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중에서

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건군로선을 받드시여 정규적혁명무력의 핵심골간육성사업과 함께 정규군건설에 필요한 후방보장사업을 따라세우기 위하여 온갖 심혈을 다 바치시였다.

당시 무엇보다 급한것은 군복이였다. 아직 군복이 제정되지 못하다보니 병사이건 지휘관이건 할것없이 입대할 때 입었던 각양각색의 옷들을 그대로 입고있었고 지어 로획한 일본군 군복을 입은 군인들도 있었다.

군인들에게 통일적인 군복을 해입히지 못하다나니 부대의 군사규률을 세우는데서도 정규적면모를 갖추는데서도 적지 않은 애로를 느끼고있었다.

군대안의 적지 않은 지휘일군들도 이런 실태를 알고있었지만 갓 해방된 나라의 경제형편이 그러한데 별수가 있는가 하면서 군인들에게 통일적인 군복을 해입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못하고있었다.

해방후 평양학원을 창설하시던 그때에 벌써 우리 인민군대의 군복은 어떤 색갈로 하며 어떤 형식으로 만들겠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시고 생각을 무르익혀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5(1946)년 10월초 어느날 또다시 일군들에게 군복제정과 관련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 창조된 전통을 살려 혁명의 군대, 인민의 군대로서의 성격이 잘 나타나고 민족적특성과 생활감정에 맞으며 전투행동에서도 편리한 우리 식의 군복을 만드는데서 나서는 원칙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드시고 김정숙녀사께서는 군복도안을 완성하기 위한 사업을 정력적으로 밀고나가시였다.

어느날 오후였다.

저택에는 백두밀림에서 같이 싸운 녀성항일투사들과 보안간부훈련대대부, 중앙경위대, 철도경비대 책임일군들이 와있었다.

녀사께서는 손수 그리신 남녀군관옷과 병사옷도안을 내놓으시고 그들과 토의를 하시였다.

군복도안에 대한 의견은 각이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이 입던 군복형식에 직급표식을 하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고 다른 나라 군대들이 입는 군복처럼 팔소매와 저고리앞섶에 금색줄들을 띄워 보기에 어마어마하게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일군들의 의견을 다 들으신 녀사께서는 다정하게 웃으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정규군이 입어야 할 군복형식문제를 가지고 경위대지휘관들과도 의논해보시고 평양학원과 중앙보안간부학교 일군들과 학생들의 의견도 들어보시였다고 하시면서 가운데 펼쳐놓은 군복도안을 손으로 짚으시며 수령님께서는 이 군복형식이 그중 좋은것 같은데 토론을 해보라고 하시였다고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의 시선은 녀사께서 가리키시는 군복도안에 집중되였다.

새로운 군복형식에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던 녀사께서는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우리 인민군대의 옷은 조국의 자유와 인민의 행복을 무장으로 옹호보위하는 혁명군대의 제복으로 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습니다.

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 우리 군대의 옷은 혁명군대의 기상이 비끼게 하면서도 인민들에게 친근감을 주어야 하며 조선사람의 체격에 어울리고 생활과 전투활동에 편리하게 만들어져야 합니다.》

녀사의 말씀은 일군들에게 크나큰 감동을 주었다. 그들은 군복에 담긴 깊은 뜻을 가슴뜨겁게 깨달으며 자신들의 짧은 생각을 뉘우쳤다.

그들의 대답을 다 들으신 녀사께서는 다정하게 웃으시며 동무들이 다 좋다면 위대한 수령님께 보고드리여 결론을 받자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숙녀사의 세심한 지도밑에 10월초 우리 식의 군복도안이 완성되게 되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정규군의 직급표식도안을 제정하는 사업에도 깊이 마음쓰시였다.

녀사께서는 어깨에 견장을 다는 문제로부터 견장의 바탕색갈과 장식선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관심을 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숙녀사의 이렇듯 숭고한 뜻과 깊은 보살피심속에서 처음으로 직급표식이 완성되게 되였다.

그후 김정숙녀사께서는 견장시제품을 보시고 기쁨을 금치 못해하시면서 산에서 싸울 때 모자에 오각별을 단 새 군복을 타입으시고 밤이 깊도록 해방된 조국산천을 그리며 잠들지 못하던 일들을 회상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지난날 천대받고 억압받던 조선청년들이 위대한 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우리의 새 군복에 견장을 달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고 하시면서 해당 부문 일군들에게 군복생산을 다그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의논해주시였다.

며칠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정숙녀사에게 군인들에게 군복을 통일적으로 해입히자면 군복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피복공장을 꾸려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심중을 누구보다 잘 알고계시는 녀사께서는 건물 한동을 보아둔것이 있다고, 그것을 피복공장으로 쓰면 어떻겠는가고 수령님께 말씀드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시며 다음날 일군들과 함께 현지에 나가시여 피복공장을 확정해주시고 군대피복공장의 물질적토대를 강화하며 공장운영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숙녀사의 크나큰 관심과 보살피심속에 빠른 시일안에 꾸려진 이 군대피복공장에서는 그해 10월부터 우리 인민군군인들이 입을 군복을 꽝꽝 생산하게 되였다.

