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정일장군님과 민족대단결」중에서

 

  력사는 단순히 시간의 연장이 아니다.

위대한 력사에는 그것을 개척하고 창조하는 위인의 사상과 의지, 비범한 용단과 특출한 령도실력이 슴배여있다.

오늘 이 땅에 흐르는 민족대단결과 자주통일의 력사에는 나라와 민족이 갈라져 55년만에 처음으로 력사적인 평양상봉을 마련하시고 온 겨레의 가슴마다에 조국통일의 리정표인 6.15공동선언을 안겨주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불멸의 령도가 깃들어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위한 7천만겨레의 통일운동과 내외정세에서 새로운 변화들이 일어나고있던 주체89(2000)년 3월 조종의 산 백두산을 찾으시여 위대한 수령님의 조국통일유훈을 받들어 평양에서 북과 남사이에 최고위급회담을 여실 웅대한 구상을 무르익히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원대한 구상과 통일의지, 담대한 결단에 의하여 주체89(2000)년 4월 8일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최고위급회담을 진행할것을 온 겨레앞에 확약한  4. 8북남합의서가 발표되게 되였다.

4. 8북남합의서의 발표는 민족사적사변의 도래를 예고한 첫 포성이였다.

4. 8합의서의 채택은 삽시에 북과 남, 해외의 온 민족을 환희의 꽃물결속에 설레이게 하였으며 전세계를 커다란 충격과 놀라움으로 법석 들끓게 하였다.

합의서발표후 남조선에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북남수뇌회담이 《바람직하다》는 사람이 81%에 달했다.

또한 남조선의 각 정당, 사회단체들에서도 평양상봉을 환영하는 모임과 담화들이 진행되고 북남최고위급회담을 지지하는 성명들이 련이어 발표됐다. 당시 남조선의 집권여당인 《민주당》은 6월 13일 아침 북남수뇌회담을 통하여 《55년 불신과 대립의 력사를 뛰여넘어 민족사적전환 점이 마련되기를 간절히 념원한다.》고 밝혔고 극우보수정당까지도 대세에 밀리워 최고위급회담의 《성과를 기원》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한편 서울의 경복궁앞에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환하신 영상을 모신 특대형벽화가 모셔졌고 부산 우동의 도꾜호텔 외벽에는 가로 15m, 세로 5m로 된 경애하는 장군님의 영상사진이 모셔져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그런가 하면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남조선각지의 수십여개 대학들에는 공화국기가 휘날리고 조선반도지도가 내걸려 평양으로 향하는 남녘인민들의 뜨거운 마음을 엿볼수 있게 하였다.

또한 서울에서는 7천여명 시민들의 참가하에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하는 국민들의 겨레합창축제》가 열리였다.

이처럼 온 남녘땅은 민족분렬 55년만에 처음으로 열리는 최고위급회담을 앞두고 커다란 환희와 격정에 휩싸였으며 민심은 불도가니마냥 끓어번지게 되였다.

세계의 이목도 평양으로 쏠렸다.

중국과 유럽동맹성원국들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는 평양상봉날자가 다가오자 이에 적극적인 지지와 환영을 보냈다.

중국외교부 대변인은 평양수뇌회담이 긍정적인 성과들을 거두어 북남관계와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유지에 기여하기를 바란다는 립장을 표명하였다.

당시 유엔사무총장 코피 아난도 유엔대변인을 내세워 발표한 성명에서 북남수뇌회담을 개최한 김정일국방위원장의 구상과 지혜에 경의를 표하고 이번 회담이 북남통일은 물론 조선반도와 그 주변지역의 항구적평화와 안정을 향한 전환점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혔다.

지어 로마교황 요한 바오로2세까지도 이례적인 축하성명을 발표하여 《전세계인들과 함께 조선반도에 평화가 깃들고 민족의 대화합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고 하였다.

한편 판문점에서는 4. 8북남합의서에 따라 4월말부터 근 한달동안에 걸쳐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북남최고위급회담준비를 위한 5차례의 준비접촉을 비롯하여 여러 갈래의 실무접촉들이 련이어 진행되였다.

그리하여 긴장감만 떠돌던 적막한 판문점에는 갑자기 사람들과 차량들로 붐비고 전화기가 만가동으로 울어대는 전례없이 분주한 분위기가 조성되였으며 남측선발대 성원들은 꼬리를 물고 판문점분리선을 넘나들었다.

