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 (1)중에서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서 제시하신 소할바령회의방침에 따라 조선인민혁명군은 대부대작전으로부터 소부대작전으로 넘어감으로써 항일전의 새로운 단계에로 진입한다는 총성을 울리였다.

이 총성은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규모의 《토벌》력량으로 혁명군을 《완전소멸》하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적들을 분산약화시켜 타격함으로써 최후결전을 앞당기기 위한 멸적의 총성이였고 인민들의 가슴속에 조국해방의 대사변의 날이 다가오고있다는 신심을 안겨주는 승리의 총성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할바령회의직후 그 첫 총성을 경위중대의 일부 대원들을 거느리시고 안도현 황화전자부근 사득판에서 진행하신 전투에서 울리시였다.

주체29(1940)년 8월 중순 위대한 수령님께서 1개 분대가량 되는 경위대원들을 거느리시고 황화전자부근에 있는 사득판을 지나가게 되시였다. 사득판이란 밑바닥이 물렁물렁하여 발이 쑥쑥 들어가는 진펄을 말하는데 어떤 곳은 그 깊이가 키를 넘어서 빠지면 아예 나올수가 없는 곳도 있었다. 황화전자부근에 있는 이러한 사득판가운데 큰 물도랑을 가로지른 외나무다리가 하나 있었는데 여기를 통과하여야 림시비밀근거지로 내정한 연길현 도목구에로 직행할수 있었다. 그런데 어둠속에서 다리건너편에 적들이 매복해있음을 알리는 흔적이 나타났다. 대원들은 가슴을 조이고 수령님을 우러렀다.

만일 다리를 건느지 못하면 수십리를 에돌아가야 한다, 죽으나사나 가던 길로 곧추 가자, 이것이 그때 수령님께서 내리신 결심이였다. 수십리를 에돌아가면 순간의 위험은 피할수는 있으나 조국해방을 앞당기는 길이 그만큼 멀어지기에 그이께서는 주저없이 그 위험한 길을 맞받아나가기로 결심하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원들이 외나무다리를 빨리 건느게 하시였다. 후위에 서신 수령님께서 맨 나중에 다리를 건너 풀숲에 들어섰을 때 적의 기관총이 불을 뿜기 시작하였다. 그이께서는 기관총수에게 적의 기관총수를 답새기라고 명령하신 다음 대오를 큰길쪽으로 빼돌리시였다. 그런데 대오가 큰길쪽으로 한창 빠지고있을 때 이번에는 다리목에서 울리는 기관총소리를 듣고 대기했던 적의 주력이 앞에서 달려들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번에는 대오를 다시 다리쪽으로 되돌려 행군하도록 하시고 대원들에게 다리목의 적과 꽁무니를 따르는 적들에게 총을 쏘고 옆으로 슬쩍 빠져 산으로 오르도록 명령하시였다. 대원들이 산중턱에 앉아 숨을 돌리고있을 때 적들사이에 치렬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위대한 수령님의 신묘한 망원전술에 걸려들었던것이다. 저희들끼리 총격전을 벌리다가 무리주검을 낸 적들은 누가 먼저 총질을 시작했느냐 하는 책임추궁으로 열을 올리다가 외나무다리목을 건너온것이 귀신인가 빨찌산인가 하는 비명을 질렀다.

소할바령회의이후 첫 소부대전투인 사득판전투는 매우 불리한 정황속에서도 신출귀몰한 전술로 우세한 적을 완전히 제압한 전투로서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령군술과 유격전법을 다시한번 힘있게 과시하였다. 이 전투는 대원들에게 비록 수적으로 적보다 훨씬 작은 소부대로서도 령활한 전술을 잘 쓰기만 하면 주도권을 튼튼히 틀어쥐고 싸움에서 얼마든지 승리할수 있다는것을 보여주었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길현 발재툰과 안도현 오도양차부근, 황구령북쪽에서도 숱한 적들을 요정내시였다. 연길현 발재툰일대에서는 황화전자에서와 달리 3개의 습격조를 지휘하시여 습격전법과 망원전술을 배합한 전투를 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소부대활동방침에 따라 주체29(1940)년 8월 이후에만도 여러 지역에서 활동하던 소부대들은 왕청, 연길, 화룡, 안도, 동녕, 녕안, 목릉, 오상현 일대에서 주동적으로 수많은 적들을 답새겼다.

온 동북땅과 조선의 북부국경지대는 소부대와 소조들의 령활한 군사정치활동으로 죽가마처럼 끓어번졌다.

조선인민혁명군은 위대한 수령님의 전략전술적방침에 따라 어떤 날은 몇개 소부대가 력량을 합쳐가지고 큰 대상을 쳐갈기기도 하였다. 이렇게 소부대전을 기본으로 하면서 때때로 큰 싸움을 배합하였기때문에 적들은 인민혁명군이 대부대전으로부터 소부대전으로 전술을 바꾼것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의 맹렬한 소부대활동으로 하여 1940년 《추기 및 동기토벌》작전이 여지없이 분쇄되자 일제는 1941년 3월 악명높은 《노조에토벌사령부》를 해산하고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토벌》을 관동군사령부가 직접 틀어쥐고 하게 하였으며 각 지구별 군관구사령부와 관동헌병대사령부관하의 모든 《토벌대》들을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토벌작전》에 내몰았다. 이 시기 각 지구별 군관구사령부와 관동헌병대사령부관하에는 수많은 《토벌대》들과 각 지구헌병대, 특무기관, 각종 《귀순공작반》, 경찰대들이 소속되여있었다.

