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 (1)중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선군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어온 열혈투사들의 맨 앞장에는 일찌기 10대의 어리신 몸으로 혁명의 길에 나서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께서 계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으로 뵈온것은 주체24(1935)년 3월 상순 삼도만유격구의 능지영에서였다.

이때 김정숙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소집하신 당비서처회의에 참가하시여 그이로부터 반《민생단》투쟁에서 지켜야 할 원칙과 방도에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게 되시였다. 꿈결에도 뵙고싶으셨던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고 그이의 위대성을 더욱 깊이 체득하게 되신 김정숙녀사께서는 영원히 그이의 혁명전사로 살며 투쟁하실 굳은 결의를 다지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그때로부터 얼마후인 주체24(1935)년 9월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여 혁명의 무기를 잡는것은 김정숙녀사께서 오래전부터 간직하고계시던 절절한 소망이였다. 조국의 독립도 혁명의 승리도 총대에 의해서만 이루어질수 있다는것은 김정숙녀사께서 간고한 생활체험을 통하여 체득하신 진리였다.

혁명의 무기를 수여받으시면서 김정숙녀사께서는 총가목을 굳게 틀어잡으시고 엄숙히 맹세다지시였다.

《나는 혁명선렬들의 피가 스며있고 인민들의 조국광복념원이 어리여있는 이 총을 잡고 김일성장군님께 끝까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이 총 한자루를 백자루로 알고 잡으며 이 총알 한발을 백발로 알고 원쑤를 쏘겠습니다.》

그후 총대로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령도를 받들어가시던 김정숙녀사께서는 사령부호위임무를 맡아 수행하게 될 친위중대에 편입되신 직후인 주체25(1936)년 봄 만강에서 또다시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뵙는 영광을 지니게 되시였다. 이날 한 녀대원과 함께 강가에 나오신 김정숙녀사께서는 노래를 부르시며 빨래를 헹구고계시였다. 이때 경계초소를 돌아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청아한 노래소리를 들으시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시였다.

뜻밖에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게 되신 김정숙녀사께서는 그이께 아직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한적이 없는 자신의 가정래력에 대하여 말씀드리였다.

김정숙녀사의 피눈물나는 가정래력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료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가의 사명과 보람, 풍모에 대한 강령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우리들은 자기들의 처지로 보아  누구보다도 혁명의 앞장에 서야 하며 혁명의 길에서 살고 혁명의 길에서 싸워야 한다고 하시면서 조국을 찾는 혁명사업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은 없으며 혁명의 길에서는 죽어도 영광이고 살아도 영광이라는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그리고 혁명을 잘하기 위하여서는 학습을 잘해야 하며 총을 쥐고 성스러운 혁명전선에 나선 장한 녀성으로서의 책임을 깊이 자각하고 훌륭한 녀투사, 녀성혁명가가 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무한한 영광속에 혁명가의 참된 인생관을 받아안으신 김정숙녀사께서는 그이의 가르치심대로 학습도 잘하고 전투도 잘하며 살아도 오직 친위전사의 행복속에 살고 죽어도 오직 친위전사의 영광을 안고 한목숨 바치며 혁명의 길에서 영원히 빛나는 별이 되실 맹세를 다시금 심장깊이 새기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이날의 맹세를 지켜 자신의 모든 생애와 활동을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령도를 충실히 받들어 나가는데 다 바치시였으며 군사정치활동에서 특출한 공적을 쌓아올리시였다. 그리하여 우리 인민들은 김정숙녀사를 《항일의 녀성영웅》, 《백두의 녀장군》으로 높이 칭송하게 되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의 슬하에서 비범한 혁명가로 성장하신 김정숙녀사께 있어서 수령결사옹위는 모든 삶과 투쟁의 전부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사선의 고비마다 한몸이 그대로 성새, 방패가 되시여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을 결사보위하시였고 그이의 사상과 로선을 옹위하는 길에서 추호의 타협도 모르시였으며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과 지시를 최상의 수준에서 제때에 무조건 관철하시였다.

