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 (1)중에서

전쟁은 준엄하다. 순간순간 생명의 위험을 동반하게 되는 싸움이다. 더우기 전선과 후방이 따로없이 벌어지는 유격전쟁은 참으로 간고하고 준엄하다.

하지만 인류전쟁사의 그 어느 갈피에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 진행하신 항일전쟁처럼 그렇게 간고하고 준엄한 전쟁은 없었다. 발톱까지 무장한 강도 일제와의 전쟁은 그야말로 피바다, 불바다속에서 벌어진 혈전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피바다, 불바다속을 언제나 앞장에서 헤쳐가시였다. 기관총을 직접 틀어잡으시고 1선에서 적들과 화력전을 벌리기도 하시고 위험에 빠진 대원들을 구원하시려고 탄막속에 뛰여들기도 하시였으며 생사를 내건 모험도 서슴지 않으시였다. 그러시다보니 그이께서는 신변에 엄중한 위협을 받는 아슬아슬한 고비들을 수없이 겪게 되시였다.

그러나 그때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온몸이 그대로 성새, 방패가 되여 그이의 안녕을 지켜나선 수많은 친위전사들의 희생적인 투쟁에 의하여 그 위험천만한 고비들을 무사히 넘기군 하시였다. 그 친위전사들가운데는 나어린 전령병들도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을 가까이에서 목숨으로 지켜온 전령병들, 그들은 항일무장투쟁시기 사령부에 직속되여 전투명령을 전달하거나 호위임무를  맡아수행한 전투원으로서 그 대부분은 10대의 애젊은 전사들이였다. 그들은 모두 일제의 《토벌》에 부모형제를 잃었거나 가까운 일가친척들이 참살당하는 치떨리는 참변을 목격하고 그 복수를 위해 어린 나이에 총을 잡은 전사들이였다. 그들속에는 새 사단의 편성시기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의 품속에 안겨 전령병으로 성장한 마안산의 아동단출신이 있는가 하면 그이의 직접적 발기밑에 조직되였던 소년중대출신도 있었다.

이들은 비록 나이는 어리였지만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을 보위하는 길에서는 자기의 생명을 초개와 같이 내대였으며 그이를 위함이라면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였다.

장백현 15도구전투때였다. 그날 적들은 사령부가 자리잡고있는 지휘처에 집중사격을 가해왔다. 이때 사령부전령병의 임무를 수행하고있던 리권행은 위대한 수령님께 지휘처를 안전한 장소로 옮기실것을 여러번 간청하였지만 그이께서는 그의 이러한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으시였다. 지휘처가 자리잡고있는 곳이 지형상 적아를 한눈에 바라볼수 있는 좋은 곳이였기때문이였다. 그이께서는 자신의 신변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이곳에 계시면서 전투를 지휘하시였다.

그러던중 적탄이 불시에 위대한 수령님께로 쏠리기 시작하였다. 이 위급한 순간에 리권행은 두팔을 벌리고 몸으로 그이를 막아섰다. 그가 한몸이 그대로 방패가 되여 위대한 수령님을 막아나선 순간 적탄이 그의 다리뼈를 부수어놓았다. 그이께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여 담가에 실려가는 그에게 《넌 죽지 않아!》, 《넌 죽지 않아!》 하고 말씀하시며 그를 고무해주시자 오히려 그는 《사령관동지, 저는 죽지 않습니다. 제 걱정은 말고… 다시 만날 때까지 아무쪼록 건강하십시오.》라고 하면서 위대한 수령님을 위로하였다.

이것이 나어린 전령병이 그이께 남긴 마지막말이였다. 후방병원에 후송되여 치료받던중 적들에게 체포된 그는 매일같이 감행되는 혹독한 고문속에서도 사령부위치를 대지 않고 절개를 지키다가 장렬한 최후를 마치였던것이다. 이렇게 애젊은 전령병은 조선혁명의 명맥을 지키는 길에 자신의 귀중한 생명을 서슴없이 바치였다.

수령결사옹위의 길에서 영웅적인 생을 마친 위훈의 별들가운데는 사령부전령병이였던 최금산도 있었다.

