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중에서

선군의 기치를 높이 들고 항일대전의 선포를 알리는 첫 총성과 더불어 항일혁명의 종국적승리를 선언하는 장엄한 포성이 높이 울려퍼졌다.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서 주체34(1945)년 8월 9일 드디여 조선인민혁명군에 조국을 해방하기 위한 최후공격작전을 개시할데 대한 명령을 내리신것이다.

조국해방을 위한 최후공격작전의 개시, 이것은 총대가 약해 수십년간 식민지노예살이를 감수해야만 하였던 조선인민이 손에 총을 억세게 틀어잡고 강도 일제를 격멸소탕하는 자력해방전쟁을 결속짓기 위한 성스러운 싸움이였다.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명령 조국해방을 위한 총공격전을 개시할데 대하여》를 하달하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 각 부대들과 전체 지휘관, 병사들!

우리 민족이 일일천추로 갈망하던 조국광복의 력사적위업을 성취할 결정적시각이 목전에 도래하였다.

나는 이 엄숙하고 결정적인 시각에 조선인민혁명군 각 부대들과 전체 지휘관, 병사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한다.

첫째, 전체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들과 병사들은 일본제국주의침략자들을 조국강토에서 완전히 격멸구축하기 위한 최후결전에 총출동할것이다.

전체 지휘관, 병사들은 일본군대와의 격전에서 애국충정과 용감성을 높이 발휘하라!  고국강토를 겨레의 붉은 피로 물들인 강도 일본제국주의침략자들을 한놈도 남김없이 섬멸하라! 놈들에게 무자비한 복수의 철추를 내리라!

둘째, 국내에서 활동하고있는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 소조 성원들과 정치공작원들, 혁명조직성원들은 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전에 호응하여 도처에서 전민중의 반일항쟁을 조직전개할것이다.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전체 반일대중을 일제와의 최후결전에 불러일으키고 그들을 승리의 길, 혁혁한 위훈의 길로 인도하라!

셋째, 국내에서 활동하고있는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와 인민무장조직들은 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에 합세하여 적의 배후에 대한 타격전을 과감히 전개할것이다. 소부대와 인민무장조직들은 적의 군대와 군사대상들을 공격소탕하며 적들의 지휘체계를 마비시키고 놈들을 혼란과 수세에 몰아넣으라!

넷째, 조선인민혁명군 정치일군들은 대원들을 원쑤격멸의 성전에로 적극 불러일으키며 해방지역 인민들속에서 정치사업을 강화하여 그들이 자신의 손으로 자치기관들을 창설하고 반동들의 책동을 분쇄하며 치안유지와 사회질서수립에 한결같이 떨쳐나서게 할것이다.

조선인민혁명군 전체 지휘관, 병사들!

조국해방성전에서 혁혁한 전과와 전투적위훈을 떨치라!

나는 조선인민혁명군 각 부대들과 전체 지휘관, 병사들이 간악한 일제식민지통치를 종식시키고 조국광복의 력사적위업을 빛나게 성취하리라는것을 확신한다.

승리는 우리의것이다.

항일전의 최후승리를 위하여 총진군하자!》

일제를 격멸하는 자력해방전의 선두에는 백두의 설한풍과 사선의 언덕을 넘고넘으며 억세게 자라난 조선인민혁명군이 서있었다. 선군혁명의 주력군인 조선인민혁명군은 김일성장군님의 명령에 따라 8월 9일 새벽 일제히 적들의 국경요새구역들을 돌파하기 위한 작전을 개시하였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모든 전선의 정황을 예리하게 통찰하시면서 조국해방작전을 승리에로 조직령도하시였다.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조국해방을 위한 최후공격작전계획에 따라 1차적으로 공격장악해야 할 지대는 두만강연안국경일대와 북부조선동해안일대였다.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의 첫 공격대상은 경흥요새구역이였다.

경흥요새구역은 전선 30km, 종심 8km안에 영구화점 30여개, 토목화점 100여개, 포진지 30여개, 철근콩크리트 및 장갑시설물 약 50개가 있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요새지대였다.

