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중에서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을 모시고 주력부대가 무송현 서강지구에 도착한것은 주체26(1937)년 3월 중순경이였다.

당시 국내외의 넓은 지역으로는 조국광복회조직망이 급속히 확대되여가고있었다.

이미 남호두회의에서 민족의 모든 힘을 총동원하여 반일민족해방투쟁을 가일층 발전시키기 위한 조치로 상설적인 통일전선조직체를 내올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사단의 편성사업과 함께 조국광복회창립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가시였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한해전인 주체25(1936)년 3월 하순 미혼진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의 우수한 지휘간부들과 명망높은 애국단체대표들로 조국광복회창립준비위원회를 조직하시고 국내와 만주각지에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들과 정치공작원들을 파견하시여 조국광복회창립을 위한 조직정치사업을 활발히 벌리게 하시였다. 그리고 남호두를 떠나 동강에 이르는 기간 끊임없이 전투가 벌어지는 어렵고 복잡한 환경속에서 조국광복회 강령과 규약, 창립선언을 작성하시였다.

이러한 준비사업에 기초하여 주체25(1936)년 5월 1일부터 15일까지 동강에서 진행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에서 수령님께서는 몸소 작성하신 《조국광복회10대강령》《조국광복회창립선언》, 《조국광복회규약》을 발표하시였다. 회의에서 이것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였으며 참가자들은 전체 조선인민의 의사와 념원을 담아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을 조국광복회 회장으로 높이 추대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5월 5일 조국광복회창립을 선포하시였다.

그 이후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조국광복회조직망을 전국적판도에서 더욱 확대해나가실 구상밑에 국내외의 여러 지역들에 우수한 정치공작원들을 파견하시였다.

당시 도처에서 유능한 공작원을 파견해줄것을 절실히 요구하였다. 그런데 필요한 공작인원을 다 채워주자면 적어도 1개 련대인원만 한 정치일군들이 있어야 하였는데 인민혁명군이 군사활동은 뒤전에 미루고 정치활동만 할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적구의 어려운 환경에서도 독자적으로 어려운 사업들을 능히 감당하고 처리할수 있는 높은 실력과 풍모를 갖춘 공작원들이 필요하였다.

주력부대가 서강지구에 도착한 이후인 주체26(1937)년 3월 중순 어느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장백현 하강구일대와 국내 동해안일대에 조국광복회조직들을 확대해나갈데 대한 과업을 받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김정숙을 도천리에 파견한것은 1937년 3월, 서강회의 전야였다.

그해는 어디서나 사람들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리제순도 박달도 권영벽도 김재수도 다같이 사람을 요구하였다. 그 요구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바로 김정숙의 도천리파견이였다.》고 회고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국내의 신파와의 통로개척의 적지인 도천리에 다른 대원도 아닌 김정숙녀장군을 파견하신것은 그이께서 지니신 혁명가로서의 특출한 자질과 풍모를 굳게 믿으시였기때문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정숙녀장군에게 도천리에 거점을 잡고 하강구일대의 사업을 추켜세운 다음 신파통로를 개척하여 동해안일대에 조국광복회조직망을 확대해나갈데 대한 과업을 주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동무가 이 어려운 과업을 능히 수행하리라는걸 믿소. 곤난에 부닥칠 때마다 동지들에게 의거하고 인민들에게 의거하시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정숙녀장군을 어려운 지하투쟁의 길에 떠나보내시면서 인민을 믿고 인민의 힘에 의거하면 백번 승리하지만 인민의 버림을 받게 되면 백번 패하게 된다는 위대한 진리, 백전백승의 보검을 안겨주신것이다.

