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 (1)중에서

 

 

혁명투쟁을 하려면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의 정당성과 함께 승리에 대한 확신을 굳게 가져야 한다. 신념이 있으면 하늘이 무너져도 뚫고나갈 구멍이 있다는 배심이 생기지만 신념이 없으면 아무리 열려진 문도 제힘으로 열어나갈수 없다.

이러한 의미로부터 항일혁명전쟁은 나라와 민족의 자주성을 총대로 기어이 되찾으려는 각오와 의지를 가진 혁명가들만이 할수 있는 신념의 전쟁이라는것이 1941년도의 사나운 회오리바람속에서 검증되였다.  

1941년 4월에 사회주의쏘련과 제국주의일본사이에 중립조약이 체결되고 6월에는 파쑈도이췰란드의 쏘련에 대한 불의의 침공이라는 준엄한 회오리바람이 휘몰아치자 자기 힘을 믿지 않고 남을 쳐다보던 사람들속에서 신념이 흔들리는 현상이 발로되였다. 그들은 쏘련이 이제는 일제와 싸우지 않게 되고 유럽의 형세가 복잡하여 동방에 낯을 돌리지 못하게 되였으므로 조선혁명은 고립무원한 처지에 빠졌다고 하면서 혁명승리에 대해 비관하였다.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준 이 복잡한 정세속에서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주체30(1941)년 5월, 《우리의 힘으로 조선혁명을 완수하자!》라는 투쟁구호를 높이 추켜드시고 조선인민혁명군을 선군혁명의 핵심부대, 신념의 강군으로 튼튼히 준비시키기 위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벌려나가시였다.

《우리의 힘으로 조선혁명을 완수하자!》, 이것은 그이께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실 때부터 일관하게 견지하여오신 자력독립의 신념과 의지를 조성된 새로운 정세에 맞게 구현한 투쟁구호였으며 선군의 기치따라 전진하는 조선혁명은 신념과 의지로 승리하는 위대한 위업임을 다시한번 과시하는 전투적구호였다.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서 《우리의 힘으로 조선혁명을 완수하자!》라는 구호를 높이 추켜들고 선군혁명의 주력군인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을 자력독립, 필승의 신념으로 더욱 튼튼히 무장시키기 위한 사업을 강화하여야 하겠다고 결심하시게 된것은 쏘일중립조약체결로 하여 일부 대원들속에서 생긴 사상적동요를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주체30(1941)년 4월 상순 소부대를 이끄시고 백두산동북부 두만강연안으로 나오신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큰곰의골림시비밀근거지에서 정찰임무를 받고 파견되였던 성원들이 얻어온 한장의 신문을 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원들에게 그 신문을 보라고 주시였다. 신문을 받아읽던 대원들은 뜻밖의 일에 놀랐다. 신문에는 쓰딸린과 일본외상이 악수하는 사진과 함께 쏘일중립조약이 체결된 내용이 실려있었던것이다.

사회주의국가인 쏘련이 어떻게 적대국인 제국주의일본과 손을 잡을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사실이라면 과연 조선혁명의 앞날은 어떻게 될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대원들은 마음이 무거웠다.

《신문을 보고나니 소감이 어떻습니까?》

그이의 물으심에 누구도 얼른 대답을 올리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러자 수령님께서는 이것은 자신께서 이미 예견하고있던 일이라고 하시면서 쏘일중립조약을 체결한 두 나라의 속심이 무엇인가를 하나하나 파헤쳐주시였다.

일제가 이 조약을 체결한 목적은 장기화되는 중일전쟁을 빠른 기간에 결속짓고 쏘련을 침공하기 위한 준비를 갖출 시간적여유를 얻자는데 있다는것, 한편 쏘련의 목적은 자기 나라에 대한 파쑈도이췰란드와 일제의 동시적인 침략을 저지시키며 일제를 반쏘전쟁에로 부추기는 미, 영제국주의자들의 음흉한 기도를 사전에 파탄시키자는데 있다는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고서야 대원들은 그처럼 의혹을 자아내던 쏘일중립조약의 진속을 알수 있었다.

다음날 저녁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가 손에 총을 잡고 싸움의 길에 나설 때 무엇을 생각했습니까.