그러나 그것은 일제에게 식민지노예살이를 강요당하는 조선인민을 하루빨리 해방하려는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의 노도와 같은 공격을 멈춰세울수 없었다. 인민혁명군 대원들은 두만강을 건너 저항하는 적들을 쓸어눕히면서 화력기재들을 짓부시고 무서운 기세로 진격하여 요새구역의 중심부에 있는 경흥을 완전히 해방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경흥요새구역을 돌파한 부대들을 두개 대로 나뉘여 한 대는 웅기-우암리방향으로, 다른 대는 회령방향으로 각각 진격하도록 명령하시였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훈춘방향으로 진격하는 조선인민혁명군의 다른 한 부대의 국경선돌파를 위한 격렬한 전투를 조직지휘하시였다.

훈춘요새구역은 전선 70km, 종심 12km의 지대안에 영구화점 400여개, 토목화점 350여개, 포진지 100여개, 철근콩크리트은페호 70여개, 장갑시설물 40여개가 설치되여있었다.

일제는 이 요새구역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수많은 병력을 집중배치하고있었다. 그가운데서도 훈춘근방의 대반령에는 적들의 견고한 방어진지가 구축되여있었는데 관동군의 대부대가 그에 의거하여 완강하게 저항하고있었다. 대반령을 점령하는것은 국경진지들을 돌파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였다.

정황은 매우 위급하였다.

이런 때 적후습격조가 공중으로부터 대반령 적종심에 락하하였다. 습격조는 견고한 방어진지에 의거하여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적들과 결사전을 벌려 공격부대가 대반령을 점령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리하여 《난공불락의 방어선》이라고 떠벌이던 국경요새들은 조선인민혁명군의 드센 공격에 의하여 말그대로 물먹은 담벽처럼 걷잡을수 없이 허물어지고 말았다.

국경요새지대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의 진격을 저지시키려던 기도가 완전히 파탄되자 일제 대본영은 《만주전토는 전진기지로서 할수 없으면 버려도》 좋으나 《제국전반의 정황상 조선은 최후의 1선으로서 절대적으로 틀어쥐고있는것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제17방면군을 관동군사령관의 휘하에 넣고 그 관하사단들을 급히 남부조선으로부터 서울이북지역에로 기동시키는 등 조선을 최후의 결전장으로 유지하려고 단말마적인 발악을 하였다.

이러한 전선정황을 예리하게 살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에 공격속도를 더욱 높일것을 명령하시였다.

적의 요새구역들을 파죽지세로 돌파한 혁명군부대들은 수령님의 명령에 따라 공격속도를 높여 이르는 곳마다에서 적집단을 격멸소탕하며 종심으로 작전의 성과를 급속히 확대해나갔다.

지상부대들의 진격에 발 맞추어 해안상륙부대는 웅기-라진요새를 타격하기 위한 상륙작전을 벌리였다.

경흥일대를 해방한 지상부대들이 웅기-라진요새의 동북쪽을 위협하면서 적의 주목을 송진산계선으로 끌어붙이고있을 때 해안상륙부대의 선견대에서 활동하던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8월 11일 웅기에 상륙하여 적을 녹여내고 이곳을 순식간에 해방하였다. 해안상륙부대는 지체없이 적들이 도사리고있던 웅기지구에 있는 만향고개의 영구화점들을 까부시고 거기에 의지하여 저항하던 놈들을 모두 살상포로하였으며 다음날 새벽에 토리, 룡현, 경흥일대의 국경선을 돌파한 지상부대들과 협동하여 웅기일대를 완전히 해방하였다.

해안상륙부대들은 불과 며칠사이에 라진, 청진항들을 해방한데 이어 원산항에 상륙하였다.

전선에서 진격하는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이 적의 요새구역들을 성과적으로 돌파하고 계속 높은 속도로 공격작전의 성과를 확대하고있을 때 각지의 정치공작원들과 조국광복회조직들 그리고 무장봉기조직들은 조직성원들과 애국적인민들을 전인민적항쟁에로 힘있게 조직동원하였다.

그리하여 온 나라 방방곡곡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의 최후공격작전에 배합하는 전인민적항쟁의 불길이 기운차게 타번지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이 두만강연안지대를 해방하고 종심으로 작전의 성과를 확대하던 시기에 회령, 종성, 무산, 부령, 풍산, 어랑을 비롯한 도처에서 인민들의 무장항쟁이 힘차게 전개되였다.

각지에 조직된 무장대들이 일제의 경찰, 헌병, 기관들과 군사시설들을 습격파괴하고 패주하는 적들과 그 주구들을 처단하는 과감한 투쟁을 벌리였다.

