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 (1)중에서

 

주체31(1942)년 7월 하순 하바롭스크부근에 설치된 북야영에서는 국제련합군의 분렬행진이 있었다.

이날의 행사는 조, 중, 쏘 세 나라 무장력의 련합인 국제련합군의 탄생을 경축하는 일종의 기념의식이라고도 할수 있었다. 분렬행진종대의 맨앞에는 붉은기를 높이 추켜든 조선지대가 힘차게 행진해 나아갔다.

국제련합군은 1940년대 전반기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할수 있는 주체적력량을 백방으로 강화해나가는것과 함께 국제반제반파쑈력량과의 련대성을 더욱 강화하는것을 항일혁명의 최후승리를 담보하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보시고 조, 중, 쏘 무장력의 련합전선형성을 빛나게 실현하신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의 현명한 령도가 낳은 자랑찬 결정체였다.

국제련합군의 탄생에 대하여 말할 때 그것은 김일성장군님께서 조, 중, 쏘 무장력의 단결과 협조를 실현할데 대한 원칙적립장을 천명하신 하바롭스크회의와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국제당이 하바롭스크에서 소집하는 만주빨찌산 지휘관들의 회의에 참가해달라는 초청을 처음으로 받으신것은 주체28(1939)년 가을이였다.

그러나 그때에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대부대선회작전을 지휘하고계시였기에 전장을 뜰수 없는 형편이였으므로 그에 응하실수 없었다.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할데 대한 새로운 전략적과업을 실현하기 위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이 소부대활동으로 넘어간 직후인 주체29(1940)년 10월 중순 수령님께서는 또다시 국제당의 초청을 받으시였다.

국제당은 이때 수령님께서 장차 쏘련 원동지구의 하바롭스크에서 소집하게 되는 조, 중, 쏘 세 나라 군사지휘관들의 회의에 참석해주실것과 이를 위하여 조선인민혁명군과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대표들이 빠른 시일안에 쏘련으로 들어올것을 거듭 요청하였으며 그 기회에 동북지방에서 활동하고있는 유격부대들이 쏘련으로 들어오는 경우 받을 준비가 되여있다는것을 통보해왔다. 이와 동시에 조선인민혁명군 부대가 일단 원동에 들어와서 한해겨울을 난 다음 차후활동대책을 실정에 맞게 상론할것을 제기해왔다.

국제당의 초청과 제기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안전한 기지를 마련하며 조, 중, 쏘 세 나라 혁명적무장력사이의 실제적인 련합전선을 실현하여 인민혁명군의 소부대, 소조들의 활동을 적극화해나가기 위한 수령님의 구상과 내용상으로 일치하는것이였다.

조성된 정세와 혁명발전의 요구를 깊이 통찰하신데 기초하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9(1940)년 10월 하순 안도현 처창즈치기에서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회의에서 쏘련에 들어가기로 하시고 그 준비를 철저히 갖추신 다음 국제당이 소집한 회의에 참석하시기 위하여 쏘련의 원동지구로 가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참석하신 국제당이 소집한 하바롭스크회의는 주체29(1940)년 12월부터 주체30(1941)년 3월 중순까지 진행되였다.

회의에는 조선인민혁명군과 동북항일련군 및 만주 각 성위의 책임일군들, 국제당과 쏘련측 대표들이 참가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과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및 남만성위를 대표하여 이 회의에 참가하시였다.

하바롭스크회의는 동북항일련군의 지휘권문제를 둘러싼 쏘련측과 항일련군측의 상반되는 립장으로 하여 처음부터 어수선한 분위기속에서 진행되였다.

회의에서 론의된 중심의제는 조선과 중국 동북지방에서의 유격투쟁과 쏘련군대와의 호상관계를 어떻게 맺으며 그것을 새로운 정세의 요구에 맞게 어떻게 강화발전시키겠는가 하는것이였다.