과연 우리가 남의 힘을 믿고 내 나라의 해방과 독립을 이룩하자고 생각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반일애국의 기치밑에 2천만겨레를 하나로 묶어세워 일심단결의 힘으로 일제를 타도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런데 지금 동무들은 쏘련이 일본과 중립조약을 체결했다고 하여 왜 그렇게 불안해하고있는가, 옆집에서 피치 못할 사정때문에 일시 다른 태도로 나온다고 해서 집주인이 맥을 놓고 주저앉아버리면 집식구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조선혁명의 주인인 우리가 신심을 잃고 나앉는다면 일제의 구두발에 짓밟혀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 겨레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외적의 침입을 제힘으로 물리쳐온 슬기롭고 용감한 민족이라고 하시면서 우리에게는 힘이 있다고, 지난 10년동안 간고한 투쟁속에서 단련되고 세련된 조선인민혁명군이 있으며 조국광복회10대강령의 기치밑에 반일광복을 지향하는 수십수백만의 각계각층 군중이 있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비범한 통찰력으로 정세를 깊이있게 분석하시면서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일제의 앞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정세의 흐름으로 보아 놈들의 운명도 그리 오래갈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떤 바람이 불어와도 제힘으로 끝까지 싸워이기고야말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가져야 합니다.

나는 동무들이 앞으로 꼭 그렇게 싸우리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은 대원들은 그날 밤 오래동안 잠들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에 그치지 않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다른 곳에서 활동하는 대원들이 쏘일중립조약에 대한 옳은 견해를 가지도록 대책을 세우는것이 필요하다고 보시고 정세를 잘 알고있는 지휘성원들로 하여금 지체없이 여러 지역에 나가 실태를 료해하고 편향들을 바로잡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한개 소부대를 이끄시고 장백지구를 거쳐 백두산밀영으로 먼저 가시게 된 김정숙녀사에게는 자신께서 6월 중순에 백두산지구비밀근거지에 나가 국내와 장백지구에서 활동하는 소부대와 소조, 혁명조직책임자들의 회의를 조직하실 예정이므로 각 소부대, 소조책임자들에게 련락을 띄워 자기 활동지대의 혁명조직책임자들을 데리고 간백산밀영에 모이도록 하라고 따로 임무를 주시였다.

그런데 이무렵 안도현 왕바버즈에 나가 활동하던 한 소조의 책임자가 쏘일중립조약이 체결되였다는 신문보도를 읽고 도주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자는 신념이 없다보니 두명의 동지들이 주는 충고도 듣지 않고 도주하였다. 한편 죽어도 사령관동지의 곁에 가서 죽겠다고 맹세를 지켜 사령부를 찾아오던 두 대원은 굶고 지쳐 더는 운신할수 없게 되자 껍질벗긴 나무에 자기들은 끝까지 싸우다 굶어죽는다는것을 숯덩이로 써놓고 죽음의 시각을 기다리다가 수령님께서 파견하신 련락원에 의하여 구원되였다.

이 도주사건은 혁명가에게 있어서 신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주었으며 신념이 없는자들이 갈길은 오직 배신과 변절의 길이라는 심각한 교훈을 주었다.

이 사건을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원들에게 평소에 자체수양을 게을리하고 조직생활을 태공하며 혁명정세를 조선혁명의 로선과 방침에 따라 분석판단할 능력이 없고 혁명승리에 대한 신심이 없는자들은 일시적으로 조성된 난관과 시련앞에서 겁을 먹고 동요하거나 혁명의 배신자, 변절자로 굴러떨어진다, 이런자들은 철두철미 조선인민의 거대한 힘을 보려고도 믿으려고도 하지 않고 남의 덕에 손쉽게 혁명하려는 사대주의자들이며 혁명의 앙양기에 흥분을 억제하지 못하고 혁명대오안에 기여든 우연분자들이다, 우리는 누구의 힘을 빌어 조선혁명을 수행할수 없다, 우리는 필승의 신념을 가지고 우리자체의 힘으로 조선혁명을 완수하여야 한다고 간곡하게 일깨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와 같은 사건이 두번다시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우리의 힘으로 조선혁명을 완수하자!》는 구호를 내걸고 사대주의를 청산하기 위한 투쟁을 진공적으로 벌리시였다.

수령님께서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여 천명하신 《우리의 힘으로 조선혁명을 완수하자!》는 구호는 조선인민혁명군으로 하여금 주체적립장을 더욱 확고히 견지하며 항일무장투쟁의 종국적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나가게 할뿐아니라 조선의 혁명가들과 인민들이 자기의 힘을 굳게 믿고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한 투쟁에 힘있게 떨쳐나서게 하였다.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혁명대렬안에서 생긴 사상적동요를 극복하기 위하여 대원들속에 사대주의적경향을 뿌리뽑기 위한 사상교양사업을 더 진공적으로 들이대며 정세에 대한 해설사업을 강화하시였다.  

주체30(1941)년 6월 중순 어느날 간백산밀영에 있는 강습소를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습생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동무들의 임무가 매우 중요한데 강습을 잘 받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쏘일중립조약체결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고 물으시였다.