《사령관동지, 기어이 임무를 수행하고 부대로 돌아오겠습니다.》

김정숙녀장군의 대답은 짧았으나 그속에는 어떤 시련과 난관이 가로놓여도 중요하고 어려운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고 위대한 수령님의 신임과 기대에 보답하겠다는 굳은 결심이 담겨져있었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먼저 장백현 천상수에서 20여리 떨어진 곳에 있는 비밀련락소로 가시여 보름가량 조국광복회지회사업을 지도하시면서 신문자료도 연구하고 하강구지역 조국광복회 조직책임자인 김재수를 비롯한 지하조직성원들을 만나 도천리와 하강구, 국내 신파지구의 실태를 료해하시며 지하공작을 위한 준비를 갖추시고 4월초에 무산에서 살다가 이주해오는 엄옥순으로 변성명을 하고 도천리에 들어가시였다.

도천리는 신파대안인 13도구부락에서 30리쯤 떨어져있는 산간마을이였다. 도천리란 이름은 마을에 흐르는 개울 한복판에 복숭아모양의 바위가 솟아있다고 하여 불리워진 이름이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먼저 지하조직성원인 도천리 구장 정동철을 만나 도천리의 실태와 주민구성, 조직관계 등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들으시였다.

하강구는 김형직군 대안인 7도구로부터 삼수 대안인 15도구에 이르는 퍼그나 넓은 지역을 포괄하고있었다. 그런데 이 넓은 지역에는 도천리와 요방자를 비롯한 몇몇 마을들에 조국광복회 지회와 분회들이 조직되여있기는 하지만 활력있게 움직이지 못하고있었다. 핵심을 꾸리는 문제며 대중을 혁명화하고 조직을 확대하는 문제를 비롯한 문제들이 아직 미해결로 남아있었다.

정동철은 장군님께서 직접 파견해주신 공작원이 왔으니 이제는 신심이 생긴다고 하며 기뻐하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그들에게 누가 왔건 한두사람의 힘만으로는 혁명을 할수 없다고 하시며 문제는 인민들속에 깊이 들어가 고락을 함께 하며 그들을 하나로 묶어세우는데 있다고 하시였다.

당시까지 일부 지하정치공작원들의 활동에서는 망명가적사업태도가 극복되지 못하고있었다. 낮에는 산에 숨어있다가 밤에 가만히 내려와서 사람들을 만나는가 하면 조직을 확대하는 사업은 소극적으로, 피동적으로 진행되고있었다.

지하정치공작원들이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합법적인 활동의 가능성을 최대한 리용하여야 적구의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사업을 통이 크게 적극적으로 벌려나갈수 있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인민들의 존경과 신임을 얻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못해낼 일이 없다고 가르치시였는데 자신께서는 농사를 지으면서 인민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려고 한다고 하시였다.

이리하여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도천리를 거점으로 하강구일대를 혁명조직이 그물처럼 뒤덮인 곳으로 만들며 국내 동해안일대의 광활한 지역을 혁명의 보루로 꾸리기 위한 발판으로 되는 신파통로개척의 거창한 사업을 밭머리에서 호미를 잡는것으로부터 시작하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언제인가 당시의 김정숙어머님의 모습을 그려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어머님께서는 도천리지구에서 활동하실 때에는 주로 사람들속에 깊이 들어가 그들과 친혈육처럼 지내면서 앞으로 본격적인 지하혁명활동을 벌리기 위한 군중적지반을 닦는데 모를 박으시였습니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낮에는 밭머리에서 마을사람들과 같이 일하시였고 밤이면 마을을 돌아다니시며 사람들과 얼굴을 익히시였다. 얼굴을 익힌 다음에는 이름을 익혀두고 북청집이요, 갑산집이요, 흥남집이요 하는 집이름도 익혀두시였다. 그리하여 한주일동안에 200세대가 넘는 마을사람들의 이름도 다 외우고 집이름도 다 외워두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이 별치않은 일을 인민들속으로 들어가는 첫번째 공정으로 삼으시였던것이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진정한 인민의 딸이 되리라 결심하시고 남모르는 노력과 땀을 바치시였다. 밤마다 우물가에 나가 물동이를 이는 법과 물동이를 이고 걸어가는 법도 익히시였고 어느 명절을 앞두고는 여러날 밤 그네뛰는 련습도 하시였다. 이른새벽에 별을 이고 밭에 나가셨다가 달을 이고 돌아오시였으며 밤에는 밤대로 피곤을 무릅쓰고 집집을 찾으시여 감자눈도 따주시고 보리종자와 밀종자도 골라주시면서 농민들의 신세타령과 하소연을 들어주시였다.