라진상륙작전을 담당한 쏘련 태평양함대의 해군부대가 라진에 진출했을 때에 도시는 이미 라진인민무장대에 의하여 해방되여있었다.

청진, 길주, 성진지구의 무장부대들은 적패잔병들을 소탕하고 8.15해방전에 벌써 무장으로 공장들을 장악하였으며 회령지구에 조직된 까치봉무장대는 자체로 회령을 해방하였다.

함경남도, 강원도, 평안북도의 지구별 항쟁조직들도 자체로 수많은 경찰서와 적통치기관들을 습격소탕하였다. 신의주지구의 항쟁조직들은 총공격명령이 내린 다음날부터 경찰관파출소와 국경경비초소들을 들부시고 도경찰부와 도청을 점거하였으며 비행장에 박혀있는 패잔병들을 무장해제하였다.

인민들은 진격하는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에 적정을 탐지하여 알려주었으며 위험을 무릅쓰고 길안내를 맡아나서는 등 모든 힘을 다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을 원호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과 인민무장대가 벌린 눈부신 군사활동에 대하여 당시 쏘련군 관계자들은 높이 평가하였다.

대일전쟁에 참가하였던 로씨야의 한 전쟁로병은 《만일에 여러 주민지역들에서 유격대들이 식민주의자들을 족치지 않고 그들이 요새를 치지 않았더라면 붉은군대의 조선해방작전은 어려웠을것이고 많은 손실을 볼번 하였다. 유격대의 정찰병들은 우리에게 가치있는 적정자료들을 통지해주었다.

우리가 라진항에 상륙했을 때 도시에 이미 들어와있는 유격대원들을 만나던 일이 생각난다. 그들은 우리에게 명료하게 남쪽 원산방향으로 도망치는 일본군의 배치와 병력수에 대하여 알려주었다.》라고 회상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이 인민들의 무장항쟁과 배합하여 청진이북의 광대한 지역을 해방하는 영웅적인 투쟁을 과감히 벌리고있을 때 조선인민혁명군의 다른 부대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작전명령을 높이 받들고 작전의 보조방향인 백두산동북부와 서남부의 두만강, 압록강연안일대에서 일제침략군을 격멸소탕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렸다.

수령님께서 왕청방향으로 진출시킨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는 동흥진을 해방한데 이어 서토문자를 해방하고 금창일대에서 1개사단 력량의 적들을 소멸하였으며 맹렬히 진격하여 8월 11일에는 목릉을 해방하고 8월 15일에는 관동군 제1방면군 사령부가 있던 목단강시를 해방하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의 최후공격명령에 따라 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과 그에 호응한 각지 인민들의 무장봉기에 의하여 《일본륙군의 꽃》이라고 자랑하던 관동군은 전선과 후방 할것 없이 사면팔방에서 호되게 얻어맞고 괴멸의 운명에 처하게 되였다.

혁명군의 노도와 같은 진격에 겁을 먹고 사령부를 장춘으로부터 통화로 옮기던 끝에 승산이 없음을 안 관동군사령관 야마다는 나중에는 자기 졸개들을 내버리고 도망치다가 포로되고말았다.

각 전선에서 들어오는 보고자료들을 종합분석하시며 정세발전을 예리하게 살피고계시던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마침내 항공륙전부대들에 출격준비명령을 내리시였다.

만단의 전투준비를 갖추고 대기하고있던 조선인민혁명군 항공륙전대들은 곧 비행장으로 나갔다. 그날은 바로 주체34(1945)년 8월 15일이였다.

항공륙전대가 조국을 향하여 방금 떠나려고 지구별 부대단위로 정렬하여 출격명령을 기다리고있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 사령부통신소 지휘관이 긴급보고를 가지고왔다.

항공륙전대의 출격준비상태를 친히 검열하시던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통신소지휘관의 보고를 받으시자 곧바로 대렬앞으로 걸어오시였다.

대오는 긴장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띠우시고 지휘관들과 대원들을 둘러보시며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동무들! 방금전에 일본제국주의자들은 무조건항복을 온 세상에 선포하였습니다.

아군련합부대들의 노도와 같은 진격과 인민들의 강력한 혁명적진출앞에서 그처럼 오만무례하게 기승을 부리던 일제의 <대본영>은 드디여 저들의 완전한 패망을 자인하고 우리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순간 폭풍같은 환호가 터져올랐다.