그무렵 력사적인 중국방문을 마치시고 끊임없는 전선시찰의 길을 이어가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평양상봉을 위한 북과 남사이의 준비접촉과 부문별실무접촉 진행정형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시고 그 준비사업을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였으며 주체89(2000)년 6월 3일에는 두번째로 평양에 들어온 남측《특사》일행을 오랜 시간 접견해주시고 남측당국자의 평양방문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일련의 문제들에 대하여 사리정연하게 가르쳐주시였다.

후날 《특사》일행은 한결같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모든 문제들을 정말 정확하게 통찰하고계시고 이야기도 얼마나 째이게, 론리정연하게 하시는지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들속에는 국방위원장님은 정말 다재다능하시고 위대한분이시라는것을 느꼈다고 하면서 옛날부터 부벽루의 달풍경이 유명하다고 하였는데 달은 비록 보지 못하였지만  국방위원장님을 만나뵈옴으로써 하늘의 태양을 보았다고 격찬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처럼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아래 이 땅에는 세계를 놀래우는 력사의 순간이 하루하루 다가오고있었다.

우리 겨레는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또 하나의 경이적인 사변을 안아오신 경애하는 장군님께 가장 뜨거운 감사의 인사를 드리면서 평양상봉의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여 조국청사에 금문자로 아로새겨질 그날은 밝아왔다.

주체89(2000)년 6월 13일 오전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온 민족, 온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남측당국자를 영접하기 위하여 친히 비행장에 나오시였다.

눈부신 아침해발을 받으시며 환하신 미소를 지으시고 걸어나오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우러러 폭풍같은 만세의 환호성이 터져올라 온 천지를 진감하였다.

너무도 력사적이고 감격적인 순간이여서 취재나왔던 남측의 기자들도 한동안 취재할념을 감감 잊고 환영군중이 되여 열광적인 박수갈채를 터쳤다.

태양과도 같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모습을 뵈온 남측《대통령》과 일행은 한동안 어쩔바를 몰라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력사상 처음으로 마련된 북남수뇌상봉을 위해 평양으로 온 남측당국자를 동포애의 정으로 따뜻이 맞아주시였다.

남측당국자는 몸소 비행장에까지 마중나오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한없이 넓은 도량과 포옹력에 북받치는 충동과 격정을 감추지 못하며 그이께 다함없는 감사의 인사를 올리였다.

진정 그 순간은 분렬 55년동안 얼어붙었던 《반북》의 동토대가 순식간에 허물어지는 력사의 순간이였고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가슴에 루적되였던 오해와 불신의 감정이 봄날의 눈석이마냥 녹아내리는 격동적인 순간이였다.

력사적인 그 시각 평양상봉을 취재하기 위하여 서울 롯데호텔 기자쎈터에 모여 만단의 취재준비를 갖추고있던 남조선의 111개 언론사 772명과 세계 각국의 173개 언론사 503명을 포함한 1 275명의 기자들은 태양과도 같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위풍당당히 걸어나오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대한 영상이 대형전광화면에 비쳐지자 일제히 환성을 올리며 요란한 박수갈채를 터쳤다. 그중에는 눈물까지 흘리며 박수를 치는 기자들도 있었다.

남조선의 출판물들은 이때의 충격과 흥분을 이렇게 피력했다.

《박수에 린색하기로 소문난 기자들사이에서 환호의 눈물 그리고 박수가 누가 먼저랄것없이 터져나왔다.》, 《서울 롯데호텔 기자쎈터에서는 공항영접행사장면이 중계되고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모습이 방영되는 순간 내외기자모두가 박수갈채를 터치였다. 원고송신을 단념하고 기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김정일위원장이 나오시다니> 하며 첫번째 박수갈채를 터치며 환호성을 올리였다. 두번째 박수갈채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다리를 절며 내린 대통령을 두손으로 잡아주시는 순간에 터졌으며 세번째 박수갈채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대통령과 같이 승용차에 오르자 <와> 하고 고함을 지르며 터치였다. 온 남녘민중의 기대와 희망을 파악하시고 그대로 만족시켜주신셈이다.》

이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남측당국자와 함께 조선인민군 륙해공군명예위병대를 사열하신 다음 그를 자신의 차에 태우시고 평양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시며 환영일색으로 단장한 중심거리들을 돌아 숙소로 정해진 백화원영빈관으로 향하시였다.

6월 14일 오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남측당국자와 단독회담을 진행하시였다.