웅기에서 왔다는 한 강습생은 강의를 받고 론쟁도 하는 과정에 남이야 어떻든 조국광복은 우리 힘으로 해야 한다는것을 알게 되였는데 한가지 리해되지 않는것은 일본놈들과 쏘련이 정말 화해를 했는지 하는것이라고 말씀드리였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신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웃으시며 말씀하시였다.

《남이야 어떻든 조국광복을 우리 힘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있는것은 정말 좋은 일입니다. 그런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동무들은 이제 강습이 끝나면 자기 활동지대로 돌아가 혁명조직들을 지도할 지도핵심들이기때문에 조직성원들에게 혁명승리에 대한 굳은 신념을 안겨주어야 한다, 그러자면 조성된 정세를 옳게 분석판단할줄 알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그러면 정세를 분석하고 판단하는데서 기초는 어디에 두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동무들이 강습에서 이미 배웠겠지만 조선혁명의 로선과 방침에 철저히 의거해야 한다는것입니다.

조선혁명을 우리의 힘으로 해야 한다는 립장에서 정세를 분석하고 판단하는것, 이것이 정세판단에서 조선공산주의자들이 견지하여야 할 일관한 립장입니다.

그러시면서 쏘련과 일본은 서로 화해할수 없는 적대국이라는것, 쏘련과 일본의 중립조약체결은 서로의 리해관계로부터 출발하였다는것을 알기 쉽게 해설해주시였다.

다음날 오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간백산밀영 사령부귀틀집에서 국내와 장백일대에서 활동하는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 정치공작소조 및 혁명조직책임자회의를 여시고 쏘일중립조약의 정치군사적 및 계급적본질에 대하여 천명하시고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여 조선의 혁명가들이 《우리의 힘으로 조선혁명을 완수하자!》라는 구호를 높이 추켜들고 주체적립장을 더욱 확고히 견지할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이 전략적구호를 높이 추켜들고 주체적립장을 확고히 견지해나가자면 소부대, 소조, 혁명조직성원들속에서 사상교양사업을 더욱 진공적으로 벌려야 한다고 하시면서 소부대, 소조, 혁명조직성원들이 조선혁명에 대한 독창적인 로선과 방침으로 튼튼히 무장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그래야 제정신을 가지고 조선혁명을 완성해나갈수 있다고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연설을 마치시자 회의참가자들은 모두 일어나 우렁찬 박수를 보내였다.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를 높이 받들어 자주적인 혁명정신과 불굴의 기개를 남김없이 발휘하여 기어이 이 땅우에 조국광복의 서광을 안아올 굳은 결의의 표시였다.

그후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서는 6월에 이어 7월말에 쟈피거우에서 다시 소부대책임자회의를 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쟈피거우회의를 소집한 목적은 쏘일중립조약의 체결과 쏘도전쟁의 발발로 국제무대에서 생긴 정세의 격변과 관련하여 조선인민혁명군 전체 장병들과 소부대성원들에 대한 사상동원을 하시자는데 있었다.

주체30(1941)년 6월 22일 히틀러파쑈도이췰란드에 의하여 일어난 쏘도전쟁의 발발을 두고 당시 소부대성원들속에서는 론의가 분분하였다. 쏘도사이의 전쟁이 조선혁명에 유리한 전망을 열어준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쏘련이 동서에서 두 강국의 협공을 받게 되면 조선혁명에 불리한 영향을 주게 될것이라고 판단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세계정세가 우리한테 미치는 영향은 일본의 쏘련침공이 현실로 될 때 가늠해볼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이께서는 이런 론의를 시급히 하나의 견해로 통일시키고 모든 대원들에게 혁명승리에 대한 신심을 주며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한 준비에로 그들을 더욱 힘차게 불러일으키기 위해 주체30(1941)년 7월 28일 쟈피거우에서 회의를 소집하신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필승의 신념을 안고 조국광복의 위업을 성취하자》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회의에서 시종일관하게 주장하신것은 대세가 어떻게 변하든지간에 흔들리지 말라, 도이췰란드가 쏘련을 친것은 자기 무덤을 파는 길이다, 일본도 쏘련을 치면 무덤을 파는것으로 된다, 그러나 일본은 쏘련을 칠 힘이 없다, 렬강들의 세력관계를 보라, 지구의 모양이 어떻게 변하든지간에 파쑈는 망하고 민주는 승리한다, 우리 혁명에도 밝은 전망이 열린다, 그러니 일시적난관앞에서 동요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혁명의 기치를 끝까지 고수해야 한다, 자신의 힘으로 조국을 해방하고 조선혁명을 완수하겠다는 신심과 배짱을 가져야 한다는것이였다.

