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 (1)중에서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국제당이 쏘련의 원동지구에서 소집한 회의에 참가하시기 위하여 하바롭스크에 머무르시는 기간 항일혈전의 나날에 한시도 잊으신적 없는 북만의 전우들과 뜻깊은 상봉을 하시였다.

주체29(1940)년말부터 쏘련의 원동기지에는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뿐아니라 동북항일련군 중국인부대들에서 활동하던 조선혁명가들이 집결하였는데 이들중에는 중국공산당 북만성위 서기로 활동하던 김책과 동북항일련군 제2로군 참모장으로 있던 최용건을 비롯한 동북항일련군의 우수한 지휘관들도 있었다.

김일성장군님과 북만의 전우들과의 상봉, 이것은 투쟁무대가 동만이건 북만이건 모두가 조선혁명을 생각하고 자기가 조선사람이며 조선의 혁명가라는것, 단체나 소속에 관계없이 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한몸 바쳐야 할 조선의 아들들이라는 공통성으로부터 10여년세월 날과 달을 이어가며 서로 그리워하고 동경하던 령도자와 혁명동지들과의 뜻깊은 상봉이였다.

김책과 최용건을 비롯한 북만일대의 조선인전우들을 만나 그들의 투쟁을 도와주기 위한것을 원정의 주요한 목적의 하나로 내세우시고 주체24(1935)년 여름 두번째로 북만원정의 길에 오르시였으며 1940년대 조선혁명의 새로운 전략적과업을 제시하신 소할바령회의를 하실 때에는 산비탈앞에 있는 새초밭을 굽어보시며 북만의 전우들이 말을 타고다닌다는데 이런 새초밭을 보면 좋아하겠다고 생각을 하신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조선혁명을 하자면 반드시 참다운 령도자의 령도를 받아야 한다는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10년전인 1930년 여름에 벌써 수령님을 만나뵈오려 길림까지 찾아왔던 김책, 북만에서 항일전을 벌리면서도 백두산에서 조국해방의 총성을 높이 울리며 싸우시는 수령님이 그리워 네번이나 련락원을 파견하였다는 최용건 …

서로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그려온 수령님과 북만의 전우들사이의 그리움이 여기 하바롭스크에서 뜻깊은 상봉으로 펼쳐진것이다.

특히 수령님과 김책과의 상봉은 혁명의 길에서 맺어진 령도자와 전사간의 동지애의 세계가 얼마나 뜨겁고 열렬한가를 보여주는 위대한 화폭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구면지기와 같이 첫인사를 하고난 뒤 김책은 《김사령을 만나는 길이 왜 이다지도 멀었는지.》 하고 눈물이 글썽하여 혼자소리로 말하였다.

젊은 시절에 혁명을 하느라고 했지만 태반은 감옥이나 로상에서 보내면서 큰일을 치지 못하고 쫓겨다니기만 하다가 위대한 수령님의 선군사상을 높이 받들고 무장을 잡은 다음부터 혁명의 참된 진리를 찾은 그였다.

하기에 곡절많은 혁명의 초행길을 령도자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걷고걸으며 마침내 위대한 태양의 품에 안기게 된 김책은 수령님을 만난 자리에서 일어나 몸가짐을 바로 하고나서 그이께 말씀드리였다.

《장군님! 저는 오래전부터 장군님을 조선혁명의 령도자로, 조선의 진짜 장군으로 받들어왔습니다. 저는 이제부터 장군님휘하에서 싸우다가 장군님의 무릎을 베고 죽겠습니다.

장군님곁에만 있게 된다면 전 군직도 당직도 다 필요없습니다. 그러니 저를 이제부터 성위가 아니라 동무라고 불러주십시오.》

놀라운 표정으로 김책의 말을 듣고계시던 수령님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시였다.

《옛날부터 10년지기는 형제간과 같다고 하였는데 성위동지는 나보다 나이도 9년이나 이상이고 또 혁명년조도 오래지 않습니까.》

그 순간 김책의 입에서 불같이 뜨거운 말이 쏟아져나왔다.

