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중에서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앞두고 항일혁명의 주력군인 조선인민혁명군을 강화발전시키시는것과 함께 전민항쟁을 위한 준비사업도 현명하게 령도하시였다.

전민항쟁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혁명을 시작한 첫날부터 시종일관 주장하신것이였다. 수령님께서 주장하신 전민항쟁이란 온 나라, 온 민족을 의식화, 조직화하고 전체 인민을 정치적으로뿐아니라 군사적으로도 튼튼히 준비시켜 거족적이며 조직적이고 적극적인 반일항전으로 나라의 해방을 실현한다는것을 의미하였다.

선군혁명의 시원이 열린 그때로부터 전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일제를 타도하고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 원대한 구상을 안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의 전기간 전인민적무장봉기로 조국해방의 결정적승리를 이룩하는것을 조선혁명의 전략적로선으로 내세우시고 그 실현을 위한 사업을 줄기차게 령도해오시였다.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전민항쟁준비를 다그치면서 다음과 같은 몇가지 문제에 특별한 주목을 돌리였습니다. 하나는 국내에 있는 비밀근거지들을 전민항쟁의 군사정치적거점으로 더욱 튼튼히 다지면서 새로운 림시비밀근거지들을 꾸리는것이였고 다른 하나는 국내에 더 많은 소부대들과 소조들, 정치공작원들을 파견하여 새로운 정세의 요구에 맞게 전민항쟁력량을 조국해방작전에 철저히 준비시키는것이였으며 또 다른 하나의 문제는 국내의 전민항쟁력량에 대한 통일적령도를 실현하는것이였습니다.》

전민항쟁준비를 위한 이와 같은 문제들은 김일성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빛나게 해결되였다.

우선 전민항쟁을 위한 활동거점들이 국내의 여러곳에 꾸려지게 되였다.

1930년대 후반기 백두대산줄기를 중심으로 하는 동북부지역, 압록강연안과 랑림산줄기, 부전령산줄기를 중심으로 하는 북부내륙지역을 비롯하여 서부지역과 중부지역 등 전국도처에 수많은 비밀근거지들이 꾸려지게 되였다.

1940년대에 와서는 새로운 정세의 요구에 맞게 이러한 비밀근거지외에 조국해방작전수행에서 전략전술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함경산줄기, 부전령산줄기, 랑림산줄기 등 북부조선의 산악지대는 물론 북대봉산줄기, 아호비령산줄기, 태백산줄기를 비롯한 중부조선의 산악지대 등 전국의 주요요충지들에 여러가지 형태와 규모로 림시비밀근거지들이 건설되였다.

다음으로 국내에 수많은 소부대, 소조들, 정치공작원들이 파견되였는데 그들은 두만강, 압록강연안의 국경지대뿐아니라 서울을 포함한 중부조선일대와 부산, 진해를 비롯한 남부조선일대 그리고 멀리로는 일본에까지 침투하여 정치, 군사활동을 활발히 벌렸으며 광범한 반일군중을 전인민적항전에로 준비시켰다.

이와 함께 전민항쟁을 다그치는데서 국내항쟁운동에 대한 통일적지도를 실현할수 있는 령도기관이 훌륭히 꾸려졌다.

1930년대말부터 여러 지역에 산발적으로 꾸려진 당소조들과 반일대중조직들에 대한 통일적인 지도를 실현할 사명을 지닌 지구당위원회들이 태여나 지역적령도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께서 조직한 연사지구당위원회가 그러한 지역적령도기관이였다. 1940년대 전반기에는 평안남도일대에서 혁명의 선각자들을 망라한 지구당위원회가 조직되여 평양, 개천, 남포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 당소조들을 두고있었으며 이 당소조들을 통하여 도내 각지의 조국광복회조직들과 전민항쟁조직들을 지도하였다.

함경북도에 조직된 청진지구 당위원회는 일철을 중심으로 청진지구의 공장들에 수많은 당세포를 두고있었다.

이 시기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몸소 여러차례에 걸쳐 국내깊이에 진출하시여 전민항쟁준비를 적극 다그쳐나가기 위한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소부대를 이끄시고 함경북도 경흥군 곰산림시비밀근거지에 나오신것은 주체32(1943)년 7월 중순이였다.

그때 수령님께서는 이곳에서 회령시 원산리 까치봉일대에서 활동하는 정치공작원과 이 일대 지하혁명조직책임자를 만나주시였는데 이들은 1년전인 주체31(1942)년 6월에 그이로부터 무장대결성준비과업을 직접 받은 성원들이였다.

1년만에 다시금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달려온 그들은 감격에 넘쳐 그이께 인사를 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신 후 《동무들이 그간 전민항쟁준비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라고 치하하시며 그들이 그사이 해놓은 일들을 보고받으시였다.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대로 어은동 곰산과 회령시 원산리 까치봉을 거점으로 하여 무장대를 꾸리기 위한 준비를 적극적으로 벌려 이제 와서는 야장간에서 도창무기를 만들뿐아니라 여러 자루의 장총도 확보하여가지고 군사훈련을 진행하고있었다.

그들이 해놓은 일들에 대하여 높이 평가해주신 수령님께서는 무장대를 꾸리는 사업에서 애로되는 점에 대하여 물으시였다.

