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중에서

 

주체35(1946)년 1월 1일, 온 나라 인민들은 민족재생의 환희에 휩싸여 새 삶에 대한 가슴벅찬 희망과 포부를 안고 뜻깊은 양력설을 맞이하였다.

이날 김정숙녀사께서는 마침내 조국개선의 발자욱을 이어 오매에도 그리던 만경대를 찾으시였다.

김정숙녀사에게 있어서 만경대로 향하시는 길은 초행길이였으나 항일의 나날부터 한시도 있어본적이 없는 마음의 고향이여서 만경대의 산과 들이 낯설지 않았다.

잊을수 없는 만강의 봄날에 그리고 밀영의 우등불가에서 수령님께서 들려주시는 조국에 대한 이야기에 귀기울이시면서도 사무치게 그려보신 만경대였다.

일제에게 강탈당한 나라를 찾고저 만경대일가의 많은 분들이 떠나가신 후 기나긴 세월 만경대고향집 사립문은 언제나 열려져있었다.

20여년세월 그리움과 기다림속에 열려져있던 추녀낮은 만경대고향집의 사립문으로 항일혁명의 산아이신 김정일장군님을 앞세우시고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과 항일의 전설적영웅 김정숙녀장군께서 들어서시였다.

혁명의 요람 만경대고향집은 백두산3대장군을 함께 모신 민족사적경사를 맞이하여 들썩이였다. 애국을 가풍으로 삼고 수많은 총대혁명가들을 내세워 이 나라 현대력사를 새롭게 엮게 한 만대에 길이 빛날 업적으로 솟아있는듯싶은 력사의 집은 백두산3대장군을 두팔 벌려 맞아들이였다.

더우기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항일대전의 준엄한 나날 백두의 녀장군으로 명성을 떨치시였으며 만경대총대일가의 높은 뜻을 이어갈 백두광명성을 받들어올리신 김정숙녀사를 맞이한 할아버님과 할머님을 비롯한 온 가족, 친척들, 동리사람들모두는 끝없는 감격과 기쁨을 금치 못해하였다.

할아버님께서는 너무도 기쁘시여 전에없이 큰소리로 이렇게 웨치시였다.

《우리 집 장손며느리가 새별같은 증손자를 앞세우고 들어오는구나! 오늘이 이 집의 명절이다!》

돌아오지 못한 혈육들을 그리시며 일만가지 감회를 한꺼번에 터놓으시는 말씀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당에 들어서시여 할아버님과 할머님께 인사를 올리신 다음 뒤에 서신 김정숙녀사께 일가분들을 차례로 소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소개하시는대로 다소곳이 허리를 굽히시며 큰절을 드리시는 녀사의 눈가에는 소리없이 눈물이 고이였다. 꼭 오셨어야 할분들이 영영 오지 못하신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지셨다. 조국해방의 오늘을 보지 못한채 이국의 차디찬 땅에 묻히신 김형직선생님과 강반석어머님의 그 마음까지도 합쳐 인사를 드리고싶은 김정숙녀사의 심정이시였다.

손자며느님을 맞이한 고향집의 방안은 전에없이 환해진듯싶었다.

이어 댁에서는 소박한 가족연회준비로 흥성거렸다.

여러 일가친척분들의 만류도 마다하시고 녀사께서는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 내려가시여 음식을 차리시였다.

녀사께서는 모든것이 새로우시였다. 추녀낮은 초가집이영이며 세멘트땜을 곱게 한 검은 동이, 모서리가 닳아진 멍석, 찌그러진 독… 어느 하나도 무심히 대할수 없는 그 모든것이 녀사의 가슴을 뜨겁게 해주었다.

음식이 다 마련되자 김정숙녀사께서는 할아버님과 할머님께 드릴 상부터 차리려고 하시였다.

이것을 보신 할머님께서는 《오늘이야 너희들을 위하여 차리는것인데 그렇게 하면 되겠느냐.》라고 하시면서 다른 손자며느님들에게 상을 어떻게 차리라고 일일이 분부하시였다.

이윽고 상이 다 차려졌을 때였다.

할아버님께서는 손자분과 손자며느님을 바라보시며 따뜻이 말씀하시였다.

《너희들이 큰상을 받지 못했는데 오늘 음식을 큰상으로 생각하거라.》

녀사께서는 할아버님의 말씀에 뜨거운것을 삼키며 할아버님과 할머님께 술을 가득 부어드리고 다시 큰절을 올리시였다.

