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정일장군님과 민족대단결」중에서

무릇 인간에게 남을 위하는 뜨거운 사랑과 정이 없다면 그 인간은 식물인간, 목석인간이라고 해야 옳을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과 정은 그 인간이 지닌 사상정신세계의 크기를 재는 척도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지니신 인간애는 이 세상 그 누구도 지니지 못한 인간사랑의 최고절정이다.

때문에 그이께서 펼쳐가시는 정치도 인덕정치, 광폭정치인것이다.

믿음과 사랑, 바로 이것이 그이께서 지니신 천품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가꾸시는 민족의 화해와 단합의 화원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고있다.

남조선의 전국민족운동련합(전민련) 고문이였던 문익환목사는 남조선종교계의 명망높은 인물로서 위대한 김일성주석과도 깊은 인연을 가지고있었다.

그러한 인연은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주체78(1989)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조국통일방도의 민족적합의를 위한 북남지도급인사들의 정치협상회의소집을 제의하시면서 남조선의 여러 정당 총재들, 각계 인사들과 함께 문익환목사도 친히 초청해주시면서 시작되였다.

뜻밖에도 위대한 수령님의 초청을 받아안게 된 당시 문익환목사의 마음은 그 무엇으로도 형언할수 없는 강렬한 흥분과 격정으로 세차게 설레였다.

한시라도 빨리 평양으로 달려가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옵고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조국통일의 대문을 힘차게 열어제끼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아안고싶었다.

그리하여 주체78(1989)년 3월 25일 문익환목사는 평양에 도착하였다.

그는 자기의 평양도착성명에서 이렇게 토로하였다.

《나는 오래전부터 김일성주석과 만나 서로 흉금을 털어놓고 민족의 미래에 관해 진정으로 기탄없는 담화를 교환할수 없을가 간절한 념원을 품고있었습니다. 1988년이 저물어가는 섣달그믐날 밤 저는 명상에 잠겨있다가 불현듯이 평양길을 떠나는 환상을 갖게 되면서 서울 남대문정류장을 찾아가 표파는 사람에게 무턱대고 평양 가는 기차표를 달라고 떼를 쓰는 장면을 묘사하는 시를 썼습니다. 평양에 한번 다녀오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다는 심정이였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난것입니다. 설날 즉 89년 정월 메쎄지를 통해 김일성주석께서 한번 평양을 방문해보라는 초청을 발표하셨던것입니다. 우연치고는 참으로 불가사의한 우연이 아닐수 없습니다.》

사실 사선을 헤치고 평양길에 오른다는것은 남조선에 사는 70고령의 문목사에게 있어서 대용단이 아닐수 없었다.

그것은 통일을 달가와하지 않는 반통일분자들의 악랄한 책동과 탄압, 《보안법》과 같은 악명높은 반민족적, 반민주적악법들이 남조선에 그대로 존재하고있기때문이였다.

문익환목사는 당시의 형편에서 평양으로 가는 길이 보통길이 아니라는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다.

그러나 그는 속으로 이렇게 되뇌이였다.

옛사람들이 《아침에 도를 깨치면 저녁에 죽어도 유한이 없다.》고 말했듯이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뵙고 조국통일의 바른 길만 깨닫는다면 또 한번 옥고를 치른들 무슨 한이 있으랴!

하기에 그는 서울을 떠나 평양길에 오르면서 자신은 1948년에 38°선을 베고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평양에 가겠다고 한 백범 김구의 그 심정으로 떠난다고 하였다.

바로 이것이 민족의 어버이를 뵈오러 떠나는 그의 확고부동한 결심이였다.

이렇게 떠난 그의 평양길은 결코 헛된 길이 아니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고령의 몸으로 평양에 찾아온 문익환목사를 친혈육의 정으로 반갑게 맞아주시고 그의 평양방문을 애국적인 장거로 높이 치하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민족을 위해 장한 길을 택한 그의 소행을 누구보다 기뻐하시면서 그가 아무런 불편없이 지내면서 북녘의 여러 곳을 돌아보도록 세심한 사랑과 은정을 돌려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이처럼 뜨거운 육친적사랑속에 문익환목사는 공화국의 여러 곳을 참관하면서 북도 남도 하나의 민족이라는것을 다시금 페부로 절감하였고 그 어떤 주의주장이나 반민족적폭력행위도 민족의 이 진한 피줄을 갈라놓을수 없다는 굳은 확신을 가지게 되였다.

