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 중에서

 

혁명은 수령의 혁명사상을 지도적지침으로 하여 개척되고 그것을 구현하는 과정을 통하여 승리적으로 전진하며 계승완성된다. 하기에 수령의 혁명사상은 혁명가의 제일생명이라고 하는것이다.

수령의 위업인 혁명을 승리적으로 전진시키자면 수령의 혁명사상부터 옹호고수하여야 하며 수령에 대한 충직성은 그 어떤 역경속에서도 수령의 혁명사상을 결사옹호하고 그 순결성을 견결히 고수해나가는데서 집중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수령의 혁명사상을 옹호고수하는것을 떠나서는 수령의 령도적권위를 백방으로 보장하는 문제도 수령의 사상과 의도대로 혁명을 전진시키는 문제도 해결될수 없다. 아무리 어렵고 복잡한 환경에 놓인다 해도 수령의 혁명사상의 순결성을 지키기 위해 한몸바쳐 투쟁하는 사람이라야 수령의 참다운 혁명전사, 수령결사옹위의 친위전사로 될수 있다.

백두의 녀장군 김정숙녀사께서는 항일혁명투쟁의 가장 어려운 시기였던 고난의 행군시기에 혁명전사는 수령의 혁명사상을 어떻게 옹호고수해야 하는가 하는 숭고한 모범을 보여주시였다.

주체27(1938)년 일제의 발악적인 반혁명적공세와 좌경모험주의자들에 의해 강요된 열하원정의 후과로 조선혁명앞에는 엄혹한 난국이 조성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성된 난관을 주동적으로 타개하고 조선혁명을 계속 앙양에로 이끌어올리기 위하여 주체27(1938)년 11월 25일부터 12월 6일에 걸쳐 몽강현 남패자에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를 소집하시고 혁명에서 자주적립장을 확고히 견지하고 정세를 옳게 판단하며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시급히 백두산을 중심으로 하는 국경지대에로 진출하여 광활한 지대에서 군사정치활동을 활발히 벌릴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솔하시는 제2방면군에 속하여 남패자를 떠나 압록강연안 국경일대에로의 행군길에 오르시였다.

이 행군이 력사에 널리 알려진 고난의 행군이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행군대오의 앞장에 서시여 백절불굴의 혁명정신과 무비의 영웅주의를 발휘하시였으며 강의한 의지, 혁명적동지애, 희생적인 노력으로 대원들을 고무하고 이끌어주시였다.

그러던 주체28(1939)년 1월 상순 부대가 분산행군에로 넘어가자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장백현 7도구치기에서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부상자들과 병약자들, 녀대원들을 인솔하고 청봉밀영으로 들어갈데 대한 임무를 받으시였다.

당시 청봉밀영에는 7련대 군수관인 엄광호가 사령부로부터 부대의 식량예비를 마련하고 적구의 파괴된 혁명조직들을 복구하며 부대가 동기군정학습을 진행할수 있도록 병실도 예견성있게 지어놓을데 대한 과업을 받고 파견되여있었다.

그러나 그는 사령부의 지시를 전혀 집행하지 않고있었다.

밀영을 책임지고있던 엄광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않고있었을뿐아니라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혁명로선과 방침들을 음으로양으로 헐뜯으면서 대원들속에 수령님에 대한 불신임을 조성하려고 교활하게 책동하였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기의 투항주의적본심을 드러내였다.

엄가놈은 이미 타락할대로 타락한 혁명의 배신자였다.

이자는 반《민생단》투쟁때 불건전한자들과 한짝이 되여 종파적행동도 감행하였고 군사규률도 란폭하게 위반하여 강직되였던 일까지 있었던자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꾸준히 교양도 하시고 개준되기를 바라시면서 그에게 중대정치지도원의 책임과 련대후방사업까지 맡겨주는 크나큰 믿음을 주시였다.

그런데 배은망덕하게도 이 모든 신임을 저버린 이자는 직위에 불만을 품고 맡은 임무를 그 어느것 하나 성실히 수행하지 않았던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밖에는 그 무엇도 모른다는 확고한 신념을 지니신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밀영에 도착하신 첫날부터 엄가놈의 정체를 꿰뚫어보시고 비타협적인 투쟁을 벌리시였다.

그러던 어느날 학습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였다.

그날 학습에서는 남패자회의에서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력사적인 연설 《조성된 난국을 타개하고 혁명을 계속 전진시키자》에 대한 토론을 하게 되였다.