주체26(1937)년 3월 위대한 수령님의 작전적구상에 따라 무송원정의 길에 오른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만강부근의 두도령에서 얼마간 머무르게 되였다. 식량이 다 떨어진 상태여서 식량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더이상 행군하기  어렵게 되였던것이다. 곧 10여명정도의 식량공작대가 만강으로 떠나갔다. 그들은 그곳에서 얼마 안되는 감자를 구해가지고 귀로에 올랐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생기였다. 시장기를 참지 못한 식량공작대원들이 숙영지가까이에서 우등불을 피워놓고 감자구이를 함으로써 적들에게 부대의 위치를 로출시키는 엄중한 실수를 저질렀던것이다. 우등불을 발견하고 식량공작대원들을 은밀하게 뒤따르던 적들은 숙영지를 포위하고 총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 위기일발의 순간에 최금산은 한몸이 그대로 방패가 되여 사령부쪽으로 다가드는 적들을 막아 결사적으로 싸웠다. 그때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맨 후위에서 철수하시는것을 보자 다른 전령병과 함께 그이곁으로 달려와 몸으로 그이를 막으면서 적들에게 맹렬한 사격을 가하였다. 이 과정에 그는 여러발의 적탄을 맞고 치명상을 입었지만 마지막탄알이 다할 때까지 엄호사격을 그치지 않았다. 그의 군복은 피로 흠뻑 젖어있었다. 쓰러진 그를 업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검질기게 달려드는 적들과 전투를 벌리시며 포위를 뚫고 나가시였다. 포위를 돌파하신 다음 그를 내려놓으시고 보니 금산은 이미 숨이 진 몸이였다. 너무도 일찌기 생을 마친 금산의 모습을 보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가슴은 찢어지는듯 아프시였다.

최금산, 그는 꿈이 많고 공상이 많은 소년이였다. 그가 바라는것중의 하나는 기차를 많이 타보는것이였다. 그는 조국이 독립된 다음에는 기차를 몰고 다니겠다고 늘 말하군 하였다. 아마도 이국땅에서 태여나 이국의 물을 마시며 자라난 류랑민의 아들이여서 고국땅을 실컷 밟아보는것이 그의 가슴속에 간직된 가장 큰 소망이였으리라. 그래서 그는 남호두에서 백두산으로 나올 때에도 매일같이 위대한 수령님께 이제 얼마나 더 가면 조국땅을 볼수 있는가, 서간도땅에 가면 조선사과를 먹어볼수 있는가, 동해바다가 기막히게 멋있다는데 장군님은 가보셨는가, 앞으로 몇해안에 평양이랑, 서울이랑, 부산이랑 칠수 있는가 하는것을 비롯하여 별의별 질문을 다하였다. 갑산농민들이 삼아 보내준 미투리도 조국진군의 날에 신자고 배낭속에 소중히 간직하였다.

이러한 금산이였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느 전우들이 희생되였을 때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시였다.

그와 영결하던 날 두도령의 땅거죽은 왜 그리도 모질게 얼어붙었는지 도끼로도 총창으로도 도저히 흙을 뚜져낼수가 없어 전우들은 금산의 시신우에 맨 눈을 덮어 안장하였다. 그리고 후날에라도 그를 다시 온전히 묻어주고싶어 표적을 해두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눈이 다 녹은 다음 무송원정을 총화하고 백두산쪽으로 다시 나가실 때 부대와 함께 최금산을 안장하였던 그 장소를 찾아가시여 그에게 새 군복을 갈아입히고 양지바른 곳을 찾아 다시 잘 안장하시였다. 무덤앞에 몇그루 진달래도 떠다심으시였다. 죽어서라도 그 꽃나무향기에서 조국의 향기를 맡게 하고싶으시였던것이다. 진달래는 금산이가 가장 사랑하던 꽃이였다.

(금산아, 잘 있거라! 우리는 또다시 백두산으로 나간다. 이번 여름에는 네가 소망하던대로 부대를 데리고 기어이 조국으로 진군하련다. 조국에 나가면 너의 원쑤를 백배, 천배로 갚아주마.)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음속으로 이런 말씀을 하시며 어린 전우였던 사랑하는 전령병과 영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안녕을 지켜 끌날같은 생명을 주저없이 내댄 전령병들은 모두가 민족의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을 보위하는 위성들이였고 그이의 신변을 지켜선 방탄벽들이였다.

