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정일장군님과 민족대단결」중에서

 

지금 북과 남, 해외의 7천만 온 겨레는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높이 6. 15자주통일시대를 빛내여나가고있다.

6. 15통일시대는 북남관계에서 일찌기 찾아볼수 없었던 경이적인 사변들이 수없이 펼쳐지는 새로운 시대이다.

60여년동안이나 분렬의 비극을 겪으며 북과 남으로 헤여져 살던 우리 겨레가 지금처럼 민족의 단합된 힘을 온 세상에 과시하며 자주통일의 활로를 힘차게 열어나가게 된 힘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것인가.

그것은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민족대단결사상을 6. 15통일시대의 요구에 맞게 더욱 심화발전시키시고 그 구현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이끌어오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탁월하고 세련된 령도의 빛나는 결실이다.

오늘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북과 남, 해외의 전체 조선민족이 서로의 힘과 마음을 하나로 합쳐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하루빨리 앞당겨나가도록 하기 위하여 온갖 심혈을 다 바치고계신다.

정녕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위해 기울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현명한 령도는 온 겨레를 민족대단결과 조국통일위업실현에로 힘있게 추동하는 고무적기치이다.

  

   

조국통일은 온 민족의 마음을 하나로 합쳐 민족의 대단합을 이룩하기 위한 매우 중대한 사업이다.

그런데 외세에 의하여 오랜 세월 갈라져 살아온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서로의 마음속에 뿌리내린 오해와 불신을 모두 가시고 화해와 단합을 이룩한다는것은 말처럼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우리 민족이 처한 이와 같은 실태를 누구보다도 가슴아파하시면서 그 어떤 외세의 간섭도 배격하고 조국통일을 우리 민족자신이 책임지고 민족자체의 힘으로 해결하기 위하여서는 오직 북과 남, 해외에 사는 모든 조선사람들이 서로 련대련합하고 보조를 같이하면서 공동행동을 벌려나가야 한다고 굳게 확신하고계신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온 민족의 대단결은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련대련합하여 공동행동을 벌리는 과정에 이루어지고 공고화됩니다.》(《김정일선집》 제14권 426페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 어느때보다 복잡다단한 국내외정세가 조성되고있던 1990년대에 무엇보다먼저 민족대단결을 위한 3자련대련합을 실현하여 북과 남, 해외의 모든 동포들을 하나의 통일력량으로 굳게 묶어세우기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1990년대에 이르러 북과 남, 해외의 우리 겨레들속에서 3자련대련합의 분위기가 전례없이 높아지고 조국통일의 주체적력량이 비상히 강화되는데 맞게 전민족적인 통일운동을 조직화하기 위한 사업에 큰 힘을 넣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79(1990)년 8월 15일 판문점에서 조국해방 45돐을 맞으며 력사상 처음으로 북, 남, 해외의 통일운동단체들과 각계각층 대표들의 참가밑에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제1차 범민족대회를 진행하도록 하시였다.

대회에서는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련대공동투쟁을 강화하며 통일애국세력련합의 확대를 위하여 전민족적인 통일운동기구를 결성할데 대한 결의문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였다.

이것은 사실상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적련합전선의 결성을 온 세상에 선포한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하여 주체79(1990)년 11월에 열린 북과 남, 해외 대표들이 모인 베를린3자실무회담에서는 제1차 범민족대회에서 합의한대로 전민족적인 통일애국세력의 련합체로서 조국통일범민족련합(범민련)을 결성하고 그것을 내외에 선포하였다.

온 겨레의 적극적인 지지성원속에 결성된 범민련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에 기초하여 조국통일을 실현하는것을 기본사명으로 하고 북과 남, 해외동포들의 공동의사를 대변하는 애국적인 통일운동조직이였다.

범민련의 결성은 분산적이였던 통일애국력량의 조직화를 실현함으로써 북과 남, 해외에서의 조국통일운동의 련대를 강화하고 통일적으로 발전시켜나갈수 있는 튼튼한 기초를 마련하였다.