주체29(1940)년 6월말,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 적극적인 분산활동으로 일제를 격멸소탕하시던 시기에 있은 일이다. 주력부대의 한 대오를 친솔하고 소할바령일대로 진출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행군도중에 안도현 대사하치기라는 고장에서 불의에 적들과 조우하게 되시였다. 맞다든 적은 《신선대》라고 불리우는 악질적인 부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산중턱에 지휘처를 잡으시고 언제나와 같이 대원들을 고무하며 전투를 지휘하시였다.

이때 그이의 가까이에서 적들의 움직임을 예리하게 살피시던 김정숙녀사께서는 대여섯명의 적들이 갈밭에 몸을 숨기고 지휘처를 향해 접근해오는것을 발견하시였다. 포연탄우속을 헤치시며 10년세월 위대한 수령님께서 넘고넘으신 위험의 고비가 한두번이 아니였지만 이때처럼 아슬아슬한 순간은 일찌기 없었다.

이 위기일발의 순간, 《사령관동지!》라는 위급한 웨침소리와 함께 김정숙녀사께서는 번개같이 몸을 솟구치시였다. 온몸이 그대로 방패가 되신 김정숙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막아서며 방아쇠를 당기시였다. 야무진 한방의 총소리가 울리는 동시에 앞의 놈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련이어 또 한방의 총소리가 울리자 다음놈이 쓰러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어느새 김정숙녀사의 어깨너머로 쏘신 총소리였다. 두분의 백두산장군들께서 연거퍼 쏘시는 명중탄에 기여들던 적들은 순식간에 소멸되였다. 김정숙녀사의 희생적인 투쟁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은 무사하게 되였다.

후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이때를 회상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그날 김정숙이 아니였더라면 큰일이 일어날번 했습니다. 그는 몸으로 나를 막아서며 달려드는 적들을 모조리 쏴갈기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였습니다.》

김정숙녀사께서 자신의 한몸을 서슴없이 내대여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을 보위하신적은 이때뿐이 아니였다.

주체25(1936)년 8월에 있은 무송현성전투때도 김정숙녀사께서는 불과 7∼8명밖에 안되는 녀대원들로 잘루목을 결사적으로 지켜내여 적들의 공격으로부터 사령부의 안전을 보장하시였으며 주체29(1940)년 3월의 홍기하전투때에는 사령부가 위치한 고지릉선으로 집요하게 달려드는 적들을 자신에게로 유인하심으로써 위대한 수령님의 신상에 미쳤던 위험을 희생적으로 막아내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사령부의 작식공작도 맡아보시였는데 늘 식초를 가지고 다니시였다. 적들이 독약을 친 소금을 들여보내는 등 사령부를 해치기 위해 악랄하게 책동하는 조건에서 그것을 제때에 적발하기 위해서였다. 주체28(1939)년 봄 독약을 친 소금으로 혁명의 사령부와 주력부대를 해치려던 일제의 간악한 흉계도 김정숙녀사의 이러한 예견성있고 철저한 조치에 의하여 제때에 적발되게 되였다.

참으로 엄혹했던 항일혁명의 나날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의 신변을 결사보위하신것은 김정숙녀사께서 조국과 민족앞에 쌓으신 불멸의 업적중의 업적이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로선, 작전적방침을 결사옹호하기 위한 투쟁에서도 그 누구보다 견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로선을 절대불변의 좌우명으로 여기신 김정숙녀사께서는 그이의 사상과 로선으로 자신을 철저히 무장하시였으며 그와 어긋나는 사상에 대하여서는 추호도 타협하지 않으시고 견결히 반대하여 투쟁하시였다. 고난의 행군이 2단계로 들어서던 때인 주체28(1939)년 1월 상순 김정숙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분산행군방침에 따라 부상자들과 병약자들 그리고 녀대원들을 인솔하고 청봉밀영에 들어가게 되시였다. 그런데 현지에 도착해서 보니 밀영에는 침체와 무질서, 저조한 기운이 떠돌고 밀영책임자는 식량을 마련하고 예비병실을 지어놓을데 대한 사령부의 지시도 집행하지 않고있었다. 그는 일제의 《토벌》에 겁을 먹고 사상적으로 변질되여 혁명을 포기하고있었다.