사령부전령병들은 사선의 고비뿐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위대한 수령님께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그이를 높이 받들어모시였다.

어느해 겨울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끄시는 부대는 추격해오는 적들을 뒤에 달고 강행군을 하고있었다. 겨울치고는 아주 지독하게 추운 날이였다. 한창 행군대오의 앞장에서 눈속을 헤치시며 부대를 이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문득 자리에 멈춰서시여 신발을 벗어보시였다. 아무리 눈속을 헤치고 행군을 계속해도 발이 얼어들지 않으니 이상한 생각이 드시였던것이다. 신발바닥에는 솜처럼 보드랍게 다져진 울로초가 차분히 깔려있었다. 사령부전령병인 리권행의 소행이였다.

당시 중국사람들은 인삼, 록용, 초피(돈피)를 《관동(동북)3보》로 일러왔는데 어떤 강추위에도 발을 얼지 않게 해주는 울로초도 《동북3보》에 넣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을 위해 리권행은 진펄에서만 돋아나는 이 풀을 발견할 때마다 한줌두줌 뜯어 배낭속에 정히 간수하였다가 그이의 신발에 깔아드리였던것이다.

여기에 사령부전령병들의 고결한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가슴뜨거운 이야기가 있다. 남호두회의가 있은 직후 취해진 조치에 따라 위대한 수령님의 전령병이였던 오대성(그는 오중흡7련대장의 손아래동생이였다.)은 북만으로 가게 되였다. 작별 전날 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날이 새면 먼길을 떠나갈 전령병을 생각하시여 일찍 등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우시였다. 밤새도록 쉬지 않고 그이의 곁에 남게 될 사령부전령병인 최금산과 이야기를 나누던 오대성은 새벽녘이 되자 그와 함께 밖으로 나가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호기심이 동하시여 조용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였다.

《금산아, 내가 간 다음 너 장군님을 더 잘 모셔야 해.》

오대성의 소곤거리는 소리, 최금산은 귀담아듣기만 할뿐이였다.

《백두산쪽에 가면 고추장을 꼭 구해서 끼마다 장군님께 올려라. 조선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니 노력만 하면 쉽게 구할수 있을거야. 너 장군님께서 고추장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알지? 그런데 우린 아직 한번도 그런 음식을 대접 못했거든. 우린 사실 전령병자격이 없지 뭐. 정작 장군님곁을 떠나자니 그런 일들이 마음에 걸리누나.》

《네 부탁대로 할테니 마음놓구 가. 이렇게 헤여지면 언제 만날수 있을가?》

최금산의 목소리는 젖어있었다.

《글쎄 언제나 만나겠는지… 참 금산이, 거기 가면 먼저 평안도사람네 집부터 꼭 들려봐라. 평안도집엔 젓갈같은게 있을수 있다. 장군님께서 젓갈을 아주 좋아하신대.

야, 백두산에 가면 그런걸 다 구해서 장군님께 실컷 대접해드리자구 했댔는데…》

대화의 내용인즉 떠나는 전령병이 남게 된 전령병에게 위대한 수령님을 더 잘 모셔달라고 부탁하는것이였다.

오대성이 떠나간 다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책갈피에서 그가 남긴 글쪽지를 보게 되시였다.

장군님!

나라를 찾고저 일년 삼백예순다섯날 어느 하루도 발편잠 못 주무시는 장군님께 속만 태워드리다 떠나는 전령병의 마음 죄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가서 잘 싸울테니 근심일랑 하지 마십시오.

괴로울 때면 《나라를 찾기 위해 이 고생을 참자.》고 늘 하시던 장군님의 말씀을 되새기겠습니다.

사랑속에서 키운 애국절개 더럽힘없이 한목숨 짚오래기처럼 던져 광복성업에 조금이나마 보태겠사오니 장군님, 걱정마시고 부디 건강하십시오.…

나어린 전령병의 글치고는 너무도 웅심깊은것이였다. 이 애젊은 전령병은 그후 북만에서 용감히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전우들은 모두가 이렇게 의리가 깊고 인정이 두터운 참인간들이였다.