이 문제와 관련한 쏘련측의 제안은 련합한 파쑈들과의 싸움에서 공동투쟁을 강화하기 위하여 동북항일련군이 독자성을 포기하고 쏘련원동군과 통합하자는것이였다. 이것은 조선혁명과 동북항일혁명을 고려함이 없이 동북항일련군을 쏘련원동군의 직속부대로 만들자는것이였다.

쏘련의 제안에 대하여 동북항일련군 지휘관들은 쏘련측의 립장이 지금까지 피흘려해온 동북항일혁명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보면서 반대하였다.

이것은 결국 주체29(1940)년 3월 중순경에 호상련계와 협조를 강화하기 위한 동북항일련군측과 쏘련군사당국이 참가한 협의회에서 매듭짓지 못한 론난의 계속이였다.

중쏘 두 나라 지휘관들이 자기의 주장만을 고집하다보니 문제해결을 보지 못하고 론의만 거듭되고있었다.

그때 쏘련측과 동북항일련군 지휘성원들은 통합문제와 관련한 위대한 수령님의 견해를 몹시 알고싶어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선 조, 중, 쏘 무장력의 단결과 협조를 실현하기 위한 원칙적립장으로서 어느 일방이 타방을 무시하거나 타방의 독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무리한 통합을 반대하며 각자의 독자성을 존중하는 기초우에서 여러 무장력의 국제적인 련합을 형성하여야 한다고 밝혀주시였다.

그때 쏘련측은 위대한 수령님에게 저들의 제안이 민족리기주의로부터 출발한 제안이 아니라는것을 납득시키려고 무척 애를 썼다. 그러나 그들의 말에서는 쏘련이 건재하고 쏘련혁명이 잘되여야 중국혁명이나 조선혁명도 잘된다는 주장이 강하게 풍기고있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신들이 제출한 제안은 일리있는 제안이다, 그러나 그 요구는 아직은 일방적이고 시기상조라고 생각된다, 승리한 나라의 혁명을 보위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승리하지 못한 나라의 혁명을 추진시키는것도 그만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을 항일련군에 용해시키는것도 반대하지만 쏘련군대에 배속시키자는것도 반대한다고 하시면서 공동투쟁의 형식과 방법이 쏘련에도 도움이 되여야 하겠지만 조선혁명이나 중국혁명의 리익에도 다같이 맞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쏘련측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공회전을 거듭하고있는 자신들의 론쟁에 종지부를 찍고 회의를 결속할수 있는 실마리를 주었다고 하면서 수령님의 말씀에서 아주 좋은 시사를 받았다고, 독자성문제에 대해서는 좀더 연구하겠다고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으로 조, 중, 쏘 무장력의 단결과 협조를 실현하기 위한 원칙적립장으로서 공동투쟁의 형식과 방법을 탐구하며 동지적으로 사심없는 태도로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를 최대한 발양하여 공동의 리익에 맞게 풀어나가야 한다는것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북항일련군 지휘성원들에게 문제는 어떤 형태의 련합인가 하는것인데 쏘련측의 제안이 일방적인것이기는 하지만 씨앗은 있다고 하시면서 그러니 무턱대고 배척하지 말고 다같이 동지적이고 사심없는 태도로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를 최대한으로 발양하여 공동의 리익에 맞게 문제토의를 빨리 끝내도록 호소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천명하신 원칙적립장은 국제당과 중쏘 두 나라 지휘관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조, 중, 쏘 세 나라 혁명적무장력사이의 단결과 협조를 실현하는데서 긍정적인 작용을 하였다.

하바롭스크회의가 결속된 3월 중순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기 위해 국제당대표가 숙소에 찾아왔다. 그때 수령님께서는 숙소에서 항일혁명투사들인 김책, 최용건, 안길, 서철과 자리를 같이하고계시였다.

