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 중에서

 

주체27(1938)년 봄은 조선혁명을 말살하기 위해 교활하고 악랄하게 책동하는 일제침략자들에게 복수의 불벼락을 안기며 시련을 겪고있는 국내혁명조직들을 복구하고 혁명의 불길을 계속 세차게 지펴올리기 위한 치렬한 투쟁으로 이어진 준엄한 계절이였다.

이 봄에 희생된 전우들의 원한을 천백배로 갚기 위한 복수의 일념을 안으시고 춘기공세에서 영웅적위훈을 세우신 백두의 녀장군 김정숙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드시고 또다시 국내공작의 길에 오르시였다.

당시 혜산과 장백지구의 혁명조직들은 《혜산사건》으로 하여 엄중한 시련을 겪고있었다.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일시 백두산지구를 떠나 무송, 몽강현일대에서 활동하는 사이에 일제는 《혜산사건》을 조작하고 장백지구와 혜산일대에서 혁명력량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선풍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권영벽, 리제순을 비롯한 많은 조국광복회 지도성원들이 체포되고 혁명조직들이 파괴되였다.

《혜산사건》으로 하여 파괴된 혁명조직들을 빨리 복구정비하고 더욱 확대하여 전민항쟁준비를 다그치는것은 전반적조선혁명의 앙양을 위한 절박한 요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 비상회의를 소집하시고 정치공작원들을 국내에 파견하여 혁명조직들을 보호하고 당조직건설과 조국광복회조직건설을 더욱 활발히 전개할데 대한 대책을 세우시고 그 실현을 위해 불철주야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중 마음쓰신것은 조선민족해방동맹의 지도성원인 박달과의 련계를 맺는것이였다.

당시 조선민족해방동맹은 40여개의 하부조직과 여러가지 명칭을 가진 수많은 산하조직들을 가지고있었지만 《혜산사건》으로 약 150명의 조직성원들이 체포되였으며 박달을 비롯한 조직의 핵심성원들이 여기저기에 몸을 은신하고있었다.

박달과의 련계를 맺기 위하여 마음쓰시며 마동희를 파견하시고 그가 체포되였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는 국내지리에 밝은 백영철을 또다시 파견하시는 등 여러가지 대책을 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께 박달의 소식이 와닿은것은 주체27(1938)년 5월 중순의 어느날 저녁무렵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 올린 편지에서 박달은 적들의 검거선풍이 계속되고 조선민족해방동맹의 지도성원들이 시련을 겪고있는 조건에서 자리를 뜰수 없으니 사령부에서 공작원을 파견하여 활동방향을 가르쳐달라는 간절한 소원을 피력하였다.

그 편지를 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7련대정치위원에게 곧 박달에게 공작원을 파견해야겠으니 국내실정을 잘 아는 사람으로 선발하라고 이르시였다.

그때 김정숙녀장군께서 위대한 장군님께 말씀드리시였다.

《사령관동지, 박달동지를 만나러 제가 나가겠습니다.》

《…》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김정숙녀장군을 바라보시며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였다.

언제나 어렵고 위험한 곳에서 사령부의 의도를 관철하기 위한 투쟁의 앞장에 나서는 전사, 국내에 혁명의 보루를 쌓기 위해 겹겹이 늘어선 사선의 고비를 수많이 헤치며 압록강을 넘나들던 미더운 전사, 빛나는 예지와 비범한 수완, 불사신의 용맹으로 언제나 위험하고 어려운 정치공작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여온 김정숙녀장군이시기에 박달과의 련계를 가지는 이번 공작임무를 누구보다도 잘 수행할수 있다는것을 위대한 수령님께서 어찌 모르시랴!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늘 사선의 고비를 헤쳐야 할 어렵고 위험한 임무를 맡아나서시는 김정숙녀장군께 또다시 어려운 일을 맡기자니 가슴이 무거우시였다.

사실 박달과의 련계를 맺기 위한 공작은 매우 어려운 공작이였다.

적들은 수많은 밀정들과 변절자들을 내몰아 박달을 비롯한 조선민족해방동맹의 지도성원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피눈이 되여 날뛰고있었다. 이미 마동희공작조가 박달과의 련계를 맺기 위한 공작도중에 가슴아픈 희생까지 당하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 또다시 말씀올리시였다.