《예로부터 장군이 군졸을 거느린다고 하였습니다. 군졸한테 무슨 나이며 년조가 필요합니까. 저는 장군님의 령을 받드는 군졸이 되고 장군님의 전사, 제자가 되겠습니다.》

김책의 말이 너무나도 진실하고 절절한것이여서 그이께서는 어쩔수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소원이 정 그렇다면 좋습니다. 우리 혁명의 길에서 뜻을 같이하고 생사를 같이하는 혁명동지가 되여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자유, 행복을 위하여 힘껏 싸웁시다.

김책동무!》

《장군님!》

수령님과 김책은 두손을 와락 부여잡았다.

김책의 눈에서 떨어진 뜨거운 눈물이 수령님의 손등을 적시였다.

수령님께서도 눈굽에 손을 가져가시였다. 혁명의 길에 또 한명의 동지의 심장에 자신의 심장을 얹고 동지적우정과 사랑을 확약하신 기쁨과 행복이 가득 넘쳐나신것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이 시각 철리중의 철리로 간직하여오신 동지는 혁명이고 혁명은 동지라는 생각이 더욱 굳어지시였다.

동만과 남만, 북만에서 전장을 누비며 다닐 때에는 일제와 피어린 싸움을 하느라고 자주 만나지 못했거나 상봉을 미루지 않을수 없었던 그 귀중한 동지들이 지금 여기 하바롭스크에 모여 감격적인 포옹을 하고있는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하바롭스크에서 북만의 항일련군건설에서 주동적역할을 한 공로자의 한사람인 최용건도 만나주시였다.

그때 최용건은 수령님과의 상봉과정에 그이께서 전민항쟁을 주장하신다는 말을 오래전에 들었는데 전민을 어떤 방법으로 동원시킬 생각인지 그 구상에 대하여 말씀해주실것을 청드렸다.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조선민족의 대다수가 극한상태에서 민족의 재생을 갈망하고있는것이 조국의 현실이다, 그들을 무장시키면 수십만대군이 생기게 된다, 어떤 식으로 무장시키려고 하는가, 일하면서 무장활동을 하는 반군사조직들을 도처에 내오자는것이다, 1930년대 후반기부터 북부조선일대에서는 벌써 생산유격대와 로동자돌격대들이 조직되여 활동을 개시하였다, 앞으로 그런 조직들을 전국각지에 다 내오자는것이다, 누가 조직하는가, 항일무장투쟁에서 단련된 골간들이 각 지방에 파견될것이라고 하시였다. 계속하여 그이께서는 이것은 결코 료원한 일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몇해안으로 최후결전의 시각은 반드시 온다, 그런 시각이 오면 우리는 조선혁명의 주력부대인 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작전에 배합하여 온 나라의 항쟁조직들을 다 불러일으키는 전민항쟁의 방법으로 최후결전을 해야 한다, 이것이 조국해방작전에 대한 자신의 구상이며 자력독립로선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받아안은 최용건은 자기는 하바롭스크에 오면서도 쏘련과의 군사적협조에 대해서만 관심했지 조선국내에서의 전민무장이나 조국해방작전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말하면서 자기도 백두산에 가서 싸우고싶다고, 평대원을 해도 좋고 아무것을 해도 좋으니 백두산에 가서 장군님의 부하로 싸우다가 백두산에 묻히고싶은것이 소원이라고 눈물을 머금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혁명의 수위에 높이 모시고 그이의 령도밑에 조선혁명에 전심전력하겠다는 김책, 최용건의 진정에 넘치는 이러한 맹세에는 자신들이 여러해를 두고 품어온 간절한 숙원과 그들만이 아닌 북만의 조선인항일투사들의 한결같은 심정이 담겨져있었다.

이 맹세는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최대의 믿음과 기대의 표시였고 살아도 수령님의 손길아래에서 혁명을 하고 죽어도 그이의 품에 안겨 죽겠다는 충실성의 발현이였으며 하나의 중심을 내세우고 그 두리에 집결하여 자주적으로 혁명을 해나가려는 확고한 지향과 의지의 반영이였다.

로야령이 동남만과 북만을 가르는 경계선으로는 되고있지만 그 높은 산고개가 조선혁명가들의 심장에까지 금을 그을수 없었다. 북만의 전우들모두가 백두산에 가서 수령님과 함께 싸우다가 죽겠다고 하였다.

