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 중에서

 

김정숙녀사의 조국개선은 동서고금에 그 류례를 볼수 없는 민족의 어머니, 절세의 애국자의 위대한 업적과 찬란한 위훈으로 빛나는 영광의 개선이였다.

하기에 우리 인민들은 김정숙녀사를 가장 뜨겁게 맞이하고 그이를 영광의 단상에 높이 모실것을 한결같이 바라마지 않았다.

그러나 녀사께서는 항일의 초연이 서린 군복을 벗지 못하셨다.

미군이 남조선을 강점하고 쏘련군대가 북조선에 진주한 가운데 국내와 해외에서 모여온 제노라고 하는 인물들이 저마끔 《애국자》, 《혁명가》로 자처하면서 각양각색의 주의주장들을 들고나와 대중을 자기편에 끌려 하였다.

함경북도를 비롯한 일부 지방들에서는 종파분자들과 지방할거주의자들의 책동이 심하였다. 함경북도만 해도 종파분자들이 지도적지위에 앉아 《서울중앙》을 섬기자고 하는가 하면 지방할거주의자들이 함경북도에 제나름으로 《독립왕국》을 차려놓으려고 책동하였다.

외세에 의한 국토량단, 민족분렬의 검은 구름장이 밀려들기 시작하고 그로 하여 새 조국건설은 심각한 투쟁을 동반하였다.

한마디로 말하여 해방직후 나라의 정세는 이루 말할수 없이 복잡하였다. 새 조국건설을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의 앞길에는 많은 애로와 난관이 가로놓여있었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께서는 해방된 조국의 현실앞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중대한 력사적사명감을 깊이 절감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제시하신 새 조국건설로선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의 현장을 일제격멸의 총포성이 울부짖는 결전장으로 여기고 무한한 책임감, 헌신성, 희생성을 발휘하실 결의로 심장의 더운피를 끓이시였다. 해방직후의 복잡한 정세하에서 장군님의 신변을 목숨으로 견결히 옹위하고 장군님의 사상과 로선을 앞장서 관철하는 결사옹위, 결사관철의 투사가 되며 군대와 인민을 새 조국건설에로 불러일으키는 기수가 되실 불변의 신념을 굳히신것이다.

그리하여 녀사께서는 백두산시절의 군복차림 그대로 선군조국건설을 위한 장엄한 투쟁의 한복판에 자신을 세우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평양으로 가는것을 당분간 미루기로 결심하시고 녀투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장군님의 사업을 도와드리자면 해방된 조국의 현실을 알아야 합니다. 조국의 현실을 모르고서야 어떻게 장군님의 사업을 도우며 새 조국건설에 이바지할수 있겠습니까.

웅기는 평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고 교통도 불편해서 얼마동안은 장군님께서 이곳에 오시기 어려울것 같습니다.》

그러시면서 녀사께서는 우리가 이곳에서 인민들에게  장군님께서 제시하신 건당, 건국, 건군의 3대과업을 정확히 알려주어 그들모두가 새 조국건설에 떨쳐나서도록 이끌어주자고 하시였다.

전우들은 녀사께서 하루빨리 평양에 올라가시여 다문 얼마동안만이라도 편히 쉬시며 피로를 푸실것을 몇번이고 권고하였다. 이것은 또한 그이를 끝없이 경모하는 이 나라 인민들의 한결같은 소망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녀사께서는 자신의 피로보다 새 조국건설을 위하여 불철주야로 헌신하시는 수령님을 먼저 생각하시였으며 조국개선의 첫 기슭에서 느낀 시름과 걱정을 그대로 안고 장군님께로 가실수 없으시였다.

그래서 녀사께서는 신들메를 더욱 조이시고 조국개선의 길을 김일성장군님의 새 조국건설로선관철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의 길로 이으시였다.

250여리의 밤길을 달려 청진에 도착하신 그날 수령님으로부터 청진일대에서 사업할데 대한 과업을 받으신 김정숙녀사께서는 다음날인 주체34(1945)년 11월 27일 전우들과 함께 청진시내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고말산마루에 오르시였다.

숨죽은듯 고요한 청진시내를 점도록 굽어보시던 녀사께서는 가슴쓰리신듯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동무들도 숨죽은 시내를 바라보며 생각되는게 많을것입니다.

간악무도한 일제놈들은 모든 공장들을 다 마사놓고 달아나면서 조선은 100년이 걸려도 일떠서지 못한다고 줴쳤다지 않아요.