온 세계가 전쟁의 불길에 휩싸인 그 엄혹한 시련의 시기에도 조선혁명을 조선인민자신의 힘으로 끝까지 완수하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적신념과 철의 의지는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에게 승리의 신심과 용기를 주었으며 필승의 신심드높이 혁명의 한길을 따라 더욱 억세게 싸워나갈 불같은 결의를 가다듬게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높이 추켜드신 《우리의 힘으로 조선혁명을 완수하자!》라는 투쟁의 구호는 그대로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의 필승의 신념과 의지로 되고 비겁한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기를 지키리라는 《적기가》를 부르며 혁명앞에 가로놓인 난관과 시련을 뚫고나가는 신념과 의지의 강자들의 참모습을 선군혁명력사에 아로새겨놓았다.

소나무의 푸르름은 겨울이 와야 알고 뿌리가 굳건한 나무는 폭풍속에서 알아본다는 말이 있듯이 혁명가의 투철한 신념은 시련과 난관속에서 검증된다.

항일혁명투사 김혁철의 영웅적인 최후가 이에 대해 잘 말해준다. 그는 주체32(1943)년 겨울 열번째로 조국에 나왔다가 애석하게 전사하였다. 그때 그가 속한 국내공작소조는 3명이였는데 그중 한 대원이 관절염이 도져 심하게 앓고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 주신 임무는 성과적으로 수행하였지만 그 대원이 걸음을 제대로 옮기지 못하는 바람에 소조는 난관에 봉착하게 되였다. 그래서 그는 그 대원을 업고 눈보라속을 한걸음한걸음 헤쳐나갔다.

소조책임자가 며칠째 밥 한술 먹지 못하고 아사지경에 이른 전우들을 위해 마을에 내려갔다왔을 때에는 관절염을 앓던 대원은 이미 숨을 거두었고 김혁철은 그곳에 없었다.

식량을 구하러 갔던 소조책임자가 마을에 내려간 후 김혁철은 업고 오던 전우가 숨지고 소조책임자마저 얼른 돌아오지 않으니 기어이 그를 찾아 함께 사령부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지막힘을 모아 두만강쪽으로 기여가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허기증을 덜가 하여 눈속에 묻힌 자작나무순을 훑어서 입에다 넣고 씹으면서 한치한치 기여가던 그는 두만강을 지척에 둔 버들숲까지 이르러 더는 나가지 못했다. 싸창을 억세게 틀어잡고 사령부를 향하여 굴함없이 기여가던 그 자세로 심장의 고동을 멈춘 투사의 시체우에 흰눈만 하염없이 내려 눈무덤을 쌓아올렸다.

이듬해 봄에 나무하러 갔던 마을농민들이 쓰러져있는 김혁철을 발견하였을 때 그의 왼손에는 싸창이 그리고 오른손에는 자작나무순이 그대로 쥐여져있었다고 한다.

굶어 쓰러지면서도 기어이 사령관동지를 찾아가려는 필사의 각오를 가지고 죽는 순간까지 손에서 총을 놓지 않은 불굴의 모습은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기에 조국의 해방은 반드시 이룩된다는 신념을 안고 싸운 항일혁명투사들의 정신세계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신념으로 시작되고 신념으로 전진하며 신념으로 승리하는 선군혁명은 신념과 의지의 강자들만이 할수 있는 승리자의 위업이다.

이러한 신념과 의지의 강자들이 있음으로 하여 백두에서 시작된 선군혁명의 승리는 확정적이라는 력사의 진리는 이렇게 항일혁명전쟁의 준엄한 시련과 난관속에서 검증되였다.

이처럼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서 굳게 심어주신 자력독립과 필승의 신념이 있어 조선인민혁명군은 그 어떤 사나운 광풍과 유혹의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백절불굴의 전투대오로 강화발전되여 선군혁명의 승리를 맨 앞장에서 이끌고나갔다.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우리의 힘으로 조선혁명을 완수하자!》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인민들에게 조국광복의 신심을 심어주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벌리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 소조들로 하여금 국내 온성일대의 형편을 알아보도록 하시였는데 그곳 역시 다른 지역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복잡한 국제정세와 일제의 탄압으로 하여 신념이 부족한 사람들속에서 일시나마 마음이 흔들리고있는 편향이 나타나고있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하여서는 국내와 두만강연안일대에서 활동하는 소부대와 정치공작소조, 혁명조직책임자들이 확고한 자력독립사상과 필승의 신념을 가지고 이 일대 당조직, 조국광복회조직들을 튼튼히 꾸리기 위한 대책을 취해야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바로 이 사업을 현지에서 직접 지도하시기 위해 주체30(1941)년 7월 중순 어느날 소부대성원들을 거느리시고 몸소 온성군 풍리리 탁상골로 나오시였다.

