오래동안 헤여졌던 어머니품에 안긴 아이들처럼 그리도 기쁘고 감격해하였겠는가.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대원들의 그 심정을 헤아려보시면서 진달래에 깃든 보다 심오한 뜻을 일깨워주시는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녀장군께서는 물동가에 핀 진달래는 엄혹한 겨울을 이겨내고 강산을 덮었던 눈도 다 녹기 전에 이렇게 가지마다에 꽃송이를 피웠다고, 아마 봄이 오리라는것을 믿지 못하였더라면 이 진달래도 영영 눈속에 묻혀버리고말았을것이라고, 진달래가 봄이 오리라는것을 믿었기에 이렇게 찬서리와 눈보라도 꿋꿋이 이겨내고 붉게 피듯이 우리 민족도 김일성장군님이 계시기에 조국광복의 날은 반드시 온다는것을 믿기에 일제의 가혹한 탄압속에서도 민족의 절개를 굽히지 않고 싸워나가고있다고, 오매에도 그리던 조국땅에서 붉게 핀 진달래를 한아름 안고 조국산천을 바라보니 하루빨리 강도 일제를 때려부시고 일제의 발굽밑에서 신음하는 부모형제들을 해방하여야 하겠다는 생각이 더욱 굳어진다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나서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절절하신 음성으로 이렇게 호소하시였다.

《우리 혁명의 길이 아무리 험난하다 해도 찬서리와 눈보라를 이겨내고 억세게 피여 봄을 먼저 알리는 진달래처럼 간악한 일제를 쳐부시고 광복의 봄을 알리는 <진달래>가 됩시다.》

광복의 봄을 알리는 《진달래》가 되자.

이것은 일편단심 위대한 수령님만을 믿고 따르며 혁명의 한길에서 언제나 참된 친위전사로, 대오의 선구자로 한생을 빛내이시려는 김정숙녀장군의 드팀없는 신념이였고 영원한 삶의 좌표였다.

하기에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조국진군의 나날에 군사정치활동을 힘있게 벌리시여 인민들에게 혁명승리에 대한 신심을 안겨주고 그들이 조국해방을 위한 투쟁에 적극 떨쳐나설수 있게 하는데 크게 기여하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청봉숙영지에서 대원들과 함께 나무껍질을 벗기고 혁명적인 구호들을 쓰시였다.

《조선민족의 자유와 독립, 해방을 위하여 끝까지 싸우자》, 《조선청년들, 속히 달려나와서 항일전에 힘있게 참가하자》, 《일어나라 단결하라 전세계 로력대중들아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싸우자》

김정숙녀장군께서 한자한자 힘주어 써나가시는 힘있는 글발들로 하여 이제까지 깊은 정적속에 잠들었던 태고연한 청봉의 밀림도 백두의 령봉을 향해 키를 솟구치는듯 우람차게 설레이였다. 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담아, 조국해방의 확고한 신념을 담아 아로새긴 그 불멸의 글발들은 세월의 눈비에도 씻기지 않고 혁명승리에 대한 영원한 송가로 오늘도 길이 전해지고있다.

5월 21일 삼지연못가에서 풍치도 좋고 물맛도 좋은 삼지연의 경치를 바라보시며 대원들에게 이 아름다운 삼지연을 되찾기 위해서도 일제를 때려부시고 조국을 해방해야 한다고 절절히 말씀하신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이튿날 신사동목재소로동자들에게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는 한 우리 조국은 반드시 해방된다는 신심을 안겨주시고 마을녀성들에게 《조국광복회10대강령》도 알기 쉽게 해설해주시는 등 정치사업을 힘있게 벌리시였다.

5월 23일 새벽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경위중대, 8련대 대원들과 함께 대홍단벌에 이르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이곳에서 신개척에 나간 7련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면서 적들의 추격을 예견하시고 전투조직을 하시였다. 이곳 대홍단벌에서 적들에 대한 일대 섬멸전을 벌리시려는것이였다.

