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 (1)중에서

 

 

고난의 행군의 나날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들과 대원들이 모든 사고와 실천의 첫자리에 놓은것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신변안전을 백방으로 보장하는것이였다.

민족의 운명이시고 미래이신 사령관동지의 안녕을 위해서라면 한몸이 그대로 성새, 방패가 되고 목숨도 서슴없이 바치리! 이것이 행군대오에 차고넘친 수령결사옹위의 숭고한 정신세계였다. 전대오가 이러한 정신세계를 지니고 고난의 행군을 이어나갔다.

이 대오의 전렬에는 언제나 위대한 수령님을 결사옹위하여 남먼저 사선을 헤쳐간 열혈투사들의 집단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오중흡7련대였다.

항일무장투쟁시기 오중흡7련대라고 하면 조선인민혁명군 관하부대들가운데서 전투력이 제일 강하기로 알려진 부대이다. 련대장으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대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쇠소리나는 쟁쟁한 사람들로 꾸려진 이 부대는 전투에서나 부대관리와 생활문화에서나 항상 다른 부대들의 모범으로, 본보기로 되여왔다.

그래서 가장 긴급하고 책임적인 과업은 늘 7련대에 맡겨지군 하였다. 그야말로 7련대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주타격수였다.

7련대가 강철의 대오로 이름떨칠수 있은것은 련대의 성원모두를 뜨거운 사랑의 한품에 안아키워주고 내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세심한 지도와 보살피심이 있었기때문이였다.

오중흡련대장의 경우만 보아도 그러하였다. 왕청에서 공청사업을 하던 그를 알게 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에 대한 그의 남다른 열의를 귀중히 여기시고 그를 사랑의 한품에 안아 체계적으로 키워오시였다. 혁명의 진리도 하나하나 깨우쳐주시고 불굴의 의지와 필승의 신념도 심어주시였으며 높은 정치군사적자질도 갖추도록 하시였다. 진정 그이의 품은 위대한 어버이의 품, 현명한 스승의 품이였다. 그 품속에서 그는 분대장, 소대장, 중대장을 거쳐 련대장으로까지 성장하였다. 이러한 그였기에 그는 누구보다도 수령결사옹위정신이 투철했으며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 지시라면 한치의 드팀도 없이 최상의 수준에서 무조건 집행하군 하였다. 오중흡련대장의 성장은 그대로 7련대의 성장과정이기도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7련대의 모든 지휘관들과 대원들을 불굴의 투사들로 육성하기 위하여 커다란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그들을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튼튼히 준비시키기 위한 교육교양사업도 전망성있게 진행하시였으며 그들에게 유격전에 필요한 각종 교범은 물론 숙영법, 작식법, 행군법, 방위판정법, 지어 가설무대를 만드는 방법과 연예공연종목을 작성하고 소개문을 쓰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모든것을 다 배워주시였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7련대는 모범련대로, 수령결사옹위의 일선부대로 자라났다. 7련대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자랑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슬하에서 강철의 련대로 성장한 오중흡7련대의 첫째가는 생명은 수령결사옹위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홍두산에서 불과 얼마 안되는 인원으로 수백명의 적《토벌대》와 어려운 싸움을 하고계실 때였다. 그때 오중흡7련대는 홍두산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전투임무를 수행하고있었다. 하지만 수령결사옹위를 제일생명으로 여기는 7련대는 한달음에 달려와 적의 숙영지를 불이 번쩍나게 기습하여 적들의 이목을 다른데로 돌림으로써 사령부의 안전을 보장하였다.

만강부근에서 전투가 벌어졌을 때에도 오중흡련대장과 7련대 성원들은 부대의 철수를 지휘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육탄으로 막아나섰으며 단두산목재소습격전투때도 7련대는 수백명의 적을 뒤에 달고 후위에서 사령부의 철수를 엄호하였다.

언제 어디서나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안전을 먼저 생각하고 그이의 명령, 지시를 관철하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것이 7련대의 투쟁기풍이고 생활기풍이였으며 기질이였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어느해인가 간고했던 항일무장투쟁시기 혁명의 사령부를 목숨으로 보위한 7련대의 결사옹위정신과 투쟁업적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회상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시였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언제 어떤 정황속에서나 모든 병사, 지휘관들이 한결같이 사령부의 안전부터 생각하는것이 7련대의 고유한 특성이며 사령관의 명령, 지시를 목숨처럼 귀중히 여기고 그것을 최상의 수준에서 관철하며 사령부의 의도를 그 누구보다도 민감하게 포착할뿐아니라 그 의도가 무엇인가를 알게 되면 온몸이 육탄이 되여 앞장서서 끝장을 볼 때까지 완강하게 관철해나가는것이 바로 7련대의 생활과 투쟁의 전투적인 기풍이였습니다.》

인간의 진가는 어려운 때 나타난다고 한다. 집단의 참모습과 전투력도 마찬가지이다. 수령결사옹위의 일선부대로서의 7련대의 참모습은 고난의 행군시기에 더욱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고난의 행군의 첫 시기 진드기처럼 달려드는 적《토벌대》를 갈지자전술로 격파해버리군 하시였는데 대오의 후위에서 이 전술을 따라배워 사령부를 보위한것이 바로 오중흡7련대였다. 항시적으로 적들의 추격과 불의습격이 뒤따르는 유격대의 생활에서 후위는 대단히 중요하였다. 그래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행군할 때나 숙영할 때나 행군해오던 방향으로 300∼500m쯤, 어떤 경우에는 1∼2km정도 되는 거리에 전투력이 강한 1개 부대를 후위로 남겨두시였는데 오중흡7련대가 늘 그 후위를 맡군 하였다. 고난의 행군의 첫 시기에도 오중흡7련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배워주신 갈지자전술을 쓰면서 근 보름동안이나 결사적인 후위전을 벌려 사령부를 보위하였다.