탁상골어귀에는 몇채의 크지 않은 집들이 있었는데 여기에는 1930년대 전반기 혁명조직에 망라되여 활동하였거나 그 영향밑에 유격대를 도와나선 사람들이 살고있었다. 탁상골은 그닥 높지 않은 야산이지만 여러 갈래의 산발들과 잇닿아있어 사령부의 안전을 보장하는데도 유리하고 회의에 참가할 성원들이 모이기에도 편리한 곳이였다.

탁상골에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륙과송전투에서 희생된 오중흡7련대장의 아버지인 오창희로인을 만나주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중흡동무를 이역의 산속에 묻고 저 혼자 이렇게 로인님을 만나게 되니 가슴이 찢어지는것 같습니다.》라고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하시면서 오중흡동무는 일찌기 집을 떠나 손에 총을 잡고 일제놈들을 반대하는 투쟁에 나선 참다운 혁명가였다고, 그는 언제나 사령부의 명령과 지시를 한치의 드팀도 없이 집행하였으며 가장 어렵고 위험한 과업들을 스스로 맡아나선 훌륭한 지휘관이였다고, 그는 목숨이 지는 마지막순간에도 사령부의 명령을 끝까지 관철하지 못하고 죽는것이 한스럽다고 한 충실한 혁명가였다고 그 공적을 높이 평가하시였다.

계속하시여 그이께서는 오창희로인에게 로인님과 같이 우리 인민들이 혁명군을 적극 지지성원해주고 일제를 반대하여 싸우고있으니 조선은 멀지 않아 독립된다고 하시면서 그가 급변하는 정세하에서 사람들에게 신심을 안겨주고 힘을 북돋아주는 중요한 일을 하고있는데 대하여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수령님의 치하의 말씀을 받아안고 몸둘바를 몰라하던 오창희로인은 그이께 희생된 아들대신 자기를 장군님부대에 받아달라는 절절한 소원을 말씀올리였다.

수령님께서는 로인의 간청에서 조선인민의 불타는 애국심을 느끼시였으며 이런 인민의 사상정신적힘을 조직발동한다면 조국의 해방은 능히 조선사람자신의 힘으로 성취할수 있다는 확신을 더욱 굳게 가지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로인님은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언제나 우리와 한대오에서 싸우는데 새삼스럽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가고 하시면서 지금 우리앞에는 한사람이라도 더 많이 깨우쳐주어 반일투쟁에 묶어세우는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고, 그것을 위해 우리가 수많은 정치공작원들을 국내깊이 파견하였고 혁명조직들이 왜놈들의 탄압속에서도 싸우고있으며 자신께서도 이번에 온성지구에 나왔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로인님은 오래전부터 우리곁에서 싸우다가 지금은 조국광복회원으로 여기에 와서 마을사람들에게 혁명적영향을 주고있으니 사실상 우리 부대에서 파견된 정치공작원인셈이라고 하시였다.

오창희로인은 환한 얼굴로 장군님의 뜻이 그렇다면 더 바랄것이 있겠는가고 하면서 이제부터는 장군님부대 대원이 된 마음으로 인민들을 묶어세우는 일에 있는 힘을 다 바치겠다고 굳게 다짐하였다.

주체30(1941)년 7월 20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탁상골소나무밭속에서 이미전부터 준비해오신 정치공작원 및 지하혁명조직책임자회의를 여시였다.

그이께서는 먼저 국내와 두만강연안일대에서의 일제의 책동과 주민들의 사상동향에 대하여 료해하신 다음 필승의 신념을 안고 우리 힘으로 조국광복위업을 성취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투쟁할데 대한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쏘일중립조약이 체결되고 쏘도전쟁이 일어난 후의 국내외정세를 상세히 분석하시고 조성된 정세는 필승의 신념을 안고 우리의 힘으로 조국광복위업을 성취하기 위한 투쟁을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할것을 요구하고있다고 하시면서 정치공작원들과 혁명조직책임자들앞에 나서는 투쟁과업과 그 수행방도를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엇보다도 혁명조직성원들과 인민들에게 내외정세의 발전추세와 일제멸망의 불가피성, 조선혁명의 로선과 방침을 똑똑히 인식시키고 사대주의사상경향을 뿌리뽑기 위한 사상교양사업을 적극적으로 벌리며 력사발전의 합법칙성을 잘 깨우쳐주어 그들이 우리의 힘으로 조국을 광복하겠다는 강의한 의지와 필승의 신념을 확고히 간직하도록 해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이께서는 다음으로 조국광복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한 준비사업을 적극 추진시킬데 대하여 가르치시면서 이를 위해서도 광범한 인민대중을 필승의 신념과 자력독립의 사상으로 튼튼히 무장시켜 반일의 기치아래 더욱 굳게 결속하기 위한 대중정치사업을 강화하며 실천투쟁을 통하여 핵심을 료해장악하고 혁명조직들을 끊임없이 늘여 그 두리에 각계각층의 광범한 반일력량을 묶어세워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탁상골회의가 끝난 다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온성지구 당핵심성원들을 따로 만나시였다.

