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 중에서

반만년의 우리 민족사에서 선군혁명이라는 위대한 전환의 새로운 장을 펼친 1930년대는 어느덧 흘러가고 40년대의 년륜이 새겨지고있었다.

당시 일제는 《대동아공영권》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중일전쟁을 결속하지 못한채 동남아시아지역에로 전쟁의 불길을 확대하려고 미쳐날뛰면서 《후방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조선인민에 대한 미증유의 정치적폭압, 경제적략탈과 함께 20만의 정예무력을 동원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을 《완전소멸》하기 위한 전면적인 대《토벌》공세를 벌리였다.

국제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의 불길이 세계적판도에로 번져가고있었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1940년대초에 조성된 정세발전의 추이와 혁명발전의 요구를 과학적으로 통찰하신데 기초하시여 주체29(1940)년 8월 10일부터 11일까지 돈화현 소할바령에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를 여시고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의 력량을 보존축적하면서 모든 대원들을 유능한 정치군사간부로 키우고 인민들을 정치사상적으로 튼튼히 준비시키며 전국적판도에서의 전민항쟁준비를 위하여 대부대작전으로부터 소부대작전으로 이행할데 대한 새로운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이 소부대활동으로 넘어간 이후 안팎의 정세는 매우 복잡해졌다.

1941년 4월 쏘일중립조약이 체결되고 6월에는 파쑈도이췰란드가 쏘련에 대한 침공을 개시하였으며 이해 12월에는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정세가 급변하자 혁명대오안에는 부분적이지만 혁명승리에 대한 신심을 잃고 동요하는 현상이 나타났으며 지어 혁명대오에서 떨어져나가는자들도 생겨났다.

1941년 봄에 발생한 지갑룡의 도주사건은 혁명승리에 대한 신심을 잃어버린데로부터 발생한 사건인 동시에 사대주의로 해서 생긴 사건이였다.

백두의 녀장군 김정숙녀사께서는 이러한 정세하에서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과 혁명조직성원들이 필승의 신념과 자주적립장을 견지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주체30(1941)년 4월, 쏘련과 일본사이에 《쏘일중립조약》이 체결되였다는 소식이 원동의 림시기지에 전해졌을 때였다.

당시 적대관계에 놓여있던 쏘련과 제국주의일본이 그러한 조약을 맺으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던것만큼 일부 대원들은 조선혁명의 전도에 대하여 우려하며 마음속으로 동요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훈련기지를 떠나 원정의 길에 오르신 때여서 이러한 현상을 두고 일부 지휘성원들은 어떻게 수습할지 몰라 안타까와하였다.

그러는 지휘성원들에게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동무들, 사령관동지께서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은 자기앞에 나선 혁명임무를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자주적립장을 확고히 견지하는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우리는 정세가 복잡해질수록 자기 나라 인민의 힘을 믿고 자체의 힘으로 자기 나라 혁명을 책임적으로 끝까지 수행하려는 의지와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반드시 어떤 큰 나라의 도움을 받아야만 나라를 찾을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사대의존의 사상으로서 예나 이제나 우리 민족의 발전과 우리 혁명에 오직 해를 가져올뿐입니다.

우리는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입니다.

조선혁명의 주인은 조선인민이며 바로 우리들, 조선공산주의자들입니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계속하여 일부 동무들이 《쏘일중립조약》이 체결된데로부터 우리 혁명의 앞길이 막막해졌다고 하는것은 경애하는 사령관동지께서 밝히신 자주적인 립장, 주인다운 립장에 확고히 서있지 못한데서 오는 그릇된 견해라고 지적하시였다. 그리고 쏘련이 일본놈들과 중립조약을 체결한것은 궁지에 빠진 일제의 약점을 리용하여 당분간은 일제와 싸우지 말고 파쑈도이췰란드와 먼저 싸우려는 전술적인 대책이라고 설명하시였다.

언제나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자로 하여 모든 문제를 보시고 그것을 옳게 해명해주시는 김정숙녀장군의 말씀은 대원들속에서 일시적으로나마 그릇되게 생각했던것을 말끔히 씻어버리게 하였으며 그들로 하여금 수령님의 사상의지대로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힘있게 고무하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그후에도 지휘성원들과 대원들을 거듭 만나시여 쏘일간의 가셔질수 없는 모순과 조선혁명의 승리의 필연성에 대하여 일깨워주시였으며 그들의 가슴에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로선에 기초한 필승의 신념을 심어주시였다.