이것은 분렬 55년만에 처음으로 북과 남의 수뇌분들이 마주앉아 나라의 통일과 민족의 장래문제를 허심탄회하게 토의하는 력사적인 회담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겸허한 자세로 남측당국자에게  먼저 발언권을 주시였다.

남측당국자는 그래도 주인이 먼저 말씀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발언하시기를 정중히 요청하였다.

그러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근엄하신 어조로 북남상봉이 진행되고있는 이 순간에 남조선에서 불쾌한 사건이 일어나고있는데 대하여 준렬히 말씀하시였다.

동족으로서 례의는 지켜주시면서도 민족의 근본리익과 조국통일의 대명제앞에서는 비록 사소한것이라 할지라도 추호의 타협을 모르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원칙적인 립장과 당당한 주장앞에서 남측당국자는 어찌할바를 몰라 당황해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정신이 들었다고, 우리쪽에서 많이 잘못했다고 사죄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남측에서 잘못을 깨닫고 반성해나오는 조건에서 기본문제토의에 들어가시여 남측당국자에게 발언권을 넘겨주시였다.

그러자 그는 북남수뇌회담의사를 밝힌 2000년 3월의 이른바 《베를린선언》에서 표명한바대로 《평화정착》, 《경제협력》,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과 같은 판에 박은 말만 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의 말을 마지막까지 들으시고나서 그런 문제는 이미 북남합의서에 다 있는데 무엇때문에 되풀이하겠는가고 하시면서 2000년대를 맞이하는 첫해에 우리가 55년만에 처음으로 상봉하는것만큼 7천만겨레에게 조국통일에 대한 희망과 미래에 대한 락관을 주는 선언적인 문건을 하나 내놓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 제안에는 북남수뇌회담을 계기로 온 민족에게 21세기 조국통일의 리정표로 되는 최상의 선물을 안겨주시려는 한없이 숭고한 뜻이 담겨져있었다.

이에 남측당국자도 동의하지 않을수 없었다.

련이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선언적인 문건에 담을 우리의 자주통일사상과 합리적인 통일방안들을 철의 론리로 펴나가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의 민족문제는 어디까지나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하지 않겠는가고 하시면서 오늘 우리들사이에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가기로 합의한것으로 하자고 힘있게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다음으로 우리는 오래전부터 서로 다른 리념과 체제가 존재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서로 다른 두 제도의 공존에 기초하여 련방제방식으로 통일하자는것이라고 하시면서 통일방도에 대한 합의를 쉽게 하기 위하여 우리의 낮은 단계의 련방제안과 남측의 《련합제안》에 공통성이 있으므로 두 제안을 조절하여 공동의 통일방도를 만들어 통일을 지향해나가자고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당한 말씀에 남측당국자는 이번에도 동의하였다.

계속하여  회담에서는 쌍방이 다같이 관심하고있는 인도주의사업으로서 북과 남으로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방문단교환문제와 비전향장기수송환문제 그리고 북과 남사이에 협력과 교류를 실현할데 대한 문제와 당국사이의 대화를 개최할데 대한 문제에 대하여서도 련이어 합의가 이루어졌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렁우렁하신 음성으로 이제 공동선언이 나가면 아마 세상이 또 한번 놀랄수 있다고, 북과 남이 민족주체를 찾았다고 할것이라고, 바로 우리 민족끼리 한다는것이 중요하다고, 《우리 민족끼리》라는 이 말에 방점이 있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이처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명명백백한 철의 론리와 애국애족의 주장으로 회담을 주도하시여 불과 4시간동안에 오래동안 대결상태에 있던 북과 남사이의 관계를 화해와 협력에로 방향전환시키시고 민족문제, 통일문제를 해결하는데서 나서는 중대한 문제들에 대한 훌륭한 합의를 마련해주시였다.

이러한 성과는 회담력사상 전례가 없는 기적중의 기적이 아닐수 없었다.

이것은 전적으로 비범한 예지와 통찰력, 담대한 결단과 대범한 포옹력을 지니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위대한 정치실력이 낳은 산물이였다.

그날 저녁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목란관연회장에서 남측당국자의 손을 잡고 높이 쳐드시며 북남공동선언의 채택을 온 세상에 힘있게 선포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6. 15북남공동선언의 채택을 선포하시자 장내에서는 폭풍같은 환호와 우렁찬 박수가 터져올랐다.

