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 (1)중에서

숭고한 국제주의적의리의 체현자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지구상의 첫 사회주의국가였던 쏘련을 옹호고수하기 위해서도  사심없는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였다.

오래전부터 쏘련에 대한 침략야망을 품고있던 일제는 193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저들의 반쏘공격기도를 더욱 로골적으로 드러내놓았다. 그 대표적실례가 대쏘침략을 국책으로 선포한 1936년 8월의 《5상회의》였다. 이 회의에서 일제는 대쏘침략전쟁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그 실현을 위해서는 원동에 있는 쏘련군을 개전벽두에 즉각 소멸할수 있도록 만주와 조선에 있는 병력을 보강해야 한다고 력설하였다.

대쏘침공을 제창하는 목소리는 일본군부우두머리들속에서도 뻔질나게 흘러나왔다. 당시 관동군사령관이였던 우에다는 《만쏘국경분쟁처리요강》이라는데서 국경선이 불명확한 지역에서는 현지사령관이 자의로 국경선을 정하되 충돌이 일어나면 병력의 다과, 국경선의 여하를 불문하고 무조건 승리를 기하라고 고아대였다. 그야말로 파렴치성의 극치였다.

이러한 가운데 일제는 매일과 같이 크고작은 국경분쟁을 일으켰다. 그 수는 1932년부터 1939년사이에만도 근 1,000회를 헤아렸다. 구름이 자주 끼면 비가 오기마련이라고 쏘련은 시시각각 전면전쟁에 말려들지 않을수 없는 위태로운 상태에 놓이게 되였다. 조성된 정세는 쏘련을 무장으로 적극 옹호할것을 절실히 요구하고있었다.

 쏘련을 무장으로 옹호하는것은 혁명의 견지에서뿐아니라 국제주의적의리로 볼 때에도 정당한것이였다.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로동자, 농민의 정권을 세우고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근절한 쏘련은 사회주의와 사회적진보를 지향하는 인류에게 있어서 문자그대로 리상향이였다.

항일무장투쟁의 첫 시기부터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의 기치높이 쏘련을 적극 지지옹호해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30년대 후반기 조성된 정세와 조선혁명과 세계혁명의 호상관계, 쏘련의 형편을 전면적으로 헤아려보신데 기초하여 쏘련을 무장으로 옹호하기 위한 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릴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주체26(1937)년 11월 10일 조선인민혁명군 대내기관지 《서광》에 발표하신 론문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임무》에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시였다.

《…우리는 세계최초의 유일한 무산계급의 국가 쏘련을 옹호하여 투쟁함으로써 세계혁명을 보위하며 조선혁명에 더욱 유리한 국제적환경을 조성하여야 한다.

우리는 <쏘련을 무장으로 옹호하자!>는 구호를 계속 높이 들고 일본제국주의의 후방을 끊임없이 공격하여 놈들을 항상 전률케 하며 쏘련에 대한 일제의 침략책동을 걸음마다 파탄시켜야 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이 방침은 강력한 적배후타격으로 일제의 대쏘침략책동을 저지파탄시키고 먼저 승리한 혁명을 보위하며 세계혁명을 다그치고 조선혁명의 국제적련대성을 더욱 강화할수 있게 하는 혁명적방침이였다.

쏘련을 무장으로 옹호하기 위한 투쟁을 적극 벌릴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제가 일으킨 쏘만국경침범사건으로 말미암아 커다란 전쟁위험이 조성될 때마다 강력한 적배후타격전을 조직전개하시여 일제의 대쏘침략책동을 걸음마다 파탄시키시였다.

쏘만국경일대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이 진행한 모든 작전들은 작전상으로 불리하다는것을 잘 아시면서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쏘련을 돕기 위해 주동적으로 조직하신 전투들이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쏘련과 군사적협조에 관한 조약을 체결하신것도 아니고 쏘련측으로부터 무슨 청원을 받으신것도 아니였지만 쏘련에 대한 동지적뉴대와 공동의 원쑤 일제에 대한 적개심으로부터 출발하여 스스로 결심하시고 이러한 군사행동들을 단행하시였던것이다.

