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일화』 중에서

 

주체69(1980)년 4월 28일 도이췰란드의 저명한 녀류작가 루이저 린저가 조선에 첫발을 디디였다.

서방세계에서 《등에》와 같은 존재로 불리우고있는 그는 제2차 세계대전시기 반파쑈운동을 하다가 나치스들에게 체포되여 감옥생활을 하면서 《옥중에서의 수기》를 집필하였고 감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제2차 세계대전이후 파쑈를 반대하는 비수같은 글들을 수많이 써냈다.

루이저 린저는 평화를 유린하고 약소민족을 짓밟으며 침략과 파쑈를 일삼는자들에게는 비수와 같이 타협과 두려움을 몰랐으며 제눈으로 모든것을 확인하고 제몸으로 모든것을 느끼기 전에는 절대로 붓을 들지 않는다는 문필가였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필봉을 두고 《왕벌의 독침》, 《암사자의 송곳이》와 같다고 평하기도 하였다. 그의 필봉이 얼마나 예리했으면 1976년에 이름있는 한 대학교수의 초청으로 남조선을 방문하고 돌아가 미제의 《두개 조선》조작책동을 폭로한 루이저 린저의 글을 남조선당국자가 읽다가 신경발작을 일으켜 《청와대》에서 큰 소동이 일어났다고까지 했겠는가.

서방에서 문필가로 이름떨치던 그가 자본주의사회와 판이하게 다른 사회주의조선을 찾아온것이였다.

평양방문의 나날을 보내고있던 5월 어느날 루이저 린저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의 접견을 받는 크나큰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루이저 린저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곳에 도착하니 그이께서는 몸소 현관까지 나오시여 그를 기다리고계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루이저 린저가 올리는 축원의 인사를 받으시고나서 그의 두손을 뜨겁게 잡아주시며 몸은 건강한가, 가족들은 다 잘 있는가, 생활에서 불편한 점은 없는가, 아직까지 이곳 기후에 적응되지 않았겠는데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친어버이정이 어린 따뜻한 말씀을 하시였다.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영광의 기념사진까지 찍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그와 담화를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우리 나라도 귀국과 같이 분렬되여있다고 하시면서 심중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민족의 분렬은 그 나라 인민에게 있어서 최대의 민족적비극입니다.》

그러시면서 선생이 우리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하는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지지성원을 주고있는데 대하여서와 애국적민주인사들의 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고있는데 대하여 충심으로 감사를 드린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감사와 과분한 평가를 받은 루이저 린저는 송구스러움을 금치 못해하였다.

그이께서는 현 국제정세에 대해서와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를 건설한 경험에 대하여 이야기하시고나서 남조선청년학생들의 애국투쟁과 조국통일문제에로 화제를 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모든 물체는 내리누르면 그만큼 반항력이 더 커지는것이 하나의 법칙이며 이것은 물리학이 증명하는 과학적진리라고 말씀하시였다.

사리정연한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 심취된 루이저 린저는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온 심혼을 모으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시여 조선로동당과 공화국정부의 조국통일방안에 대하여 천명하시면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는 남북련방제를 실시하여도 북과 남의 두 제도를 그대로 두고 통일정부를 수립하려고 합니다.》

그이의 말씀을 받아안으며 그는 남북련방제만이 조선을 통일할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것을 인식하게 되였다.

하기에 평양방문을 마치고 돌아간 루이저 린저는 자기의 글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 내놓으신 남북련방제는 이 세상 그 누구도, 그 어떤 천재나 위인도 발기할수 없는, 오로지 위대한 인간만이, 열렬한 애국자만이, 민족의 어버이만이, 정치의 영걸만이, 우리 녀성들의 독실한 옹호자만이, 평화의 천사만이 내놓을수 있는 가장 공명정대하고 합리적이고 평화애호적이고 애국애족적인 방안이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