한번은 류가촌의 지주가 제 집에서 부려먹던 소녀를 열병에 걸렸다고 하여 외진 산중초막에 내다버린 일이 있었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주저없이 소녀가 있는 초막으로 찾아가시여 침식을 같이하시며 신음하는 소녀에게 약도 구해다 먹이고 미음도 떠넣어주시여 얼마후에는 그를 끝내 소생시키시였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마을사람들은 김정숙녀장군을 가난뱅이들을 위해 《하늘에서 보내준 귀인》이라고 하였으며 《우리 옥순이》라고 친근하게 부르며 남녀로소 할것없이 따랐다.

도천리사람들은 혁명에 대하여 사상과 리념으로 인식하기에 앞서 김정숙녀장군의 인간상에 매혹되여 그이를 따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정숙녀장군께서 어려운 적구공작임무를 성과적으로 수행할수 있은 중요한 비결의 하나가 군중속에 깊이 뿌리를 박은것이였다고 회고하시였으며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도 그처럼 어려운 조건에서도 마을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도천리지구에서 혁명활동을 성과적으로 벌릴수 있은것은 어머님께서 누구보다도 뜨거운 인정미와 성실한 인간성을 지니고계시였기때문이라고, 도천리에서 진행하신 어머님의 지하혁명활동에서 가장 가슴뜨겁게 안겨오는것은 어머님의 뜨거운 인간애와 숭고하고 진실한 인간미라고 말씀하시였다.

인민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을 뗄수 없는 하나의 일심공동체로 받아들인 바로 이것이 김정숙녀장군으로 하여금 합법적으로 자연스럽게 공작을 진행할수 있게 한 믿음직한 토대로 되였다.

《우리 옥순이》의 정다운 이름으로 마을사람들속에 깊이 들어가신 김정숙녀장군께서는 그들모두를 영광스러운 선군혁명의 길로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혁명조직들을 튼튼히 꾸리고 확대하기 위한 사업에서 능란한 사업방법과 뛰여난 조직적수완을 보여주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조국광복회창립선언과 10대강령을 대중속에 해설하며 조국광복회조직을 확대하고 튼튼히 꾸리여 광범한 대중을 반일민족통일전선의 기치밑에 묶어세우는데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우선 녀성들을 조직에 묶어세우는데 많은 힘을 기울이시였다. 녀성들을 조직에 묶어세우는것은 조국광복회조직망을 확대하는데서 매우 중요한 문제였으나 당시까지만 하여도 도천리에는 녀성들의 조직이 없었다.

녀성들을 혁명화하는데서 장애물의 하나가 로인들의 완고한 봉건적관념이였다. 그들은 자식들이 나다니는것을 엄격히 다스렸는데 특히 녀인들이 밖에 나가 글을 배우거나 세상일에 뛰여드는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도천리에서 녀성혁명화를 빨리 다그칠수 있는 기본열쇠가 로인들과의 사업에 있다고 보시고 로인들과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진행하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마을의 한 로인이 오래동안 앓고있다는것을 아시고 자주 그의 집을 찾으시여 병시중도 들어주시며 재미나는 이야기도 해주시고 조용히 노래도 불러주시였다.