국제당대표는 자리에 앉기 바쁘게 수령님을 우러르며 국제당과 쏘련당, 원동군사령부를 대표하는 자기가 아니라 김일성동지께서 이번회의 전과정을 총괄했기때문에 회의가 성과적으로 진행될수 있었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김일성동지는 두 나라 사람들의 눈치 같은것은 전혀 관심밖에 두시고 하고싶으신 말씀을 다하십니다.

나는 김일성동지께서 주견이 확고하고 원칙이 강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정말 탄복하였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있던 김책은 가슴을 쭉 펴고 빙그레 웃으며 말하였다.

《그래서 김일성동지를 백두산의 호랑이, 백두산의 청년장군이라고 칭송하지 않습니까.

조선의 백두산이 천하를 굽어보며 호령했지요.》

그리하여 그때 하바롭스크에 살고있는 조선사람들은 물론 쏘련사람들속에서는 《조선의 백두산이 천하를 굽어보며 호령하다》라는 제명으로 하바롭스크회의에 대한 이야기가 파다하게 퍼져 온 도시가 끓어번지게 되였다.

하바롭스크회의가 있은 후 조선인민혁명군은 쏘련측이 마련해준 원동의 림시기지에서 군정훈련도 하고 백두산을 비롯한 국내 여러곳에 튼튼히 꾸려놓은 비밀근거지를 거점으로 삼고 국내 무장투쟁과 혁명운동을 다같이 힘있게 밀고나감으로써 조국해방의 새날을 앞당기였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조선인민혁명군이 원동에 새로운 림시기지를 꾸린 다음 국내와 만주일대를 왔다갔다하면서 소부대활동을 활발히 벌려나가게 된것은 항일무장투쟁력사에서 하나의 전환이라고 말할수 있었다.

1940년대 전반기 항일무장투쟁에서 중요한 내용의 하나로 된것은 주체31(1942)년 여름부터 쏘련경내에서 중국, 쏘련의 전우들과 함께 국제련합군을 편성하고 일제를 최종적으로 격멸하기 위한 정치군사적준비를 백방으로 강화해나간것이였다.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이 쏘련, 중국의 무장력과 함께 국제련합군을 편성하고 공동투쟁을 벌린것은 조선혁명발전의 새로운 단계를 의미하는것이였다고 평가할수 있습니다.》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주체30(1941)년 하바롭스크회의이후 국제적으로 충격적인 사변들이 련이어 일어남에 따라 조, 중, 쏘 세 나라 무장력의 련합을 빨리 실현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시였다.

주체30(1941)년에 일어난 충격적인 3대사변은 이해 4월 쏘일중립조약의 체결, 6월에 일어난 쏘도전쟁과 함께 12월 일제의 진주만공격으로 시작된 태평양전쟁의 발발이였다.

조선을 강점한 일제가 중일전쟁을 결속짓지 못한채 또 한차례의 무모한 전쟁도박에 들어간것은 조선의 혁명가들에게 있어서 최후결전의 시기를 앞당길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준셈이였다. 조선인민혁명군과의 교전을 내놓고라도 만약 쏘일전쟁이 현실로 된다면 일본은 중국, 미국, 쏘련을 상대로 하는 세 방면에서의 큰 전쟁을 동시에 치르는것으로 되였다. 그런 경우 조선인민혁명군은 만주에 있는 관동군이나 조선주둔군을 상대로 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조국해방을 위한 최후작전을 벌릴수 있었다.

이와 함께 조선인민혁명군과 항일련군, 쏘련원동군은 서로 산개되여 자기 목적에 따라 활동하던 지난 시기와는 달리 항일을 목적으로 하여 자기의 기지를 두고 활동하고있는 환경은 세 나라 무장력의 공동보조를 맞출수 있는 유리한 조건으로 되였다.

이로부터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이미 조선인민혁명군의 독자성은 독자성대로 유지하면서 중국의 무장부대들과 함께 동북항일련군을 뭇고 공동투쟁을 해오는 과정에 쌓으신 풍부한 경험에 기초하시여 조, 중, 쏘 세 나라 무장력의 련합형태에 관한 전략적구상을 내놓으시였다.

