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정일장군님과 민족대단결」중에서

 

 

 

 

력사적인 평양상봉이후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자주통일의 새시대가 열리고있는 가운데 북과 남사이의 경제협력사업에서도 새로운 장이 펼쳐졌다.

북남경제협력사업으로 말하면 북과 남의 경제를 균형적으로, 합리적으로 발전시켜 민족내부에 서로 돕고 도와주는 화해와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고 나아가서는 나라의 통일과 부강번영을 실현하게 하는 중요한 사업이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진 단일민족으로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정신과 단결력이 그 어느 민족보다 비상히 강했다. 하기에 지혜롭고 슬기로운 우리 민족의 기개는 이미 오래전부터 온 세상에 널리 알려져있었다.

그러므로 외세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갈라진 우리 겨레가 민족분렬의 비운을 가시고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서로 돕고 협력하면서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켜나가는것은 너무나도 응당한것이다.

더우기 북과 남이 서로 협력할수 있는 자원과 능력을 충분히 가지고있고 온 민족이 이를 적극 지지하고 기대하고있는 조건에서 북과 남이 경제분야에서 협력하지 못할 그 어떤 리유란 아무것도 없다.

하나의 피줄을 이으며 하나의 강토에서 하나의 문화와 력사를 창조하며 살아온 우리 겨레가 서로 힘과 마음을 합쳐 민족경제를 발전시켜나간다면 우리 민족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부강하고 번영하는 위대한 민족으로 될것이다.

하지만 미제의 추종하에 북남대결에만 환장이 되여 날뛰는 분렬주의자들의 계속되는 반민족적, 반통일적인 책동으로 하여 북남경제협력사업은 시작부터 많은 애로와 난관에 부닥치게 되였다. 그러던것이 6. 15통일시대와 더불어 밝은 빛을 보게 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주체89(2000)년 6월에 채택된 6. 15북남공동선언에서 북과 남이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나갈데 대하여 명철하게 가르쳐주시였다. 여기에는 경제분야에서의 북과 남의 협력과 교류를 통하여 민족의 화해와 대단합을 하루빨리 실현하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웅심깊은 뜻과 한없이 넓으신 민족애가 그대로 집약되여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후 북남경제협력사업이 민족의 단합을 이룩하고 통일의 대문을 여는 실질적인 계기가 되도록 하시기 위하여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와 남조선의 《현대그룹》사이의 경제협력사업에 중요한 의의를 부여하시고 이에 큰 힘을 기울이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력사적인 평양상봉이 있은 직후인 주체89(2000)년 6월 29일 평양을 찾아온 첫 손님인 남조선의 《현대그룹》 정주영명예회장과 그의 아들인 정몽헌회장을 몸소 만나주시였다.

사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이들을 만나주신것은 처음이 아니였다.

한없이 넓은 도량과 포옹력을 천품으로 지니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정주영명예회장이 늦게나마 민족의 단합과 통일애국의 길을 걷고싶어 한다는것을 아시고 그에게 공화국에 대한 래왕의 넓은 길을 열어주시고 주체87(1998)년 10월 30일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정주영명예회장과 그 일행이 들어있는 숙소를 몸소 찾으시여 그를 따뜻이 만나주시고 그가 민족의 한 성원으로서 남은 여생을 북남경제협력사업에 다 바치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비범한 위인상에 완전히 매혹된 정주영명예회장은 공화국을 여러차례에 걸쳐 다녀갔으며 그때마다 북남경제협력과 관련한 장군님의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았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기간 《현대그룹》에 금강산관광개발권을 비롯하여 중요대상들에 대한 우선권, 독점권을 주도록 하시였고 평양과 서울에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와 《현대》간의 롱구경기도 진행하도록 하심으로써 《현대그룹》의 지위를 더욱 높여주시였다.

하여 그들은 크나큰 자부심을 가지고 북남경제협력사업에 전심전력하게 되였다.

바로 이러한 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력사적인 6. 15북남공동선언을 발표하시여 민족앞에 통일의 휘황한 리정표를 세워주신 사실에 접한 정주영명예회장은 흥분된 마음을 금할길 없어 또다시 장군님을 만나뵙기 위해 한달음에 평양으로 달려왔던것이다.

정주영명예회장과 그 일행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또다시 귀중한 시간을 내시여 자기들을 만나주신데 대하여 뜨거운 감사의 인사를 올리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들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시고 정주영의 건강상태와 기업형편에 대하여 하나하나 료해하시고나서 개성공업지구건설과 금강산관광사업을 비롯하여 경제협력사업에서 제기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일일이 풀어주시였다. 그리고 정주영명예회장에게 민족화해의 길을 열어놓은 개척자라는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을 또다시 만나뵙고 그이의 주옥같은 가르치심과 분에 넘치는 치하를 받아안은 정주영명예회장은 너무도 감격하여 엄지손가락을 내흔들며 《과시 장군중의 장군이시다》, 《김정일장군은 대담하시고 시원시원하시고 통이 크시다. 장군님을 만나뵙고나니 정말 이제는 통일은 다된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하면서 찬탄을 금치 못하였다.

하기에 그는 북과 남사이의 경제협력으로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온갖 심혈을 다 기울이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자기의 성의가 깃든 선물을 정성껏 마련하여 삼가 올리였다.

