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 (1)중에서

  

선군의 기치를 높이 들고 력사의 초행길을 헤쳐나가는 조선혁명은 1930년대의 준엄한 령마루를 넘어 1940년대의 새로운 진군길에 들어섰다.

항일의 전설적영웅이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선군의 기치아래 조국광복의 대사변을 가까운 몇해안에 맞이하실 의지를 굳히시였다.

그 의지는 세계가 파쑈강도배들에 의해 전쟁의 참화를 겪던 준엄한 정세속에서 실천에 옮겨졌다.

1939년 9월, 뽈스까에 대한 불의의 공격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연 히틀러파쑈도이췰란드는 대전초기인 1940년 4월에 단마르크와 노르웨이를 침공하였으며 5월에는 룩셈부르그와 네데를란드, 벨지끄를 강점하고 6월에는 프랑스에 대한 침공을 단행하였다. 그리하여 파쑈도이췰란드는 그해 봄과 여름에 걸쳐 1억 770여만명의 인구가 사는 137만여㎢의 광대한 령토를 강점하게 되였다.

파쑈이딸리아도 도이췰란드측에 가담하여 동남유럽과 동아프리카의 일부 나라들을 침공하였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동방에서는 제국주의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을 부르짖으며 중국대륙에 대한 침략전쟁을 결속하지 못한채 전쟁의 불길을 동남아시아지역에로 확대하려고 날뛰였다.

인류가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속에 빠져들어가고있던 그때에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주체29(1940)년 여름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마련하기 위한 전략적단계를 열어놓을 구상을 안으시고 소할바령에로 행군하고계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구상은 조성된 정세와 혁명발전의 요구에 대한 과학적분석에 기초한것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우선 선군혁명의 닻을 올리며 내세운 당창건을 위한 조직사상적기초축성, 반일민족통일전선조직의 결성과 그 확대발전, 조선인민혁명군의 국경지대에로의 진출과 무장투쟁의 국내에로의 확대 등 전략적과업들을 성과적으로 수행한데 대하여 긍지높이 총화하시고 적아력량관계에서의 변화에 대해 분석해보시였다.

당시 혁명군은 수적으로는 비록 적들보다 적었으나 그 어떤 정황에도 능숙하게 대처할수 있는 다양한 전법과 전술을 소유한 강군으로 자라나 새로운 전략적과업을 능히 맡아 수행할수 있는 력량으로 되였으며 인민들의 정치사상적준비와 혁명군에 대한 그들의 변함없는 지지는 계속 높이 발양되였다. 이것은 항일무장투쟁을 확대발전시켜나갈수 있는 주체적요인으로 되였다.

수령님께서는 또한 적의 전략전술적기도를 통해서도 놈들의 최후발악상을 꿰뚫어보시였다.

이 시기 일제는 조선인민혁명군을 《소멸》하지 않고서는 조선과 만주에서 제놈들의 식민지통치를 유지공고화할수 없으며 《쏘중량방면에서의 동시작전》도 아시아를 먹어보려는 야망도 실현할수 없다는것을 느끼고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토벌》공세를 전례없이 강화하였다.

나무잎이 피여나기 시작하면 《토벌》력량을 거두어들이군 하던 놈들이였는데 1940년에는 한여름에도 수십만의 대병력으로 조선의 북부국경일대와 만주의 산과 마을을 뒤덮고 발악적으로 책동하였다. 놈들은 비행기를 비롯한 여러가지 기동수단들과 현대적군사기술기재들을 대량적으로 들이밀면서 군사적공세의 도수를 높이고 형형색색의 밀정들을 내몰아 조선인민혁명군의 활동과 혁명조직들의 활동을 내탐하기 위해 피눈이 되여 날뛰였다. 그리고 혁명군을 내부로부터 와해시켜보려고 《귀순공작》과 암해책동을 대대적으로 벌리는가 하면 조선인민혁명군으로 하여금 한알의 쌀과 소금도 얻지 못하도록 경제적봉쇄도 더욱 악랄하게 감행하였다.

이것은 일제가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조선인민혁명군을 《완전소멸》하기 위하여 이른바 《결전태세》로 달려들고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었다.

수령님께서는 일제가 침략전쟁을 확대하면 할수록 국제적으로 더욱더 고립되고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헤여날수 없는 궁지에 깊숙이 빠져들어갈것이라고 보시고 전반적인 정세는 일제의 멸망이 확정적이고 시간문제이며 조선인민이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성취할 날이 가까와오고있다고 확신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급변하는 정세와 혁명발전의 요구를 천리혜안의 예지로 통찰하시고 무모한 전투로 인한 손실을 피하면서 주동적인 행동으로 혁명력량을 보존축적하는것을 가장 중요한 전략적과업으로 제기하기로 결심하시고 통신원들을 띄우시여 각지에서 활동하던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들을 소할바령으로 부르시였다.