그러던 그는 뜻밖에도 오매에도 그립던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옵는 크나큰 영광을 지닐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귀중한 시간을 내시여 그를 두차례나 만나주시고 그와 오랜 시간에 걸쳐 따뜻하고 진지한 담화를 나누시였다.

그이께서는 먼저 남조선의 민주인사들과 각계각층 인민들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투쟁을 벌리고있는것은 좋은 일이라고 높이 평가하시고 그에 전적인 지지를 표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민주주의이자 통일이고 통일이자 민주주의라고 한 문익환목사의 주장은 매우 좋은 리념이라고 하시면서 민주주의와 통일, 통일과 민주주의는 서로 뗄수 없는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고있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모든것을 민족최대의 과업인 조국통일에 복종시키며 반드시 련방제방식에 의하여 조국을 통일해야 한다고 하시였다.

또한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은 조국통일을 실현하는데서 가장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통일방안이라는것과 련방제에 의한 통일은 북과 남이 잘 토론하여 단번에 실현시킬수도 있고 점차적인 방법으로 실현시킬수도 있을것이라고 하나하나 알기 쉽게 일깨워주시였다.

그이께서는 계속하여 안팎의 분렬주의자들의 《두개 조선》조작책동을 견결히 반대하고 나라의 통일문제를 반드시 우리 민족자체의 힘으로 해결하여야 한다는것을 특별히 강조하시면서 돈있는 사람은 돈을 내고 힘있는 사람은 힘을 내고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을 내여 통일위업을 실현해야 한다고 하시였다.

이와 함께 조국을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통일하려는 공화국정부의 시종일관한 립장과 조국통일은 반드시 련방제방식에 의하여 실현되여야 한다는것, 련방국가는 철저히 자주적이고 중립적인 통일국가로 되여야 한다는것 그리고 북남사이의 정치군사적대결을 해소하고 긴장상태를 완화하는것과 함께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래왕, 북남사이의 철도련결, 금강산공동개발문제를 비롯한 경제, 문화 및 인도주의적문제들도 민족이 서로 힘을 합쳐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금옥과도 같은 말씀을 받아안은 문익환목사에게는 금시라도 조국통일이 이루어질것만 같은 생각이 갈마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는 민족의 분렬을 막고 조국의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전민족대단결의 원칙과 그 실현방도들이 명쾌하게 제시되여있었기때문이였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귀중한 가르치심을 새기면 새길수록 그이의 인품과 넓은 도량에 머리가 절로 숙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문익환목사는 후날 위대한 수령님께 올리는 편지에서 잊을수 없었던 그날의 충격에 대해 이렇게 피력하였다.

《평양에서 주석님과 서로 얼싸안았을 때의 감격을 무엇으로 다 표현할수 있겠습니까? 45년에 걸쳐 쌓이고쌓인 분단의 서러움, 분단의 베일, 분단의 치욕이 날아가는 순간이였습니다. 그 서럽던 불신과 반목, 그 치욕스럽던 적대가 그리고 동족상잔의 비극이 씻겨가는 순간이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목사였기에 조국통일은 7.4북남공동성명에서 확인한 3대원칙에 기초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것을 기본내용으로 하는 9개 항목의 공동성명을 내외에 천명할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조선의 극악한 반통일분자들은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위해 의로운 일을 하고 남조선으로 돌아간 문익환목사의 손에 쇠고랑을 채워 감옥으로 끌어가는 횡포한 만행을 저질렀다.

이 사실을 두고 누구보다 가슴아파하신분은 바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이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즉시 그를 구원하기 위한 온갖 대책을 다 취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남조선당국을 규탄하는 성명들과 담화들을 련이어 발표하게 하시고 각급 인사들로 《문익환목사구원대책위원회》도 내오도록 하시였다.

또한 북남고위급회담의 공식발언석상에서도 그의 석방을 강력히 요구하도록 하시고 그에게 《조국통일상》도 수여해주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그가 석방되였을 때에는 누구보다도 기뻐하시며 수많은 위문품들과 함께 귀중한 보약재들도 보내주시였다.

문익환목사는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가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뜨거운 사랑과 배려에 쏟아져내리는 눈물을 억제할수 없었다.

하기에 그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절세의 위인으로, 조국통일의 구성으로 열렬히 흠모하며 생이 지는 마지막순간까지 통일운동의 앞장에서 투쟁해나갈수 있었다.

그러한 그였기에 우리 축구선수들이 통일축구경기를 계기로 서울에 갔을 때 북녘의 기자들에게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건강을 삼가 축원하면서 충심으로 되는 자신의 인사를 전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하였던것이다.