사실 그들이 무장대를 꾸리자니 모를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무장대의 규모는 어느 정도로 하고 무장대의 명칭은 어떻게 달것인가, 무장대가 생산에서 떨어져 완전히 근거지에 들어와야 하는지, 까치봉과 그와 린접해있는 곰산의 무장대를 하나로 꾸려야 하는지 따로따로 꾸려야 하는지…

그들의 이야기를 다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민항쟁을 위한 무장대를 꾸리는 사업은 우리가 처음 하여보는 일인것만큼 제기되는 문제가 많을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제 회의에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라고 하시면서 무장대의 규모와 명칭은 해당 지역과 단위의 실정에 맞게 정하며 무장대는 생산에서 떨어져 전적으로 무장활동을 하는 무장조직이 아니므로 생산에 종사하면서 혁명조직의 지도밑에 무장활동을 진행할데 대하여 그리고 이미 그 준비사업이 진행된 곰산무장대를 결성한데 이어 까치봉무장대와 무산광산무장대를 꾸릴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동무들은 무장대결성에서 거둔 성과에 결코 자만해서는 안됩니다. 앞으로 도처에 무장대를 꾸려놓아야 하는데 동무들은 이 사업에서 큰 역할을 놀아야 합니다.》라고 당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듯 무장대결성준비사업에서 이룩된 성과와 경험에 기초하여 이날 곰산의 수림속에서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 소조 및 지하혁명조직책임자회의를 소집하시였다.

이 회의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해방위업에 유리하게 전변되는 혁명정세와 적아간의 력량관계를 분석하신데 기초하여 최후결전준비를 적극 다그쳐야 할 필요성을 밝히시고 자력독립의 기치밑에 전민항쟁을 위한 로동자, 농민의 무장대를 결성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먼저 전민항쟁을 위한 무장대의 성격과 기본사명을 밝혀주시였다.

그이께서 의도하시고 구상하신 무장대는 자주로선에 기초하여 지방당조직과 조선인민혁명군의 지도밑에 운영되는 전민항쟁을 위한 민간무장조직으로서 조선인민혁명군의 최후공격작전에 배합하여 적을 배후에서 타격하며 전민항쟁에 일떠선 인민대중의 투쟁을 무력으로 안받침하는것을 기본사명으로 하고있었다. 이로부터 무장대들을 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에 적극적인 배후련합작전으로 전인민적항쟁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전과정에 선봉적, 돌격대적역할을 담당수행하여야 하였다.

이밖에도 수령님께서는 전민항쟁을 위한 무장대를 도처에 꾸리며 이미 있던 반군사조직들의 무장장비를 더욱 강화하여 무장대오를 확대발전시킬데 대한 문제, 혁명조직에서 육성된 청장년들로 새로 무장대를 조직하고 필요한 산악지대들에 근거지를 꾸려 군사정치적준비를 원만히 갖출데 대한 문제 등 무장대조직에서 나서는 일련의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회의가 끝난 후 곰산림시비밀근거지에서는 전민항쟁을 위한 로동자, 농민의 무장대가 결성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강령적가르치심을 받아안은데다가 정식 무장대결성모임까지 진행한 무장대성원들은 자신들의 감격을 회의장소주변의 나무들에 글발로 남겨놓았다.

《자력독립전군민회합소 하→전민항쟁 로동자 농민무장대결성 2천만단결 승리 만세》…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3(1944)년 7월에도 국내에 또다시 진출하시여 함경북도 부령군 부거면 판장동(청진시 청암구역 부거리) 판장림시비밀근거지에서 전민항쟁을 위한 무장봉기조직을 확대강화하는데서 견지해야 할 원칙적문제들에 대하여 다시금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이의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고 소부대, 소조들과 정치공작원들, 각지의 당 및 혁명조직들은 무장대조직들을 급속히 확대하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벌렸다.

함경북도에서는 곰산로농무장대, 까치봉무장대, 무산광산백의사, 증산무장대, 일철비밀결사, 라진인민무장대를 비롯한 수많은 무장대들이 조직되여 전민항쟁을 위한 준비사업을 적극 다그쳤다.

함경남도일대에서도 무장대결성사업이 적극적으로 벌어져 대진평항일결사대, 삼각대반일결사대, 구국청년회, 문천인민무장대 등 각이한 명칭의 무장대들이 조직되고 창성을 비롯한 평안북도일대에서는 삼봉산인민무장대와 비래봉무장대가 결성되여 활동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거족적인 반일항전으로 일제를 격멸하기 위한 조선인민혁명군의 적극적인 정치군사활동의 영향하에 전민항쟁을 위한 무장봉기조직들이 급격히 장성하였다.

《백두산회》(1942년 성진), 《김일성대》(1942년 서울), 《조국해방단》(1944년 평양), 성대비밀결사(1944년 서울), 광복무장대(1943년 지리산)를 비롯하여 평양주둔 일본군 30사단에서는 조선청년들이 반일학도병무장대를 조직하고 조선인민혁명군에 집단적으로 합세할 계획까지 세우고 활동하였다.

이러한 반일지하조직들은 일제식민지통치의 아성이고 심장부인 일본본토에도 조직되여 북으로는 혹가이도로부터 남으로는 규슈에 이르기까지 일본땅 어디에나 그리고 대학생으로부터 신학교의 학생, 탄광로동자로부터 《징용》로무자에 이르기까지 조선사람이 살고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혁명조직이 뿌리박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전민항쟁을 위한 무장조직들이 수많이 결성됨으로써 일제와의 최후결전을 위한 시각에 전인민적봉기를 주도할수 있는 기본력량이 마련되게 되였으며 실지로 이러한 전민항쟁조직들은 조국해방을 위한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의 총공격과 발을 맞추어 일본군을 소멸하고 적통치기구들을 소탕하는 싸움에서 커다란 성과를 이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