사태의 엄중성을 간파하신 김정숙녀사께서는 즉시 병실부터 꾸리고 밀영의 분위기를 일신시켜나가시는 한편 대원들을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으로 무장시키기 위한 학습을 정상화하도록 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학습은 밀영에서 하나의 움직일수 없는 일과로 되게 되였다.

어느날 밀영에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남패자회의에서 하신 연설에 대한 학습토론을 하게 되였다.

그런데 밀영책임자 엄가는 올겨울과 같이 정세가 불리한 혁명의 《저조기》에는 적들과의 정면대결을 피하고 일단 물러서서 유리한 정세가 조성되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리론》을 들고나오는것이였다. 지어 그는 조선인민혁명군 부대가 국경일대에로 진출하는것을 《무모한 행동》이라고 시비중상해나서기까지 하였다. 이것은 적극적인 군사정치활동으로 일제의 대규모적공세에 대처해나갈데 대한 남패자회의방침에 대한 정면도전이였다.

그의 이러한 그릇된 궤변은 즉석에서 단호한 타격을 받았다.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로선을 조금이라도 헐뜯거나 반대하는 행위에 대하여서는 추호의 타협도 모르시는 김정숙녀사께서 그의 궤변을 여지없이 론박하신것이다.

김정숙녀사께서는 혁명의 《저조기》를 떠들면서 적과 싸우지 않고 국경연안에도 진출하지 말아야 한다는것은 사령관동지의 혁명로선에 배치되는 매우 불건전하고 위험한 견해라고 하시면서 우리는 사령관동지께서 제시하신 혁명로선과 방침의 정당성과 의의를 더욱 깊이 인식하고 그것을 철저히 옹호고수하며 무조건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김정숙녀사의 원칙적인 투쟁으로 자기의 기회주의적이며 투항주의적인 반혁명적정체가 여지없이 드러나게 되자 밀영책임자는 자기의 더러운 정체를 가리워보기 위해 《간첩단사건》까지 조작하였다. 그리고 김정숙녀사를 비롯한 대원들을 《간첩》혐의자로 몰아 체포하고 악착한 고문까지 들이대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간첩조직》의 구체적인 내막을 밝히라고 따지고 드는 그자에게 우리는 조선인민혁명군 대원이다, 우리는 김일성장군님의 전사다, 너는 누구냐? 너는 혁명의 원쑤다, 혁명은 네놈을 용서하지 않을것이다, 똑똑히 기억하라, 너는 혁명앞에 지은 죄로 하여 처단을 면치 못할것이다라고 추상같이 웨치시며 견결히 맞서싸우시였다. 이렇게 되여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로선은 고수되였다. 그후 김정숙녀사께서는 주체28(1939)년 4월 북대정자에서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지휘원 및 병사대회에서 엄가의 변절행위를 비판하시면서 참가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높은 정치적각성과 혁명적신념을 가지고 사령관동지의 혁명사상을 견결히 옹호고수하여야 하며 그이의 혁명사상을 헐뜯는 현상에 대하여서는 날카로운 투쟁을 벌려야 합니다.

사령관동지의 혁명사상을 목숨으로 지킵시다. 이것은 우리의 가장 숭고하고 영예로운 임무입니다.》

실로 김정숙녀사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로선의 절대적인 신봉자이시고 견결한 옹호자이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로선을 견결히 옹호하시였을뿐아니라 실천적활동으로 결사관철해나가시였다. 항일혁명의 나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렵고 중요한 과업이 제기될 때마다 자신께서 가장 믿으시는 김정숙녀사께 그 임무를 주시군 하시였다. 그때마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이것을 자신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으로 받아들이시고 언제나 맡겨진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 도천리에서 진행하신 혁명활동은 그 많은 사실들중의 하나이다.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하강구일대의 사업을 추켜세우고 신파통로를 개척하여 흥남, 함흥, 북청, 원산을 비롯한 국내의 동해안일대에 조국광복회조직망을 확대할데 대한 임무를 받으신 김정숙녀사께서 도천리로 들어가신것은 주체26(1937)년 4월초였다.