범민련은 주체82(1993)년 12월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을 핵으로 하는 자기의 강령과 규약을 선포하였다.

그후 범민련은 내외분렬주의세력의 반통일책동이 우심한 조건에서도 동포들이 사는 해내외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조국통일3대헌장과 민족대단결5대방침을 지지관철하기 위한 대중적인 운동들과 민족대단결을 주제로 한 학술토론회, 통일음악회, 다양한 형식의 통일축전행사들을 널리 조직진행함으로써 북과 남, 해외의 3자련대련합을 더욱 강화하고 온 겨레를 민족대단결과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로 힘있게 불러일으켰다.

범민련이 결성되고 민족대단결과 조국통일운동이 강화되자 이와 때를 같이하여 해내외의 청년학생들속에서도 단합된 힘으로 통일애국투쟁에 참가하려는 기운이 높아지게 되였다.

그리하여 범민련이 결성된 이듬해인 주체80(1991)년 8월 제2차 범민족대회와 《통일방안합의와 조국의 평화, 민족대단결을 위한 북, 남, 해외동포청년학생통일회담》에서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련합(범청학련)결성에 대한 문제가 토의되였으며 주체81(1992)년 8월 15일 판문점에서는 그 결성식이 성대하게 진행되게 되였다.

그후 범민련과 범청학련의 적극적인 활동에 의하여 해마다 범민족대회를 비롯한 통일행사들이 온 민족의 크나큰 관심속에서 성과적으로 진행되게 되였다.

그 과정에 주체84(1995)년 1월 공화국 정당, 단체련합회의에서는 조국해방 50돐을 맞이하여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나가기 위한 대책을 토의하고 8. 15를 계기로 판문점에서 대민족회의를 열어 민족공동의 통일방도를 협의확정할데 대한 제안을 담은 호소문이 채택발표되였다.

이러한 현실은 북과 남, 해외의 3자련대속에 민족대단결이 있고 민족의 대단결속에 조국통일이 있다는것을 웅변으로 실증해주었다.

범민련과 범청학련의 결성은 조국통일의 주체적력량을 더욱 강화하고 우리 민족의 통일운동이 새로운 양상을 띠고 더 높은 단계에로 전진해나가는데서 전환적계기로 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1990년대에 민족대단결을 위한 3자련대련합을 실현하는데서 범민족대회가 가지는 의의와 중요성을 헤아리시고 그를 추진하기 위한 사업에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79(1990)년 8월 13일 조국통일촉진 백두-한나대행진 백두산출정식으로부터 시작된 범민족대회를 해마다 온 겨레가 한자리에 모이는 력사적인 대회합으로 되도록 하여주시였다.

그리고 조국통일을 위한 3자련대련합을 실현하는데서 범민련과 범청학련조직들의 역할을 높이는데 특별히 커다란 의의를 부여하시고 범민련이 주관하는 범민족대회가 북, 남, 해외의 3자련대련합을 강화하는 중요한 계기로 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하여 범민족대회는 주체80(1991)년 8월에는 판문점과 서울, 도꾜에서, 주체81(1992)년 8월에는 판문점과 서울에서, 주체82(1993)년에는 평양과 서울, 도꾜에서 성대히 진행되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민족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서거라는 반만년민족사에 일찌기 있어보지 못한 대국상을 당하여 모두가 주저앉은 그때에도 주체83(1994)년 8. 15를 계기로 계획했던 제5차 범민족대회를 예정대로 개최하도록 해주시였다.

제5차 범민족대회를 계획대로 진행하도록 하여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 현명한 조치에는 조국통일위업에 한평생을 다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을 받들어 민족의 대단결을 실현함으로써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을 기어이 이룩하시려는 그이의 철석같은 신념과 의지가 그대로 비껴있었다.

