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정일장군님과 민족대단결」중에서

 가까이에 있는 자식보다 멀리 있는 자식을 더 극진히 사랑하는것이 바로 어머니의 사랑이다. 하지만 이러한 어머니의 사랑도 한가정의 울타리를 넘지 못한다.

그러나 민족의 어버이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따뜻한 사랑의 손길은 한가정의 울타리를 뛰여넘어 멀리 해외에 있는 동포들에게까지 뜨겁게 미치고있다.

몇해전에 있은 일이다.

한 재미교포는 일본방문의 나날에 우연히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총련에 보내주신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전달하는 모임에 참가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였다.

그는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에 대한 말은 많이 들어왔지만 도저히 믿기 어려웠댔는데 이렇게 실지 제눈으로 목격하게 되니 정말 놀라움을 금할수 없다고 하면서 격정에 넘쳐 이렇게 말하였다.

《세계에서 <경제대국>이라고 으시대는 나라들도 자국의 아이들을 어쩌지 못하는데 국방위원장님은 국내의 모든 청소년들은 물론 해외의 동포자녀들까지 다 돌봐주시니 정말 위대한분이시다.》

이처럼 그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재일동포들에게 베푸시는 사랑은 총련의 민족교육을 끊임없이 강화발전시키는 위대한 활력소로, 무궁무진한 원동력으로 되고있다는것을 가슴뿌듯이 새겨안게 되였다.

이것을 어찌 어느 한 해외교포가 받아안은 심정이라 하겠는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일본땅에 사는 동포자녀들을 위하여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신 사랑의 이야기는 온 민족의 마음을 숭엄한 격정속에 휩싸이게 하였다.

돌이켜보면 일본땅에 사는 동포자녀들에게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게 된것은 주체46(1957)년 4월 8일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일본에 사는 동포자녀들을 한없이 따사로운 사랑의 한품에 안으시고 그들에게 민족교육의 휘황한 앞길을 열어주신 그때로부터 시작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 수령님께서는 해외에서 사는 동포들을 더 생각하시고 걱정하시는 뜨거운 동포애의 정으로 재일동포들을 사랑의 한품에 안아주시고 그들의 운명을 보살펴주시였으며 동포들에게 온갖 배려를 다 돌려주시였습니다.》

돌이켜보면 60여년을 헤아리는 재일조선인운동사는 곧 민족교육발전의 력사이며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뜨거운 사랑이 어린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떼여놓고서는 결코 생각할수 없다.

총련이 조직된 초시기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사업은 매우 한심한 형편에 처해있었다.

어려운 생활난속에서도 동포들이 한푼두푼 모은 돈으로 여러곳에 학교들을 세워놓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너무도 보잘것없는 상태였다. 그것은 재일동포들이 살고있는 일본땅 그 어디나 다 마찬가지였다.

거기에다 파렴치한 일본반동들은 지난날 조선사람들을 강제로 끌고와서 마소와 같이 혹사한 책임을 응당 져야 할 대신에 재일동포들과 그 자녀들에 대한 교육지원은 고사하고 동포학교가 일떠서는것조차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이를 탄압하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그대로 나간다면 총련의 민족교육은 암담한 처지에 빠지게 될 형편에 놓여있었다.

후대들을 키우는 사업을 한걸음 늦추면 조국의 전진이 열걸음 떠진다는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계시는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재일동포자녀들의 교육사업을 두고 못내 가슴아파하시였다.

그러던 주체46(1957)년 1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평양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그해의 국가예산문제를 토의하는 내각전원회의가 열리였다.

당시로 말하면 나라의 재정사정이 아주 어렵던 때여서 회의장의 분위기도 자못 무거웠다.

이윽고 예산초안에 제시된 세부항목들을 하나하나 검토하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문득 재일동포자녀들에 대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은 어느 항목에 넣었는가고 물으시였다.

한 일군이 그이께 재정형편이 어려워 국가예산에 반영하지 못하였다고 보고올렸다.