엄옥순이라는 가명으로 자신을 위장하신 김정숙녀사께서는 언제나 인민을 믿고 인민의 힘에 의거해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지침으로 삼으시고 인민들속에 깊이 들어가는것으로부터 지하공작을 시작하시였다. 낮에는 밭머리에서 마을사람들과 같이 일하시면서 허물없이 이야기도 나누시고 저녁에는 또 저녁대로 집집을 찾으시여 사람들과 낯도 익히시였으며 지극한 정성으로 마을사람들의 가슴속에 맺혀있는 설음과 아픔도 가셔주시였다. 이러한 고결한 풍모로 하여 김정숙녀사는 마을사람들의 신임을 받는 딸이 되고 이웃이 되시였으며 마을사람들은 김정숙녀사를 《우리 옥순이》라고 친근하게 부르게 되였다.

이 과정에 자연스럽게 활동할수 있는 토대도 마련하시고 도천리일대의 형편과 지하조직들의 실태도 깊이 료해하신 김정숙녀사께서는 지하활동에서 나타나고있는 편향들을 하나하나 바로잡아주시고 앞으로의 활동에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중요한 가르치심도 주시면서 능숙한 조직적수완으로 혁명조직을 확대강화하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가시였다.

결과 짧은 기간에 하강구와 중강구, 상강구를 비롯한 넓은 지역들에 혁명조직들이 급속히 뻗어나가게 되였으며 혁명조직을 통하여 선발되고 육성된 수많은 핵심청년들이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였다. 그 수는 도천리에서만도 10여명, 하강구에서는 100여명이나 되였다.

혁명임무에 대한 높은 책임성을 지니신 김정숙녀사께서는 도천리에서의 공작기간 국경을 무려 수십번이나 넘나드시며 신파통로를 개척하기 위한 사업도 동시에 추진시키시여 신파일대에 강력한 지하조직망을 꾸리시고 국내깊이에로 조직을 확대할수 있는 튼튼한 발판을 마련하시였다.

사실 다른 곳과 달리 국경일대는 일제가 가장 삼엄한 경계를 펴고있는 곳이여서 여기를 넘나드는것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할 일이였다. 그런데 김정숙녀사께서는 이렇듯 위험천만한 곳을 한두번도 아니고 수십번씩이나 오고가셨던것이다. 국경을 넘어 수십번, 진정 이 길은 위대한 수령님께 끝없이 충직한 친위전사이신 김정숙녀사께서만이 걸으실수 있은 무한한 헌신의 길이였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명령관철을 위해 정력적인 활동을 진행하시던 김정숙녀사께서는 그만 적들에게 체포되게 되시였다. 적들은 가혹한 고문과 회유기만으로 김정숙녀사의 불굴의 의지를 꺾어보려 했지만 김정숙녀사께서는 조직의 비밀을 지켜 완강히 투쟁하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최후를 각오하시고 조직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시였다.

《안심하십시오. 나는 죽을것입니다. 그러나 조직은 살것입니다. 나의 재산의 전부인 2원을 보냅니다. 조직의 자금으로 써주십시오.》

이 편지는 혁명조직을 지켜 자신의 생명도 서슴없이 바치시려는 김정숙녀사의 숭고한 사상정신세계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조직에서는 아무 죄도 없는 량민을 불법체포한데 대하여 강력한 항의를 들이대는 동시에 하루밤사이에 500명의 량민보증서를 만들어 김정숙녀사를 석방시키기 위한 비상구출작전을 벌리였다. 적들은 절대로 실행할수 없다고 생각했던 500명의 량민보증서를 보자 별수없이 김정숙녀사를 석방하지 않을수 없었다. 인민들의 절대적인 신뢰와 지지에 의하여 역경에서 구원되신 김정숙녀사는 얼마후 사령부로 돌아오시여 위대한 수령님께 승리의 보고를 드리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 수령결사옹위의 길에서 꽃피우신 이 가슴뜨거운 이야기들은 결코 그 어떤 비범한 계기가 있어 마련된것은 아니였다. 그것은 자나깨나 가까이에 있으나 멀리 있으나 기쁠 때에나 괴로울 때에나 항상 위대한 수령님만을 그리고 따르며 그이를 위해 모든것을 다 바쳐오신 김정숙녀사의 무한한 헌신성, 혁명적동지애의 숭고한 발현이였다.