김정숙녀장군을 비롯한 녀대원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연설에 담겨져있는 심오한 사상과 그 정당성 그리고 연설이 가지는 의의에 대하여 열렬히 토론하면서 아무리 정세가 어렵고 복잡하여도 새로운 투쟁방침을 기어이 관철하려는 불같은 결의를 다지였다.

그런데 엄광호가 불쑥 일어나더니 한동안 자기의 《유식》을 늘어놓고나서 토론이 모두 일리는 있으나 원만하지는 못하다면서 지금과 같은 곤난한 환경속에서는 혁명이 자연히 저조기에 들어선다는 얼토당토않는 투항주의적궤변을 늘어놓는것이였다.

엄가놈은 혁명에는 언제나 고조기와 저조기가 있는것만큼 올겨울처럼 적들이 대병력을 동원하여 대대적인 《토벌》을 들이대고 광범한 군중이 적의 백색테로앞에서 공포에 떨고있을 때에는 적과 정면으로 대결할것이 아니라 일단 뒤로 물러서서 유리한 정세가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줴쳤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치밀어오르는 분격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그 어떤 인식상 착오나 우연한 실수가 아니라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로선과 방침을 거역하는 그자의 근본립장과 태도에 참을수 없으시였다.

분연히 자리를 차고일어나신 김정숙녀장군께서는 혁명승리의 기본요인은 주체적혁명력량이라고 하시면서 엄가의 허황한 궤변을 준렬히 규탄하시였다.

《객관적정세는 혁명에 일정한 영향을 줄수 있으나 결정적인 작용은 놀수 없으며 공산주의자들은 불리한 정세를 혁명에 유리하게 전변시키기 위하여 더욱 과감하게 투쟁하여야 한다.

지금 혁명정세는 엄혹하다. 원쑤들의 발악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있다. 그렇다고 우리 혁명이 계속 저조기에 들어간다면 나중에는 어디로 갈것인가?

이것은 도피주의적이며 투항주의적인 견해이다.

인민의 자유와 조국의 해방을 위한 성스러운 싸움에 한몸바쳐나선 사람들이 난관이 두렵고 피흘리는것이 두렵다면 어찌 혁명을 할수 있겠는가? 침략자들은 결코 저절로 물러서지 않는다.

원쑤들을 때려부시기 위해서는 피도 흘려야 하며 중첩되는 난관을 뚫고 과감히 앞으로 나가야 한다.

혁명은 계속되는 투쟁을 통해서만 승리할수 있다. 계속혁명, 계속전진하여야 한다.》

김정숙녀장군의 원칙적인 투쟁에 힘을 얻은 녀대원들도 앞을 다투어 일어나 그이의 토론을 전적으로 지지하면서 엄가놈의 반혁명적궤변을 규탄하였다.

김정숙녀장군의 사리정연한 토론에 말문이 막힌 엄가놈은 악에 받쳐 안절부절 못하였다. 낯이 뻘개서 몸을 뒤척거리던 엄가놈은 앞상을 쾅 하고 내리치면서 레닌의 《일보전진 이보퇴각》을 알기나 하고 그런 소리를 함부로 하는가고 어성을 높여 을러멨다.

쩍하면 어려운 명제나 단어를 제멋대로 외곡하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내대고 초혁명적인 언사로 자기의 더러운 정체를 감싸고 정당한 의견을 내리누르는데 버릇된 이자는 이번에도 궁지에 빠지자 또다시 고전들에 나오는 까다로운 말마디들을 휘둘러 대방의 의견을 묵살하려고 시도하였다.

엄가는 좌중을 휘둘러보며 자기가 말하는 《저조기》라는것은 레닌의 《이보퇴각》이나 같은것이라고 떠벌이면서 적들은 지금 비행기까지 띄우고 20만의 대병력으로 유격대를 공격해오는데다가 례년에 없는 많은 눈이 산야를 뒤덮고있기때문에 유격투쟁에는 매우 불리하다, 이런 불리한 때에는 《이보퇴각》의 원칙대로 산중깊이 은신해있어야지 적을 맞받아나가 싸워서는 불리하다, 더구나 국경연안으로 진출한다는것은 무모한 일이라고 하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전략적방침을 비방중상해나서기까지 하였다.