백두산에 가서 싸우겠다는 북만의 전우들의 한결같은 념원은 그대로 선군혁명대오의 사상의지적통일을 담보하는 요인으로 되였고 조선혁명의 주체적력량을 강화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길림시절에 새 세대의 청년공산주의자들이 나를 령도의 중심으로 내세웠다면 1930년대와 1940년대 전반기에는 김책을 비롯한 항일혁명투사들이 나를 통일단결의 중심으로 내세우고 조선혁명의 주체로선을 관철하기 위해 투쟁하였습니다.

나를 통일단결의 중심으로 내세우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 나라 혁명에서는 령도중심이 형성되였습니다.》

하바롭스크회의에서는 혁명력량을 보존축적하며 대규모적인 유격투쟁으로부터 소부대활동에로 이행할데 대한 문제토의가 진지하게 협의되였다.

그것은 이 문제협의에서 반대의사를 표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기때문이였다.

대규모유격투쟁으로부터 소부대활동으로 넘어가는것은 혁명에서 후퇴다, 대부대활동도 성차지 않은데 소부대활동이나 해가지고서야 어느 세월에 일제를 타승하겠는가, 관내동지들이 대부대로 움직이면서 판을 큼직큼직하게 벌리고있을 때 항일을 먼저 시작한 동북사람들이 소부대로 활동하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 이것이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반대의견의 골자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부대활동을 해야 체면이 서고 소부대활동을 하면 체면이 서지 않는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소할바령회의에서 조국광복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하여 대부대작전으로부터 소부대작전으로 이행할데 대한 새로운 전략적방침을 채택하고 소부대활동을 성과적으로 벌려온 투쟁경험도 이야기하시면서 이렇게 가르치시였다.

정세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우리의 손실도 적지 않다, 혁명의 오늘뿐아니라 래일을 위해서도 력량보존문제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일제를 쉽게 패망시킬수 있다고 생각지 말라, 일제를 패망시키고 조국을 해방하자면 조선인민혁명군도, 동북항일련군도 력량을 보존하고 확대해나가야 한다, 소부대활동을 하게 되면 전민항쟁을 위한 조직건설도 활발히 벌릴수 있고 식량도 쉽게 구할수 있다, 그리고 활동을 하기에도 편리하다, 우리가 지난해 여름부터 소부대활동을 해보았는데 결과가 대단히 좋았다, 해볼만 한 일이다, 대부대활동은 필요한 때 벌려도 된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조선과 만주, 쏘련정세를 놓고 소부대활동에로 이행하는것이 가지는 정당성에 대하여 토론을 해보자고 제기하시였다.

회의장은 잠시 침묵에 잠기였다.

회의를 사회하는 국제당대표는 회의장의 여러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김책에게 말하였다.

《북만성위와 동북항일련군 3로군대표인 김책동지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원래 과묵한 사람이여서 내심을 얼굴에 내비치는 때란 별반 없었던 김책이였지만 그때에는 대뜸 흥분하여 얼른 자리에서 일어서서 말을 떼지 못하고 장내를 쭉 둘러보다가 말하였다.

《동지들! 김일성동지는 조선인민혁명군 사령관으로서 조선혁명의 대표자, 지도자이십니다.

나는 유격부대의 한 지휘관으로서 김일성동지께서 내놓으신 새로운 전략적방침을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그리고나서 그는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전략적방침은 조성된 정세의 요구로부터 출발한것이라고 하면서 그러니 정세토론을 많이 하면 김일성동지의 방침이 정당하다는것이 저절로 증명될것이 아닌가고 힘주어 말하였다.