돌이켜보면 김정숙녀사께서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동지들을 위해 한생을 살아오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 일생동안 해놓으신 모든것은 다 동지들을 위하고 민족을 위하고 혁명을 위한것이였지 자신을 위한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김정숙녀사께서 지니신 이 혁명적동지애는 위대한 수령님께 모든것을 바치신 무한한 헌신성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그리고 가장 숭고한 높이에서 표현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이에 대하여 《김정숙의 동지애는 나를 위한 노력, 나를 위해 자기를 깡그리 바친 헌신성에서 제일 두드러지게 표현되였습니다. 자기 사령관에 대한 충실성도 그 본질은 동지애라고 말할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항일의 나날에 있었던 가슴뜨거운 일들을 감회깊이 추억하시였다.

어느해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끄신 대오는 식량이 떨어져 몇끼씩 굶으면서 전투를 계속하고있었다. 그이께서 한창 전투를 지휘하고계시는데 누군가 그이의 주머니에 무엇을 넣어주는것이였다. 돌아보시니 김정숙녀사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투가 끝난 다음 주머니의것을 꺼내여 보시니  그것은 잣을 알알이 까서 종이에 싼것이였다.

그이께서 김정숙녀사께 어디서 얻은 잣인가고 물으시자 김정숙녀사께서는 미소만 지으실뿐이였다. 후날 다른 녀대원들에 의하여 사연이 알려진 그 잣은 김정숙녀사께서 직접 잣나무에 올라가시여 따오신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산에서 여러해동안 입고계시던 명주솜외투에도 김정숙녀사의 지극한 정성이 깃들어있었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총알이 명주솜을 뚫지 못한다는것을 아시고 어떻게 해서든지 명주솜을 장만하여 위대한 수령님께 솜외투를 지어드릴것을 결심하시였다. 사실 산에서 명주솜이나 털실을 구한다는것은 쉽지 않은 일이였다. 바늘 한쌈을 얻자고 해도 싸움을 해야 하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을 위해서라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오고 돌우에도 꽃을 피우실 일념을 지니신 김정숙녀사께서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명주솜을 모아두셨다가 며칠밤을 새워 솜외투를 완성하시여 위대한 수령님께 드리시였다.  

어느해 겨울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정숙녀사의 남다른 정성앞에서 본의아니게 성을 내신적이 있었다.

김정숙녀사께서 위대한 수령님의 옷을 빨아 자신의 몸에 품어 말리시였다는 이야기를 들으신것이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사실을 아시고 아연하시여 김정숙녀사를 사령부로 부르시였다. 그이께서는 너무나 얼어서 얼굴이 파랗게 질린 김정숙녀사를 보시는 순간 눈물이 날것 같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숙동무, 나를 위한 동무의 정성에는 나도 머리를 숙인다, 그것만은 늘 고맙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동무가 어쩌자고 그런노릇을 하는가, 그러다가 촉한이라도 만나면 어떻게 할텐가, 동무가 자기를 희생한 값으로 내가 덕을 보게 된다면 내 마음이 편안하겠는가,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자 김정숙녀사께서는 가볍게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것이였다.

《제 고생이야 고생이랄게 있습니까. 장군님만 무탈하시게 된다면 …》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정숙녀사앞에서 성을 내시였지만 김정숙녀사를 돌려보내시고나서 눈물을 흘리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 자신을 위해 기울이시는 정성속에 어머님께서 못다 주시고 간 사랑도 겹쳐져있는것만 같은 생각이 드시였던것이다.

온몸의 열기를 빼앗겨 오한에 떠시면서도 입술을 깨물며 그것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시던 김정숙녀사의 모습은 정녕 자기 수령을 위하여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가는 친위전사의 아름답고 숭고하고 진실한 모습이였다.

이처럼 김정숙녀사는 무한한 헌신성과 희생성을 지니시고 한몸으로 위대한 수령님께 날아오는 총탄도 눈비도 촉한도 다 막아나서신 친위전사의 위대한 귀감이시였다.

오늘도 항일의 녀장군 김정숙녀사께서는 우리 인민들의 마음속에 영원한 친위전사의 모습으로 서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