이 지성어린 선물에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열렬히 흠모하고 따르는 정주영명예회장과 그의 가족, 남녘의 모든 기업인들의 절절한 마음이 담겨져있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은 진정 정주영에게 있어서 재생의 새로운 활력과 생명수를 부어준 위대한 은인이시였고 그가 인생말년을 민족단합과 통일애국의 길에 헌신하도록 따뜻이 이끌어주신 은혜로운 스승이시였다.

정주영명예회장과 그의 아들 정몽헌회장은 자기들을 북남경제협력의 개척자로 높이 평가해주시고 내세워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통일애국사업에 모든것을 다 바치였다.

이렇듯 민족경제의 균형적발전을 실현하여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이룩하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한 지도와 따뜻한 보살피심에 의하여 주체96(2007)년 4월까지의 기간에 북과 남사이에는 13차례에 달하는 경제협력추진위원회와 그 실현을 위한 실무접촉들, 분과별회의들이 수십차례에 걸쳐 진행되였다.

이 과정에 북과 남은 경제협력분야에서 실로 놀라운 성과를 안아올수 있었다.

쌍방은 여러 갈래의 회담들과 접촉들을 통하여 경제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장치들을 마련하고 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를 구성운영할데 대한 문제, 북과 남사이의 투자보장과 2중과세방지, 상사분쟁해결절차, 청산결제를 기본내용으로 하는 4개경제협력합의서의 발표에 관한 문제, 개성공업지구건설문제, 림진강수해방지문제, 경제협력의 제도적담보를 마련하기 위한 문제, 전력협력문제, 해운협력문제 등을 비롯하여 북과 남사이에 경제협력을 진행하는데서 선차적으로 풀어야 할 실로 중요한 문제들을 토의하고 그 실현을 위한 합의문, 합의서, 공동보도문들을 채택하였다.

또한 2003년 8월에는 4개경제협력합의서 발효통지문을, 2003년 12월에 열린 북남경제협력제도분과 제4차회의에서는 북과 남이 개성공업지구 출입 및 체류질서에 관한 문제를, 경제협력을 원활히 진행하기 위한 북남간의 통신전송로문제를, 북남사이의 경제협력에 필요한 법령 및 규정들을 호상 교환하며 상업재산권문제들을 계속 협력해나갈데 대한 공동보도문을, 2004년 1월 북남청산결제거래실무분과 제2차회의에서는 《북남사이의 청산결제에 관한 합의서》리행을 위한 2004년합의서와 무역은행과 수출입은행사이의 청산결제업무에 관한 합의서를 빠른 시일안에 채택할데 대한 공동보도문을, 제1차 북남경제협력제도 실무접촉에서는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 출입 및 체류에 관한 합의서》를 련이어 채택하였다.

남조선의 《해양수산부 장관》은 어느 한 기자와 가진 회견에서 2005년 북남해운합의서의 발효로 북과 남사이에 해운협력과 교류확대의 전기가 마련되였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남북해운합의서 발효는 남북해운협력의 새로운 장이 열린것을 의미합니다. <남북해운협력협의회> 출범으로 남북간 해운 및 항만분야에서 원활한 교류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협의, 리행틀이 마련된것이죠.》

이와 같이 북과 남사이에 진행된 여러 갈래의 회담들과 접촉들은 경제협력을 실현하는데서 나서는 여러가지 실무적인 문제들을 성과적으로 해결함으로써 북남경제협력사업이 더 활발하게 벌어지게 하였다.

그리하여 1992년에 1건에 불과했던 북남협력사업이 2002년에는 52건에 이르게 되였고 북남교역액수는 2005년 한해동안에만도 10억US$로 늘어나게 되였으며 이는 날이 감에 따라 더욱더 늘어나게 되였다.

북과 남이 경제협력분야에서 이룩한 성과는 이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가 깃들어있는 개성시에 새로운 공업지구를 건설하는 사업에서 놀라운 성과가 이룩되고있는것을 통하여서도 뚜렷이 확증할수 있다.

북과 남은 2003년 6월 30일 개성공업지구 건설을 시작한이래 1단계 건설을 본격화하여 2004년 12월 15일에는 현지에서 《개성공업지구 첫 제품생산 기념식》을 진행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이것은 북과 남이 개성공업지구건설문제를 공동으로 합의한 2000년 8월부터 4년 4개월동안에 이룩된 커다란 성과였다.

이와 함께 북과 남사이에는 농업, 공업, 콤퓨터 등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의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도 진행되였다. 이러한 실태는 남조선의 수많은 각계각층과 민간단체들로 하여금 북남경제협력사업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여주었으며 민족경제의 균형적발전에 크게 이바지하도록 하였다.

2005년 6월 남조선의 《MBC》방송은 이렇게 보도한바 있다.

《6. 15남북공동선언이후 남북간의 왕래와 경제협력규모는 크게 늘어났다.

우리 국민의 80%가 이같은 경제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있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남녘동포들속에서 경제협력사업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높아가고있는가에 대해 잘 알수 있게 한다.

이상에서 보는바와 같이 북과 남사이의 경제협력사업에서 이룩된 모든 성과들은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높이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켜 민족대단합의 전환적국면을 열어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현명한 령도가 있었기에 마련될수 있었다.

오늘날 더더욱 활발하게 진척되는 북남경제협력사업은 날이 갈수록 그 생활력을 남김없이 발휘하며 민족의 화해와 단합실현에 적극 이바지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