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중에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께서는 불철주야로 사업에만 전념하시는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안녕과 건강을 보장하며 사업을 보좌해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시였다.

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안녕과 건강을 보장하는것을 친위전사의 첫째가는 본분으로, 조국과 인민, 시대와 혁명이 준 책임적인 임무로 간주하고 모든 노력을 다하시였다.

주체36(1947)년 9월말이였다.

강원도에 대한 현지지도의 나날을 바쁘게 이어가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금강산을 잘 꾸려 인민의 휴양지로 만드시기 위하여 금강산에도 들리시였다.

때마침 가을이여서 금강산의 경치는 천하절경이였다.

9월 28일 김정숙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구룡연으로 오르시였다.

단풍이 든 기기묘묘한 봉우리들과 깎아지른듯 한 벼랑들, 뭇새들이 우짖는 깊은 계곡들과 수정같은 맑은 물, 벼랑우에 명주필을 드리운것 같은 폭포들, 참으로 금강산은 세상의 모든 경치를 다 합쳐놓은것만 같았다.

그야말로 금강산은 바위마다 기암괴석이요, 봉우리마다 천태만상이였다.

간고한 항일혁명투쟁의 나날 그처럼 그리던 조국의 명산, 금강산에 오르시는 녀사께서는 감회가 깊으시였다.

얼마나 그리고 와보고싶던 금강산인가!

천태만상의 봉우리들과 은구슬을 굴리는듯 한 맑은 물을 이윽고 바라보시던 녀사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감개무량한 어조로 지난날 산에서 싸울 때 금강산이 아름답다는 말은 많이 들어왔지만 실지 와보니 들은것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씀하시였다.

경치는 갈수록 더더욱 아름다왔다.

녀사께서 일군들과 함께 신계교에 이르시였을 때였다.

앞에서는 벌써 천길벼랑을 쏟아져내리는 장쾌한 폭포소리가 들려오고있었다.

녀사께서는 별안간 시계를 보시더니 자못 놀라시며 걸음을 멈추시였다.

즐거운 기분으로 걷던 수원들은 영문을 몰라 의아한 눈길로 녀사를 바라보았다.

그러는 일군들을 바라보시며 녀사께서는 자신은 일이 있어 부득불 되돌아 내려가야겠다고 말씀하시였다.

더욱 영문을 알수 없었던 일군들은 녀사께 모처럼 여기까지 오셨는데 구룡폭포야 보셔야 하지 않겠는가고 간절하게 말씀드리였다.

녀사께서는 조용히 웃으시며 예로부터 금강산에 와서 구룡연의 장쾌함을 아니보면 일생의 한이 된다 하였지만 그보다 더 한이 될 일은 장군님의 식사를 다문 한끼라도 제때에 보장하지 못하는것이라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여기서 되돌아서야겠다고 하시는것이였다.

아쉬운 생각이 든 한 수행원이 녀사의 앞을 막아나서다싶이 하면서 정 그러면 잠간이라도 좋으니 얼른 함께 올라가보시고 먼저 내려가시자고 간절히 청을 드렸다.

그러자 녀사께서는 내가 오늘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는것처럼 그만 금강산구경에 팔려 시간가는줄 모르고있다가 장군님의 식사시간을 어길번 했다고 하시면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오후에 장군님께서 또 현지지도를 떠나시게 됩니다. 그러니 내려가 점심차비도 하고 준비도 해드려야 하겠습니다.》

녀사의 숭고한 지성앞에서 일군들은 진정 뜨거운 감동을 금치 못하였다.

그전날에도 위대한 수령님의 저녁식사때문에 만물상을 앞에 놓고 산을 내리신 녀사께서 또다시 구룡연을 앞에 두고 되돌아서신것이였다.

구룡폭포가 생겨 여기를 찾은 사람들이 수천수만을 헤아리지만 그 누가 장쾌한 구룡연의 폭포소리를 귀전에 들으며 되돌아선적 있었던가!

구룡연을 보지 못하면 금강산을 보았다고 말할수 없다는 구룡폭포였지만 위대한 수령님의 식사시간이 조금이라도 늦을세라 마음쓰시며 녀사께서는 발길을 돌리시였다.

녀사께서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금강산에 오르셨던 그날로부터 퍼그나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해 구룡연을 다시 찾으신 수령님께서는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였다.

그러시던 수령님께서는 동행한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1947년 가을 금강산에 왔을 때 정숙동무는 나의 점심식사를 준비하기 위하여 저 아래에까지 왔다가 구경도 못하고 도로 내려갔다, 우리가 지척인 구룡연에 마저 올라가보고  내려가라고 했으나 그는 이다음에 다시 와보겠다고 하면서 내려갔다, 그리하여 정숙동무는 끝내 구룡연을 구경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가슴아픈 말씀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 바치신 녀사의 숭고한 지성에 대한 이야기는 수없이 전해지고있다.

밤깊도록 일을 보시다가 새날이 잡혀서야 잠자리에 드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다문 한두시간이라도 더 편히 쉬시도록 하기 위하여 이른새벽 장대를 드시고 창문가의 나무가지에서 지저귀는 새들을 날려보내신 이야기, 여름이면 모기쑥을 태워 모기들을 쫓군 하시던 이야기…

김정숙녀사께서 위대한 수령님의 안녕과 건강을 위해 기울이신 이러한 노력은 단순히 녀성으로서의 섬세성이나 보통 가정생활에서 찾아볼수 있는 주부로서의 범속한 지성이 아니였다.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안녕과 건강을 조국과 인민, 시대와 력사앞에 책임졌다는 숭고한 사명감과 높은 자각으로부터 흘러나온 고결한 사상감정에 기초를 두고있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안녕을 지켜나가시는 녀사의 헌신적인 활동은 수령님의 사업을 보좌해드리는 일과 직접 잇닿아있었다.

