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 중에서

백두의 녀장군 김정숙녀사께서는 주체32(1943)년 봄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쏘련의 하바롭스크부근에 있는 훈련기지로 가시였다.

이 시기 훈련기지에서는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이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앞두고 군정훈련을 맹렬히 벌리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정훈련을 성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하여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군정훈련강령을 작성하시였다. 훈련강령에는 조선인민혁명군의 모든 지휘성원들과 대원들을 조선혁명의 로선과 전략전술적방침으로 튼튼히 무장시키고 조국에 대한 학습을 강화하는 동시에 현대전에 필요한 군사지식을 깊이 체득시켜 일제와의 최후결전과 해방후 새 조국건설에 써먹을수 있는 필요한 지식을 습득할데 대한 내용이 반영되여있었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의 모든 지휘간부들과 전사들을 조국해방작전을 승리적으로 벌려나갈수 있는 유능한 정치군사간부로, 새 조국건설의 믿음직한 골간으로 키우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드시고 정력적으로 활동하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녀대원들의 생활을 맡아보시게 되였다.

훈련기지에서의 교육은 군사일면의 교육이 아니라 정치와 군사를 겸한 종합적인 교육과 훈련이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늘 군정훈련과 학습에서 모범을 보이시면서 대원들을 이끌어가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 어찌나 학습에 열중하시였던지 식사하는것조차 잊으실 때가 많았다. 전우들이 학습하는것도 중요하지만 때식을 번져서야 되겠는가고 말씀드리면 《먹는것보다 배우는것이 더 귀중한 혁명의 량식이예요.》라고 웃으며 말씀하시군 하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주체32(1943)년 9월 15일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선인민혁명군 정치간부 및 정치교원들앞에서 하신 연설 《조선혁명가들은 조선을 잘 알아야 한다》가 발표된 후 낮에 밤을 이어 학습하시였다. 그리고 수령님의 로작의 내용을 깊이 파악하기 위한 토론에도 적극 참가하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주체32(1943)년 9월 하순 학습회에서 《조국에 대한 학습을 잘하여 공산주의자로서의 의무를 다하자》는 토론을 하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토론에서 자기 조국을 잘 알아야 민족적긍지와 자부심도 높아지게 되며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싸워나갈 각오도 든든히 가지게 된다고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우리는 조국을 광복하기 위한 최후결전준비를 갖추기 위하여 진행하고있는 사격훈련과 무선통신훈련, 간호훈련, 도하훈련이 아무리 어렵고 시간이 긴장하다 해도 조국에 대한 학습을 중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로작의 사상에 기초하여 폭넓고 깊이있게 그리고 론리정연한 김정숙녀장군의 토론이 얼마나 인상깊었던지 그 모임에 참가하였던 림춘추는 그때로부터 30여년이 지난 먼 후날에도 그이의 토론내용을 거의 그대로 재현하여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훈련기지에서는 군사리론학습과 실동훈련도 하였다. 전술훈련, 락하훈련, 사격훈련, 스키훈련, 무선통신훈련을 비롯하여 현대전에 대비한 각종 훈련들이 련일 맹렬히 진행되였다. 그러나 녀대원들은 누구도 훈련에 빠지지 않았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모든 훈련에 이악하게 참가하시였다.

항공륙전대훈련을 하던 때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항공륙전대훈련은 조국해방의 최후공격작전을 완성하기 위한 중요한 훈련이라고 하시면서 녀대원들도 항공륙전대훈련에 참가시켜줄것을 훈련지휘부에 제기하시고 커다란 육체적부담을 이겨내야 하는 어려운 항공륙전대훈련에 앞장에서 참가하시였다.

그때 녀대원들은 김정숙녀장군께 자기들의 훈련을 지휘만 해주실것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자신께서는 사령관동지의 조국해방위업을 받드는 한 대원이고 전사이다, 전사로서 도리를 어길수 없다고 하시면서 훈련과정안에 반영되여있는 예비훈련에 빠짐없이 참가하시였다.

훈련강도가 점차 높아지자 일부 녀대원들속에서 주저하는 경향과 어지럼증을 참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훈련과정에 한 대원이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몸을 가누기 어려워할 때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솔잎을 뜯어다주시며 이걸 씹으면 정신이 들거라고 고무해주시고 몸소 《적기가》도 불러주시였다. 또 일부 녀대원들속에서 공중에서 뛰여내릴 때 눈을 감는 결함이 좀처럼 극복되지 않을 때에는 이 훈련은 원쑤들과 결판을 내고 조국을 해방하기 위한 훈련이라고 하시면서 우리가 비행기에서 떨어질 때 발밑에 누가 있겠는가, 원쑤가 있고 원쑤의 구두발밑에서 신음하는 아버지, 어머니, 동생이 있다, 그런데 어떻게 눈을 감을수 있겠는가고 그들을 고무해주시였다.