경사에 경사가 겹친 이 순간 모든 연회참가자들은 요란한 박수를 터치며 환희와 기쁨의 눈물을 흘리였다.

진정 그 순간은 우리 민족끼리의 함성이 북남삼천리에 힘있게 메아리치는 뜨거운 감격과 격정의 순간이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남측당국자와 함께 공동선언문초안을 검토하시는 장면을 목격한 한 남측특별수행원은 《아마 만찬장에서 북남수뇌분들이 합의문초안을 검토하고 또 수정지시를 하며 다시 합의에 이르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우리라》고 탄성을 올리였다.

목란관연회가 끝난 14일 밤 백화원영빈관에서는 공동선언의 채택을 정식 확인선포하는 서명식이 있었다.

선언문서를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펜을 드시고 박력있고 활달한 필체로 순식간에 자신의 존함을 휘날려쓰시였다.

불꽃을 튕기듯 빠르고 하늘을 날으듯 단숨에 휘날려쓰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친필존함을 우러르는 남측수행원들의 얼굴마다에는 경탄과 놀라움으로 차넘치였다.

거침없이 힘있게 내달려쓰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서명필체에는 6. 15공동선언의 기치를 높이 추켜들고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우리 민족끼리 결단코 통일의 아침을 안아오시려는 민족자주의 기상이 력력히 맥박치고있었다.

서명을 마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남측당국자의 손을 뜨겁게 잡으시고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우리는 력사적인 북남공동선언에 서명하였다고, 력사적인 북남공동선언이 채택된것을 축하하여 모두 같이 축배를 들자고 말씀하시였다.

또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력사적인 오늘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하여 다같이 기념사진을 찍자고 하시며 남측당국자일행과 뜻깊은 기념촬영을 하시였다.

바로 이렇게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한 지도와 구체적인 보살피심에 의하여 주체89(2000)년 6월 15일 평양에서는 조국통일과 민족대단결실현에서 또 하나의 리정표로 되는 력사적인 6. 15북남공동선언이 채택발표되게 되였다.                                                            

6. 15북남공동선언은 오래동안 끊어졌던 민족의 혈맥을 이어놓고 대결의 찬바람으로 굳게 얼어붙었던 이 땅에 화해와 통일의 열풍을 몰아온 새 력사의 장엄한 포성이였고 우리 겨레가 단일민족의 모습으로 돌아와 서로 도우며 화목과 번영을 이룩해나갈것을 약속한 민족협력선언, 민족대단결선언이였으며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앞당겨나갈것을 내외에 엄숙히 선포한 투철한 자주선언이였다.

정녕 6. 15북남공동선언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의 전행정에서 시종일관 견지하여오신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리념을 철저히 구현하기 위하여 불면불휴의 심혈을 다 바치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세련된 령도에 의하여 마련된  빛나는 결실이였다.

이처럼 6. 15북남공동선언이 채택된 력사적인 평양상봉기간은 다 합하여 불과 55시간이였다.

력사에서 55시간이라는 기간은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길지 않은 력사적인 평양상봉기간에 우리 민족사에 길이 빛날 불멸의 공헌을 하시였으며 뛰여난 실력가형의 지도자, 정치가로서의 위인적풍모를 온 세상에 남김없이 과시하시였다.

6. 15북남공동선언은 온 삼천리를 커다란 환희와 격정속에 휩싸이게 하였다.

우리 민족은 공동선언의 구절구절을 심장에 새기며 애국애족의 통일리념과 출중한 정치실력으로 력사적인 북남공동선언을 마련하신 경애하는 장군님을 우러러 삼가 뜨거운 감사를 올리였다.

한편 우리 겨레는 평양상봉을 통하여 어느 해볕이 대결과 분렬의 장벽을 녹이는 진짜 해볕인가를 다시한번 똑똑히 알게 되였다.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6. 15북남공동선언의 채택은 온 남녘땅을 폭풍같은 격정과 환희로 끓어번지게 하였다.

남조선의 모든 신문들에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고 남측당국자와 력사적인 상봉을 하시는 장면을 일제히 신문 1면에 모시였다.

남조선의 《경향신문》은 1면 전면이 꽉 차게 력사적인 평양상봉때의 사진을 모시면서 아무런 설명문도 달지 않았다.

이에 대해 남조선의 뉴스전문 인터네트신문 《오마이 뉴스》는 《<경향신문> 1면은 제목도 글도 광고도 일절 없다. 오직 김정일국방위원장과 김대중대통령의 악수  장면뿐》이라고 하면서 전례없는 편집형식을 크게 찬양하였다.