당시 온성지구당위원회는 《온성농민상조회사건》으로 많은 인원들이 투옥된 관계로 조직이 일시 파괴되였고 또 그들이 석방된 후 여러가지 방법으로 반일투쟁을 벌렸지만 당조직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원만히 수행하지 못하고있었다.

그런데 이곳에 파견되여 활동하던 소부대는 쏘일중립조약체결과 관련하여 사람들속에서 나타나고있던 사대주의사상과 혁명승리에 대한 신념이 부족한 현상들을 제때에 바로잡지 못하였을뿐아니라 그들을 혁명조직에 묶어세우기 위한 사업도 잘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실태를 료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온성지구당위원회를 시급히 복구발전시킬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면서 조성된 정세하에서 혁명가들이 견지하여야 할 신념에 대하여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혁명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확고한 자력독립의 사상과 필승의 신념입니다.

이러한 정신이 없다면 정세가 어려워지고 정황이 복잡해질 때 자기 힘을 믿지 못하게 되고 나아가서는 혁명적신념마저 저버리게 됩니다.

필승의 신념이 없으면 어렵고 간고한 혁명의 길에서 동요하거나 떨어져나갈수 있다는것을 지나온 사실을 통하여 우리는 잘 알수 있습니다.

오늘 조성된 준엄한 정세는 확고한 자력독립의 사상과 필승의 신념을 굳게 간직하고 굴함없이 싸울것을 요구하고있습니다.

동무들은 이 어려운 투쟁에 앞장서야 합니다.》

급변하는 정세와 원쑤들의 검거선풍앞에서 주눅이 들어있던 온성지구 당핵심성원들은 이렇듯 신심과 용기를 북돋아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안으며 조국광복의 력사적위업은 오직 수령님의 자력독립사상과 필승의 신념으로 굳게 무장하고 그 관철을 위해 힘차게 싸워나가는 길에 있음을 똑똑히 알게 되였다.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기 위하여 대중정치사업을 힘있게 벌려 적들의 허위선전을 제때에 폭로하도록 하는 사업도 현명하게 령도하시였다.

당시 쏘일중립조약을 체결한 일제는 어용수단을 총동원하여 허위선전을 전례없이 강화하면서 조선인민혁명군을 더욱 악랄하게 헐뜯고 인민들의 투쟁열의를 묵살하기 위해 갖은 책동을 악랄하게 감행하였다.

이것은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더욱 굳게 심어주기 위한 대중정치사업을 더욱 절박하게 요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정세의 요구에 맞게 주체30(1941)년 10월초 함경북도 경원군 신건리 연봉에서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 소조, 혁명조직책임자회의를 여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고 그들을 전인민적항쟁준비에 일떠세우기 위한 대중정치사업을 더욱 진공적으로 벌릴데 대하여 강조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소부대와 소조, 혁명조직들은 변화된 국내외정세와 일제멸망의 불가피성과 기만성을 폭로하는 해설선전사업을 강화하며 조선혁명에 관한 전략과 전술, 조선인민혁명군의 업적을 널리 선전하여 인민들이 승리에 대한 신심을 가지고 최후결전에 적극 호응해나서도록 대중정치사업을 활발히 전개하여야 하겠습니다.

그이께서는 제기된 임무와 활동조건에 맞게 대중속에 깊이 들어갈수 있도록 소부대와 소조들을 합리적으로 더 많이 편성하며 그 지대의 특성, 인민들의 관습과 사상동향 그리고 적들의 움직임을 잘 알고 대상에 맞게 정치사업을 다양한 형식과 방법으로 진행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실례로 산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은 조건에서 나무에 구호를 써넣는것도 정치사업의 중요한 수단이라고 대중정치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방도에 대해서도 세심히 가르쳐주시였다.

