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중에서

 

주체25(1936)년 4월말 봄빛이 짙어가는 화창한 봄날, 무송현 동강밀영으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부르심을 받은 조선인민혁명군 군사정치간부들과 함께 각지의 독립운동자대표들이 모여왔다. 국내대표들로는 천도교대표, 로동자, 농민, 교원대표들이 왔다.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되는 반일민족통일전선조직체의 창립을 선포하는 력사적인 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온것이였다.

모두의 얼굴마다에는 력사적사변의 체험자로 된다는 감격과 흥분의 감정이 력력히 어려있었다.

얼마나 고대하던 시각인가. 돌이켜보면 우리 민족사에는 민족의 모든 력량을 묶어세우기 위한 시도들이 여러번 있었지만 언제 한번 응당한 결실을 보지 못하였다. 1920년대말에 조직되였던 신간회의 경우만 보아도 그러하였다.  명칭이 보여주는바와 같이 신간회는 새로운 기초우에서의 민족력량의 총집결을 지향하였다. 리상재, 홍명희, 허헌 등 진보적애국지사들에 의하여 발기되고 추진되고 운영된 신간회운동은 민족의 정치경제적각성을 촉진하고 민족적단결을 도모하며 일체 기회주의를 부인한 강령도 혁신적이고 진보적이였으며 회원들의 직업별구성도 다양하고 광폭적이였다. 좌우합작으로 민족의 총력을 하나로 집결시키려고 한 그 훌륭한 취지와 목적에도 불구하고 신간회는 1931년 5월에 자기의 존재를 끝마치였다. 중심적인 지도력량, 령도핵심이 마련되지 못한것이 그 주요한 해산원인이였다.

우리 민족이 그처럼 고대하여오면서도 결실을 보지 못하였던 반일민족통일전선조직체의 결성문제는 위대한 수령님에 의하여 비로소 해결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찌기 반일민족통일전선로선을 우리 혁명의 주체적로선의 하나로 규정하시고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에 대한 조선인민혁명군의 령도적역할을 백방으로 강화하시여 그 확고한 담보를 마련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항일무장투쟁이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투쟁의 주류를 이루고있는 조건에서 통일전선운동의 지도핵심문제, 광범한 대중을 사상적으로 각성시키고 조직적으로 결속하는 문제, 실천투쟁속에서 대중을 혁명적으로 단련시키는 문제 등 이 운동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들을 무장투쟁과 밀접히 결부하여 풀어나가도록 하시는 한편 반일민족해방투쟁의 주력군인 조선인민혁명군의 령도를 철저히 보장하도록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항일대전의 불길속에서 교양육성되고 단련된 조선인민혁명군 지휘성원들과 대원들, 유능한 정치공작원들을 국내외의 넓은 지역들에 파견하시여 통일전선운동의 지도핵심들을 꾸리도록 하시였으며 곳곳에 조선인민혁명군의 직접적지도를 받는 각종 형태의 통일전선적조직들을 수많이 결성하도록 하시였다. 이와 함께 정치공작원들과 지하조직들이 각종 형태의 반일대중투쟁도 적극 조직진행하도록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몸소 종성, 경원, 온성 등 여러 지역들에 나가시여 광범한 애국력량을 민족단합의 기치아래 묶어세우심으로써 통일전선사업의 숭고한 모범도 보여주시였다.

그리하여 1930년대 중엽에 이르러서는 민족적단합을 실현해나갈수 있는 지도적핵심력량이 튼튼히 마련되고 계급, 계층별대중단체들과 함께 반제동맹, 반일회, 반일혁명후원회, 혁명호제회 등 통일전선적조직들이 국내외의 넓은 지역에 널리 확대되여 각계각층의 광범한 반일애국력량이 폭넓게 결속되게 되였다.

대중적인 반일투쟁도 활발히 벌어졌다. 일제가 줄여서 발표한 통계자료에 의하더라도 1931년부터 1935년사이에  파업건수는 900건, 대중적인 소작쟁의건수는 350여건으로서 그 이전시기에 비해 훨씬 많은 건수를 기록하였다. 파업건수의 경우 이것은 그전 10년동안에 일어난 파업건수를 모두 합친것보다 더 많은 수자였다.

이 모든 성과와 귀중한 경험들은 통일전선운동의 강화발전을 위한 튼튼한 토대로 되였으며 마침내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반일민족통일전선체를 내오는 력사적인 사변을 맞이하게 되였다.

주체25(1936)년 5월 1일 동강의 수림속에서는 조국광복회창립대회가 열리였다. 통칭하여 동강회의라고 부르는 이 회의는 15일간 진행되였다.

장내에 우렁찬 박수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연단에 나서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을 더욱 확대발전시켜 전반적조선혁명을 새로운 앙양에로 이끌어올리자》라는 력사적인 보고를 하시였다.