우리는 김일성장군님의 새 조국건설로선을 받들고 정치활동을 힘있게 벌려 인민들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여기에서 해야 할 당면임무입니다.》

먼길을 오시느라 쌓이신 피로도 무릅쓰시고 고말산에 오르신 녀사의 의도를 가슴뜨거이 느끼며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힘껏 일할 결의를 다지는 전우들에게 김정숙녀사께서는 《엊저녁에도 말한바 있지만 우리는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해방된 조국땅에서도 변함없이 장군님의 혁명전사로 살며 싸워야 해요.

빼앗긴 조국을 도로 찾고 이 땅우에 부강한 인민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우리의 혁명투쟁은 끝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계속되여야 해요.》라고 말씀하시였다.

녀사께서는 잠시 저멀리 남쪽하늘가를 응시하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요즘 보도에 의하면 38°선이남을 강점한 미국놈들은 남조선에 군정을 실시하고 애국적인사들을 마구 체포, 구금, 학살하고있다고 해요.

지금 정세로 보면 우리가 앞으로 미국놈들과 결사전을 하여야 할것 같아요.》

김정숙녀사께서는 말씀을 끊으시고 잠시 주위를 살피시더니 잠시후 바다쪽에 외따로 서있는 소나무를 가리키시며 《됐어요. 좋은 사격목표군요.》 하고 혼자말씀처럼 하시더니 허리에 차신 권총집에서 권총을 꺼내드시였다.

녀사의 명사격술을 조국땅에 와서 처음으로 보게 되는 행운을 지닌 전우들은 기뻐 어쩔줄을 몰랐다.

앞쪽 소나무끝에 마치 방울을 달아맨듯 몇개의 솔방울이 바람결에 하느적거리고있었다. 어느새 겨냥하셨는지 여러발의 총성이 울리자 신비스럽게도 대롱대롱 매달렸던 솔방울들이 온데간데없이 박살나고말았다.

일제히 손벽을 치며 명중이라고 환성을 올리는 전우들에게 녀사께서는 차례로 한명씩 사격을 해보라고 하시였다.

《이제부터 우리의 사격목표는 미국양코배기야요. 나라는 해방되였으나 우리의 사격술에는 변함이 없어야 해요.》

해방된 조국땅에서 선군총대의 과녁을 명시해준 녀사의 말씀을 명심하고 전우들은 차례로 사격을 하였다.

전우들의 사격이 끝나자 김정숙녀사께서는 그들의 사격성과를 치하해주시며 귀중한 말씀을 하여주시였다.

《비록 일제는 패망하고 조국은 해방되였으나 우리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우리는 전조선을 해방하자고 피흘리며 싸웠는데 절반땅밖에 해방하지 못하였어요.…

우리는 백두광야에서 장군님을 받들어싸우던 그 정신, 그 투지를 변함없이 간직하고 혁명투쟁의 길을 계속 걸어나가야 해요.》

그후 12월 17일 또다시 고말산에 오르신 녀사께서는 조국은 해방되였지만 38°선남쪽땅에 미군이 들어와있고 쫓겨간 왜놈들이 다시 기여들 야망을 버리지 않고있는 한 우리는 절대로 손에서 총을 놓아서는 안된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 원쑤가 있는 한 절대로 총을 놓을수 없다!

이것은 백두산녀장군의 철석의 의지였다.

며칠전 청진시보안서를 찾으셨을 때와 청진시 공장, 기업소 로동자대표들을 만나신 자리에서도 그리고 부령야금공장을 찾으셨을 때에도 세상에 제국주의가 있는 한 우리는 손에서 총을 놓을수 없다고 말씀하신 백두산녀장군이시였다.

김정숙녀사의 말씀을 받아안은 일군들의 가슴은 우리 혁명을 압살하려고 피를 물고 덤벼드는 원쑤들에 대한 치솟는 적개심으로 끓어번지였다.

녀사께서는 온 나라 인민에게 그리고 새 조국땅에서 자라나는 새 세대들의 가슴마다에 선군의 귀중한 진리를 안겨주시고싶으시였다.

녀사께서는 권총을 드시고 사격을 하시였다.

백두산녀장군께서 울리신 총성은 귀중한 조국, 사랑하는 조국을 다시 빼앗긴다면 또다시 노예가 된다, 총대를 더욱 억세게 틀어잡고 원쑤들의 침해로부터 조국과 혁명을 튼튼히 지켜내야 한다는 심오한 뜻을 깨우치는 투쟁의 메아리였다.

선군의지를 신념으로 체현하신 녀사께서는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총들고 찾은 조국을 총대로 억세게 지키고 빛내여야 한다는 투철한 혁명의식, 계급의식을 깊이 심어주고 그들을 새 조국건설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는데 모든 정력을 다 바치시였다.

주체34(1945)년 11월 30일 청진시 《조선회관》에서는 백두산녀장군 김정숙녀사를 환영하는 모임이 진행되였다.