레닌의 저서들에 나오는 술어들을 도용하여 자기의 《유식》을 자랑하며 장광설을 늘어놓은 엄가놈은 이제는 감히 누가 자기의 주장을 꺾을수 없다는듯 기세등등한 눈길로 좌중을 휘둘러보았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시여 호되게 단죄하시였다.

《지금 우리의 혁명정세는 엄혹합니다.

적들의 발악은 극도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사령관동지께서는 바로 이러한 때에 력사적인 남패자회의를 여시고 적의 대규모공세를 분쇄하고 혁명의 난국을 타개하시기 위하여 대규모기동작전으로 적을 칠데 대하여 가르치시였으며 몸소 부대를 이끄시고 조국에로의 진군을 단행하고계십니다.

이 길만이 우리 혁명을 구원하는 길이며 파괴된 국내혁명조직을 복구하고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줄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사령관동지의 이러한 정당한 혁명적방침에 비추어볼 때 혁명의 <저조기>니 뭐니 하면서 적과 싸우지 말고 국경연안에도 진출하지 말아야 한다는 발언은 사령관동지의 혁명로선과 배치되는 매우 불건전하고 위험한 견해입니다.

사령관동지께서 주력부대를 친솔하시고 조선혁명을 위기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피어린 행군을 하고계실 때 편안한 후방밀영에 들어앉아 이런 엄중한 발언을 하고있으니 이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사령관동지께서 제시하신 혁명로선과 방침에 어긋나는 이런 사상적견해는 우리 대오안에서 도저히 용납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학습토론은 치렬한 사상투쟁으로 번져갔다.

이러한 사상적대결에서 자기의 반혁명적정체가 적라라하게 로출되자 뒤가 켕긴 엄가놈은 그 무슨 《간첩단》사건이라는것을 조작하여 김정숙녀장군과 녀대원들에게 루명을 씌우고 매일같이 심문하고 고문까지 들이대였다.

이것은 투쟁을 포기한자의 단말마적인 배신행위였다.

심문장에서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맞서 싸우시였다.

《우리는 조선인민혁명군 대원이다. 우리는 김일성동지의 전사다. 너는 누구냐? 너는 혁명의 원쑤다! 혁명은 네놈을 용서하지 않을것이다. 똑똑히 기억하라. 너는 혁명앞에 지은 죄로 하여 처단을 면치 못할것이다!》

김정숙녀장군의 추상같은 단죄에 엄가는 미친듯이 발악하면서 너희들은 무엇을 믿고 서슬이 딩딩해서 날뛰는가, 주력부대는 눈속에서 다 얼어죽었다고 허튼소리까지 줴치며 반역자로서의 본색을 드러내놓았다.

엄광호의 반역행위가 명백하게 드러난 이상 김정숙녀장군의 생각은 사령부의 안전에 쏠렸다. 어떻게 하나 누가 빠져나가 이러한 실태를 알려야 했던것이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녀대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엄광호의 반혁명적책동에 대하여 시급히 사령관동지께 보고드려야 합니다.…

엄가는 타락할대로 타락하여 반역의 구렁텅이에 깊이 빠진자입니다. 사상적으로 변질되여 사령관동지의 혁명로선까지 공개적으로 헐뜯는자가 무슨 일인들 가리겠습니까. 엄가의 고문같은것은 얼마든지 참을수 있고 또 억울한 루명을 쓰고 죽는다 해도 두려울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사령부에 알리기 전에 어떻게 죽을수 있겠습니까.》

바로 이러한 김정숙녀장군이시였기에 밀영에 사령부통신원이 왔을 때 두손을 묶이운 상태였으나 지체없이 그를 만나 밀영의 비정상적인 사태를 사령관동지께 보고드려달라고 하시였다.

통신원은 시급히 사령부로 돌아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청봉밀영에서 있은 사건에 대해 료해하시고 시급히 바로잡기 위한 대책을 세워주시였다.

주체28(1939)년 4월 5일 북대정자에서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 및 병사대회에서 혁명의 배신자 엄광호는 준엄한 심판을 받았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대회에서 혁명의 배신자의 반역행위에 대해 폭로규탄하시고 이렇게 토론을 끝맺으시였다.