1938년 7월 일제가 하싼호사건(장고봉사건)을 도발하였을 때였다. 장고봉이란 당시의 웅기군 사회리 대안에 있는 쏘련의 자그마한 고지였는데 그 근처에 하싼호라는 호수가 있었다. 처음 하싼호를 자기네 령역이라고 주장하던 일제는 그것이 통하지 않게 되자 장고봉에 있는 쏘련의 국경초소를 공격하였다. 일제의 속심은 장고봉을 점령한 다음 병력을 증파하여 울라지보스또크이남의 연해주지역을 제압하자는것이였다. 쏘련측의 초소를 점령한 일제는 그 일대에 라남 19사단을 기간으로 하는 숱한 병력을 집중시키였다.

이 시기 림강일대에서 활동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곧 군정간부회의를 여시고 쏘련을 무장으로 옹호하기 위한 적배후타격전을 과감히 벌릴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신데 이어 령활한 군사작전들을 련이어 조직진행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작전적방침을 받아안은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주체27(1938)년 8월 일만군 800여명과 조우하여 일제침략군 련대장이하 많은 적들을 살상하고 적지 않은 무기를 로획한 화전현 위자구전투를 비롯하여 림강현 신태자전투, 외차구전투, 8도강 금광전투 등 수많은 전투를 벌려 적의 유생력량과 전투기술기재에 막대한 손실을 주고 군수물자수송을 파탄시켰다.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8월이후 화전현일대에서만도 불과 얼마 안되는 짧은 기간에 수많은 적들의 유생력량을 녹여내고 3,000여정이나 되는 무기를 로획하였다. 이것은 이 시기 일제가 얼마나 심대한 타격을 받았는가 하는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8(1939)년 5월 일제가 쏘련과 몽골을 반대하는 할힌골사건(노몬한사건)을 도발하였을 때에도 쏘련을 무장으로 적극 옹호하시였다. 하싼호사건을 계기로 쏘련이 로일전쟁당시의 무능한 로씨야가 아니라 만만치 않은 국력을 가진 대국이라는것을 알게 된 일제는 저들이 집요하게 추구하고있던 대쏘침략계획을 놓고 심사숙고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그러나 쏘련에 대한 일제의 침략야망이 결코 변한것은 아니였다. 호시탐탐 쏘련을 침공할 기회를 노리던 일제는 일본에 대한 쏘련의 강경정책을 다시한번 검토해볼 심산으로 만몽국경일대에서 새로운 군사적도발을 준비하고있었다. 일명 노몬한사건이라고 부르는 할힌골사건은 이렇게 되여 발생하였다. 할힌골이란 쏘만국경가까이에 있는 몽골의 강이름이며 노몬한이란 몽골말로 평화를 의미하는것이였다.

일제가 할힌골사건을 도발한 목적은 할힌골강 동쪽의 몽골령토를 점령하고 저들이 부설하려고 하는 제2철도를 엄호하기 위한 방어지대를 구축하며 나아가서 씨비리철도간선을 절단하여 로씨야로부터 원동을 떼여내자는데 있었다. 이와 함께 쏘련이 일본의 군사적침공을 어떤 자세로 대하는가, 쏘련의 대일전략은 무엇인가, 쏘련의 군사력은 어느 정도인가 하는것을 구체적으로 탐지하고 가늠해보자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할힌골사건이 일어난 초기에 벌써 일제의 반쏘침공기도를 간파하시고 관동군의 병력이동과 군수물자수송을 저지파탄시키기 위하여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을 일제의 반쏘무력침공을 위한 군사보급로인 경라선과 빈돈선연선에 집중시키시였다. 이와 동시에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이끄시고 무산지구진공작전을 단행하심으로써 일제로 하여금 쏘련국경일대에 배치하였던 무력까지 《후방안전》에 돌리지 않을수 없게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뒤이어 백두산동북부에로 활동무대를 확대하시고 쏘련에 대한 일제의 침략기도를 저지파탄시키며 쏘련을 무력으로 지원하기 위한 군사정치활동을 맹렬히 전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쏘몽련합군이 할힌골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있던 때인 이해 8월초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에 적배후타격전을 보다 강력히 전개할데 대한 새로운 명령서를 하달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명령서에서 자기 조국의 민족적독립과 해방을 위하여 투쟁하는 조중인민이 쏘련을 무장으로 옹호하기 위하여 일제의 후방인 조선과 만주에서 놈들의 뒤통수를 때려부시는것은 긴급하고도 신성한 국제주의적의무로 된다고 하시면서 모든 지휘관들과 전사들이 적의 배후에서 놈들의 유생력량과 전투기재를 대량 소멸파괴하고 원쑤들에게 자그마한 안정도 주지 말며 언제나 적정을 정확히 분석하고 객관적정형을 상세히 타산한 기초우에서 매복전, 야간습격전, 유인작전, 공격전 등을 능숙하게 배합하여 전개할데 대한 구체적인 임무를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리신 명령서에 따라 그해 여름 조선인민혁명군 각 부대들은 일제의 쏘련침공을 저지시키기 위한 수많은 전투들을 벌리였다.

