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정일장군님과 민족대단결」중에서

 

 

 

북과 남사이의 대화와 협상은 본질에 있어서 외세에 의하여 두동강난 민족의 화합과 단결문제, 나라의 통일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하기 위해 우리 민족끼리 마주앉아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토의하는 중요한 사업이다.

하지만 이 사업은 통일을 외면하는 안팎의 분렬주의자들의 악랄하고 간교한 책동으로 인하여 오랜 세월 진통을 겪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와서야 비로소 완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나라의 통일은 안중에도 없이 오직 저 하나의 안락과 부귀영화만을 추구하는 반통일분자들과 그를 조종하는 미국의 책동으로 말미암아 회담은 첫시작부터 고초를 겪지 않으면 안되였다.

남조선당국은 북과 남사이에 대화가 시작되자  《대화없는 대결로부터 대화있는 대결》, 《대화없는 경쟁으로부터 대화있는 경쟁》으로 넘어간다고 떠벌이면서 회담마당에 나와서까지 통일이 아니라 분렬을 영구화하려는 속심을 공공연히 드러내놓았다.

하여 북과 남사이의 대화는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모색하는 대화가 아니라 민족내부에 반목과 불신을 조장하는 대화로 전환되여 아무런 결실도 없이 끝나는것이 일쑤였다.

이러한 북남대화와 협상의 력사는 지난 시기 수십년동안이나 되풀이되여왔다.

북남대화와 협상에서 제기되는 이러한 문제들을 깊이 통찰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찌기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이룩하는데서 나서는 모든 문제들을 전쟁의 방법으로가 아니라 대화와 협상의 방법으로 해결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북과 남사이의 대화는 민족단합을 위한 대화로, 조국통일을 위한 대화로 되여야 합니다.》

돌이켜보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민족공동의 통일강령인 조국통일3대원칙을 기본내용으로 하는 7. 4북남공동성명이 발표된 1970년대초에는 그 실현을 위하여 북남적십자단체들의 회담을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으며 남조선에서의 《유신정권》의 출현으로 북남대화의 문이 굳게 닫기였던 1970년대 후반기에는 민족적화해와 단합의 유리한 분위기를 마련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시였다.

이에 따라 공화국에서는 북남정치협상회의가 제안되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또한 1980년대 중반기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밝히신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실현과 오래동안 중단되였던 적십자회담의 재개를 위한 사업에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1990년대초에도 북과 남의 총리들을 단장으로 하는 북남고위급회담에 큰 의의를 부여하심으로써 북남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협력, 교류를 발전시키고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는데서 커다란 전진이 이룩되도록 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특히 주체83(1994)년 6월말 북과 남사이에 최고위급회담을 위한 예비접촉을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여 주체83(1994)년 7월 25일부터 27일까지 평양에서 북남최고위급회담을 개최할수 있는 휘황한 길도 열어주시였다.

이처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대화의 방법으로 나라의 통일을 하루빨리 실현하시기 위하여 크나큰 심혈을 기울여오시였다.  

그러나 민족최대의 대국상을 당한 동족의 가슴에 칼질을 하는것과 같은 반민족적, 반인륜적행위도 서슴없이 감행한 남조선의 반통일분자들과 북남대화를 달가와하지 않는 미국의 방해책동으로 하여 북남최고위급회담은 끝내 성사될수 없었다.

그러던 북남대화는 주체89(2000)년 력사적인 평양상봉을 계기로 다시 활기를 띠게 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평양에서 민족분렬이래 처음으로 력사적인 북남수뇌상봉을 마련하시고 6. 15북남공동선언을 통하여 북과 남이 빠른 시일안에 당국사이의 대화를 개최한다는것을 온 세상에 선포하시였다.

참으로 이것은 불신과 대결로 이어져오던 북남관계에 종지부를 찍고 북과 남사이의 대화와 협상을 철두철미 우리 민족끼리 마주앉는 참다운 대화와 협상으로 되게 한 경이적인 사변이였다.

북과 남, 해외의 우리 겨레는 한없이 넓은 도량과 포옹력, 비범한 예지와 무비의 담력으로 력사적인 평양상봉을 마련하시여 우리 민족사에 뚜렷이 아로새길 조국통일의 리정표를 안아오신 경애하는 장군님을 높이높이 우러르며 민족의 위대한 어버이에 대한 다함없는 흠모의 마음을 금치 못하였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오래동안 격페상태에 있던 북남대화와 협상은 우리 민족끼리의 대화와 협상으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2000년 7월말 서울에서는 제1차 북남상급회담이 진행되였다.

회담에서는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 교환문제, 조선반도의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쌍방군사당국자들의 회담을 조속한 시일내에 가질데 대한 문제, 경제협력을 확대발전시키기 위한 제도적담보를 마련할데 대한 문제 등이 토의되였다.

또한 회담에서 북과 남은 쌍방간의 회담을 북남공동선언의 합의사항을 리행하는 회담으로, 불신과 론쟁으로 일관되던 과거의 낡은 타성에서 벗어나 신뢰와 협력의 정신에서 문제를 타결하는 회담으로, 실질적으로 결실을 맺는 회담으로 만들데 대한 원칙적문제들에 합의를 이루었다. 계속하여 회담에서는 2000년 8월 15일을 계기로 잠정적으로 중단되였던 판문점 북남련락사무소의 운영을 재개할데 대한 문제도 토의하였다.

제1차 북남상급회담은 앞으로 있게 되는 북과 남사이의 여러 갈래의 회담들이 철저히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고 6. 15북남공동선언을 리행하는데로 지향시켜나갈수 있게 하는데서 디딤돌을 마련하는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

그후 북과 남은 그해 8월 29일부터 9월 1일까지 평양에서 제2차 북남상급회담을 련이어 진행하였다.