보고의 첫 부분에서 조성된 정세와 조국광복회창립의 필요성과 의의에 대하여 지적하신 그이께서는 조국광복의 기치밑에 전민족을 하나의 정치적력량으로 결속할데 대한 과업과 국경지대와 국내에 진출하여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을 힘있게 전개하며 항일무장투쟁을 가일층 확대발전시키기 위하여 국경연안에 조선인민혁명군이 의거할 새로운 근거지를 창설할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계속하시여 자신께서 몸소 작성하신 《조국광복회10대강령》《조국광복회창립선언》, 《조국광복회규약》의 초안을 상세히 설명하시고 그것을 대회심의에 붙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광복회10대강령》에서 1930년대의 정세와 우리 나라의 사회경제적조건, 계급호상관계 등을 정확히 분석한데 기초하시여 조선혁명의 성격과 임무, 전략전술적원칙을 규정하시였으며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대중의 리익과 각계층 애국적인민의 공통된 리해관계를 철저히 고려하여 조선혁명의 전도를 명백히 밝히시였다.

《조국광복회창립선언》에서 그이께서는 돈있는 사람은 돈을 내고 식량이 있는 사람은 식량을 내고 기능과 지혜가 있는 사람은 기능과 지혜를 바치며 2천만 민중이 일심동체가 되여 반일조국광복전선에 총동원된다면 일제놈들은 괴멸될것이며 우리 민족의 해방과 독립은 이룩될것이라는 확신을 표명하시고 모두다 조국의 완전독립과 민족의 자유해방을 위하여 싸울것을 열렬히 호소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조국광복회조직체의 명칭과 가입대상, 투쟁목적과 그 실현방도, 회원의 자격과 입회방법, 조직형식과 조직구조 등을 밝힌 규약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하시였다.

조선이 나아갈 앞길을 환히 밝혀주는 고귀한 지침을 받아안게 된 회의참가자들은 남호두로부터 동강에 이르는 험난한 로정에서 조국광복회의 훌륭한 강령을 작성하여오신 그이의 거룩한 영상이 안겨와 숭엄한 감정에 휩싸였다.

거듭되는 적과의 전투, 가도가도 끝이 없는 숲바다, 험산준령과 계곡들을 수시로 넘어야 했던 그 간고한 행군길에서 전투후의 짧은 휴식참과 숙영지의 밤시간도 아껴가시며 사색하시고 조국광복회 강령, 규약과 창립선언을 써오신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간고한 행군의 나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새우신 밤들은 얼마였고 불멸의 대강을 한자한자 완성해가신 새벽은 얼마였던가.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령의 첫 조항을 놓고 조국광복회창립준비위원회 위원인 리동백과 담화를 나누게 되시였다. 리동백으로 말하면 한때 민족주의운동과 초기공산주의운동에 참가하여 파란많은 곡절을 겪어오다가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안겨 애국의 참된 진리를 깨닫고 조국광복을 위한 성업에 한몸바칠것을 결심하고 나선 사람이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자신께서 오래전부터 생각해오신 강령의 첫 조항에 2천만 조선민족의 총동원으로 강도 일본제국주의식민지통치를 짓부시고 진정한 인민의 정부를 세우자는 내용을 앉히자고 말씀하시였다.

그런데 리동백은 무산계급의 사회를 건설한다는 문구가 하나도 없으니 서운하다고 하면서 강령 첫 조항에 공산주의냄새가 전혀 없으면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숱한 주의자들이 좋아하겠는가고, 진정한 인민의 정권이라는 말은 계급적성격도 모호하고 어쩐지 민족주의냄새가 난다고 그이께 말씀올리는것이였다.

그의 말을 주의깊게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사회주의혁명이 민족국가단위로 진행되게 되는 새로운 력사적조건에서 식민지나라들에서의 진정한 민족주의와 진정한 공산주의사이에는 사실상 깊은 심연이 없다고 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진정한 공산주의자도 참다운 애국자이며 또 진정한 민족주의자도 참다운 애국자라고 보는것이 자신의 변함없는 신조라는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자신께서는 이런 신조로부터 출발하여 시종일관 애국적인 진정한 민족주의자들과의 합작을 중시해왔으며 그들과의 동맹을 강화하는데 모든 힘을 바쳐왔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계속하시여 우리는 자신의 투철한 조국애와 민족해방을 위한 실천투쟁으로써 공산주의자들이야말로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자들이라는것을 온 민족앞에 과시하였으며 드디여 민족해방투쟁의 진두에 떳떳이 서게 되였다고, 이러한 장구한 희생적인 투쟁의 결과로 보람찬 결실을 보게 된것이 바로 조국광복회창립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국광복회>라는 명칭자체도 당당하게 내달고 강령의 첫 조항에 우리 민족성원전체의 자력으로 조국광복을 이룩하고 동만유격근거지에 세웠던것과 같은 진정한 인민의 정부를 세우려 한다는데 대하여서도 뚜렷이 밝혀야 한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고난 리동백은 《이제는 됐습니다! 눈뜬 소경이 됐던 나는 장군과 론쟁을 한 덕에 불구를 면케 됐습니다. 대찬성입니다.》라고 하면서 그이께서 내놓으신 제안을 적극 찬성해나섰다.