그 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시였다.

이윽토록 깊은 사색속에 잠겨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근엄하신 어조로  우리가 공장을 한두개 못 짓는 한이 있더라도 이국땅에서 고생하는 동포들에게 아이들을 공부시킬 돈을 보내주어야 한다고, 이것은 우리의 민족적의무이라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순간 회의장에서는 이루 형언할수 없는 격정의 파도가 세차게 일었다.

항일의 그날에는 마안산의 헐벗은 아동단원들의 정상이 마음에 내려가지 않으시여 어머님께서 삯빨래와 삯바느질로  푼전을 모아 마련해주신 20원의 소중한 돈마저 그들에게 고스란히 돌려주신 어버이수령님.

해방후에는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의 첫 의정으로 아이들을 위한 연필생산문제부터 토의하신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그런데 나라의 재정사정이 그처럼 어려운 그 시각에도 이국땅에 사는 동포자녀들의 민족교육사업을 더 먼저 생각하시는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뜨거운 동포애에 회의참가자들은 모두 크나큰 감격으로 눈시울을 적시였다.

진정 그것은 행복에 웃는 자식보다 불행에 우는 자식을 더 생각하고 제 집에 끼고 사는 자식보다 집 떠난 자식을 더 먼저 생각하는 친부모의 심정 그대로였다.

계속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사업을 단순히 교육사업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고, 그것은 민족을 지켜나가는 중요한 민족적애국사업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민족애와 후대관에 떠받들려 그해부터 국가예산에는 동서고금 그 어느 나라 재정력사에도 있어본적이 없는 《재일동포자녀교육을 위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이라는 예산항목이 새로 생겨나게 되였으며 그해 4월 8일 첫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이 총련에 보내여지게 되였다.

어려울 때 주는 사랑이 가장 뜨겁고 진실한 사랑이라는 말이 있다.

사랑과 인정이 말라버린 거치른 이역땅에서 살아오던 재일동포들은 전쟁의 흔적을 채 가시지 못한 조국의 어려운 형편속에서도 천금같은 자금을 자기들에게 보내주신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은정이 너무도 따사롭고 고마와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였다.

하기에 일본땅에 사는 전체 재일동포들은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흠모의 정을 담아 감격의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나라에서 나라에서 돈을 보낼줄은

   꿈결에도 꿈결에도 생각을 못했지요

   교육원조비 장학금의 많고많은 귀한 돈을

   바다너머 저 멀리 조국에서 보내왔어요

   아 수령님의 높고 큰 이 사랑을

   산이나 바다에 그 어이 비기랴

   …

절절하면서도 격정에 넘친 그들의 노래는 온 일본땅에 울려퍼졌다. 하지만 재일동포들은 자기들에게 돌려지는 어버이수령님의 그 사랑이 경애하는 장군님에 의하여 그대로 이어질줄은 꿈에도 몰랐다.

민족을 제일로 위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군들에게 우리가 해마다 총련에 보내는 거액의 교육원조비에는 총련동포자녀들을 생각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로운 사랑이 담겨져있다고, 총련에 교육원조비를 보내는것은 총련동포자녀들에 대한 수령님의 사랑의 마음을 보내는것이라고 간곡히 말씀하시면서 총련의 후대들을 키우는 일이라면 나라의 재부를 다 보내주고싶다고, 총련에 보내는 교육원조비라면 아까울것이 없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이 말씀은 공화국이 사회주의를 건설하던 동유럽나라들의 련이은 좌절, 사회주의시장의 붕괴, 몇해째 계속되는 자연재해 등으로 전대미문의 어려운 길을 헤쳐나가던 《고난의 행군》, 강행군의 엄혹한 시련의 시기에도 변함이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 인민이 민족최대의 대국상을 당하고 제국주의자들의 고립압살책동이 그 어느때보다 악랄하게 감행되던 시기 민족앞에 가로놓인 시련과 난관을 한몸으로 헤쳐나가시는 그처럼 어려운 속에서도 총련에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는것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세워주신 제도와 전통이므로 절대로 어길수 없으며 어떤 일이 있어도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앞으로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실 때와 꼭같이 보내주어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으며 구체적인 대책까지 하나하나 세워주시였다.