주체29(1940)년 8월 10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된 소할바령회의는 바로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적과업과 방도를 토의한 력사적인 회의로서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의 선군혁명령도사에서 빛나는 자리를 차지한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소할바령에 도착한것은 8월 초순이였다.

할바령산줄기는 그 동북쪽으로 련달려있는 로야령산줄기와 함께 동만과 북만을 가르는 분수령을 이루고 높이 솟아있다. 령이 하도 크고 높아서 예로부터 《할아비령》이라고 불러왔다. 소할바령은 돈화현과 안도현의 경계를 타고 뻗어내린 이 할바령의 꼬리부분에 있었다.

사령부는 이 할바령산줄기의 북쪽 경사면에 있는 돈화현 청구자골막바지에 자리를 잡았다. 골어귀에는 무연한 새초밭이 누워있고 산줄기까지 울창하게 우거진 숲은 소할바령까지 잇닿아있었다.

8월 10일 오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를 시작하시였다.

군정간부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새로운 전략적로선을 제시하시리라는 기대와 확신의 시선을 모아 그이를 우러렀다.

이윽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회의에서 《조국광복의 대사변을 준비있게 맞이할데 대하여》라는 력사적인 보고를 하시였다.

소할바령회의에서 가장 중요하게 론의된 문제는 앞으로의 전략적단계를 혁명적대사변의 시기로 규정할수 있겠는가 하는것이였다. 다시말하여 다음단계에 들어가서 조국해방을 성취할수 있겠는가 하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단계에 들어가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이 성취될수 있다는것을 과학적인 자료를 안받침하여 확신성있게 선언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물론 지금도 일본군대는 강하다, 그러나 망해가는 군대라고 하시면서 관동군의 정예라고 하는 공군부대에서 폭동이 일어난 사실, 중일전쟁마당에서 도주자와 의거자가 속출되고있는 사실과 일본이 소유하고있는 전략물자의 예비가 한계점에 이르고 일본의 복잡한 정세 등은 일본이 패망할 날이 오래지 않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고 론증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일본은 유럽에서 일어난 전쟁을 리용하여 동남아시아를 치자는 속심을 공공연히 내비치고있는데 만일 일본이 동남아시아로 진출하는 경우 그것은 그들자신의 무덤을 파는 길로 되리라고 선언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정세는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한 준비사업을 잘해나갈것을 절박하게 요구하고있다고 하시면서 일제를 종국적으로 멸망시키기 위한 최후의 결전을 맞을 준비를 잘하며 또한 해방된 조국땅우에 혁명적당과 인민정권을 창건하고 혁명을 계속 줄기차게 밀고나갈 준비를 갖추는것을 전략적로선으로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시여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하여 조선혁명의 중추력량인 조선인민혁명군을 보존축적하면서 그들을 유능한 정치군사간부로 육성하며 인민들을 정치사상적으로 튼튼히 준비시키는 사업을 전략적과업으로 제시하시였다.

앞으로 예견되는 최후결전과 새 조국건설, 이 두가지는 조선의 력사를 새롭게 창조하고 조선인민의 운명에서 극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될 전략적과제였다. 이것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아닌 조선인민혁명군이 해야 하고 조선인민이 해야 할 사업이였다. 조국해방의 대사변은 적아쌍방의 정치군사적잠재력이 최대한으로 동원되는 최후결전을 전제로 하는것만큼 그 결전에서 승리자가 되자면 매개 대원들이 종전보다 몇등급이상 높은 직무를 수행해야 하였으며 조국이 해방된 다음에는 바로 그 대원들이 핵심이 되여 새 조국건설도 해야 하였다.

이로부터 무모한 전투로 인한 손실을 피하면서 주동적으로 력량을 보존축적하는 문제가 혁명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과업으로 제기되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전략적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이 대부대작전으로부터 소부대작전으로 이행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이께서는 일부 사람들이 적이 도처에서 대무력으로 달려들 때 우리가 대부대로 맞서지 않고 소부대로 대결하면 각개격파당하지 않겠는가고 우려하는데 대하여 대부대전성기는 지나갔다, 대부대로 와와 밀려다닐 때가 아니다, 적들이 대병력을 동원하여 우리를 단꺼번에 그물에 잡아넣어 일망타진하려고 할 때 우리가 대부대작전을 계속한다면 그것은 적들의 계책에 빠져 자멸을 가져오게 될것이다, 소부대 단위로 움직이면서 싸움도 하고 대중정치사업도 하면 식량도 쉽게 해결할수 있고 기동도 자유자재로 할수 있다, 소부대로 활동하게 되면 적의 력량도 최대한으로 분산시킬수 있게 된다, 이것은 이번 봄과 여름에 진행한 소부대타격전의 전과정이 증명해준다, 과녁을 작게 하자는것이 우리의 의도라고 가르치시였다.