1940년대 전반기 조중 두 나라 무장력이 원동에 또 하나의 기지를 가지고있고 쏘련원동군이 익측에 존재하고있는 조건에서 공동항일의 폭과 심도를 더욱 넓히고 그것을 높은 단계에로 발전시키는것은 조선혁명자체를 위해서도 필요할뿐아니라 중국이나 쏘련의 대일전략과도 일치하는것이였다.

문제는 세 나라 무장력과의 협동을 어떤 형태로 실현시키는가 하는것인데 이것은 매개 나라의 민족적리익과 세 나라 혁명의 공동의 리익에 맞게  혁명가들자신이 스스로 결정해야 하였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조, 중, 쏘 세 나라의 무장력의 리상적인 련합형태를 국제련합군으로 보시였다.

국제련합군형태는 세 나라 무장력을 하나의 군사체계로 련합하되 매개 나라 무장력의 독자성을 존중하는 기초우에서 일제를 괴멸시키기 위한 공동투쟁을 잘해나갈수 있게 하는 과학적이며 독창적인 련합무력형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1(1942)년 봄 원동의 림시기지 남야영에서 쏘련의 고위군사관계자들을 만나시여 국제련합군편성과 관련한 구상을 내놓으시였는데 이것은 조, 중, 쏘 세 나라 지휘관들의 한결같은 지지를 받았으며 시급한 현안문제로 제기되게 되였다.

그리하여 주체31(1942)년 7월 중순경에 조, 중, 쏘 무장력의 련합문제가 최종적으로 토의되고 조선인민혁명군과 동북항일련군의 독자성을 그대로 보존한다는 전제하에 국제련합군을 창설할데 대하여 결정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해 7월 하순 중국의 군사간부들과 함께 쏘련원동군 사령관과 토의하여 국제련합군편성과 관련한 최종합의를 보시였다.

쏘련원동군 사령관과의 합의에 따라 국제련합군에 대한 각종 무기와 군사장비, 피복과 식량을 비롯한 후방물자공급은 쏘련측이 담당하였다. 그리고 형식상 국제련합군을 쏘련원동군 독립88려단으로 부르도록 하고 부대의 대외번호는 8461보병특별려단으로 하기로 하였다.

국제련합군은 그 존재와 활동의 비밀을 보장하며 위장을 철저히 하기 위해 축소하여 편성하는 원칙을 세워 려단규모로 조직하였다.

주체31(1942)년 8월 1일 조선인민혁명군과 동북항일련군, 쏘련원동군 대표들의 합의에 따라 원동기지에서 국제련합군인 국제려단의 편성이 선포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과 동북항일련군 1로군으로 편성된 제1지대(국제련합군의 조선지대)의 지휘를 맡으시였다. 그때 적들의 첩보암해활동으로부터 조선인민혁명군 군사정치간부들의 신변을 보호할 목적으로 군사관등급도 실제보다 낮게 상징적인것으로 정하였다.

국제련합군의 사명과 기본임무는 조, 중, 쏘 무장력의 공동작전으로 일제를 격멸소탕하기 위하여 군정훈련을 다그쳐 정치군사간부들을 양성하며 소부대활동을 적극 벌려 일제의 전쟁능력을 약화시키고 대일작전에 필요한 군사정찰활동과 적통치체계와 적군내부를 혼란시키기 위한 투쟁을 폭넓게 벌려나가는것이였다.

국제련합군이 편성됨으로써 조선인민혁명군은 대사변이 도래할 때까지 조국해방의 위업을 자체로 수행할수 있는 충분한 군사정치적준비를 더 잘 갖출수 있게 되였으며 조국해방의 위업과 함께 일본제국주의를 종국적으로 격멸하기 위한 세계사적인 과업을 겸하여 수행하게 되였다.