그리하여 《쏘일중립조약》체결과 관련하여 일시적이나마 부대안에 나타났던 사상적동요가 가셔지게 되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이후에도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과 정치공작원들이 혁명승리에 대한 굳은 확신을 가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1941년 일제는 태평양전쟁을 도발하고 불의의 타격으로 전쟁초기에 일시적인 우세를 차지하게 되자 신문과 방송 등 보도수단들을 동원하여 저들의 이른바 《전과》를 대대적으로 선전하였다.

일부 혁명조직성원들과 인민들속에서는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필리핀과 말라이를 점령한데 대하여 요란스럽게 선전하자 과연 우리가 이런 강대한 일제와 싸워이길수 있겠는가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

이로부터 혁명조직성원들과 인민들속에서 혁명승리에 대하여 신심을 가지도록 하기 위한 교양사업을 더욱 강화하는것이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과 로선에 기초하여 모든 문제를 보고 대하시는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대원들에게 일제멸망의 불가피성을 설득력있게 해설해주시였다.

주체31(1942)년 1월초에 백두산밀영에서는 태평양전쟁과 관련된 대원들의 정세토론이 진행되였다.

많은 대원들의 토론이 있었으나 태평양전쟁과 그 전망에 대한 견해를 정확히 세우지 못하고있었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이 전쟁은 방대한 인적자원과 물적자원을 요구하고있다, 그러나 일제는 그 요구를 충당할수 없다, 원래 변변한 지하자원이 없는 일제는 현대전쟁에 절실히 필요한 원유, 강철, 고무 등 원료를 거의 전부 다른 나라들에서 사들이고있는 형편이다, 또한 일본은 지금까지 미국과 영국을 등에 업고 군수산업을 발전시키기는 하였지만 그 생산능력을 가지고는 지금 벌려놓은 전쟁에 필요한 군수물자의 절반도 충당할수 없다, 때문에 일제는 필요한 전략물자들을 현지에서 해결할 목적밑에 남쪽으로 전쟁을 확대하는 전략을 세우고 《속전속결》을 꾀하고있다, 그러나 이것은 허황한 망상이다, 지금 일제는 전쟁확대에 필요한 전략물자는 고사하고 조선과 만주에서 쓰고있는 군용자동차들에 휘발유도 변변히 공급하지 못하고있다고 말씀하시였다.

또한 일제의 침략을 반대하여 일떠선 아시아의 수억만인민들의 힘을 당해낼수 없을뿐아니라 자국내 인민들의 반전, 반군국주의투쟁은 일제의 침략전쟁수행에 큰 타격으로 될것이라고 분석하시였으며 일제멸망의 불가피성에 대하여 알기 쉽게 해설해주시였다.

김정숙녀장군의 말씀은 대원들에게 정세의 본질과 일제멸망의 불가피성을 명확히 인식시켜주었으며 그들의 가슴마다에 승리의 신심이 차넘치게 하였다.

정세분석을 하는 경우에도 반드시 김일성장군님의 혁명사상을 자로 하여 분석하고 판단하시였기에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천연원시림의 작은 귀틀집에서 일제의 《승승장구》를 특보한 적들의 어용출판물자료들을 놓으시고도 일제멸망의 불가피성과 조국해방의 앞날을 환히 내다보실수 있었고 모든 사람들에게 혁명승리의 굳은 신념을 안겨주실수 있었던것이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무한한 헌신성과 능숙한 조직적수완을 남김없이 발휘하여 혁명조직성원들이 반일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려나가도록 이끄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주체30(1941)년 5월초 소부대와 함께 림시기지를 떠나시여 5월 중순 왕청현 쟈피거우림시비밀근거지에 도착하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 림시기지에서의 사업정형과 함께 《쏘일중립조약》체결과 관련하여 원동의 림시기지에서 나타났던 사상적동요와 편향에 대해서도 보고드리시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왕청현 쟈피거우림시비밀근거지를 떠나 안도현 한총구에 이르신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이곳에서 사령부와 헤여진 후 소부대와 함께 6월초 백두산밀영에 도착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0(1941)년 8월 김정숙녀장군에게 친필편지를 보내주시였다.