당시 국내의 산간지대와 수림속에는 일제가 강요하는 《징병》, 《징용》, 《보국대》 등을 기피하여 수많은 청년들이 숨어있었는가 하면 강제《공출》을 비롯하여 일제의 학정에 의하여 생계를 잃은 사람들이 수많이 밀려들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민항쟁을 벌리는데서 이렇게 산속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중요한 력량으로 되겠는데 우리가 이미 해오던것처럼 산속에 혁명적구호를 써놓으면 그들을 교양하고 반일애국의 기치아래 튼튼히 묶어세워 최후결전에로 조직동원하는데서 큰 역할을 놀수 있을것이라고 일깨워주시였다.

그러시고는 목마른 사람에게 어디 가면 물을 마실수 있다는것을 알려주는것이 제일 귀에 잘 들어가듯이 군중의 절실한 요구를 반영할 때 비록 몇자 안되는 글줄이라도 인민들의 가슴을 치고 혁명승리에 대한 신심을 안겨주며 적들에게는 폭탄과도 같은 공포를 줄것이라고 하시면서 구호에 담을 구체적인 내용에 대하여서도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은 회의참가자들을 끝없이 격동시켰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서 자기들의 명확한 투쟁방향과 임무, 커다란 고무적힘을 받아안은 소부대와 소조, 혁명조직책임자들은 그이께서 이끄시는 혁명의 한길을 따라 더욱 억세게 싸워나갈 굳은 결의를 다지면서 승리의 신심도 드높이 자기 활동구역을 향하여 떠나갔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대로 각지에 파견된 소부대와 소조, 혁명조직성원들은 인민들에게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수행이 하루하루 다가오고있다는것을 널리 해설하는 한편 산속의 나무들과 바위들에 반일항전에로 불러일으키는 힘있는 구호들을 새겨놓음으로써 인민들이 승리에 대한 신심을 굳게 가지고 인민혁명군의 군사정치활동을 여러 방면으로 도와주기 위한 사업과 일제의 악랄한 침략전쟁책동을 저지파탄시키기 위한 투쟁에로 힘있게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소부대, 소조, 혁명조직성원들에 의하여 인민들에게 백두산에 장군별 솟아 조국해방의 날이 다가오고있다는 확고한 신심을 안겨주고 전민을 일제를 반대하는 결사항전에로 불러일으키는 수많은 구호문헌들이 평양, 양덕, 연사를 비롯한 국내의 여러곳에 수많이 나붙게 되였다.

하나의 실천행동은 몇백마디의 말보다 더 큰 감화력을 가진다.

인민들에게 자력독립의 신심을 굳게 안겨주고 그들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정치사업에서 제일 좋은 정치사업은 조선인민혁명군의 실체, 혁명군이 건재하여 여전히 일제를 족치고있는 모습을 보여주는것이였다.

이로부터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각지에서 활동하는 소부대, 소조들이 인민들에 대한 대중정치사업과 함께 과감무쌍한 활동으로 일제침략자들에게 무자비한 군사적타격을 가하기 위한 사업도 현명하게 령도하시였다.

여기에서 대표적인것이 주체30(1941)년 8월초 왕청-라자구간 도로공사장습격전투였다. 당시 일제는 쏘만국경일대와 련결되여있는 이 지역에 병력을 대대적으로 집결시키고있었다. 일본군이 우글우글하는 이 지역에서 총소리를 낸다면 그 파장은 간단치 않을것이다, 총소리를 낼바엔 적종심에서 내보자, 이것이 왕청-라자구간 도로공사장습격전투를 조직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배짱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이 전투를 승리적으로 결속하기 위하여 라자구와 대황구쪽으로 통하는 길목에 각각 차단조를 파견하시고 대원들이 일본군으로 가장한 다음 위풍당당하게 공사장에 돌입하여 순식간에 도로공사장을 지키고있는 적들의 무장을 완전히 해제할데 대한 작전적방안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작전적방안대로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이 전투를 얼마나 번개같이 해치웠던지 공사장의 로동자들은 웬일인가 하여 눈만 슴뻑거렸다. 이때 한 대원이 《우리는 김일성빨찌산입니다!》라고 소개를 해서야 그들은 사방에서 달려와 인민혁명군 대원들을 부둥켜안았다.

더우기 위대한 수령님께서 바로 이 도로공사장습격전투를 몸소 지휘하시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인민들의 감격과 기쁨은 이루 다 헤아릴수 없었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들앞에서 일제를 반대하는 모든 계급, 모든 계층들은 반일의 기치밑에 하나로 굳게 뭉쳐 조국광복을 위한 성스러운 싸움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자는 힘있는 연설을 하시였다.