교육원조비와 장학금문제를 단순한 재정문제가 아니라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고 민족의 대를 잇는 중대한 사업으로 여기시는분이 바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이시였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해마다 재일동포자녀들에게 많은 액수의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시는 사업을 전통화하시였다.

실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은 바람세찬 이역땅에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의 대화원을 펼쳐준 은혜로운 사랑의 젖줄기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뜨거운 육친적사랑속에 50년전의 그날로부터 지금까지 재일동포들이 받아안은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은 153차에 걸쳐 460억 622만 3 000¥에 달한다.

주체96(2007)년 4월 7일 일본에 있는 조선회관에서는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해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신 50돐기념 재일본조선인중앙대회가 뜻깊게 진행되였다.

대회에 앞서 참가자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신 50돐을 기념하여 제작한 록화편집물 《영원한 생명수》를 시청하였다.

그들은 시청을 통하여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따뜻한 사랑의 품속에서 총련이 걸어온 50년의 력사를 감회깊이 돌이켜보게 되였다.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의 50년력사, 진정 그것은 멀리 있는 자식들을 더 소중히 여기시며 친부모도 줄수 없는 어버이사랑을 베풀어주신 절세의 위인들의 사랑과 헌신의 력사였다.

하기에 전체 참가자들은 총련과 재일동포들을 위대한 사랑의 한품에 안아주시고 거액에 달하는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해마다 보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한결같은 흠모의 마음을 담아 그이께 드리는 감사편지를 채택하였다.

이처럼 재일동포들과 그 자녀들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육친적사랑과 세심한 보살피심속에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생명수로 받아안으며 일본반동들의 악랄한 총련말살책동에도 끄떡없이 통일애국위업의 믿음직한 역군들로 튼튼히 준비해나갈수 있었다.

재일동포들은 지금도 주체84(1995)년 1월 17일 새벽에 있은 한신대지진때 동포들을 위하여 친히 위문전문과 위문금을 보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친어버이사랑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있다.

당시 일본의 고베로부터 오사까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을 휩쓴 이 지진으로 재일동포들은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참화를 겪게 되였다. 하루새벽에 일어난 자연재해로 129명의 동포들이 희생되고 1 500여명의 동포들이 부상당하였으며 2 225호의 동포들의 집과 공장, 점포들이 완전히 불타거나 파괴되고 4 200여명의 동포들이 엄동설한에 피난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참변이 빚어지게 되였다.

바로 그때 절망의 나락에서 헤매이던 동포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보내주신분은 바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이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지진피해로 인하여 재일동포들이 많이 희생된것이 못내 가슴아프시여 깊은 동정과 은정이 어린 사랑의 위문전문을 총련중앙상임위원회 의장앞으로 보내주시였다.

《나는 일본의 효고현을 비롯한 깅끼지방에서 대규모의 지진이 일어나 그곳 총련조직들과 동포들이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는 뜻하지 않은 소식에 접하였습니다.

나는 이 불행한 소식에 접하여 한덕수의장동지를 비롯한 총련중앙상임위원회와 피해지역동포들과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문과 애도의 뜻을 표하는바입니다.

나는 총련의 모든 조직들과 동포들이 더욱 굳게 단합하여 지진피해를 하루빨리 가시고 안착된 생활을 이룩하기를 충심으로 바랍니다.》

그러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재일동포들이 겪는 불행과 고통을 덜어주는 일인데 하나도 아까와할것이 없다고, 우리가 죽을 먹고 굶는 한이 있더라도 위문금을 보내주자고 하시였다.