이날 오후 4시경 조선인민혁명군의 군복을 단정히 입으시고 허리에 권총을 차신 김정숙녀사께서는 지방일군들의 안내를 받으며 회관에 나오시여 모임에 참가하시였다.

환영모임이 끝난 뒤에 청진시 《해방망향악극단》예술인들의 간단한 축하공연이 진행되였다.

축하공연이 시작되여 얼마 지나서 한 가수가 나가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백두밀림에서 온갖 풍상고초를 다 겪으시며 싸워오신 김정숙녀사를 위하여 한곡 부르겠다고 하면서 자기가 준비한 노래를 불렀다. 그것은 《타향살이 몇해던가…》하는 구절로 시작하여 손꼽아 세여보니 고향떠나 10년에 청춘만 늙어갔다는 구슬픈 류행가였다.

류행가를 들으시는 김정숙녀사의 안색은 참으로 무거우시였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축하공연이 끝나자 모임참가자들은 한결같이 백두의 녀장군 김정숙녀사께서 노래를 불러주실것을 간절히 요청하였다. 참가자들의 시선이 일시에 녀사께로 쏠리고 열렬한 박수갈채가 일어났다.

녀사께서는 웃음을 담으시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그리고 조용한 음성으로 인사말씀을 하시고 끝없는 감회에 잠기시여 노래를 부르시였다. 그것은 《사향가》였다.

김일성장군님께서 만강의 시내가에서 김정숙녀사에게 몸소 배워주신 《사향가》!

이 노래는 빼앗긴 조국을 찾는 싸움에로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을 불러일으키던 항일빨찌산의 진군가였다.

모임참가자들은 노래의 깊은 뜻과 숭엄한 감정에 어찌나 심취되였던지 모두 숨을 죽이고 들었다. 노래는 사람들을 혁명의 폭풍이 몰아친 백두밀림에로 이끌어갔고 밀영지의 밝은 달을 바라보며 고향산천을 그리던 항일혁명투사들의 숭고한 정신세계에로 이끌어갔다.

녀사께서 노래를 끝마치시자 재청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장내를 뒤흔들었다.

녀사께서는 얼굴에 함뿍 미소를 담으시고 선선히 재청을 받아주시였다.

청중은 또다시 3청을 요구하였다.

그러자 녀사께서는 녀대원들과 함께 《유격대행진곡》과 《녀성해방가》를 련속 부르시였다. 그리하여 장내에는 전투적기백이 흘러넘치는 혁명의 노래, 투쟁의 노래가 울려퍼지고 사람들의 가슴마다에는 붉은 피가 끓어번지게 하였다.

녀사께서는 《해방망향악극단》 예술인들의 공연이 있은 때로부터 며칠 지난 어느날 청진시 녀맹원들과의 좌담회  끝에 진행된 오락회에서도 《반일전가》를 힘있게 부르시여 항일유격대의 혁명가요로 인민들을 새 조국건설에 힘있게 추동하시였다.

인민들을 각성시켜 선군조국건설투쟁에 불러일으키기 위한 녀사의 힘찬 목소리는 환영모임이나 상봉모임, 시국강연회, 좌담회가 벌어지는 그 어디서나 높이 울려퍼졌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이렇듯 인민들의 가슴마다에 항일빨찌산의 진군가로 선군혁명의 불씨를 심어주시고 그들을 새 조국건설을 위한 보람찬 투쟁에로 불러일으키시며 밤과 낮이 따로 없는 긴장한 나날을 이어가시였다.

청진시당과 청진시녀맹위원회사업도 지도하시였고 시국강연회에도 직접 출연하시였으며 청진녀자중학교, 수원소학교 남강분교를 비롯한 여러 학교들을 찾으시였다. 청진제유공장, 청진역, 청진제철소 등 수많은 공장들을 찾으시여 공장의 복구방향에 대하여 토론도 해주시고 로동계급이 공장의 주인, 나라의 주인으로서의 자각을 안고 새 조국건설투쟁에 힘있게 떨쳐나서도록 이끌어주시였다. 농어촌들을 찾으시여 몸소 배를 타시고 바다에도 나가시며 하루빨리 인민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한 방도를 찾고 그 투쟁에로 인민들을 불러일으키시였다.

정녕 김정숙녀사의 조국개선은 개선이라기보다 위대한 수령님의 선군령도를 받들어 혁명의 새 장, 선군조선의 새 력사를 개척하기 위한 전략적이동이였다.

세월이 멀리 흘러 오늘에도 메아리치는 고말산의 총성과 더불어 녀사께서 함경북도 인민들에게 심어주신 투쟁의 불씨는 그대로 우리 인민모두에게 수령님의 새 조선건설로선을 더욱 깊이 인식시키고 그 투쟁에로 힘있게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