녀사께서는 수령님께서 현지지도의 길을 떠나실 때면 중앙기상대에 문의하여 그 주간의 기상예보를 알아보시고 일기조건에 맞게 수령님의 려장을 빈틈없이 준비하시였으며 수행일군들에게 수령님의 건강과 안녕을 위하여 류의할 점들을 세세히 가르쳐주시였다. 그리고 불리한 일기가 예견되면 수령님께서 걸으시게 될 도로조건까지도 직접 알아보시고 필요한 대책을 미리 세우도록 일군들을 일깨워주기도 하시였다. 때로는 수령님의 현지지도에 앞서 현지를 답사하고 필요한 대책을 세우군 하시였다.

이렇게 수령님의 사업과 생활에서 자그마한 불편도 있을세라 잘 보살피시고 수령님의 안전을 보장하는것이 친위전사로서의 녀사의 생활신조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일작전을 위한 회의에 참가하기 위하여 모스크바에 가계시던 때의 어느날에 여러가지 책들이 가득찬 서재에 계시는 꿈을 꾸신적이 있었다.

김정숙녀사께서 큰 방에 책들을 가득 가져다놓고 수령님께 이 책들을 마음대로 골라보십시오, 이만한 책이면 사령관동지께서 일생동안 보아도 다 못 보실겁니다라고 하셨다는것이였다.

잠에서 깨여나신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꿈이야기를 들은 항일혁명투사들은 사령관동지께서 대통령이 되실 꿈이라고 해몽하였다.

그후 모스크바에서 돌아오신 수령님께서는 김정숙녀사께 꿈이야기를 하시였는데 녀사께서도 웃으시며 좋은 꿈이라고 말씀드리시였다.

그때로부터 세월이 흐르면서 항일투사들은 그 꿈이야기를 잊어버렸고 수령님자신께서도 잊으시였다.

그러나 녀사께서만은 그 꿈이야기를 잊지 않으시였다.

주체36(1947)년 4월 녀사께서는 모든 정성을 다하여 수령님의 서재를 꾸리시였다. 책장과 책상의 위치, 크기들과 갖추어놓은 비품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지성을 쏟으시였다. 그리고 수령님께서 리용하시기 편리하게 책들을 책장에 종류별로 분류하여 꽂으시였고 신문과 잡지, 문건들도 차례차례 정리해놓으시며 녀사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산에서 싸울 때 장군님께서는 하늘을 지붕으로 삼으시고 우등불가에서 밤이 지새도록 책을 읽으시고 글을 쓰시군 하시였어요.

아무리 힘겨운 싸움을 치렀을 때에도 장군님께서는 이 일만은 어기지 않으셨어요.

그때 장군님께 편한 자리 하나 마련해드리지 못해 안타까와하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파요. …》

서재가 다 완성된 다음 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 서재가 완성된데 대하여 말씀드리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서가를 돌아보시면서 서재도 잘 꾸리고 도서분류도 잘하고 신문, 잡지들도 리용하기 편리하게 비치하였다고 만족해하시였다.

항일전의 나날 손에서 책을 놓으신적이 없는 수령님이시였다.

해방직후 려순에서 쏘련 연해변강군관구 사령관인 메레쯔꼬브를 만나시였을 때 일본인들에게서 압수한 책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즉시 비행기로 두차례에 걸쳐 실어오게 하시여 앞으로 창립될 종합대학에 보내주도록 하신 수령님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꿈이 현실로 꽃펴난 뜻깊은 이날을 기념하여 김정숙녀사와 함께 서재에서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새 조국건설을 위한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의 갈피마다에는 이처럼 수령님의 사업과 생활에 사소한 불편도 있을세라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신 김정숙녀사의 뜨거운 마음이 새겨져있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이 세상 그 어떤 일도 민족의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사업을 보좌해드리고 수령님의 안녕을 지켜드리는 친위전사의 사명과 절대로 바꿀수 없다는것을 철의 신조로 간직하고계시였다.

주체37(1948)년 9월 9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시고 내각수상이 되신 다음 김정숙녀사께 중앙녀맹위원장사업을 하지 않겠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때 녀사께서는 자신께서 수령님을 따라다니면 되지 않는가고 말씀하시였다.

사실 해방직후 김정숙녀사께서는 그 어떤 부문의 사업도 다 맡아서 지도할수 있는 훌륭한 자질과 능력을 갖추고계시였다.

이 시기 녀맹에서는 온 나라 녀성들의 한결같은 소망을 담아 녀성운동을 이끌어주실것을 청원하는 편지를 매일과 같이 보내여왔다.

그러나 김정숙녀사께서는 이러한 공직을 다 사양하시였다.

그것은 오직 위대한 수령님을 높이 받들어모시는데서 행복과 기쁨을 찾으시는 김정숙녀사의 숭고한 인생관, 자신을 혁명가로 키워주신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에 보답하려는 숭고한 도덕관으로부터 출발한것이였다.

참으로 모든 공직을 사양하시고 오로지 수령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김정숙녀사의 지성과 헌신은 하늘의 높이나 바다의 깊이에도 비기지 못할 무한하고 위대한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