그 로인은 점차 김정숙녀장군께서 오시지 않으면 어째 옥순이가 보이지 않는가고 안절부절 못하였고 김정숙녀장군께서 나타나기만 하면 방안이 다 환해진다고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이 과정에 마을의 로인들은 김정숙녀장군을 친딸처럼 사랑하게 되였으며 이것은 녀성들을 혁명화하는데서 유리한 조건으로 되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또한 지하조직성원들이 자기의 어머니와 안해, 누이들에게 혁명적인 영향을 주어 핵심으로 키우고 그들을 통해 마을녀성들을 모두 혁명화해나가도록 하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조국광복회성원의 안해인 리정애를 조직의 핵심으로 키울것을 결심하고 그의 집에 자주 다니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그 집 마당에 있는 발방아에 낟알을 찧으러도 가시고 이런저런것을 빌리러 들리기도 하시였으며 맛나는 음식을 만들어 앓는 그 집 아버지에게 대접하라고 가져다주기도 하시면서 무산자가 못사는 원인을 마을사람들의 생활과 결부하여 깨우쳐주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때로는 혁명가요를 배워주시고 때로는 마을지주놈의 악착한 착취상을 놓고 그에게 계급의식을 넣어주시면서 이야기를 점차 항일무장투쟁을 빛나는 승리에로 령도하시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로 이끌어나가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그에게 장군님께서 항일유격대를 창건하신 이야기와 전투담도 들려주시고 《조국광복회10대강령》도 해설해주시였다. 리정애는 얼마후에는 자기도 유격대에 들어가 총을 잡고 왜놈들과 싸워봤으면 좋겠다고 자기의 심정을 고백하게까지 되였다.

그때 김정숙녀장군께서는 그에게 유격대에 들어가야만 왜놈들과 싸울수 있는것이 아니다, 여기서도 얼마든지 적들과 싸울수 있다고 하시면서 그가 할수 있는 일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그에게 처음에는 장날에 신파장에 가서 유격대에 보낼 신발을 몇컬레 사오도록 하시였고 다음은 주변에 주둔한 《정안군》에 대하여 알아볼 과업을 주시였다. 그런 과정을 통하여 리정애는 대담성과 용감성을 키워갔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리정애를 비롯한 여러명의 핵심녀성들을 키워내고 그들을 통하여 마을녀성들을 혁명화해나가시였다. 그리하여 주체26(1937)년 4월 20일에는 도천리부녀회를 결성하는 모임이 김정숙녀장군의 지도밑에 진행되게 되였다.

이날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도천리부녀회결성을 엄숙히 선포하시고 우리는 모두 김일성장군님의 전사들이며 그이의 령도를 받들고 조국광복을 위해 싸우는 혁명동지들이다, 우리는 그 어떤 어려운 일에 부닥치더라도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김일성장군님의 충직한 혁명전사로 싸워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도천리부녀회 책임자로는 리정애가 선출되였다. 한달전만 해도 수집어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적들의 총대만 보아도 겁나하던 녀성이 김정숙녀장군의 가르치심속에서 조국해방을 위한 반일성전에 분연히 나서게 된것이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모임을 결속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김일성장군님은 우리 민족의 태양이십니다.

우리모두는 김일성장군님의 해발이 됩시다.》

이 말씀에는 김정숙녀장군의 투철한 수령관과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장군님의 해발이 되여 모든것을 다 바치려는 김정숙녀장군의 확고한 의지가 반영되여있었다. 그리고 부녀회원들이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의 혁명전사로 된 높은 영예와 긍지를 안고 싸워나가기를 바라시는 기대가 어려있었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능숙한 조직정치사업으로 도천리에 반일청년동맹, 반일소년회, 반일로인회와 반군사조직인 생산유격대를 조직하여 마을을 급속히 혁명촌으로 변화시키시였다. 그리하여 하강구일대에는 조국광복회 하강구위원회의 산하에 도천리지회를 비롯한 20여개의 지회와 50여개의 분회들이 꾸려졌으며 중강구, 상강구일대에까지 조국광복회조직들과 그 산하조직들이 급속히 퍼져나갔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하강구일대에 혁명조직들이 확대되는데 맞게 조국광복회 장백현 하강구위원회산하 조직책임자들의 모임을 가지시고 하강구위원회에 조직부와 선전부, 교양부, 청년부, 무장부 등 기구체계를 내오도록 하시였으며 6월 중순에 조국광복회 핵심성원들로 당세포를 조직하시고 7월초에는 당지부를 결성하심으로써 조국광복회하부조직들에 대한 통일적인 당적지도를 보장할수 있게 하시였다.