《사령관동지의 혁명전사인 우리가 그이의 혁명로선과 방침을 헐뜯으려고 하는 엄광호의 반혁명적책동을 보고 어떻게 묵과할수 있었겠습니까! 절대로 그럴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엄가의 그 어떤 고문과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던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한목숨이 끊어질지언정 사령관동지의 혁명사상과 어긋나는 경향과는 타협할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준것은 오직 하나 사령관동지에 대한 믿음이였습니다. 사령관동지를 생각할 때 저는 죽음도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았고 그이를 위해서 제 한목숨을 바치는것이 도리여 영광으로 생각되였습니다. …

과연 우리가 어느분을 믿고 근 10년동안이나 천신만고를 다 겪으며 원쑤와 피흘려 싸웠단 말입니까!

지금 조국의 동포형제들이 어느분을 믿고 일제의 압제밑에서 그 모진 불행과 고통을 참으며 살아가고있단 말입니까!

그이는 바로 우리 인민의 가슴마다에 꺼질줄 모르는 승리의 봉화를 안겨주신 사령관동지이십니다.

오직 사령관동지께서만이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시고 우리 부모형제의 원한을 풀어주실수 있다는것을 우리 어찌 한시인들 잊을수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우리는 살아도 죽어도 오직 사령관동지만을 믿고 따를것이며 언제 어디서나 영원히 그이께 충직한 혁명전사로 살며 싸워나갈것입니다.

사령관동지께서 계시기에 조선혁명은 죽지 않을것이며 그 어떤 역경도 뚫고나가 기어이 승리한다는 확고한 혁명적신념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난겨울의 그 엄혹한 시련을 결코 이겨내지 못했을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높은 정치적경각성과 혁명적지조를 간직하고 사령관동지의 혁명사상을 견결히 고수하고 옹호하여야 하며 그이의 혁명사상을 헐뜯는 현상에 대하여서는 날카로운 투쟁을 벌려야 합니다.

사령관동지의 혁명사상을 목숨으로 지킵시다! 이것은 우리의 가장 숭고하고 영예로운 임무입니다!

사령관동지의 뒤를 따라 전진하는 우리의 앞길을 그 어떤 간악한 원쑤도 막지 못할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난관을 물리치고 사령관동지를 따라 조국진군의 길로 힘차게 나아갑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후날 당시를 이렇게 회고하시였다.

《그때 김정숙동무가 앞장에 서서 엄광호의 패배주의를 되게 비판하였습니다. 그는 사령부의 로선이나 작전적방침과 어긋나는 그릇된 사상에 대해서는 추호의 타협도 하지 않고 견결하게 투쟁하였습니다. 그는 철저한 사상론자였습니다.》

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견결히 옹호고수하는것, 이것은 김정숙녀장군의 한생을 관통하고있는 변함없는 신조였으며 확고한 의지였다.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 김일성장군님을 위해서는 한목숨 기꺼이 바쳐싸우려는 높은 자각이 김정숙녀장군으로 하여금 죽음앞에서도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로선, 방침들을 견결히 옹호고수하며 투쟁할수 있게 했던것이다.

그리고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그것을 신념화하기 위한 사업을 투쟁과 생활의 첫 공정으로 삼으시고 정력적으로 학습하심으로써 높은 사상리론수준에 이르시였기에 예리한 론거로 혁명의 배신자의 사상적정체를 발가놓으실수 있었다.

해방후 한 녀성이 김정숙녀장군께 공부를 꼭 해야 하는가고 물은적이 있었다.

바로 이때 김정숙녀장군께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 변절자 엄광호놈과의 사상투쟁과정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자신께서 평시에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과 리론에 대한 학습을 게을리하였다면 리론대가라고 자처하는 혁명의 배신자의 반동적인 궤변을 간파하지 못하고 즉시에 된타격도 안기지 못했을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래서 혁명군대원들은 손에 총을 들고 싸우는 엄혹한 환경속에서도 자기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숙영할 때에도 잠을 자지 않고 공부했고 행군할 때도 앞동무의 배낭에 글쓴 종이를 붙여놓고 걸어가면서까지 공부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참으로 백두의 녀장군 김정숙녀사께서 간고한 고난의 행군시기에 청봉밀영에서 보여주신 견결한 혁명적원칙성과 숭고한 충직성은 혁명가의 신념은 무엇이며 그 신념을 어떻게 고수하여야 하는가를 실천적으로 보여준 산 모범이였고 김정숙녀장군께서 벌리신 적극적인 투쟁은 준엄한 혁명의 폭풍속에서 혁명대오의 사상의지적통일과 단결을 한층 강화하는데 커다란 기여로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