국제련합군의 편성을 분기점으로 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은 중국인민과의 공동투쟁단계로부터 조, 중, 쏘 세 나라 무장력의 련합을 내용으로 하는 폭넓은 공동투쟁단계에로, 세계반제반파쑈투쟁의 거창한 흐름에 합류하는 새로운 공동투쟁단계에로 넘어가게 되였다.  

국제련합군의 조직과 그 강화발전을 위해 기울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고심어린 노력은 혁명투쟁에서 매개 나라의 독자성과 국제적인 단결과 협조의 두개 원칙을 옳게 결합시킨 본보기로 되였다.

지난 시기 일제는 1940년대 전반기 조선인민혁명군이 저들의 《토벌》에 의하여 《전멸》을 면치 못하게 되여 쏘련으로 들어간것처럼 선전하거나 쏘련과 그 어떤 외부세력의 사촉과 조종밑에 움직이는 사람들처럼 묘사함으로써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주의 기치, 선군의 기치를 높이 드시고 이룩하신 항일혁명업적을 말살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책동은 오늘도 사이비력사가들에 의해서도 강행되고있다.

태양의 빛을 손바닥으로 가리워보려는것처럼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  

왜냐하면 력사의 진실은 외곡한다고 하여 가리워지거나 지워질수 없기때문이다.

1940년대 전반기 위대한 수령님께서 확고한 자주적립장을 견지하시여 쏘련측 군사관계자들과 동북항일련군 지휘관들로부터 다함없는 칭송과 흠모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조선혁명과 세계혁명위업에 쌓으신 불멸의 업적은 세세년년 빛나고있음을 보여주고있다.

《국제련합군창설로 원동정세가 국제혁명에 유리하게 강화되였고 제국주의일본을 반대하는 투쟁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

국제련합군의 조직과 강화발전을 위해 기울이신 김일성동지의 크나큰 심혈은 혁명투쟁에 매개 나라의 자주적원칙과 국제주의적련대성의 협조를 옳게 결합시킨 모범으로 되였다.》(대일전쟁에 참가하였던 로씨야전쟁로병 울라지미르 똘스찌꼬브)

《국제련합군편성후 채세영은 늘 김일성동지에 대한 존경과 흠모의 마음을 안고 그이께서 이끄시는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부러움을 감추지 못하군 하였다.

이런 마음은 비단 그만이 간직한것이 아니였다. 국제련합군의 모든 지휘관들은 김일성동지를 조선혁명의 지도자로, 련합군내 조선측 대표로 높이 존경하였다.》(당시 동북항일련군 지휘원이였던 채세영의 안해인 중국항일혁명연고자 호진일)

이것은 국제련합군시절 쏘련군 관계자들과 항일련군의 지휘관모두가 위대한 수령님을 조선을 대표하는 유일한 지도자로 높이 모시고 수령님께서 견지하신 확고한 자주로선에 대해 전적으로 지지찬동하였다는 력사적증거로 된다.

정녕 국제련합군의 창설은 조, 중, 쏘 세 나라 무장력의 련합을 두려워하던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저들의 패망이 가까와오고있다는 사형선고로 되였으며 반대로 조선인민과 중국, 쏘련인민들에게는 강위력한 국제반파쑈무장력을 가지고 일제를 단매에 쳐물리칠수 있다는 승리의 신심을 크게 안겨주었다. 쏘련 원동지역에서의 국제련합군의 창설과 발전은 유럽에서 당시 체스꼬슬로벤스꼬와 뽈스까의 항쟁력량을 결속하는데서도 좋은 본보기로 되였다.  

참으로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서 선군혁명령도의 길에서 국제련합군을 조직하고 그것을 강화발전시키는 나날에 얻은 성과와 경험은 일제를 격멸하는 최후결전의 나날에는 물론, 전후 복잡한 정치정세하에서 주체적립장을 가지고 사회주의나라들을 비롯한 국제혁명력량과의 련합전선을 유지하고 확대해나가는데서도 귀중한 밑천으로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