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2)중에서

 

 

 인민의 다함없는 경모와 기다림의 나날이 흘러가는속에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께서 드디여 조국으로 개선하시였다.

하지만 20성상 백두의 험산준령을 주름잡으시며 간악한 일제를 때려부시고 빼앗긴 조국을 찾아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개선길은 너무나 소박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우리는 그때 조국땅에 들어서자마자 조선인민혁명군이 개선했다는 소문을 내지 않고 인민들속에 조용히 들어가 건당, 건국, 건군의 3대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기초작업이나 해놓고 조국인민들과 인사를 하기로 하였다고 회고하시였다.

민족이 낳은 전설적영웅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영광의 꽃보라, 환영의 인파에 휩싸여서가 아니라 동해안의 원산항구에 소문없이 조용히 개선하시였다.

그날은 바로 주체34(1945)년 9월 19일이였다.

울라지보스또크에서 귀국의 길에 오르시여 바다를 헤가르는 배전에서 가까이 안겨드는 조국산천을 바라보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격정에 넘친 어조로 대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동무들, 우린 기어코 조국에 돌아왔소!》

위대한 수령님의 한마디 말씀속에 담긴 억만가지 사연을 새겨보는 대원들은 격동된 심정을 누를길 없어 그이를 우러러 뜨거운 눈물을 삼키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잠시 동안을 두시였다가 다시 말씀을 이으시였다.

《…오늘을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이야말로 그립던 조국땅에 돌아온 력사의 날입니다.

참으로 뜻깊은 오늘은 조국의 력사우에 길이 남을것입니다.》

조국땅에 개선하신 그 시각부터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간고한 항일혁명투쟁에서 쌓이고쌓인 피로를 푸실 사이없이 새 조국건설로선관철을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리시였다.

조국개선의 첫날 오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미 파견되여 활동하고있던 소부대성원들의 안내를 받으시며 원산시당을 찾으시였다. 몇몇 투사들을 데리고 원산시당으로 가시던 길에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되시였는데 그들속에는 어깨에 총을 메고 완장을 낀 적위대원들도 있었다. 이들은 원산철도공장과 석유공장, 조선소 등 시내 곳곳에 조직된 적위대 성원들이였다. 이들은 항일군복을 입은 위대한 수령님의 일행을 보고 거수경례를 깍듯이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마다 수고한다고 따뜻이 답례하여주시면서 투사들에게 자기 손으로 자기 도시를 지키려는 인민들의 열의는 높다고, 아마도 저 동무들은 우리 혁명군이 조국해방을 위한 총공격작전을 진행할 때 한몫을 단단히 한 사람들일수도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원산시당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시당일군들을 만나시였다.

해외와 국내에서 활동하던 공산주의자들이 모인 자리이니 자연히 해방된 조선이 어느 길로 나갈것인가 하는 문제가 화제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시당일군들에게 그에 대한 견해를 물으시였는데 몇몇 일군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해방된 우리 나라에서는 당장 사회주의혁명을 해야 한다고 자기들의 소견을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신중한 안색으로 당신들은 로동계급의 힘만으로 새 조국을 건설하려고 하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러자 그들은 우리는 공산혁명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인데 로동계급밖에 믿을것이 있는가고 하였다. 그들의 주장은 1920년대 후반기 초기공산주의자들의 주장과 다를바 없었다. 그들의 주장은 조선의 구체적현실은 고려하지 않고 고전의 명제를 교조적으로 되외우는것에 불과했고 해방된 조선인민의 지향에 맞는 로선을 탐구하려는 진지한 모대김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된 조국땅우에 인민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는 민주주의적인 사회를 건설하려면 로동계급뿐아니라 그 동맹자인 농민은 물론 새 사회건설에 리해관계를 가지고있는 각계각층의 애국적인 군중을 통일전선에 묶어세워 거족적인 힘으로 우리 나라를 부강한 자주독립국가로 건설해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시당일군들을 만나신 후 숙소인 동양려관으로 찾아오는 로동조합대표, 지방유지들과도 만나 담화를 하시였다. 이 과정에 그이께서는 아직 국내의 어느 당파나 어느 조직도 인민들에게 똑똑한 건국로선을 제시하지 못하고있다는것을 포착하시였다. 어떤 사람들은 《쏘베트》를 꿈꾸면서 당장 사회주의혁명을 해야 한다고 하였고 또 어떤 사람들은 봉건제도를 복구하거나 부르죠아제도를 수립하는 길로 나가야 한다고 력설하고있었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기서 국내의 형편을 헤아려보시고 이날 군사정치간부 및 원산시공산당단체 책임일군들과 담화를 하시면서 조선혁명의 성격과 당면임무, 새 조국건설로선을 다시금 명확히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현 단계에서 조선혁명의 성격은 의연히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으로 되며 이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단계에서 조선이 나아갈 길은 진보적민주주의의 길이며 해방된 조국땅에 세워야 할 국가는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이라는것, 이것이 바로 우리의 건국로선이며 인민대중이 념원하는 길이라고 교시하시였다.