김일성장군 만세!》

《조국해방 만세!》

얼마나 바라고 기다리던 날인가! 조선의 참된 아들딸들이 이날을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던가!

온 민족이 피바다에 잠긴 암흑천지에서 그처럼 고대하고 고대하던 조국해방의 그날은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민족의 위대한 태양이신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서 이끌어오신 20성상의 항일혁명투쟁에 의하여 마침내 오고야만것이였다.

여러해동안 조국해방의 날을 위하여 쏘련의 훈련기지에서 현대전과 유격전을 결합한 작전준비를 해온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력량이 본래의 계획대로 전투작전을 전개하지 못한것은 아쉬운 일이였다. 결국 일제의 급작스러운 항복으로 하여 조선인민혁명군 항공륙전부대는 작전을 중지하고 비행장에서 철수하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1947년 5월 일본 도꾜에서 발간된 잡지 《문화조선》에 실린 글 《김일성론》에는 다음과 같이 서술되여있다.

《일본이 점차 패전의 길에 빠져 쏘련이 정의의 무기를 가지고 일본에로의 공격을 준비하고있을 때 김일성장군은 다시금 부하의 정예들을 만주에 파견하여 관동군을 전멸시키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만주의 모든 요충에 군대를 배치하고 비행기 20여대도 준비되여있었다. 이것은 대부분 징병, 학병 등 일본군대내의 조선인장병들과 련락하여 들고일어날 계획이였다. 그래서 이 세기적계획을 바야흐로 실현시키려고 하던 그 직전에 일본의 항복을 보게 되여 유감스러우나 이 계획은 무효로 시키고 중지되였던것이다. 만일 이 계획을 조금만 빨리 세웠거나 혹은 일본이 좀 늦게 항복했어도 김일성장군은 그 절륜한 전략전술을 마음껏 발휘하여 요란한 비행기프로펠러소리와 함께 또한 장렬한 군대의 포성과 함께 함성높이 보무당당히 입국하였을것이다. 이것은 김일성장군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천추의 한이라고 할수 있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일제의 무조건항복으로 항공륙전대의 출격이 필요없게 된 조건에서 항공륙전부대들도 전선작전부대들과 함께 반항하는 일제의 패잔병들을 소탕하면서 해방된 인민들에게 대중정치사업을 벌리도록 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일제의 《대본영》이 무조건항복을 하였으나 조선강점군의 광신적천황주의군벌들은 스스로 무장을 내놓지 않을뿐더러 무고한 인민들을 살해하며 우리 인민의 피땀으로 이루어진 공장, 광산, 철도운수 등 주요산업기관들과 교육, 문화, 보건시설들을 파괴하는 등 단말마적으로 발악할것이라고 하시면서 항공륙전부대들이 륙상부대와 신속히 합류하여 조국해방의 성전을 빨리 끝낼것을 명령하시였다.

조성된 정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예측하신 그대로였다.

일본천황이 항복선언을 한 다음날인 주체34(1945)년 8월 16일 조선총독부와 조선군관구사령부는 《정치운동단속요령》이라는것을 공포하고 각 지방에 주둔하고있는 관하부대들에 조선인민의 해방투쟁을 진압할데 대한 지령을 하달하였다. 놈들은 조선주둔군은 엄연히 건재해있다고 하면서 일본의 무조건항복선언을 기화로 그 어떤 독립운동을 벌린다면 단호하게 무력행사를 하겠으니 경거망동하지 말라고까지 감히 경고하였다.

이것은 일본이 무조건항복을 선언한 후에도 조선에서 전투행동이 끝나지 않았다는것을 의미하였다.

그리하여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과 국내항쟁세력들은 조선총독부와 조선주둔군이 항복선언을 무시하는 조건에서 무모한 저항을 시도하는 일제패잔병들을 소멸하고 적통치기구들을 무력으로 무자비하게 소탕하기 위한 해방전쟁의 마지막전투들을 벌리게 되였다.

이처럼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힘차게 벌어진 조선인민혁명군의 최후공격작전과 전민항쟁에 의하여 무조건항복을 선언하고도 조선에 대한 식민지통치를 유지해보려고 필사적으로 발악하던 일제의 책동이 여지없이 분쇄되고 조선인민이 자기 손에 주권을 틀어쥐게 됨으로써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통치기반에서 종국적으로 벗어나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