후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일 그때 우리가 대세의 흐름을 제때에 보지 못하고 목전의 성과에만 급급하여 대부대활동을 계속했더라면 력량도 보존하지 못하고 자기 존재를 끝마쳤을것이며 력사에 순국한 렬사들로만 남아있게 되였을것이라고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소할바령회의는 항일무장투쟁의 중요한 전략적로선들을 제시한 1931년 12월의 명월구회의, 1936년 2월의 남호두회의와 더불어 우리 혁명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던 시기에 전략적로선을 바꾸기로 결정한 력사적인 회의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새로운 로선과 전략적과업과 방침들은 회의에 참가한 군정간부들에게 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심을 안겨주었으며 새로운 투쟁의 앞길을 밝혀주었다.

간악한 일제의 《토벌》공세와 파쑈적탄압으로 말미암아 조성된 정세가 그처럼 준엄한 때에 조선혁명승리의 앞길을 휘황히 밝혀주는 새로운 전략적방침을 받아안은 회의참가자들은 커다란 감격과 흥분에 휩싸였다.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연설을 통하여 제국주의자들이 지금은 승승장구하고있는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멸망을 앞둔자들의 단말마적발악에 불과한것이며 일제가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최후결전》을 준비할 때 반대로 우리는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위한 최후결전을 준비하게 된다는것으로 하여 흥분된 가슴을 설레였다.

이 력사적인 회의에 참가하였던 한 항일혁명투사는 그때를 회상하여 이렇게 썼다.

《우리는 마치 높은 령마루에라도 오른듯 가슴이 환히 열리며 눈앞이 탁 트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안은 우리들에게는 부닥친 난국이 아무리 엄혹하더라도 기어이 뚫고나가 항일무장투쟁의 종국적승리를 앞당기며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준비있게 맞이할수 있다는 신심과 왕성한 투쟁의욕이 온몸에 부쩍부쩍 솟아올랐다.》

회의가 끝난 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원들을 빙 둘러앉히시고 토의된 내용을 다시금 하나하나 설명해주시면서 모든 군정간부들과 전사들이 로선전환의 진의도를 깊이 인식하고 용기백배하여 일제놈들의 발악적인 공세를 물리치며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한 준비사업을 잘해나가자고 가르치시고 조선인민의 혁명위업은 반드시 승리할것이라는 확신을 표명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또다시 승리의 신심과 투지를 받아안은 군정간부들은 어떤 준엄한 시련이 닥쳐와도 기어이 그이의 뜻을 끝까지 관철할 불같은 결의를 다지였다.

며칠후에 소할바령에서 조선인민혁명군 당정치일군회의를 소집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로운 환경과 혁명임무의 요구에 맞게 인민혁명군을 소부대와 소조, 군정훈련을 하는 부대들로 편성하며 그에 따라 각 부대의 당조직들과 정치기관도 개편할데 대한 방도들을 구체적으로 밝히시였다.

그이께서는 회의후 정치간부들과 군사간부들, 로대원들과 신대원들을 적절히 배합하는 원칙에서 소부대, 소조들을 편성하시고 그에 대한 통일적인 지휘체계와 련락체계를 세우시였다. 또한 소부대, 소조들의 무장도 활동지역의 특성과 임무에 맞게 갖추게 하시고 소부대와 소조안에 당세포, 당분조를 조직하고 그 역할을 높이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해당 지역의 투쟁과업과 적정, 주민구성상태를 충분히 료해하신데 기초하여 소부대와 소조들의 활동지역들을 선정해주시였다.

그이의 가르치심에 따라 소부대와 소조의 인원은 실정에 따라 각이했으나 보통 소부대는 10명안팎으로부터 수십명으로, 소조는 수명정도로 편성되였다. 소부대, 소조들은 임무분담에 따라 정치사업을 기본으로 하는 소부대, 소조들이 있는가 하면 전투를 기본으로 하는 소부대, 소조도 있었으며 정찰을 기본으로 하는 소부대, 소조도 있었다. 그러나 그 분공이 고정불변하지 않았다. 정황에 따라 정찰소조가 정치사업을 하기도 하고 전투를 기본으로 하는 소조가 정찰과 정치사업을 동시에 맡아보는 식으로 다른 임무를 겸해서 수행할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구체적인 임무를 받은 조선인민혁명군의 각 소부대들과 소조들은 백두산동북부의 안도현, 화룡현, 연길현, 왕청현, 훈춘현, 동녕현일대와 조선의 북부국경지대, 중남부지대 그리고 액목현, 녕안현을 비롯한 북만의 광활한 지대로 떠나갔다.

참으로 소할바령회의는 항일혁명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던 시기에 그에 맞는 전략적로선과 방침을 제시하여 일제와의 최후결전준비와 해방된 조국에서의 새 사회건설을 성과적으로 진행할수 있는 준비를 빈틈없이 갖추어나가는데서 획기적인 계기를 열어놓은 중요한 력사적회합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