대홍단벌은 동쪽으로는 대로은산, 서쪽으로는 까치봉, 남쪽으로는 소홍단수, 북쪽으로는 증산에 둘러싸인 고원지대의 비교적 넓은 사득판이였다.

수령님께서는 경위중대와 8련대의 기관총이 가지런히 자리잡은 둔덕에 지휘처를 정하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녀대원들과 함께 수령님곁에 매복하시였다.

날이 밝을무렵 수령님께서 예견하신대로 중무기를 가진 일본수비대놈들과 경찰놈들 수백명이 신개척에 진출했던 7련대의 뒤를 따라 은밀히 밀려들었다. 왜놈이 경영하는 신개척지구의 목재소를 치고 철수해오던 7련대는 짙은 안개때문에 적들이 200여m 뒤에서 따르는것을 모르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7련대로 하여금 매복권을 그냥 통과하도록 하시였다. 그런 다음 뒤따르는 적들이 완전히 매복권안에 들어섰을 때 사격명령을 내리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기여드는 적을 미리 조준하고있다가 첫발부터 명중탄을 안기시였다. 무자비하고 통쾌한 섬멸전이였다. 적들은 무리로 쓰러졌다.

수많은 전투들에 참가하신 김정숙녀장군이시였으나 조국땅에 나와서 적을 치는 싸움에 참가하신것은 처음이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탄띠의 총탄이 동이 나자 옆에 있는 대원의 예비탄알까지 달래서 사격을 계속하시였다.

겨우 살아남은 적들은 국사당언덕으로 퇴각하였다가 증원부대와 합세하여 또다시 덤벼들었다.

수령님께서는 기관총좌지가 있는 둔덕에 오르시여 전투를 지휘하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수령님의 안전을 지켜 새초밭에서 움쭉 머리를 쳐드는 놈마다 명중탄을 안기시였다. 기관총수들이 맹렬한 사격으로 적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눕히였다. 정면으로 더 달려들수 없게 되자 적들은 수림변두리에 비옷과 철갑모로 허수아비를 만들어놓고 저격수 몇놈만 남기고는 북쪽으로 우회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의 익측과 후방을 타격하려고 시도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놈들의 어리석은 기도를 간파하시고 한 구분대를 증산릉선으로 은밀히 우회시켜 역포위하도록 하시였다. 잔꾀를 부리던 적들은 무리로 녹아났다. 이날 진행된 전투에서 적 수백명을 살상하였다.

통쾌한 섬멸전을 승리로 결속한 대오는 유유히 두만강을 향해 철수하기 시작하였다. 신사동에서부터 따라나선 200여명의 인민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유격대의 물자운반을 도와나섰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수령님으로부터 그들을 인솔하여 두만강을 건늘데 대한 임무를 받으시였다. 그런데 김정숙녀장군께서 인솔하시는 물자운반대성원들이 《갑무경비도로》근처에 이르렀을 때 뜻밖의 정황이 조성되였다. 기본부대와 물자운반대사이에 적들이 끼워들었던것이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로동자들을 신속히 숲속에 은페시키는 한편 녀대원들과 함께 매복위치를 차지하고 적들을 불의에 타격하심으로써 물자운반대전원이 무사히 강을 건늘수 있게 하시였다. 그리고 안도현 장산령기슭에서 로동자들에게 식사도 대접하고 오락회를 벌려 노래와 춤으로 그들을 즐겁게 하여주시였으며 김일성장군님의 《축지법》에 대한 이야기와 조선인민혁명군이 벌리고있는 군사정치활동에 대하여 실감있게 이야기해주시면서 조국해방을 앞당기기 위하여 반일투쟁에 적극 떨쳐나설것을 호소하시였다.

이렇듯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무산지구진출작전의 나날에 무산지구일대의 혁명조직들을 급속히 복구정비하고 국내깊이에까지 확대하여 조선혁명을 일대 앙양에로 이끄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의도를 깊이 파악하시고 군사정치활동을 맹렬히 벌리심으로써 위축되였던 국내혁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