《저는 국내공작경험도 일정하게 있고 실정도 알고있으니 제가 가는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투쟁하던 마동희동무의 희생을 헛되이하지 않고 간파하자밀영에서 희생된 전우들의 넋을 빛내이기 위해서도 제가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저에게 그 임무를 주십시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자기가 다닐 학교는 바로 혁명군이라는 《대학》이라고 하던 마동희와 간파하자밀영에서 《조선혁명 만세》를 피로 새기고 장렬히 희생된 그의 안해 김용금을 잊을수 없으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그들부부가 못다한 일을 기어이 해내여 그들의 념원을 실현해주어야 한다는 숭고한 의리심으로 다시한번 자신을 보내줄것을 청원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정숙녀장군의 소원을 깊이 헤아리시여 갈린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정숙동무! 고맙소. 동무를 믿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금 놈들이 국내에 파견되는 공작원들과 혁명조직성원들을 색출하기 위해 경비진과 수색진을 겹겹이 늘이고있는것만큼 신변안전에 첫째가는 주의를 돌려야 한다고 하시며 대진평으로 가는 행군로정을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그러시고나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정숙녀장군에게 적들의 검거선풍으로 하여 파괴된 조선민족해방동맹을 비롯한 혁명조직들을 빨리 복구하고 시련을 겪고있는 박달과 국내혁명가들에게 신심을 안겨주기 위해 동무를 파견한다고 하시면서 자신을 대신하여 국내혁명가들에게 전투적인사를 전해달라고 말씀하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대진평지구에로의 진출이 위험이 겹쌓이는 어려운 길이였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 심려하시는 문제를 목숨바쳐 풀어드릴 불타는 마음을 안고 다음날 두명의 대원과 함께 위대한 장군님의 바래움을 받으시며 국내공작의 길에 오르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정해주신 로정을 따라 해빛도 스며들지 않는 원시림을 헤치며 100여리길을 강행군하여 대진평지구에서 끝내 박달을 만나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국내혁명가들에게 보내시는 전투적인사와 가르치심을 전달하신 다음 조선민족해방동맹 지도성원들의 모임을 열고 국내혁명조직들앞에 나서는 투쟁과업과 방도를 밝혀주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적들의 검거선풍이 우심해지고있는 조건에서 우선 혁명조직들과 조직성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철저히 세우는것이 급선무라고 가르치시였다. 그리고 조직을 보호하는데 머무르지 말고 조직을 계속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적들의 탄압에 놀라서 조직의 활동을 적극화하지 못하고 피해다니며 자체보호에만 머무른다면 조직자체도 유지해나갈수 없다고 일깨워주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혁명조직들을 친목회나 형제계와 같은 친목단체형식으로 깊숙이 위장시키고 인민들속에 들어가 조선인민혁명군의 혁혁한 전과를 가지고 이야기를 잘해주어도 그것은 《혜산사건》으로 위축된 사람들에게 래일에 대한 희망과 신심을 북돋아주며 그들을 반일투쟁에 떨쳐나서게 할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모임이 끝난 후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박달을 따로 만나 사령관동지께서 제시하신 북선반일인민유격대의 조직방침과 의의를 알려주시고 그 정치위원으로 박달을 임명하기로 하신 사령관동지의 명령을 전달하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 사선을 헤치시며 벌리신 대담하고도 헌신적인 투쟁에 의하여 위축되였던 국내혁명조직들과 그 성원들은 대오를 빨리 수습정비하면서 투쟁을 보다 적극적으로 벌려나갈수 있게 되였다.

박달과 헤여진 후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대원들과 함께 오시던 때의 로정을 따라 백두산밀영으로 돌아오시였다.

김정숙녀장군으로부터 대진평지구에서 진행한 공작정형을 상세히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환하신 안색으로 동무들이 내가 제일 걱정하던 문제를 풀어주었다고, 정말 수고하였다고 하시며 대진평공작에서 거둔 성과에 대해 높이 치하하시였다.

그때로부터 반세기가 되는 오랜 시일이 지난 주체77(1988)년 7월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십년전에 있었던 그때의 일을 두고두고 잊지 못하시며 다음과 같이 회고하시였다.

《<혜산사건>이후 장백지방과 국내의 혁명조직들이 시련을 겪고있을 때 박달동무와 그 혁명조직소조가 온수평을 지나서 있는 대진평에서 활동하고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때 김정숙동무가 그곳 조직과 련계를 가지고 박달동무를 만났다고 하는 보고를 받은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1938년 4월이 아니면 늦은 봄이였던것으로 생각됩니다.》

참으로 혁명앞에 준엄한 시련이 가로놓였던 그해 5월 겹쌓인 사선을 헤치시며 대진평에서 진행하신 김정숙녀장군의 고심어린 활동은 국내혁명가들에게 혁명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의지를 심어준 위대한 혁명활동이였다.

주체27(1938)년 9월 중순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또다시 풍산지구의 혁명조직들을 지도할데 대한 임무를 받으시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김정숙녀장군에게 임무를 주시면서 두명의 대원들을 데리고 함께 나가도록 하시였다.