이런 나날을 거쳐 녀대원들의 락하동작은 점차 완성되여갔다.

첫 비행락하훈련때였다.

비행기에 오르신 김정숙녀장군께서는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긴장한 빛이 어리는 녀대원들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시였다.

《동무들, 대담하자요.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나 어려운 고비들을 많이 넘겼어요?

모두들 일제의 마지막숨통을 조이는 싸움터로 간다고 생각하고 용기를 내자요.》

《준비!》구령에 뒤이어 락하명령이 내리자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동무들, 우리모두 땅우에서 다시 만나자요.》라고 하시면서 선참으로 비행기에서 뛰여내리시였다. 녀대원들은 그이의 뒤를 따라 련이어 비행기에서 뛰여내리였다.

김정숙녀장군을 비롯한 모든 녀대원들이 지정된 착륙지점에 정확히 락하하였을 때 남대원들은 일시에 달려와 축하의 꽃묶음을 안겨주었다.

전쟁에서 군인들의 높은 사격술은 그 승리를 담보하는 중요한 요인중의 하나이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높은 사격술을 지닌 명사수였지만 군정훈련의 나날에 보다 과학적인 사격리론을 체득하고 사격술을 더욱 련마하기 위하여 온갖 정력과 지혜를 다 바치시였으며 솔선 숭고한 모범을 보여주시였다.

주체33(1944)년 3월 8일 훈련기지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의 성대한 사격경기대회가 진행되였다. 그것은 조국해방을 위한 최후결전에 어떻게 준비되였는가를 검열받는 의의깊은 사격경기대회였다.

대원들속에는 일제침략자들과의 싸움에서 이름을 떨친 명사수들이 많았다. 어두운 밤에 백수십m 밖에 매달린 적진의 전등알들을 순식간에 모두 깨뜨려버려 적들을 공포에 떨게 한 명사수도 있었고 권총사격으로 지붕에 높이 걸린 전화선을 단방에 끊어버려 적들의 통신을 마비시켜버린 명사수도 있었다. 이 사격경기대회야말로 항일대전의 불길속에서 자라났고 위훈을 떨친 명사수들의 경기대회라고 할수 있었다.

경기종목은 보병총사격과 권총사격, 경기관총, 중기관총사격이였다.

이날 사격경기대회에서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단 한발의 실수도 없이 모든 목표를 다 소멸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격경기를 총화하시면서 최고점수를 받고 1위를 하신 김정숙녀장군께 표창으로 소형권총을 수여하시였다.

실탄사격을 마치고 돌아오시자 대원들은 김정숙녀장군께 신묘한 사격술의 비결에 대하여 알려달라고 하면서 그이의 비상한 사격술은 아무래도 천성적인것 같다고 하였다.

그때 김정숙녀장군께서는 가볍게 웃으시며 사격술이야 무슨 타고난 천성이겠는가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자나깨나 사령관동지를 보위해야 하겠다는 그 하나의 생각으로 꾸준히 훈련하여 사격술을 높인 결과입니다. 사령관동지를 모시고 싸우는 우리 전사들에게 있어서 사격술을 높이는것은 단순히 군사적의무로만 되는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운명을 책임지신 장군님을 보위하는 숭고한 사명으로 되는것입니다.》

수령님을 모신 경위대원의 총에서는 단 하나의 헛방도 있어서는 안된다는것이 김정숙녀장군께서 깊이 간직하고계신 한생의 변함없는 신념이였으며 좌우명이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사격훈련뿐만아니라 다른 모든 훈련에서도 실천적모범으로 대원들을 이끄시였고 조국해방의 최후결전에 대한 힘있는 선동사업으로 그들의 심장에 불을 지펴주시였다.