그리하여 회의에서는 정세토론이 많이 벌어졌으며 그 과정에 조선과 만주의 정세, 쏘련의 정세를 가지고 소부대활동으로 이행하는것이 정당하다는것이 론증됨으로써 대표들의 의견상이가 기본적으로 해소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를 회고하시며 원동기지에는 북만에서 싸우던 사람들도 와있었고 남만출신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그곳에서 나서자란 조선사람들도 있었다, 그때 서로가 자기 부대를 내세우고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게 된다면 혁명대오가 단합되지 못하고 중심도 이루어지지 않았을것이다, 그러나 원동의 기지에 모인 조선혁명가들속에서는 지방주의라든가 령도권쟁탈과 같은 놀음이 한번도 벌어지지 않았다, 모두가 순결한 사람들이여서 그런 일이 있을수도 없었다, 그런데다가 김책, 최용건과 같은 로장들이 처음부터 나를 내세우다나니 령도중심이 확고했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을 령도의 중심으로 변함없이 받들어모시려는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과 조선혁명가들의 열렬한 활동은 국제련합군이 편성된 이후시기에 한층 더 심화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제련합군이 편성된 후 국제련합군안의 모든 조선혁명가들의 활동을 지도하시였다.

그리하여 김책, 최용건, 강건을 비롯하여 지난날 중국인부대에서 활동하던 모든 조선혁명가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를 받는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에 넘쳐 그이의 명령지시에 절대복종하였다.

여기에 김책이 위대한 수령님을 어떻게 조선혁명의 령도의 중심으로 높이 모시였는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실이 있다.

국제련합군지휘부에서는 1942년 여름부터 1943년 가을이 되도록 여러차례에 걸쳐 만주에서 활동하는 김책에게 돌아오라는 독촉무전을 보내였으나 그때마다 보내온 답전은 《기다리라, 할 일을 다하고 돌아간다. 김책》이라는 열여섯 글자뿐이였다.

하바롭스크회의후 김책은 북만에서 활동하는 소부대들에 대한 지도를 끝낸 후여서 원동으로 돌아갈수도 있었으나 박길송, 허형식과 같이 생사고락을 같이하던 전우들이 전사한 다음 그들의 몫까지 합쳐 싸우려는 생각으로 기지로 돌아가지 않고있었던것이다.

그리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신의 이름으로 무전을 보내시게 되였다.

수령님의 무전을 받은 즉시 그는 무전수를 불러 다음과 같은 답전을 날리도록 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 사령관

국제련합군 제1지대장

김일성동지 앞

경애하는 사령관 김일성장군님의 친명전문을 정확히 접수하였습니다. 장군님의 명령대로 모든 사업을 결속하고 출발하겠습니다.

일제격멸과 광복조국의 래일을 위하여 사령관동지의 만수무강과 안녕을 바랍니다.

1943년 10월 28일

김 책

한편 김책은 소부대전체 성원들을 모이게 한 다음 장군님께서 우리를 부르신다는것을 알려주고 출발준비를 다그칠데 대한 과업을 주었다.

그때 부상당한 김책의 창상을 걱정하여 좀 기일을 연장하여 치료를 받은 다음 떠나자는 제의에 그는 단호히 잘라 말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 들어오라고 하였으면 내가 곧 들어가는것이 옳은 처사요. 그러니 리유여하를 불문하고 무조건 들어가야지. 창상은 가면서 처치받자구.》  

그 시각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김책의 소부대가 기지를 출발하였다는 통보를 받은 국제련합군지휘부의 한 고위군사간부는 자기 상급에게 이렇게 보고하였다.

《김책동무는 우리가 아무리 호출해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의 요청을 받으신 김일성동지의 단 한번의 호출무전에 김책동무는 즉시 기지로 출발하였다고 한다.

자기의 작전구역을 조금도 뜰것 같지 않던 김책동무의 이 단호한 결심과 행동을 어떻게 보아야 하겠는가. 이것은 김일성동지에 대한 그의 절대적인 신임, 무조건적인 복종을 떠나 생각할수 없다.》

이렇게 국제련합군안의 전체 조선인지휘관들과 대원들이 민족의 태양이시며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김일성장군님을 조선인민혁명군 사령관으로, 항일무장투쟁에 참가한 모든 조선혁명가들의 최고대표자로, 조선혁명의 수령으로 더욱더 높이 모심으로써 조선혁명의 령도중심은 더욱 튼튼히 형성되게 되였다.

결과 전반적조선혁명에 대한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의 령도가 더욱 철저히, 더욱 빛나게 실현되게 되였으며 항일무장투쟁의 최후승리를 위한 투쟁이 더욱 줄기차게, 더욱 성과적으로 전개되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