그러나 김정숙녀장군께서는 혼자 떠나게 해달라고 말씀올리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새로운 임무를 받고 떠날 때마다 그사이 장군님신상에 무슨 일이라도 있을것 같은 생각이 들어 좀처럼 마음을 놓을수가 없다고 하시면서 장군님의 몸가까이에 우리 동무들이 많이 남아있는것을 보게 되면 떠나는 자신의 마음도 가벼워진다고, 풍산지방은 이미부터 다니던 파악있는 곳이니 혼자 나가도록 해달라고 거듭 제의하시였다.

김정숙녀장군의 진정이 담긴 청원을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고맙다고 하시면서 사령관을 아껴주는 동지들의 뜨거운 사랑에 대하여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조용히 서계시는 김정숙녀장군을 보시며 잠시 말씀을 끊으시였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들은 항상 나를 두고 그처럼 마음을 놓지 못하는데 나는 그래도 어디 가나 대원들속에 있고 한발자국을 걸어가도 언제나 호위성원들을 끼고다닌다, 생각해보라, 그래 남성도 아닌 정숙동무를 내가 늘 사지판으로 떠나보내군 하는데 그때마다 혼자 보내게 되는 내 심정도 좀 리해해줘야 하지 않겠는가고 말씀하시였다.

그 말씀은 마디마디가 그대로 혁명전사들에 대한 장군님의 한없이 뜨거운 사랑과 의리로 김정숙녀장군의 가슴을 덥혀주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전사들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의리의 정을 안고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장군님께서 주신 혁명임무를 기어이 수행하리라 굳게 마음다지시며 신파와 풍산지구로 진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출발에 앞서 세자루의 권총을 김정숙녀장군과 소조성원들에게 나누어주시였다.

혹심한 피해를 받고 상실과 좌절속에 있는 혁명조직들을 수습하고 투쟁에로 불러일으켜야 하는 걸음걸음은 보천보전투와 간삼봉전투 등의 총성을 타고 인민들의 심장속에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던 지난해의 국내공작보다 더 어려운 싸움길이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먼저 신파에서 오함덕객주집 주인과 조국광복회 신갈파분회책임자를 비롯한 혁명조직성원들을 만나 조직의 형편과 활동정형을 료해하시고 조직앞에 나선 투쟁과업을 가르쳐주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적들의 반동공세가 심하다고 하여 주저할것이 아니라 그것을 맞받아나가야 하며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벌려야만 투쟁의 유리한 국면을 열어놓을수 있다고 하시면서 분회가 적기관에 침투되여있는 유리한 조건을 리용하여 지하조직원들을 적극 보호하며 그들을 다시 묶어세워 강력한 조직을 내올수 있도록 각방으로 도와줄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그리고 앞으로 신파지구에 나오게 되는 반군사조직들을 튼튼히 보호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이것은 일시 위축되였던 신파일대의 혁명조직들이 다시 살아움직이게 하는 계기로 되였으며 이 지역에 혁명투쟁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지펴올리는데서 새로운 도화선으로 되였다.

신파를 떠나 풍산군 문조리 양지마을에 도착하신 김정숙녀장군께서는 풍산출신의 혁명조직성원인 주병포의 집을 찾으시였다.

주병포도 이때는 《혜산사건》으로 신경이 곤두선 일제놈들의 탄압으로 하여 곤경을 겪고있었다.

원래 활동적인 기질이였던 주병포는 놈들의 감시때문에 옴짝달싹할수 없게 되자 그 안타까움으로 안절부절 못하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 김정숙녀장군께서 자기 집을 찾아오시자 그는 너무나 놀랍고 반가와 손을 꽉 잡고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더니 자기는 국내에서 더는 활동할수 없으니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그러는 그에게 조성된 정세와 조선혁명의 전도에 대하여 하나하나 설명해주시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 전민항쟁준비를 갖출데 대하여 제시하신 방침을 알려주시였다. 그러시고나서 이런 때 국내형편을 잘 알고 학생운동과 지하투쟁경험도 가지고있는 주동무가 활동할 무대는 서울지역이라고 가르쳐주시면서 서울에 다시 가면 지난해 7월에 북청에서 만나 서울로 파견한 리영과 손을 잡으라는 과업을 주시고 이미 적을 두고있는 학교에 조직을 내오며 차츰 서울과 영등포, 인천지구 로동자들과 로조단체들속에 들어가 그들을 조국광복회조직에 묶어세울데 대한 구체적인 방도도 밝혀주시였다. 그리고 도꾜의 류학생조직을 장악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그후 주병포는 김정숙녀장군의 가르치심대로 서울에 가서 법정학교에 적을 두고 리영과도 련계를 가지였으며 얼마후에는 영등포를 중심으로 한 공장지구에 든든히 발을 붙이였다. 그는 서울 콩그룹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조국해방로선을 전달하고 서울지구 금속, 방직, 섬유, 인쇄, 염색, 피복 등 여러 부문의 로동자들속에 깊이 들어가 로동계급의 선진분자들로 로조조직을 꾸리고 전민항쟁준비를 위한 기틀을 마련하는 한편 국내혁명조직들에 대한 수령님의 령도를 실현하기 위하여 적극 노력하였다.