아직은 응석기도 다분히 남아있을 나이에 있던 전령병들을 그렇듯 숭고하고 진실하고 아름다운 의리를 지닌 인간들로 키우신분은 뜨거운 동지적사랑과 고결한 인정미를 지니시고 철부지에 불과했던 그들모두를 자애로운 한품에 안으시여 사랑을 주시고 믿음을 주시고 내세워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이시였다.

사실 매일, 매 시각 사선을 헤쳐가야 하는 유격투쟁속에서 철부지소년들을 데리고 다니는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였다. 때문에 아이들을 특별히 사랑한다는 지휘관들조차 이 일에서만은 머리를 흔들었고 소년들이 유격활동에 부담만을 주게 될것이라고 하는 지휘관들도 일부 있었다.

그렇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이 비록 나이도 어리고 육체도 연약하지만 그들의 가슴속에 간직된 고결하고 열렬한 애국의 넋을 귀중히 여기시고 항일혁명의 실천투쟁속에서 소년들을 투사로 키우실 결심을 하시였다. 그리하여  14∼17살, 지어 11살밖에 안되는 어린 소년들이 사령부전령병으로, 경위중대와 소년중대의 대원으로 입대하여 손에 총을 잡게 되였다.

나어린 소년들을 선군혁명무력의 자랑스러운 대오에 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늘 그들의 사업과 생활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으며 그들에게 친부모도 주지 못한 뜨거운 사랑을 부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취침시간이 될 때마다 《얘들아, 어서 오너라!》라고 하시며 나어린 대원들을 부르시여서는 자신의 량쪽옆에 눕히시군 하시였다. 그럴 때면 나어린 대원들은 환성을 지르며 그이곁으로 모여와 저마다 더 가까이에 눕겠다고 승벽내기를 하군 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고안해낸것이 《따바리잠》이였다. 《따바리잠》이란 한장의 모포안에 여러명이 발을 밀어넣고 따바리모양으로 빙 둘러누워서 자는 잠이였다. 《따바리잠》, 이것은 그대로 위대한 수령님과 소년대원들사이에 맺어진 육친적관계를 보여주는 하나의 생동한 화폭이였다.

행군때마다 어린 대원들에게 기울이시는 그이의 사랑 또한 남다른것이였다. 그이께서는 물살이 센 강을 건느실 때면 나어린 대원들을 몸소 업어건네주군 하시였으며 《앞에 나무가 있으니 주의하여라.》, 《웅뎅이가 있으니 건너뛰여라.》, 《조심해서 강을 건너라.》 하는 식으로 일일이 그들의 행동을 보살펴주시였다.

어린 대원들에 대한 그이의 사랑은 이뿐이 아니였다. 항일무장투쟁의 나날 한창 자랄 나이에 있던 어린 대원들은 항상 시장기를 느끼군 하였다. 더구나 죽을 먹는 날이면 배가 고파 헐헐하였다. 그럴 때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돌을 삼켜도 삭일 나이들인데 얼마나 배고프겠는가고 하시면서 나어린 대원들에게 자신의 몫을 덜어주군 하시였다. 진정 위대한 수령님은 사령관이시기 전에 친아버지이시였고 친어머니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나어린 대원들을 키우시면서 제일 관심하신것은 사상교양이였다. 그이께서는 짬만 있으면 몸소 그들의 강사가 되시여 글도 배워주시고 명인들의 이야기도 들려주시였으며 우리 나라의 망국사도 해설해주시였다. 그러시면서 그들이 무장투쟁을 축으로 하는 전민항쟁만이 조국을 해방할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인식을 철저히 가지도록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사상교양사업과 함께 그들이 하루빨리 높은 군사기술적자질을 갖추도록 하는데 특별한 관심을 돌리시였다.

친히 그들을 위한 속성훈련강령도 작성해주시고 시범동작도 해보이시였으며 전투를 통하여 단련도 시키시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의 육친적사랑과 세심한 지도가 있었기에 어제날 철부지소년들은 필승의 신념과 불굴의 의지를 지닌 열혈투사들로, 숭고하고 진실하고 아름다운 의리를 지닌 참인간들로 성장할수 있었다.

하기에 그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을 친어버이로, 삶의 은인으로 높이 우러러모시고 따랐으며 그이의 안녕을 지키는 길에서 하나밖에 없는 생명도 서슴없이 바치였던것이다.

그들은 오늘도 태양을 옹위하는 위성의 모습으로 영생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