할아버님께서는 녀사께서 올리시는 그 술잔을 받아드시고 기쁘게 말씀하시였다.

《모진 세상을 이기고 산 보람이 있구나!

장군이 된 손자를 만났지, 오늘은 달같은 장손며느리를 만났지, 우리 집안의 혈통을 이어갈 증손자를 내 무릎에 앉히게 되였구나.

이 기쁜 날에 먼저 간 사람들도 눈을 감을게다. 고맙다. 아가야, 네가 와서 오늘은 만경대집이 더 환해지는구나!》

녀사께서는 할아버님과 할머님께 《할아버님, 할머님, 그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이제 밝은 세상이 왔으니 만년장수하십시오.》라고 말씀드리시였다.

할머님께서는 《우리야 무슨 고생이 있었겠냐. 그래도 집이라고 지붕을 쓰고 따뜻한 구들에서 지내지 않았느냐. 고생이야 너희들이 했지. 눈우에서 쪽잠을 자고 풀뿌리를 씹으며 15년을 산에서 싸웠으니 그 고생이 오죽했겠느냐.》라고 하시며 녀사의 손을 잡고 쓰다듬으시였다.

그립던 혈육들을 처음으로 만난 감회가 깊으셨던것만큼 나누시는 이야기들도 끝없이 깊어져갔다.

일제경찰과 주구놈들이 년로하신 할머님을 데리고 만주광야를 싸다니며 손자분을 산에서 내려오게 하라고 성화시키던 이야기도 나누시였고 이국땅에서 돌아오지 못하신분들에 대한 간절한 회포도 나누시였다.

감격과 흥분으로 들끓는 가운데 만경대의 밤은 깊어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경대일가분들과 마을사람들이 류다른 기쁨속에 즐기는 그 양력설 명절마저 마음놓고 쉬지 못하시고 인차 만경대를 떠나 평양으로 돌아가시였다.

녀사께서는 아드님과 함께 조부모님을 모시고 주무시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녀사께서 눈을 떠보시니 할아버님과 할머님께서 주무시지 않으시고 증손자분을 안고 자신의 머리맡에 앉아계시였다.

잠을 깨신 녀사를 보신 할머님께서 《네가 깨여났구나. 밤이 깊었다. 더 자거라.》라고 말씀하시였다.

《할아버님, 할머님! 왜 주무시지 않습니까?》

녀사께서 일어나시며 말씀하시자 할머님께서는 《늙은이들은 잠이 없다. 우리 걱정은 말고 더 자거라. 산에서 바위를 베고 자느라 어느 하루 구들신세를 져보았겠느냐!》라고 하시며 장손며느님의 두볼을 쓸어주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 친부모의 따뜻한 정이 그대로 가슴에 흘러들어 그만 대답을 못하시는데 할아버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네가 어려서 집을 떠나 고생이 많았다더구나. 어린 나이때부터 나라를 찾겠다구 그 한마음 모질게 먹구 억척같이 살아왔다더구나.

나라의 운명이 칠성판에 올랐을 때 어느 집 처마밑이라고 조용할 날이 있었겠느냐! 우리 집에서도 나라를 찾겠다고 숱한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어느 하루도 편히 보낸 날이 없었다.

처마에서 락수물이 떨어지는 밤에도 어디 가서 헐벗고 떨지나 않는지 장밤을 뜬눈으로 새웠느니라.

네 시할머니는 빈 물레를 돌리였다. 왜 빈 물레를 돌리는가 물으면 속이 타서 그런다고 하더구나. 그러나 이젠 그것이 다 옛말이 되였다.

애국의 넋을 자랑으로 삼아온 이 집안의 혈통을 이어갈 증손자를 데리고 네가 왔구나! 네가 이 집안에 꽃을 피워라. 이애를 잘 키워 나라의 창창한 대를 잇게 하여라.》

만경대총대가문의 애국의 혈통, 선군의 대를 꿋꿋이 이어주길 바라는 만가지 념원을 담아 하시는 절절한 당부였다. 그것은 할아버님과 만경대일가의 당부만이 아니라 선군조선의 미래를 영원히 담보해주기를 바라는 전체 조선민족의 최대의 소망이였고 당부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항일의 불바다속에서 그처럼 그리고 그리시던 만경대를 찾으시여 일가분들과 첫인사를 나누시고 선군의 어머니로서 만경대일가의 선군애국전통을 더 빛내여나가고 그 슬기로운 혈통을 굳세게 이어가실 책임감을 더 무겁게 느끼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