그의 이 말은 언제나 투철한 자주정신과 애국애족의 립장에서 민족이 나아갈 앞길을 명철하게 밝혀주시는 절세의 위인에 대한 뜨거운 감사의 정의 표현이였으며 아직도 교조주의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는 자신을 타매하는 심중의 웨침이기도 하였다.

사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부사람들속에서 통일전선체의 조직형식에 대한 교조주의적태도가 나타나고있을 때에도 모든 문제를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립장에서 풀어나갈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었다.

당시 리동백을 비롯하여 일부 군사정치일군들은 프랑스, 에스빠냐, 중국 등 나라들에서는 공산당, 사회당, 국민당과 같은 정당들과 로동운동단체들이 있어 정당, 단체들의 련합으로 인민전선결성이 가능하였지만 우리 나라에는 어떠한 정당이나 합법단체도 사실상 없는것과 같은 조건에서 통일전선조직체의 결성이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하는 견해를 가지고있었다.

그때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여 기성관념에 사로잡혀있는 그들의 그릇된 태도를 바로잡아주시였다.

《통일전선이란 반드시 정당단체들의 련합으로만 이루어지는것이 아닙니다. 정당단체설을 절대화하게 되면 그것은 곧 교조가 됩니다. 군중이 있고 령도핵심만 있으면 능히 통일전선체를 내올수 있습니다. 목적과 지향의 동일성을 기준으로 하여 열사람이건 백사람이건 묶어세워야 한다는것이 통일전선에 대한 나의 견해입니다.》

이처럼 동강회의의 위대한 문헌은 그 어떤 서재나 연구실에서 작성된것이 아니라 찬바람 휘몰아치는 밀림속 우등불가에서, 눈바다를 헤쳐나오는 행군길에서, 생사를 판가리하는 혈전의 길에서 마련되였던것이다.

회의참가자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동강에로의 행군길에 새기신 그 불멸의 화폭들을 그려보며 《조국광복회10대강령》과 창립선언, 규약을 전폭적으로 지지찬동하였다. 그리고 강령에서 제시된 과업들을 적극적으로 실현해갈 굳은 결의를 다지였다.

회의에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조국광복회10대강령》《조국광복회창립선언》, 《조국광복회규약》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였다.

전체 참가자들은 력사적인 《조국광복회창립선언》을 민족의 태양이시며 절세의 애국자이신 김일성장군님의 존함으로 발표할것을 일치하게 제의하였다.

그러나 한없이 겸허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를 굳이 사양하시고 발기인으로는 과거 의병운동이나 3.1운동시기부터 조선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투신한 명망이 높고 나이도 지숙한 애국지사로 하는것이 좋겠다고 제기하시였다. 참가자들이 다시금 요청해서야 그이께서는 《김동명》이라는 가명으로 《조국광복회창립선언》을 발표하도록 하시였다.

주체25(1936)년 5월 5일, 드디여 력사적인 시각이 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광복회창립을 온 세상에 선포하시였다. 대회참가자들은 전체 조선민족의 한결같은 의사와 절절한 념원을 담아 그이를 조국광복회 회장으로 높이 추대하였다.

폭풍같은 환호가 회의장을 진감하는 가운데 전체 참가자들은 일제히 일어서서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께서 추켜드신 주체의 기치밑에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킴으로써 항일대전의 일대 앙양기를 열어나갈것을 굳게 맹세다지였다.

회의에서는 조국광복회기관지로 《3.1월간》을 발간할것을 결정하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의 불면불휴의 로고에 의하여 상설적인 통일전선체를 결성하기 위한 사업은 성과적으로 진행되였다.

조국광복회가 창립됨으로써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은 항일무장투쟁과 밀접히 결합되여 전국적범위에서 더욱 확대발전되여나갈수 있게 되였으며 모든 반일력량을 나라의 해방을 위한 투쟁에로 힘있게 조직동원할수 있는 확고한 담보가 마련되게 되였다.

참으로 조국광복회의 탄생은 조선혁명발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조국광복의 밝은 서광을 안아온 력사적사변이였다.

백두산기슭에서 밝아온 그 서광은 겨레의 가슴마다에 재생의 희망을 안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