기구개편으로 하여 하강구위원회는 산하조직들에 대한 지도를 실속있게 능동적으로 전개해나갈수 있게 되였으며 보천보전투승리경축모임에는 그 주변은 물론 13도구와 신갈파사람들까지 모여와 그 모임이 조국광복회조직을 확대하고 인민들을 반일투쟁에로 더 힘있게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여러가지 형태의 반일대중단체들이 튼튼히 꾸려지고 사람들의 혁명열의가 높아지자 그들속에서 원군사상교양사업을 강화하여 원군운동을 활발히 벌리도록 이끄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조국광복회 하강구위원회 위원들과 함께 조직을 통해 료해장악한 핵심들가운데서 끌끌한 청년들을 인민혁명군에 입대시키시였는데 도천리에서만도 김혁철, 류영찬, 리철수, 최인덕, 한창봉 등 10여명이나 되였으며 하강구적으로는 무려 100여명에 달하였다.

당시 하강구지역에서 입대열의가 얼마나 높았는가 하는것은 세 아이가 있는 요방자부녀회 책임자가 두살난 아이를 업고 80리가 넘는 밀영에 찾아와 자기를 유격대에 받아달라고 강떼를 쓴 사실에서도 잘 알수 있다. 또 어떤 집에서는 자식을 유격대에 보내고는 그 자식의 가짜무덤을 만들어놓고 제사까지 지냈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광범한 대중이 조직화되고 혁명열의가 비상히 높아지는데 맞게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원호사업을 다양한 방법을 적용하여 대담하고 통이 크게 벌려나가도록 하시였다.

그 시기 일제는 한되박의 쌀, 한줌의 소금, 한자의 천이라도 조선인민혁명군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눈에 쌍심지를 켜고 감시하였다. 적들은 상점마다에 밀정놈들을 붙여놓고 사람들을 감시하면서 지하족을 두컬레이상 사는것만 보아도 뒤따르게 하였으며 성냥 두갑을 사가도 그중 한갑은 압수하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적들의 통제가 심한 조건에서 조직성원들이 친척이나 아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사달라고 부탁하거나 대사를 구실로 많은 량의 물자를 구입하는 방법, 목재소와 영림서를 비롯한 적기관복무자들을 끼고 구입하기도 하고 반일감정을 가지고있는 상인들에게 혁명적영향을 주어 그들을 통하여 한꺼번에 많은 량의 물자를 구입하는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구입하도록 하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 원군교양을 얼마나 잘하셨던지 도천리마을에 사는 중국인주민들까지 인민혁명군에 원호물자를 보내주었으며 아동단원들은 전장을 돌아다니며 적들이 흘리고간 총탄을 수집하여 혁명군에 보내주었다.

그리하여 하강구일대는 인민혁명군을 보충해주는 저수지의 하나로, 믿음직한 후방기지로 전변되였으며 낮이면 밭머리에서, 밤이면 집들마다에서 《조국광복회10대강령가》, 《녀성해방가》를 비롯한 혁명가요들이 불리워져 사람들의 혁명열의를 북돋아주었다.

실로 그해 여름 하강구는 혁명열의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투쟁의 무대로 전변되였다. 이것은 조선민족모두를 조국해방의 성스러운 위업에 한결같이 떨쳐나서도록 하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웅대한 뜻을 가슴에 새기시고 인민들속에 들어가 그들과 하나가 되신 김정숙녀장군의 지하정치공작의 빛나는 결실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시절의 김정숙녀장군에 대하여 회고하시면서 김정숙동무는 도천리와 신파일대에서 많은 일을 해놓았습니다, 내가 그에게서 혁명가로서의 만만치 않은 수완과 능력을 발견한것이 바로 그때입니다, 그에게는 군중을 감화시키고 각성시키고 동원시킬줄 아는 비상한 솜씨가 있었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하강구일대에 꾸려진 광범한 지하조직망은 국내 넓은 지역으로 조직을 확대해나가는데서 출발점이였다.

능숙한 지하정치공작원이신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도천리를 비롯한 하강구지구의 혁명조직들을 정력적으로 지도하시는 한편 신파통로의 본격적인 개척에 나서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