해방된 조선은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의 길로 나아가야 하며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하여야 한다는것 그리고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단계에서 국가는 진보적민주주의를 자기의 정치방식으로 하여야 한다는 등으로 당면한 건국목표를 뚜렷이 밝혀주시는 가르치심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에 개선하신 그날로 함경남북도에 가서 사업할 소조들중에서 김책, 안길, 최춘국, 류경수, 조정철 등 일부 성원들이 북행렬차에 올라 파견지로 떠났다. 그리고 철원방면을 담당한 소조들은 남행렬차에 올랐다. 그후에는 서해지구와 강계를 비롯한 내륙지방에 가서 사업할 정치공작원들이 떠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방에 파견되는 정치공작원들에게 동무들이 인민대중에게 조선이 나아갈 옳바른 길을 가리켜주어야 한다고 하신 다음 특별히 불의의 사태에 대처할수 있는 만단의 준비를 갖출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지금 남조선에서는 제국주의국가군대인 미군이 상륙하여 군정을 실시하고있으며 미군의 비호하에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이 반인민적인 책동을 점차 로골화하고있다, 해방된 조국의 정세는 대단히 류동적이며 어느때 어떠한 사변이 일어날지 모를 형편에 놓여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상치 않던 사변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에 대처할수 있는 철저한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장구한 기간 혈전을 벌려 쟁취한 조국광복의 위대한 승리를 고수할수 있으며 건국위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여나갈수 있다고 강조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불의의 사태에 대처할수 있는 준비를 갖추기 위하여 우리가 유사시에 의거하여 싸울수 있는 기지를 튼튼히 꾸릴데 대하여, 지방에 나가 우수한 청년들로 생산유격대, 자위대 같은것을 광범히 조직하고 그들을 철저히 교양훈련할데 대하여, 식량과 피복, 무기를 비롯한 군수물자들을 충분히 저축해놓으며 인민들에 대한 정치사상교양사업을 강화하여 불리한 정세가 조성되는 경우에 우리가 의거하여 싸울수 있는 군중적지반을 튼튼히 닦는데 특별한 관심을 돌릴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이것은 실로 새 조국건설위업을 선군으로 완성하실 의지가 담겨진 뜻깊은 가르치심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그들에게 지방에 나가 당창건준비사업을 적극 추진시키며 인민정권기관을 조직하고 그를 강화하기 위한 사업에 큰 힘을 넣으며 파괴된 산업을 복구정비하고 인민생활을 안정시킬데 대한 과업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여러 지방들에 나가 사업할 항일혁명투사들을 지체없이 떠나보내신 후 자신께서는 서해지구에서 사업하게 될 투사들과 함께 9월 20일 기차를 타시고 원산을 떠나 9월 22일 평양에 도착하시였다.

조국개선의 그날처럼 소문도 없이 조용히 평양에 도착하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해방산기슭의 자그마한 집에 자리를 잡으시고 건당, 건국, 건군의 3대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사업에 착수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척에 있는 고향 만경대를 찾으시는것도 뒤로 미루시고 집무실과 숙소에서 백두산시절처럼 전우들과 침식을 같이하시며 국내외에서 찾아오는 여러 인사들을 만나 건국로선을 알려주시고 그 관철에로 힘있게 이끌어주시였다. 그리고 평양곡산공장을 비롯한 여러 공장, 기업소들과 농촌은 물론 온갖 풍문이 떠도는 시장도 돌아보시며 각계각층 군중의 사상동향과 살아가는 형편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러한 정력적인 사색과 로고, 활동의 바탕에는 백두에서 총대로 개척된 주체혁명위업을 총대로 승리적으로 전진시키며 조국해방의 결전장에서 항일혁명렬사들이 흘린 피가 헛되지 않게 하시려는 결심과 의지가 놓여있었다.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항일혁명투사들이 모란봉에 올랐을 때의 일이다.

그때 투사들은 푸른 하늘아래 펼쳐진 모란봉과 그 주변의 경치를 보고 환성을 올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모자를 벗어 손에 쥐시고 눈아래 보이는 대동강과 릉라도, 저 멀리 문수벌과 사동쪽을 둘러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동무들! 우리는 지금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평양에 돌아와 유명한 모란봉우에 서있소.》

그러시고는 손을 드시여 이쪽에 보이는것이 무엇이고 저것은 무엇이라고 하나하나 고장이름을 가르쳐주시고 이 세상 어디에도 우리 조국만큼 아름답고 살기 좋은 나라는 없다고, 이처럼 살기 좋은 나라를 도로 찾기 위하여 우리는 오래동안 산에서 피를 흘리며 싸웠고 그 싸움터에서 많은 동지들을 잃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동지들이 흘린 피의 대가로 우리는 끝끝내 이 땅에서 강도 일제를 몰아내고 조국의 광복을 이룩하고야말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 어떤 원쑤도 다시는 기여들수 없도록 이 땅우에 부강한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여 동지들이 흘린 피를 헛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투사들 모두가 숭엄한 감정에 휩싸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새겨들으며 그들은 수령님께서 자기들을 여기 모란봉에 데리고 올라오신것은 단순히 평양의 경치나 구경시키려는것이 아니라 절대로 손에서 총을 놓지 말고 내 나라, 내 조국을 그 어떤 원쑤도 범접 못하는 존엄있고 부강한 나라로 일떠세울 신념과 의지를 심어주시려는것임을 절감하게 되였다.   

항일전에서 희생된 투사들의 그 념원, 부강한 새 조선을 건설하려는 인민들의 념원을 하루빨리 이룩하시려는 신념과 의지를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백두의 군복차림으로 새 조국건설을 위한 헌신의 낮과 밤을 보내시였다.

하기에 후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 8. 15해방후 제일 바쁘게 보낸 시기가 바로 이 시기였다고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던것이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 조국에 개선하시여 보내신 하루하루는 준엄하였던 항일혁명투쟁의 길을 새 조국건설에 그대로 이어나가신 선군혁명령도의 나날이였으며 조국과 인민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지니시고 나라와 민족의 부강발전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쳐가신 헌신적복무의 나날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