수령님의 연설에 호응하여 강제로 끌려와 갖은 고역을 다 치르던 로동자, 농민들이 공사판을 떠나감으로써 조선인민혁명군의 활동을 저지시키며 일제의 쏘련침략전쟁준비에 중요한 몫을 맡고있던 왕청-라자구간 군용도로건설은 애초에 종말을 고하고말았다.

이 습격전투의 빛나는 승리는 광범한 인민들에게 조국해방에 대한 확고한 신심을 안겨주었으며 적들에게 커다란 혼란과 공포를 주고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 정치소조의 활동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였다.

이 전투가 있은 후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인민들의 신뢰는 급격히 높아져 이러한 전설같은 이야기가 각지에 퍼졌다.

김일성장군님께서 라자구근방 도로공사판에 갑자기 나타나시여 몇해안으로 조선이 독립된다고 말씀하시고는 그곳 로동자들에게 먹고 살 량식까지 나누어주시고 구름속으로 사라지셨다. 왜놈군대가 새까맣게 몰켜가니 장군님께서 구름속에서 다시 나오시여 손을 쳐드시였는데 왜놈들이 삼대 쓰러지듯 죽어넘어졌다.》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경모의 정이 어린 이러한 전설같은 이야기는 수령님의 존함을 가슴깊이 간직하고있는 조선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과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왕청-라자구간 도로공사장습격전투가 있은 다음 소부대들은 도문역구내에서 군용렬차를 충돌시키는가 하면 화룡현 두도구와 왕청현에서 이동하는 적들을 타격하고 적의 집중수송과 이동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쏘만국경연선에서 적들의 작전을 파탄시키기 위한 군사정치활동을 적지 않게 벌림으로써 인민들에게 조선인민혁명군은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적극적으로 벌리고있다는것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었다.

김일성장군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벌어진 조선인민혁명군의 군사활동은 인민들에게 조국해방의 희망과 억센 투지를 안겨주었으며 비상한 견인력으로 그들을 반일투쟁에 일떠세웠다.

주체30(1941)년 12월 중순 평양일대의 애국적청년들은 모임을 열고 철공소에서 자체로 무기를 만들어가지고 일제주구들을 처단한 후 만주로 건너가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할것을 계획하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나갔다.

오래전부터 항일무장투쟁의 혁명적영향밑에 각성되여오던 명천광산 로동자들은 주체32(1943)년 6월 대중적인 폭동을 일으켰다. 폭동에 궐기한 로동자들은 《일제를 타도하자!》, 《조선독립 만세!》 등의 힘찬 구호를 부르며 일제의 침략전쟁정책과 파쑈적식민지통치의 악랄성과 반동성을 폭로규탄하고 악질기업주와 관리들을 징벌하였으며 중요생산시설들을 파괴하고 일을 전면적으로 거부하여나섰다.

연길일대의 조선인청년학생들은 주체30(1941)년말에 반일학생청년조직을 뭇고 여러가지 형태의 투쟁을 벌려오다가 조직결성 1돐이 되는 주체31(1942)년 12월에는 조선에 대한 일제식민지통치의 아성인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이라는자에게 조선청년들의 혁명적기풍과 반일투쟁기세를 표명한 선언문까지 보내였다.

선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다나까총감에게

작년 12월 26일 즉 오늘 우리 애국단체가 조직된 때로부터 바로 1주년을 맞이하게 되였다. 때문에 의기충천하고 의분이 절정에 도달하였으므로 …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선   언   문

1. 우리들은 조선사람으로 태여난것을 영예로 생각하며 그의 책임을 완수할것이다.

2. 우리들은 피와 땀의 최후 한방울까지 민족의 영예를 위해 바칠것을 선언한다.

3. 때문에 정부가 우리들 3천만민중이 요구하는것을 듣지 않는 한 결사적인 투쟁을 할것을 결의한다.

4. 우리들은 동포를 위해서만 살고있는것이다. 즉 조선내의 수다한 투사와 일치단결하여 목적완수에로 돌진할것이다.…》(《재만조선인개황》 제7호, 일문, 1943년, 68∼69페지)

일제가 극히 축소하여 발표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1943년 8∼9월사이의 2개월동안에 적들이 《불온언동죄》, 《류언비어죄》로 애국적조선인민을 검거, 투옥, 학살한것이 무려 267건(하루 평균 4.4건)에 달하였는데 이것은 인민들의 반일반전투쟁이 얼마나 거세차게 벌어졌는가를 실증해주고있다.

정녕 이것은 1941년도의 준엄한 회오리속에서도 《우리의 힘으로 조선혁명을 완수하자!》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인민들에게 필승의 신념을 안겨주기 위해 불면불휴의 로고를 다 바치신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의 정력적인 선군혁명령도에 의하여 마련된 빛나는 결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