특히 일제는 1941년에 들어와 또다시 동만과 백두산동북부일대에 정규무력을 들이밀어 대대적인 파괴선풍을 일으키고 《공산군은 없어졌다》느니 《동만의 치안은 확보되였다》느니 하면서 기만선전에 열을 올리였다.

백두산동북부에서 혁명을 다시 앙양시키자면 소부대와 소조들이 과감무쌍한 활동으로 조선인민혁명군의 실체를 보여주어야 하였다.

이를 위해 주체30(1941)년 4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극적인 군사정치활동으로 일제에게 심대한 타격을 안겨주기 위해 백두산동북부로 나오시였다.

어느날 30여명으로 편성된 소부대를 이끄시고 동녕현 로흑산 큰곰의골부근으로 진출하시여 이 일대에서 활동하는 소부대들의 사업을 지도하시던 수령님께서는 주변지형을 주의깊게 살피고나시여 대원들에게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여기에서 집단부락 하나를 본때있게 들이침으로써 조선인민혁명군이 소부대활동에로 이행한줄도 모르고 혁명군의 활동이 잠잠해졌다느니, 《동만은 평온하다》느니 하면서 환성을 올리는 어리석은 놈들에게 조선인민혁명군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로 되게 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인민들과 지하조직성원들에 대한 탄압에 피눈이 되여 날뛰는 적들에게 죽음과 공포를 안겨주고 위축되여있는 인민들과 혁명조직성원들에게는 신심과 용기를 북돋아주어야 한다.

계속하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집단부락안의 적정에 대한 구체적인 장악에 기초하여 습격전투를 승리적으로 진행할수 있는 행동방향을 밝혀주시였다.

당시 집단부락은 둘레에 견고한 토성이 있었고 사방에 포대까지 굴설되여있었으며 그 경계가 물샐틈없이 강화되여있었다.

이러한 실정에서 수령님께서는 소부대를 무장소조와 정치공작소조로 나누시고 무장소조성원들이 토성을 돌파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공개적방법으로 성문을 통과하는 대담무쌍한 행동방향을 제시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일본군으로 변장한 무장소조성원들에게 적보초병을 다루는것으로부터 시작하여 행동질서와 방법을 일일이 가르쳐주시고 그대로 반복동작시키시면서 말투와 몸가짐도 세련시켜주시였다. 이렇게 훈련된 대원들은 이 전투는 다 이겨놓은것이나 다름없다고 하면서 승리의 신심에 넘쳐있었다.

수령님의 전술적방안에 따라 일본군으로 가장한 10여명의 무장소조성원들은 성문을 지키고있던 적보초병을 앞세우고 병실로 들어가 반항하는 적병들과 악질대장놈을 처단하였다. 한편 정치공작소조성원들은 인민들속에 들어가 정치사업도 진행하고 적들에게서 빼앗은 쌀을 비롯한 여러가지 물자들도 나누어주었다.

적들의 허위선전만 들어오다가 자기들의 피맺힌 원한을 풀어주고 쌀까지 나누어주는 조선인민혁명군을 보게 된 인민들의 기쁨과 감격은 하늘을 찌를듯이 높았다.

철벽의 요새라고 입버릇처럼 자랑하던 큰곰의골부근 집단부락이 하루밤사이에 녹아났다는 소식이 퍼지자 적소굴은 벌둥지를 쑤셔놓은것처럼 갈팡질팡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백두산동북부 두만강연안으로 진출하시여 계획적으로 조선인민혁명군 사령부의 활동을 로출시켰다가는 자취를 감추군 하심으로써 적들을 계속 혼란속에 빠뜨려놓고 인민들에게는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시였다.

일제는 《김일성장군의 소재는 의연히 명확하지 않다.》고 비명을 지르는가 하면 《작년에 성내에서 월동한 사실이 있으므로 혹시 금년도에도 성내에 잠복》할수 있다고 하면서 공포에 떨었다.(조선헌병대사령부 《압록강, 도문강대안 정보》, 1941년, 23페지)

일제의 악랄한 《토벌》공세속에서도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 소조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작전적방침에 따라 적극적인 군사정치활동을 진행하였다.