녀사께서는 피복공장에 여러차례 나가시여 군복, 혁띠, 모자 등 피복과 장구류시제품생산을 다그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주체36(1947)년 2월 25일 녀사께서는 첫 군복시제품을 경위대원들에게 입혀보시고 미흡한 점들을 손수 바로잡아주신 다음 위대한 수령님께 보여드리시였다.

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 정규군대의 녀성군복치마는 항일유격대의 녀성대원들이 입던 치마를 참작해서 량쪽에 주름폭을 잡아주고 밑이 퍼지게 한 주름치마로 만들면 좋을것 같다는 의견을 말씀드리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배낭시제품도 보아주시고 잘 만들지 못하였다고 하시면서 군사행동에 편리하고 쓸모있게 다시 만들어볼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수령님의 정규무력건설구상실현을 위해 불철주야로 온갖 심혈을 다 바쳐오신 김정숙녀사께서는 자신께서 몸소 이 문제를 해결하시기로 결심하시였다.

이날 밤 한 녀성항일혁명투사가 녀사께서 계시는 저택으로 찾아왔다.

그가 녀사께서 계시는 방에 들어서니 방바닥에는 금시 재단을 끝낸 보위색천이 놓여있었다.

자정이 넘도록 주무시지 않으시는 녀사를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며 어리둥절해하는 그에게 녀사께서는 정색한 안색을 지으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 정규적혁명무력을 확대발전시켜나가는데 절실히 필요한 인민군대의 배낭견본을 하나 만들자고 하는데 형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런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어제 군대피복공장에서 장군님께 배낭시제품을 몇가지 만들어올렸는데 잘되지 못했어요.…

장군님께서는 아무토록 배낭을 혁명군대의 정규적면모에 어울리면서도 전투활동에 편리하게 만들어야 하겠는데 어느 하나의 시제품도 그렇지 못하다고 하시면서 항일유격대원들이 쓰던 배낭형식을 참작하여야 하겠다고 하시였어요. 그래서 내가 장군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항일전쟁시기 우리 유격대원들이 지고다니던 배낭을 참작해서 시제품견본을 만들어보던 중이예요.》

그러시면서 녀사께서는 재단중에 있는 천쪼박들을 방바닥에 하나하나 펴놓으시였다.

예나 지금이나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받드시는데서 변함없이 열렬하고 드팀이 없는 녀사의 충실성을 다시금 느끼며 그는 숭엄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를 정겹게 바라보시며 녀사께서는 어서 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실현해보자고 하시며 재봉기에 앉으시였다.

녀사께서는 《녀성의 노래》를 부르시며 재단한 배낭천을 한뜸한뜸 누벼나가시였다.

조용히 노래를 부르시며 재봉기를 잽싸게 돌리시는 녀사의 모습은 항일의 그 나날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로선을 앞장에서 실현해나가시던 친위전사의 모습 그대로였다.

녀사께서 재봉을 끝내시고 한점의 티도 있을세라 실밥까지 말끔히 뜯어내시였을 때는 새날이 잡혀 동녘하늘이 푸름푸름 밝아오고있었다.

녀사께서 만드신 배낭시제품은 항일유격대에서 사용하던 배낭과 류사한 점들이 많았는데 그것은 참으로 그 어느 피복연구사나 전문재단사도 감히 창작할수 없는 문제들까지도 고려한 완성된 배낭시제품이였다.

녀사께서는 완성된 배낭시제품을 정갈한 붉은 보자기에 싸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이제 장군님께서 우리가 만든 배낭시제품을 보시면 매우 기뻐하실거예요. 정규적혁명무력을 확대강화발전시켜나가시는 위대한 장군님께 기쁨을 드릴수만 있다면 나는 이런 밤을 몇천번이라도 패고싶어요.》

이날 아침 김정숙녀사께서는 밤새워 만든 배낭견본품을 위대한 수령님께 보여드리시였다.

녀사의 설명을 들으시며 배낭을 주의깊게 살펴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배낭이 보기도 좋고 쓰기도 편리하며 공장에서 만들기도 쉽겠다고 하시며 멜끈을 그렇게 누벼서 만드니 정규군의 면모에도 손색이 없고 천도 많이 절약되겠다고 만족해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기쁨, 이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의 삶의 전부였으며 최상의 행복이였다.

녀사께서는 곧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대로 군복과 배낭을 비롯한 피복들을 완성하도록 보살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6(1947)년 3월 중순 그 시제품을 조선인민군 군복으로 제정해주시였으며 4월말까지 모든 군인들에게 입힐수 있도록 여름철군복을 생산보장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정규적혁명무력의 면모에 어울리는 군복이 제정된 기쁨을 안으시고 거의 매일같이 피복공장과 여러 공장들에 나가 작업을 흐름식으로 하여 생산도 늘이고 질도 높일수 있도록 이끌어주시였다.

백두산위인들의 현명한 령도와 보살피심속에 이해 5월부터는 모든 군인들이 새 군복을 입게 됨으로써 우리의 군대는 정규적혁명무력의 면모를 갖추게 되였다.

군복제작을 위한 김정숙녀사의 정력적인 활동은 위대한 수령님의 정규무력건설구상을 하루빨리 실현하는데서 혁명전사의 참된 삶과 보람을 느끼시는 녀사의 숭고한 인생관과 오로지 수령님의 사상과 의도를 혁명무력건설의 절대적기준으로 삼으시고 모든 문제를 주체적으로 풀어나가시는 투철한 자세와 립장을 보여준 과정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