대사하, 대장강전투도 그 대표적전투들중의 하나였다. 이 전투들은 일제가 할힌골에 투입할 제6군을 새로 편성하기 위해 병력이동과 군수물자수송에 한창 혈안이 되여 날뛰던 시기에 벌린 교란작전으로서 그 의의가 컸다.

주체28(1939)년 8월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받은 조선인민혁명군 제3방면군부대는 일제의 중요한 군사적후방에 혼란을 조성하며 적들의 반쏘침공작전을 견제할 목적으로 안도현 대사하, 대장강일대에 진출하였다.

이미 세워진 작전계획에 따라 조선인민혁명군 한 부대는 대사하집단부락의 적들을 번개같이 들이치고 그길로 남쪽에 있는 소사하고개로 진출하여 안도현성에서 달려온 적증원부대를 소멸하였다. 그 다음날에는 다른 한 부대가 대장강남쪽 남구골짜기에서 안도-명월구사이 도로를 끼고 매복하였다가 명월구방향에서 오는 적의 증원부대를 소탕하였다. 2일간에 걸쳐 진행된 이 전투들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은 적 500여명을 살상포로하고 가장 악질적인 《토벌대》의 하나였던 일제침략군의 미야모도부대를 전멸시키는 커다란 전과를 올리였다. 이 전투과정에 적의 화구를 가슴으로 막아 부대의 진격로를 열어놓은 김진을 비롯하여 자기의 청춘도 생명도 서슴없이 바친 수많은 국제주의렬사들이 배출되였다.

대사하, 대장강전투를 승리적으로 결속한 조선인민혁명군 제3방면군부대는 돈화현일대에서 교란작전과 그곳 일대에서의 정치사업을 활발히 벌린데 이어 요차전투, 대황구부근전투 등 여러차례의 전투들을 또다시 벌려 적들을 련속 타격하였다.

이밖에도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화룡현 3도구 금광습격전투, 안도현 푸르허습격전투, 왕청현 백초구습격전투 등 과감한 전투들을 벌려 일제의 대부대들을 소멸하고 수많은 전투기술기재들을 로획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의 적극적인 군사활동은 일제를 전률시켰다. 바빠맞은 일제는 쏘만국경지대로 통하는 모든 도로들과 철도주변의 100∼200m 구간에 있는 초목들을 모조리 베여버리기까지 하면서 조선인민혁명군의 매복습격을 막아보려고 발악하였으나 이것은 부질없는짓이였다.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의 대담무쌍한 활동에 의하여 쏘만국경지대로 통하는 철도들에서는 군용렬차폭파사건과 탈선사고들이 련달아 일어났다.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일제의 후방을 련속적으로 타격하여 많은 유생력량을 소멸하였을뿐아니라 유격대의 활동구역에 수많은 적을 붙들어둠으로써 일제로 하여금 쏘련을 반대하는 군사적도발에 인적력량을 원만히 동원할수 없게 하였다. 그리하여 하싼호사건때 조선인민혁명군의 활동을 견제하기 위해 간도지구에만도 2개 려단의 력량을 투입하였던 일제는 할힌골사건때에는 그보다 더 많은 력량을 간도지구에 들이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결국 일제는 할힌골격전에서 5만에 달하는 사상자와 포로, 행방불명자를 내고 참패하고말았으며 그때부터 쏘련에 대한 강경정책을 일시적이나마 유화정책으로 바꾸게 되였다.

이처럼 1930년대 후반기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조선인민혁명군이 진행한 배후타격전은 일제의 대쏘침략기도를 좌절시키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민족혁명과 세계혁명을 결합시키는데서 빛나는 모범을 보여준 의의가 큰 작전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듯 1930년대 후반기 쏘련을 무장으로 적극 옹호하심으로써 국제공산주의운동과 반제혁명투쟁, 식민지민족해방투쟁을 가일층 발전시키고 조선혁명의 국제적련대성을 강화하는데 불멸의 공헌을 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