친필편지에는 백두산밀영을 중심으로 하여 국내와 압록강연안일대에서 탁상골회의, 쟈피거우회의방침을 관철할데 대한 지시사항들이 적혀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성된 정세와 관련하여 《우리의 힘으로 조선혁명을 완수하자!》라는 혁명적구호를 제시하시고 그후 온성군 탁상골회의와 왕청현 쟈피거우회의에서 필승의 신념을 안고 우리의 힘으로 조국해방위업을 성취하기 위한 투쟁과업을 제시하시였었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과업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하여 대원들을 여러 비밀근거지들에 보내시여 해당 지역에서 나타나고있는 편향들을 장악하게 하시였으며 나타난 자료들을 종합하여 연구분석하시고 편향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들을 세우시였다. 그리고 함경남북도, 강원도, 평안남북도를 비롯한 국내 여러 지역에서 백두산밀영에 찾아오는 소부대, 소조, 혁명조직책임자들을 만나시여 구체적인 실태를 료해하시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높은 희생성과 헌신성을 발휘하여 위험을 뚫고 몸소 국내깊이 무산, 연사지구에 진출하시여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벌리시였다.

무산, 연사지구의 조직들은 지난 시기에 수백리 연면수류역과 서두수류역의 벌목장, 류벌장들에서 태업, 파업, 떼마스기 등 여러가지 형태의 투쟁을 벌려 주체28(1939)년에만도 일제가 수만㎥의 목재를 손실보게 하고 다음해에는 한달에 열흘이나 떼를 내리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 무산, 연사지구의 혁명조직들은 혁명의 전도에 대하여 비관하면서 반일투쟁을 적극 벌리지 못하고있었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머나먼 적후에로의 진출을 두고 걱정하는 대원들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 중요한 의의를 부여하시는 무산, 연사지구의 사업이 침체와 답보상태에 있는데 어찌 가만히 앉아 보고만 있을수 있겠는가고 하시면서 주체30(1941)년 9월초 무산, 연사지구에로의 행군길에 오르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국사봉비밀근거지의 물방아골밀영에서 연사지구 혁명조직책임자들의 모임을 열고 온성군 탁상골회의와 쟈피거우회의에서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연설내용을 전달하신 다음 앞으로의 과업을 밝혀주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나타난 현상은 일부 정치공작원들과 조국광복회 조직책임자들이 마치 우리 혁명이 고립상태에 빠진것처럼 생각하면서 필승의 신념을 잃어버리고 반일애국력량을 결속하기 위한 사업과 반일반전투쟁을 적극 조직지도하지 않은데 원인이 있다고 지적하시였다. 그리고 앞으로 준엄한 정세가 조성되고 시련에 부닥쳐도 절대로 흔들리지 말고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해당 지역의 구체적인 실정에 맞는 과학적인 투쟁방도를 찾아내고 완강하고 적극적인 투쟁을 벌려나가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김정숙녀장군의 정력적인 활동에 의하여 마련된 물방아골밀영에서의 뜻깊은 회합은 일시 침체상태에 빠져있던 혁명조직들에 새로운 활력을 안겨주며 이 지대의 혁명투쟁을 새로운 고조에로 불러일으키는 계기로 되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물방아골밀영에서의 계획된 사업을 마치신 후 무산군 독소리 연두봉에 가시여 무산일대에서 활동하는 정치공작원들과 지하조직책임자들의 모임을 여시였다. 회의에서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쟈피거우회의의 방침내용을 알려주시였으며 이 일대에서 적들의 철광석략탈을 저지파탄시키기 위한 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려나갈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김정숙녀장군의 헌신적인 활동에 의하여 일시 위축되였던 무산, 연사지구의 혁명조직들이 다시 활기를 띠고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쏘일중립조약》의 체결과 히틀러도이췰란드의 쏘련침공, 일제에 의한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인한 세계대전의 파도속에서 세계는 격랑속의 쪽배처럼 세차게 흔들리였다. 하지만 조선혁명이라는 거대한 배는 필승의 신념으로 지켜주는 자주의 항로를 따라 용용히 앞으로 전진하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