《경향신문》을 받아든 많은 독자들도 편집국으로 전화를 걸어 《신선하다》, 《시원하다》, 《이 력사적사변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느냐》고 하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남조선신문 《동아일보》(2000. 6. 15)는 《…통일문제의 자주적해결, 남북통일방안의 공통점 모색, <리산가족>상봉과 경제, 사회 등 다방면의 교류협력 및 당국간 대화 계속 등 5개항은 <우리도 할수 있다, 통일을 이룰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그것도 생방송으로 전세계, 온 인류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룩한 합의이기때문에 그 약속이 더욱 값지다. 이제 남북관계는 한개의 큰 산을 넘었다. 단 한번의 만남으로 이런 정도의 합의를 도출해낸것은 수뇌회담의 력사에서 일찌기 없었던 일이다.》고 피력했다.

또한 남조선의 주간잡지 《시사져널》(2000. 6. 22)은 《력사적인 평양상봉이 성공리에 개최됨으로써 올 한해 세계평화의 주제는 단연 한반도로 떠올랐다. 력사적인 평양상봉순간과 합의내용은 이 기간에 구름처럼 서울로 모여 든 외신기자 수백명을 통해 지구상 곳곳으로 실황중계되였다. 단군이래 한반도의 정치지도자가 한순간에 이처럼 극적으로 세계의 눈과 귀를 끌어모은적은 없었다. 무대는 한반도이지만 관객은 전세계인이 되는 이번 세계사적  대사건에서 무대중앙에 선 사람은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이였다.》라고 하였다.

한편 남조선의 《KBS》와 《MBC》, 《SBS》의 공동시청률조사에 의하면 평양상봉과 관련한 각  TV방송국의 보도시청률은 보통때의 2∼4배로서 최근년간의 최고기록을 돌파하였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남조선의 각계각층 인민들과 정당, 단체들은 공동선언이 발표되자 그를 지지환영하는 글들과 성명을 잇달아 발표하였다.

남조선신문 《한겨레》(2000. 6. 15)에는 이런 시 한편이 실렸다.

   

            푸른 숲 빽빽이 어우러져

            초록으로 북상하오니

            곱게 무르익어 아름다운

            단풍으로 남하하소서

당시 남조선의 《민주당》은 북남공동선언이 발표되자 즉각 《이번 합의문은 남북<정상>들이 직접 만나 허심탄회하게 론의하고 세계인이 주목하는 가운데 공동선언에 합의함으로써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대전환점을 마련했다.》고 평하였고 야당인 《자민련》까지도 《반세기의 분단력사에 종지부를 찍는 결정적초석을 쌓았다.》고 지지립장을 밝혔다.

평양상봉의 성과에 대한 지지와 찬양의 목소리는 남조선뿐만아니라 전세계적판도에서 높이 울려퍼졌다.

중국공산당 총서기와 로씨야대통령은 탁월한 령도로 이번 회담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둔것을 진심으로 환영하면서 경애하는 장군님께 축하의 뜻을 담은 전보와 친서를 보내왔다.

그리고 세계 180여개 나라의 국가 및 정부수반들과 정당, 단체책임자들도 공동선언의 채택을 《세계를 진감시킨 특대사변》, 《김정일각하의 애국애족의 대용단이 낳은 빛나는 결실》, 《조선통일의 휘황한 전망을 펼쳐놓고 조선민족앞에 화해와 단합의 문을 열어놓은 결정적계기》라고 하면서 적극적인 지지와 찬동을 표시하였다.

세계 각국의 통신, 방송들도 선언의 내용을 상세히 전하면서 평양상봉과 공동선언의 채택에 대해 수뇌외교사에서 《회담 하루만에 구체적의제합의는 전례없는 일》, 《력사상 류례없는 빠른 합의》, 《2000년의 가장 멋진 사변》이라고 덧붙여 평가하였다.

당시 전세계가 력사적인 6. 15공동선언을 지구에 던진 《평양의 통일핵폭탄》으로 묘사한것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였다.

정녕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6. 15북남공동선언의 채택, 이것은 55년간의 조국통일운동사에 또 한돌기의 새로운 년륜을 수놓은 특기할만 한 사변이였다.

이것은 오직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펼치신 현명한 령도가 안아온 자랑찬 결실이였고 력사의 기적이였으며 현대정치의 신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