스키훈련은 완강한 투지와 인내력을 요구하는 매우 힘든 훈련이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남다른 열정으로 활주와 장애물극복, 전속력으로 달리면서 사격하기 등 어려운 기술동작들을 남먼저 익히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소대집단스키행군에서 조호상간, 동지호상간 서로 돕고 이끄는 기풍을 높이 발휘하도록 이끌어주심으로써 모든 대원들이 한명의 락오자도 없이 제정된 시간을 훨씬 단축하여 돌아올수 있게 하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훈련에서 늘 대원들이 창조적적극성과 지혜를 다하여 현대전이 요구하는 전투능력과 군사기술을 소유하도록 하는데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도하훈련의 경우를 놓고보더라도 김정숙녀장군께서는 헤염칠줄조차 모르는 동무들을 포함하여 모든 대원들에게 도하방법을 가르쳐주고 도하능력을 키워주기 위하여 온갖 열정과 지혜를 다 바치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손수 산에 가서 강대토막을 잘라가지고 오시여 강에 들어서기 주저하는 대원들에게 하나씩 안겨주시며 수영훈련의 첫걸음을 떼주시였고 군복바지나 비옷 같은 신변기재로 뜰주머니를 만들어 리용하는 방법도 가르쳐주시면서 수영능력을 키우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수영훈련때 기운이 진하여 앞으로 전진 못하는 대원들에게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저 대안이 조국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힘이 나요.》라고 하시며 그들모두가 기어이 수백m나 되는 넓은 아무르강을 도하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무선통신훈련에서도 비상한 노력으로 남먼저 높은 무선송수신기술을 소유하시고 대원들을 이끌어주시였다.

당시 교원들은 무선급수에서 제일 낮은 급수에 합격하려고 하여도 보통 무선강습을 1년이상 받고 실지 훈련을 통하여 1∼2년의 경력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하고있었다. 그러나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무선통신훈련을 위대한 장군님께서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에 하달하시는 최후결전의 명령을 보내는 심정으로, 조국인민들에게 조국해방의 시각이 왔다고 알리는 마음으로 분초를 아껴가며 정력적으로 진행하여 제일 높은 급수에 합격되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무선통신훈련을 힘들어하는 대원들이 신심과 용기를 가지도록 고무해주시고 자신께서 훈련에서 얻은 경험과 묘술도 알려주시면서 그들모두가 높은 무선통신기술을 소유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김정숙녀장군의 실천적모범과 적극적인 방조에 고무된 대원들은 조국해방의 대사변이 박두하고있는 실정에 맞게 송수신훈련과 무선기구조학에 큰 힘을 넣어 그 어떤 지휘통신도 원만히 보장할수 있는 수준에 이르게 되였으며 무선기의 고장도 자체로 퇴치할수 있게 준비되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간호훈련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수첩에 라틴어와 약명, 병명을 써가지고 다니시면서 휴식하는 짬시간은 물론 남들이 다 자는 밤에도 학습하여 남먼저 외우시였다.

주체33(1944)년 가을 소부대공작을 나갔던 대원들이 여러가지 주사약과 알약을 구해보냈을 때 대원들은 그 약들을 무슨 병에 어떻게 쓰는지 알수 없었다. 그때 김정숙녀장군께서는 그 약품들에 쓴 설명서를 보시고 그것이 무슨 약들이며 어떤 병에 어떻게 쓰는것이라고 일일이 설명하여주시였다. 그 설명을 듣고 대원들은 물론 간호훈련을 집행하던 교원들도 탄복을 금치 못하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이밖에도 지혈법, 붕대감는 방법, 주사놓는 방법을 비롯하여 응급처치법도 빨리 익히시였다. 그리고 일부 녀대원들이 간호훈련을 부차적인것으로 여기면서 열성을 내지 않고있는 사실을 목격하시고 우리가 치료방법을 몰라서 귀중한 동지들을 잃은 생각을 해서라도 간호학을 열심히 배워야 한다고 일깨워주시며 훈련에서 높은 열성을 발휘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모든 훈련, 그것은 김정숙녀장군에게 있어서 조국해방을 위한 최후결전준비였다.

하기에 김정숙녀장군께서는 휴식을 권고하거나 훈련강도를 좀 낮추자고 하는 대원들에게 늘 이렇게 말씀하군 하시였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어요. 사령관동지를 모시고 조국에 돌아갈 날도 멀지 않았어요.》

참으로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언제나 시간의 부족을 느끼시였고 시간을 아까와하시였다.

김정숙녀장군에게도 하루는 스물네시간이였다. 그러나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아무리 많은 일도, 아무리 어려운 일도 그 시간속에서 해내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그 스물네시간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열흘, 스무날에 해당하는 시간을 찾아 위대한 수령님의 사업을 보좌해드리고 수령님께서 의도하시는 일들을 집행해나가시였으며 부대안의 크고작은 일들과 지휘성원들, 대원들의 생활을 보살펴주시였다.

훈련의 여가시간이면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산나물을 뜯어 대원들의 식생활을 풍부하게 해주시였다. 훈련기지주변에는 고사리, 닥지싹, 두릅, 등골나물 등 산나물들이 많았다.

이처럼 김정숙녀장군께서는 군정훈련에서만이 아니라 생활을 꾸려나가는데서도 앞장에 서시여 대원들을 이끄심으로써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앞당겨나가는데 적극 이바지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