소부대, 소조활동내용도 매우 다양해졌다. 소부대, 소조들은 국내와 동북일대에서 파괴된 당조직들과 지하혁명조직들을 복구하고 새로 꾸리며 남아있는 무장대오를 수습하고 재편성하는 사업, 전민항쟁조직들에 대한 체계적이고 통일적인 지도를 확립하는 사업도 하였다. 이와 함께 국내각지에 비밀근거지들을 보강하며 국내와 동북일대에서 애국적청장년들을 유격대에 받아들여 조선인민혁명군 대오를 확대하며 군사적골간을 육성하는 사업들을 진행하였다. 동시에 적극적인 습격전과 매복전, 파괴전으로 적의 후방을 교란하고 전쟁능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투쟁, 적의 군사시설과 기지, 요충지들에 대한 군사정찰활동과 적통치체계와 적군내부를 혼란시키기 위한 투쟁 등을 폭넓게 벌려나갔다.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서는 1940년대 전반기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이 두만강, 압록강연안 국경지대를 타고앉는것과 함께 남부조선일대에 이르기까지 소부대와 소조들을 더 많이 파견하여 전국적판도에서 혁명운동을 발전시키기 위한 대책도 수립하시였다.

주체31(1942)년 6월 백두산밀영에서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 정치공작소조 책임자들의 회의를 소집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성된 정세는 무장투쟁을 전국적범위에로 더욱 확대발전시킬것을 요구하고있다고 하시면서 이로부터 소부대와 소조들을 국내깊이에 침투시켜 정치군사활동을 더욱 적극화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회의에서 수령님께서는 두만강, 압록강연안의 북부국경지대와 중부조선일대에서 혁명운동을 계속 앙양시킬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그리고 그이께서는 남부조선은 지금까지 혁명적영향이 비교적 적게 미친 지역이라고 하시면서 혁명운동을 전국적판도에로 확대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이 일대에 큰 주목을 돌려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러시면서 남부조선에는 인구도 많고 일본과의 거래도 많은 곳이므로 거기에 소부대, 소조들을 많이 파견하여 혁명운동을 앙양시킨다면 각계각층 인민들에게 주는 영향도 클것이고 적들에게는 커다란 타격으로 될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이와 관련하여 대구, 부산, 목포, 군산 등 남부조선일대에 소부대와 소조들을 많이 파견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원대한 구상에 따라 전국각지에 파견된 소부대, 소조성원들은 목적지를 향하여 련일 백두산지구를 떠나갔다.

그들은 두만강, 압록강연안의 국경지대뿐아니라 서울을 비롯한 중부조선일대와 부산, 진해를 비롯한 남부조선일대 그리고 일본본토에까지 활동지역을 확대하여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준비있게 맞이하기 위한 정치군사활동을 줄기차게 벌렸다.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소부대활동에서 거둔 가장 큰 성과는 우리를 몰살시키려던 적들의 기도를 파탄시키고 우리의 력량을 보존축적하면서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맞을 준비를 착실히 한것입니다.》

소부대활동의 기본목적이 조선혁명의 중추력량인 조선인민혁명군의 력량을 보존축적하고 인민들을 정치사상적으로 준비시킴으로써 다가오는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한데 있는것만큼 1940년대 전반기 소부대, 소조들은 큰 규모의 싸움은 피하고 인민들에 대한 대중정치공작과 적의 군사기지와 무력배치 등에 대한 정찰활동에 많은 힘을 넣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조선인민혁명군의 군사정치활동이 《약화》되고 《피동》에 빠졌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 아니였다.

사실 1940년대에 들어와 더욱더 약화되고 피동에 빠진것은 일제의 100만관동군이였다. 이 시기 중일전쟁의 확대와 남방진출을 위한 군사전략의 수립으로 하여 일본군은 여러 방면의 전쟁을 치르어야 하는 속에서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토벌》에 관동군, 위만군, 경찰무력과 함께 철도경호대와 협화회의 어중이떠중이들까지 내몰아 형세를 역전시켜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조선인민혁명군의 주동적이고 적극적인 소부대 분산활동에 의하여 일제의 《토벌》무력은 각개격파되여 여기서 맞고 저기서 쓰러져 멸망의 수렁창에 점점 더 깊숙이 빠져들어갔다.

결국 만신창이 되여 쓰디쓴 참패를 당한것은 일제가 《최정예군대》라고 떠벌이던 100만관동군이였다.

오히려 조선인민혁명군은 적극적인 분산활동으로 주동에 서서 이르는 곳마다에서 일제에게 치명적인 군사적타격을 안기고 인민들속에 더욱 깊숙이 들어가 그들의 심장에 조국해방의 그날이 가까와오고있다는 신심을 안겨주었다.

대부대작전으로부터 소부대작전으로의 이행, 참으로 이것은 언제나 주도권을 확고히 틀어쥐고 적들을 피동에 몰아넣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뛰여난 전략전술적의도와 강인담대한 공격정신의 발현이였다.

소부대활동과정에서 달성한 성과는 인민혁명군안의 모든 지휘관들과 대원들에게 최후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심을 안겨준것이였다. 혁명군은 국내외의 인민들에게 여전히 건재해서 적들을 족치고있으며 승리만을 거듭하고있다는것, 혁명군의 두리에 전민이 뭉쳐 거족적인 항쟁을 벌린다면 얼마든지 일제를 쳐부시고 조국해방의 새날을 맞이할수 있다는것을 똑똑히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