그러던 그가 끝내 사망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신문들과 방송들에 그의 부고를 내여 애도의 뜻을 표하도록 하시고 유가족들에게 조전을 보내여 위로도 해주시였으며 평양에서 그를 추모하는 추도대회를 거행하도록 뜨거운 은정도 베풀어주시였다.

민족의 단합과 통일을 위해 장한 일을 하고 돌아간 문목사에 대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사랑은 그의 부인 박용길녀사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문익환목사의 부인 박용길녀사는 당시 남조선에서 《통일맞이 7천만겨레모임》 대표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공동의장으로 사업하였다.

그가 평양길에 오른것은 민족의 어버이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서거 1돐때였다.

박용길녀사가 파쑈당국의 탄압을 박차고 기어이 평양으로 달려온것은 어버이수령님의 령전을 찾아뵙고 조의를 표시하는것이 민족성원의 도리라는 자각이 있었기때문이였다.

주체73(1984)년 남조선에서 큰물피해가 났을 때 북에서 구호물자로 보내온 천으로 손수건을 만들어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을 늘 가슴속에 새기며 살던 박용길녀사는 수령님께서 서거하시였을 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것 같은 슬픔에 모대기였다.

더우기 민족최대의 국상에 총부리를 돌려대는 김영삼역도의 반민족적이고 반인륜적인 망동을 보면서 그는 격분을 금치 못해하였다.

그러던 그는 주체84(1995)년 6월 어느날 아들을 조용히 불러앉혀놓고 《김일성주석 서거 1주기를 맞아 조문을 위해 평양에 들어가야겠다.》고 자기 결심을 내비쳤다.

박용길녀사는 아들에게 《그래도 남쪽에서 누군가 한사람 김일성주석에게 조문하러 갔다는것이 민족된 도리이고 앞으로 남북겨레의 만남과 화해에 꼭 필요한 일이야. 아버지는 판문점으로 돌아오고싶어 했는데 내가 그 군사분계선을 넘어 원을 풀어드릴 참이야.》라고 하였다.

하기에 그는 도착성명에서 문익환목사가 평양에 다녀온 후 긴 감옥생활을 하는 동안 김일성주석께서 몹시 가슴아파하신다는 소식을 여러번 들어 알고있다고, 그뿐아니라 문목사가 세상을 떠났을 때 애통한 조전을 보내주신것에 대해 늘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있었다고 하면서 그런데 김일성주석님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니 통일은 이렇게 심장이 터지는 어려운 일인가고 아픈 마음을 피력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남편 문익환목사를 통일제단에 바치고 1년 반을 보내면서 너무도 뜻밖에 나라의 어버이를 잃은 북녘동포들, 김일성주석님유가족과 비통한 심정을 같이해야 하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품고 이곳에 달려왔다고 했다.

이처럼 박용길녀사는 남편이 살아있을 때 그에게 민족의 대단합을 위한 옳바른 길도 밝혀주시고 나라의 통일위업실현에 남은 여생을 다 바칠수 있도록 힘과 고무를 안겨주시던 민족의 자애로운 어버이를 잃은 비통한 슬픔을 누를길이 없어 마침내 남편이 걸었던 평양방문의 길에 올랐던것이다.

그는 평양에 도착한 순간 제일먼저 만수대언덕에 모셔져있는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찾아 그처럼 오고싶어하던 남조선인민들의 뜨거운 지향과 마음을 담아 숭고한 경의를 표시하였다.

그러나 그는 평양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속에 평양의 여러곳을 방문하면서도 꿈에도 생각해본적이 없는 크나큰 영광이 자신을 기다리고있을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주체84(1995)년 7월 8일 주체의 최고성지 금수산기념궁전개관식행사에 앞서 박용길녀사를 만나주시는 특전을 베풀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고령의 몸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만난을 이겨내면서 소복차림으로 찾아온 그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면서 《나는 녀사께서 수령님의 서거 1돐에 즈음하여 수령님의 령전에 인사를 올리기 위해 신상의 위험도 마다하지 않고 평양을 방문하신데 대하여 다시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따뜻한 이 말씀에 그는 뜨거운것을 삼키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시여 이번에 녀사가 문익환선생과 같이 어버이수령님의 령전에 인사를 올리는 심정으로 선생이 수령님을 만나뵈올 때 꼈던 안경과 반지를 몸에 소중히 품고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몹시 감동되였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따뜻한 그 말씀에 접하는 순간 박용길녀사는 생전에 자기 남편을 그토록 사랑해주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영상과 조국통일을 위해 헌신한 남편의 얼굴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뜨거운것을 삼키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박용길녀사와 동포애의 정 넘치는 담화를 나누시면서 자신께서는 녀사가 혼자 온것이 아니라 문목사가 온줄 알고 남쪽의 4천만인민이 온줄 알겠다고, 먼저 가신분들의 뜻을 받들어 나라의 통일을 위해 모든것을 다하겠다고 따뜻이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녀사를 옆에 나란히 세우고 대를 두고 길이 전할 뜻깊은 기념촬영도 하여주시였다.