그리하여 주체83(1994)년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제5차 범민족대회가 평양과 서울, 도꾜에서 성대하게 진행될수 있었다.

8월 13일 평양에서는 1만 5 000여명의 대회참가자들과 평양시민들이 만수대언덕에 모셔진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앞에서 수령님의 유훈을 받들어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앞당겨 실현할것을 다짐하는 90년대통일실천결의집회를 진행하는것으로써 제5차 범민족대회의 막이 올라 다채로운 통일행사들이 펼쳐졌다.

한편 남녘의 청년학생들과 인민들도 당국이 범민련 북측본부대표단의 판문점통과를 가로막고 제5차 범민족대회자체를 《리적행위》로 《범죄》시하며 탄압해나서자 서울대학교 정문앞에 바리케드를 쌓고 치렬한 공방전을 벌리면서 제5차 범민족대회(서울)를 진행하였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일본의 도꾜에서도 제5차 범민족대회가 성과적으로 진행되였다.

이처럼 제5차 범민족대회는 민족의 어버이를 잃은 피눈물속에서도 북, 남, 해외에서 예정대로 진행되게 되였다.

대회를 통하여 어버이수령님의 생전의 념원대로 조국통일을 반드시 이룩하고야말 우리 겨레의 확고부동한 신념과 의지가 내외에 다시금 힘있게 과시되였다.

이렇게 또다시 이어진 범민족대회는 주체84(1995)년 8월에는 판문점과 서울, 도꾜에서, 주체85(1996)년과 주체86(1997)년 8월에는 평양과 서울, 심양에서, 주체87(1998)년 8월에는 판문점에서 해마다 중단없이 진행되게 되였다.

그중에서도 주체88(1999)년 8월에 진행된 제10차 범민족대회는 그 내용과 형식, 대회에 참가한 북, 남, 해외조직단체 대표들의 규모로 보나 토의확정한 문제의 성격과 중요성으로 보나 행사들의 정치사상적수준과 형식의 다양성으로 보나 반세기에 걸치는 통일운동사상사에 처음으로 되는 대정치축전이였다.

이 대회에는 축전사상 처음으로 남조선의 통일운동단체들인 범민련 남측본부와 《전국련합》, 《한총련》과 《민주로총》의 대표들, 《민주로총》 로동자통일축구선수단도 참가하였다.

또한 일본, 중국, 로씨야, 미국, 카나다, 오스트랄리아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와 지역들에서 온 수많은 해외동포들이 참가하였다. 그런가 하면 이 대회에서는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위한 3자련합대회,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99범민족회의,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착공식, 북과 남, 해외통일예술축전 및 체육행사, 《조국통일상》수여식, 북남로동자축구경기 등을 비롯하여 다채롭고 특색있는 정치, 문화, 체육행사들이 큰 규모에서 진행되였다. 이 기간에 진행된 행사들은 그 어느것이나 다 겨레의 통일의지가 뜨겁게 분출되고 맥박친 민족의 대회합마당이였다.

북과 남, 해외의 우리 겨레는 반세기가 넘는 민족분렬사에 처음으로 펼쳐진 격동적인 일들을 직접 목격하면서 경애하는 장군님만을 굳게 믿고 따를 때 통일은 반드시 실현된다는 확신을 더욱 굳게 가지게 되였다.

이와 같이 제10차 범민족대회가 대성황리에 진행될수 있은것은 대회가 북과 해외만 모여서 하는 절반짜리 대회가 아니라 명실공히 북과 남, 해외가 다 참가하는 옹근대회로 되도록 하시기 위하여 따뜻이 보살펴주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세심한 령도가 있었기때문이다.

이렇게 해마다 8. 15를 계기로 범민족대회가 개최됨으로써 북과 남, 해외동포들의 3자련대련합은 그 어느때보다도 강화되게 되였으며 이 과정에 온 민족의 대단결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은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더욱 힘있게 추진되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