주병포는 해방후에도 서울에 남아 위대한 수령님의 조국통일로선관철을 위한 지하투쟁을 벌리였다. 공화국창건후 훈장, 메달이 처음으로 제정되였을 때 첫 수훈자들의 대렬속에는 그의 이름도 들어있었다. 그는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김정숙녀장군께서 안겨주신 신념과 의지를 굽히지 않고 견결히 싸우다가 주체39(1950)년 3월에 적들에게 체포되여 사형당하였다.

주병포의 방조자 겸 련락원으로 활동한 리인모도 풍산과 서울을 오르내리는 한편 주체29(1940)년 여름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가지고 일본 도꾜에 건너가 풍산출신 고학생들로 조직된 풍우동경고학생친목회를 혁명적으로 개편하였다.

주병포와의 사업을 마치신 김정숙녀장군께서는 풍산읍에서 10리가량 떨어진 신원리 사이촌에서 풍산군 천도교종리원 원장 원충희를 만나시였다. 만 1년만에 김정숙녀장군을 다시 뵙게 된 종리원 원장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김일성장군님께서 옥체건강하신가고 묻고나서 박인진도정이 적들에게 체포되여간 다음 너무도 눈앞이 캄캄하여 어쩔바를 모르고있던차에 이처럼 김일성장군님께서 고명하신 공작원님을 다시 보내주셨으니 실로 망망대해를 표류하던 조난선이 등대불을 발견한 때와 같은 심정이라고 자기의 마음속고충을 토로하였다. 그리고 박인진도정이 체포된 경위와 서울의 천도교상층부의 실태, 황해도, 평안남도, 함북도를 비롯한 각지 종리원들과의 사업정형에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박인진도정님은 비록 일제경찰에 잡혀갔지만 그가 천도교인들의 심장속에 심어준 애국충정의 고결한 뜻은 살아있을것이라고 하시면서 교직자들을 그가 바라던대로 김일성장군님께서 이끄시는 조국광복의 성스러운 투쟁에 한사람같이 일떠세워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박인진도정이 체포된 조건에서 이제부터 서울과 각지 포체들과의 사업을 풍산군종리원이 주동이 되여 진행하면서 전국의 모든 천도교교직자들을 반일민족통일전선에 더욱 굳게 단합시켜야 하겠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계속하여 천도교청년당원들중에서 우수한 청장년들을 선발하여 생산유격대를 더욱 확대하고 군사훈련을 강화하며 일단 정세가 조성되면 제때에 무장폭동을 일으킬수 있도록 단단히 준비를 갖출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종리원 원장은 공작원님의 말씀을 듣고보니 신심이 생긴다고 하면서 김일성장군님께서 밝혀주신 길을 따라 조국해방을 위한 성업에 헌신분투할것을 다시금 확약하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다음날 풍산지구 비밀근거지에 가시여 풍산지구와 후치령지구에서 활동하는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 정치공작소조와 이 지구 혁명조직책임자들의 모임을 여시고 그들앞에 나서는 투쟁과업을 밝혀주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모임에서 혁명앞에 가로놓인 엄혹한 시련을 극복하고 적들의 악랄한 탄압속에서도 지하조직들을 굳건히 지키며 일시적으로 조성된 혼란상태를 시급히 수습하고 파괴된 조직들을 복구하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벌릴데 대한 문제, 대중정치선전활동을 강화하여 비밀근거지 주변지역을 혁명화하며 생산유격대 등 반군사조직들을 확대강화하여 무장투쟁의 대중적지반을 튼튼히 꾸릴데 대한 문제들에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이곳에서의 사업을 성과적으로 마치신 김정숙녀장군께서는 행군길을 다그쳐 지체없이 압록강을 건느시였다.

신태자부근밀영에 도착하신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사령관동지께 소조의 활동정형을 보고드리시였다.

김정숙녀장군의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들이 이번에 풍산지구에 나가 아주 큰일을 했다고 치하하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 풍산지구에서 벌리신 혁명활동은 조국광복회 조직망을 전국적판도로 넓혀나가며 전민항쟁준비를 갖추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참으로 김정숙녀장군께서는 갈길몰라 헤매이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태양의 빛발을 안겨주시고 투쟁의 신념과 의지를 심어주시였으며 그들을 참다운 삶의 길로 손잡아 이끌어주신 선군해발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