사실 이 시기 공화국의 형편에서 해외동포들에게 100만US$의 위문금을 보내준다는것은 그야말로 힘겨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이것은 경제가 발전했다고 자처하는 나라들이 일본정부에 보낸 구제금이 기껏하여 50만US$미만이라는 사실과 대비해볼 때 엄청난 액수에 달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먼저 민족이 당하는 불행과 고통을 하루빨리 가셔내는것을 가장 선차적인 문제로 내세우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비록 나라사정이 어려웠던 시기였지만 재일동포들에게 거액의 위문금을 보내주시였던것이다.

한없이 넓은 도량과 아량을 지니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총련산하 동포들뿐아니라 《민단》계동포들도 포함하여 모든 피해동포들에게 한사람도 빠짐없이 위문금이 가닿도록 은정어린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사랑의 위문금을 전달받는 동포들은 감격에 휩싸였다.

나라없던 그 시절 일본반동들은 간또대지진이 일어나자 순진한 조선사람들에게 그 루명을 뒤집어씌우고 6 000여명에 달하는 무고한 사람들을 무참히 학살하였다.

그러나 그 시기 재일동포들은 나라가 없는탓에 그 서러움과 피맺힌 원통함을 어디에 하소연할데가 없어 땅을 치며 통곡해야만 하였다.

그러던 그들이 조국의 따뜻한 위로와 사랑의 위문금까지 받아안게 되였으니 그 심정이 과연 어떠하였으랴!

재일동포들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하해같은 사랑에 목이 메여 두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억제할수 없었다.

그들은 그처럼 어려움을 겪는 속에서도 이국땅에 사는 자기들을 념려하시여 그토록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이 너무도 고마와 《우리에게는 어머니조국이 있다.》, 《사랑의 생명수를 보내주신 장군님의 은혜에 꼭 보답하겠다.》라고 하면서 끝없는 격정을 터치였다.

이처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위문전문과 위문금은 뜻하지 않은 커다란 재난과 불행을 당하고 어쩔바를 모르던 재일동포들에게 새로운 힘과 용기를 안겨준 은혜로운 사랑의 빛발이였다.

참으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은 우리 민족모두의 운명도 미래도 다 맡아안아주시고 끝까지 책임지시는 민족의 위대한 태양이시다.

멀리 있는 자식들을 소중히 여기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의 손길은 세계프로권투계의 왕자인 재일동포 홍창수선수에게도 잇닿아있다.

그로 말하면 일본 오사까에서 조청반장으로 사업하면서  조선사람의 성과 이름으로 공화국기를 들고  조선지도와 《조국통일》이라고 새긴 경기복을 입고 《해안포병의 노래》에 맞추어 떳떳하게 프로권투경기에 출전함으로써 재일동포들의 가슴마다에 민족적긍지와 영예를 안겨주고 조선민족의 기상을 온 세상에 시위한 애국적동포청년이였다.

주체90(2001)년 6월 6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재일동포 홍창수선수가 세계프로권투리사회(WBC) 슈퍼플라이급 선수권방위전에서 승리한 자랑찬 보고를 하기 위하여 조국방문을 희망하고있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그의 간절한 소원을  실현시켜주시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를 조국에 불러 공화국공민의 최고영예인 로력영웅칭호를 수여하며 연회도 차려주고 이름있는 왕재산경음악단의 공연도 보여주도록 할데 대한 크나큰 은정을 돌려주시였다. 그리고 그가 비행장에 도착할 때와 숙소, 참관지들에 이를 때마다 환영도 하고 평양체육관에서 프로권투선수들과의 상봉모임도 조직해주도록 하시였다.

해외에서 살고있는 새 세대 동포들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은 이렇듯 각별하고 뜨거운것이다.

진정 멀리에 있는 자식들을 가까이에 있는 자식들보다 더 걱정해주시며 그들을 위해서라면 수억만금도 아까와하지 않으시고 다 돌려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혜로운 사랑의 품이 있어 재일동포들은 조선민족의 한 성원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민족대단합을 실현하기 위한 거족적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고있는것이다.

참으로 경애하는 장군님은 우리 민족모두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며 민족대단합의 위대한 태양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