그뿐만아니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가 평양에 머무르는 동안 몸소 직승기까지 내시여 어머니의 묘소를 찾아 성묘를 하도록 친어버이사랑을 베풀어주시였으며 단군릉과 만수대창작사, 3대혁명전시관과 서해갑문, 김정숙탁아소와 평양산원을 비롯한 평양시내의 여러곳과 백두산지구를 참관하도록 크나큰 은정을 돌려주시여 그가 공화국의 현실을 직접 목격하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박용길녀사는 남편에게 부어주시던 뜨거운 그 사랑을 그대로 자기에게 돌려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대해같은 은정이 너무도 고마와 두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걷잡을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마음속으로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 삼가 큰절을 드리였다.

그리고 백두산지구를 방문하면서는 삼지연못가에 모셔진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탄생하신 백두산밀영고향집에 꽃다발을 정성껏 진정하였으며 백두산정에 올라 통일만세를 목청껏 웨치며 자신의 통일의지를 더욱 뚜렷이 하였다.

어느덧 녀사가 돌아갈 날이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가까운 혈육을 떠나보내는 다심한 친정어머니심정으로 박용길녀사의 귀환경로에 대해서까지 마음쓰시면서 녀사가 베이징을 통해 남조선으로 돌아가도록 할데 대한 은정깊은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래도 박용길녀사가 통일을 위해 꼭 판문점으로 나가겠다고 한다는것을 아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의 신상이 못내 걱정되시여 위대한 수령님의 서거와 관련된 조문파동으로 북남사이의 관계가 매우 팽팽한 때였지만 남조선당국에 녀사를 구속탄압하지 말것을 요구하는 공식편지를 보내도록 하시였다.

그러시고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가 평양을 떠날 때에는 만수대예술극장에서 송별연회를 잘 차려주고 평양체육관앞광장에서 그를 환송하는 모임을 가지도록 하여주시였으며 천리마거리, 통일거리에 이르는 구간의 연도에서 수만명 평양시민들이 열렬히 바래우도록 세심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하기에 박용길녀사는 평양방문기간에 경애하는 장군님으로부터 자신이 받아안은 크나큰 감격과 격정의 마음을 담아 《김정일장군님은 통일이시다.》라고 소리높이 웨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박용길녀사가 남조선에 돌아간 다음에도 그의 공화국방문을 《범죄》시하며 감옥으로 끌어가 박해를 가하는 남조선당국자들의 반인륜적인 죄행을 폭로규탄하고 그를 하루빨리 석방시키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리도록 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취하신 조치에 따라 8월 3일 박용길녀사를 박해하고 사법처리하려는 남조선당국의 범죄행위를 단죄하고 그를 당장 석방시킬것을 요구하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성명이 발표되였으며 뒤따라 여러 사회단체들의 성명과 담화들이 련속 나가고 기자회견과 규탄모임들이 도처에서 벌어졌다.

박용길녀사를 구원하기 위한 투쟁은 9월 21일 공화국정당, 사회단체련합회의와 《박용길녀사구원투쟁위원회》 발족을 계기로 한층 더 고조되였다.

남조선당국은 날로 드높아가는 내외의 강력한 압력에 못 이겨 할수없이 그를 석방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문익환목사가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안김으로써 통일운동의 선각자로, 훌륭한 애국자로 력사에 길이 남을수 있었다면 박용길녀사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품속에 안김으로써 《통일의 할머니》로, 통일맞이봄길을 열어나가는 민족의 장한 딸로 온 겨레의 찬양과 총애를 받을수 있었다.

참으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은 만사람을 감동시키는 뜨거운 도량과 인간애를 지니시고 민족의 대단합을 위한 길에 우리 민족모두를 내세워주시는 민족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다.

이제 머지않아 남조선과 해외에 사는 우리 동포들은 문익환목사와 박용길녀사가 받아안은 어버이사랑을 페부로 느끼며 부강조국을 빛내여나가는 력사의 새시대를 맞이하게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