그로부터 한달이 지난 9월말 북과 남은 또다시 제3차 북남상급회담을 제주도에서 진행하였고 12월에는 제4차 북남상급회담을 평양에서 진행하였다.

이처럼 북과 남은 6. 15공동선언이 발표된 그해에 벌써 무려 4차례에 달하는 북남상급회담을 진행하고 여기에서 공동선언을 성과적으로 리행하는데서 나서는 일련의 중요한 문제들을 토의함으로써 북남대화와 협상을 철저히 우리 민족끼리의 대화와 협상으로 확고히 전환시킬수 있었다.

이렇게 되자 이에 겁을 먹은 미국과 남조선의 극우보수세력들은 북남대화를 로골적으로 방해하여나섰다.

그리하여 2001년 3월 중순경으로 예견되였던 제5차 북남상급회담은 지연되지 않으면 안되였다.

하지만 북남대화와 협상을 명실공히 외세의 간섭을 배격하고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의 요구와 리익에 맞게 풀어나가는 민족적인 대화와 협상으로 되게 하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2001년 9월 15일부터 18일까지 제5차 북남상급회담이 서울에서 진행되였다.

그후 북과 남은 2007년 6월까지  21차에 달하는 북남상급회담을 진행하였고 수많은 문제들을 토의결정하였다. 이 과정에 실로 놀라운 성과들이 이룩되였다.

실례로 2005년 6월 서울에서 진행된 제15차 북남상급회담과 2007년 2월 27일부터 3월 2일사이에 진행된 제20차 북남상급회담을 꼽아볼수 있다.

제15차 북남상급회담에서는 체면을 앞세우며 론쟁으로 이어지던 지난날의 도식적인 틀에서 벗어나 한피줄을 이은 하나의 겨레로서 민족공동의 리익에 도움이 되는 의견들을 서로 교환함으로써 일정한 합의를 보게 되였다.

이것은 지난 시기의 회담들에서 겨우 한두가지 조항, 많아서 7가지 조항밖에 합의를 보지 못하던 사실과 대비해 볼 때 큰 결실이라고 볼수 있다.

이에 대해 남조선의 《KBS》는 《남북관계의 새로운 봄맞이》로 묘사하면서 《이번 제15차 장관급회담의 공동 보도문을 종합해보면 7월과 8월에만도 11차례, 12월까지의 남북대화일정이 잡힌셈이여서 앞으로 남북대화가 이어진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회담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비난도 거의 없었던것으로 알려졌다.》라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또한 제20차 북남상급회담에서 채택된 공동보도문은 《우리 민족끼리》 대화와 협상이 가져온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실례로 된다.

그런가 하면 북과 남은 2007년 5월 30일부터 6월 1일까지 진행된 제21차 북남상급회담에서 북남관계를 건전한 발전의 궤도우에 확고히 올려세우기 위한 제안들을 내놓고 의견을 나누었다.

쌍방은 공동보도문에서 지난 20차례의 북남상급회담을 통해 이룩된 성과와  교훈을 총화하고 앞으로 북남관계를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에 부합되게 보다 높은 단계에로 발전시켜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였으며 여기에서 나서는 원칙적이며 실천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서로의 립장을 제기하고 진지하게 협의하였다.

그리고 6. 15공동선언의 기본정신에 따라 조선반도의 평화와 북남사이의 화해와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문제들을 더 연구해나가기로 하였다.

이밖에도 북과 남사이에는 같은 기간에 당국간 대화만이 아니라 민간급대화도 수없이 진행되였다.

북과 남은 회담들을 통하여 나라와 민족의 지맥과 혈맥을 다시 잇는 문제, 북남사이의 긴장과 대결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문제,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문제, 비전향장기수송환문제, 림진강수해방지문제, 일제에 의해 외곡된 민족사를 바로잡기 위한 문제 등 온 민족이 오랜 세월을 내려오며 절절히 바라던 문제들을 토의하고 공동보도문을 채택함으로써 북남관계에서 이전에는 일찌기 찾아볼수 없었던 경이적인 성과들을 수없이 안아왔다.

한편 북과 남은 로동자통일대회, 청년학생통일대회, 녀성대회, 농민통일대회, 민족과학기술토론회, 방송인토론회 등을 비롯한 여러 갈래의 협상들에서 북과 남이 호상 관심사로 되는 문제들을 토론하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실현하고 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나갈 각오와 의지를 합의서에 담아 내외에 엄숙히 선포하였다.

북과 남은 이처럼 북남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의 길에 가로막혔던 장애물들을 하나하나 제거하고 자주통일의 새시대, 민족대단결의 새시대를 펼쳐놓을수 있었다.

온 민족의 커다란 관심과 기대속에 북과 남이 첫 상급회담을 시작한 때로부터 2007년 6월까지 21차례의 상급회담과 수십차례의 민간급대화, 10여차의 북남군사당국자들사이의 회담 및 실무접촉을 비롯한 100여차에 달하는 북남대화와 협상들이 진행된것은 북남대화력사에서는 일찌기 찾아볼수 없는 커다란 사변이였다.

이 놀라운 성과는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위한 길에 가로놓인 난관과 시련을 한몸으로 헤치시며 반세기이상이나 침체와 답보상태에 머물러있던 북남대화와 협상을 우리 민족끼리의 폭넓은 대화와 협상으로 확고히 전환시켜주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정력적인 지도와 세련된 령도를 떠나서는 결코 생각할수 없다.

정녕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은 민족대단결위업을 앞장에서 열어나가시는 민족의 위대한 태양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