주체28(1939)년 정초 장백현 7도구치기에 도착한 행군대오는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여 집단행동으로부터 분산행동으로 넘어가게 되였다.

이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2방면군을 몇개의 방향으로 갈라서 활동하게 하고 자신께서는 7련대와 함께 움직이실 결심이였다. 그런데 그이의 이러한 결심을 지휘관들이 한결같이 반대하는것이였다. 그들의 주장은 사령부가 7도구치기의 밀영들중에서 제일 안전한 청봉밀영에 들어가야 한다는것이였다. 그들이 이러한 주장을 하게 된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안전때문이였다. 부대에서 싸움을 제일 많이 하는 련대가 오중흡7련대인데 그들과 함께 다니시면 그이의 신변이 위태롭게 될수 있었던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청봉밀영에는 부상자들과 병약자들만 들여보내자, 우리 인민에게는 싸움을 하는 김일성이 소용되지 팔짱을 끼고 숨어있는 김일성은 소용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며 지휘관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시였다.

결국 사령부는 경위중대와 기관총소대를 데리고 행동하게 되였고 오중흡7련대는 장백현 상강구일대에서, 8련대와 독립대대는 무송현 동강일대에서 활동하게 되였다.

사령부와 헤여지게 된 대원들은 저저마다 경위중대 대원들을 붙들고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을 잘 지켜달라고 절절히 당부하였다. 옷은 형편없이 찢어져 살이 드러나고 신발은 헐대로 헐어 맨발을 각반으로 동이고 다니는 형편에서도 제 몸들은 생각지 않고 그이의 안녕만을 바라며 작별하는 대원들의 모습은 참으로 눈물없이는 볼수 없는 감동적인 화폭이였다.

오중흡련대장은 자기네 련대가 적을 달고갈테니 경위중대는 절대로 전투를 하지 말라고 하면서 무슨 수를 써서든지 위대한 수령님을 청봉밀영에 모셔달라는 당부를 남긴 다음 7도구치기를 떠났다. 그의 결심은 자기의 련대가 사령부로 가장하여 적을 유인하자는것이였다.

사령부로 가장한 7련대는 7도구치기를 떠나는 첫 순간부터 달려드는 적들을 자기들쪽으로 유인하면서 어려운 싸움을 벌렸다. 사령부를 없애려고 혈안이 되여있던 적들은 장백일대에서 제일 큰 총소리를 내며 활동하는 오중흡7련대를 사령부인줄 알고 기를 쓰고 달려들었다. 이러한 적들을 달고 두달남짓이 험준한 룡강산줄기와 장백산줄기를 누벼나간 7련대는 참으로 많은 난관을 극복해나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식량이 떨어진것은 가장 큰 난관들중의 하나였다. 사령부와 헤여질 때 7련대에는 식량이 한알도 없는 상태였다. 사실 전투력이 강한 7련대로서는 뒤따르는 적을 따돌리고 식량을 구하는것쯤은 문제로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식량을 구하겠다고 적을 따돌리면 적들이 련대를 찾아헤매다가 사령부와 맞다들수 있었으므로 오중흡7련대는 될수록 적들을 멀리 끌고갈 때까지 식량공작도 하지 않았다. 이로부터 련대는 행군로정도 식량해결에 유리한 인가가까이로가 아니라 한번 발을 들여놓았다가는 미궁에 빠져 다시 살아나오기도 힘든 지대로 택하였다. 이 로정에는 탕자막같은것이 있을뿐 무인지경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다보니 식량고생을 더 많이 하게 되였다. 어떤 때에는 한주일나마 낟알구경을 전혀 못하고 적을 끌고다니며 쉴새 없는 싸움을 벌려야 했고 또 어떤 때에는 적들이 잡아먹고 버린 소가죽을 우려 나누어먹으면서 행군을 계속하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오중흡련대장은 행군로상에서 허기증과 무력증으로 신고하는 대원들에게 우리가 지금 10년을 하루같이 고생을 하지만 고생끝에 락이 오기마련이다, 이제 우리가 일제를 격멸소탕하고 해방된 조국땅을 향해 행군할 때를 생각해보라, 조선사람으로 태여나 이이상 더 보람차고 영광스러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오늘의 이 간고한 행군이 해방조국으로 잇닿은 걸음이라는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 말씀은 김일성사령관동지의 말씀이다, 모두다 사령부를 위하여 앞으로 나아가자고 호소하면서 대오를 이끌어가군 하였다. 이렇듯 모진 고생을 겪으면서도 7련대 지휘관들과 대원들의 심중에는 사령부에 대한 생각뿐이였다.

7련대는 그해 설을 얼마간의 언감자로 쇠게 되였는데 그 자리에서 지휘관들과 대원들은 자기들은 이 산상에서 이런것이라도 먹는데 사령부는 무슨 식량으로 지내는지 하면서 오히려 사령부를 걱정하였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날 오중흡련대장은 적들이 더는 자기네 련대를 따라오지 않는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때 그는 대원들에게 《우리가 사령부가 아니라는것을 적들이 혹시 눈치채지나 않았는지 모르겠소.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헛수고를 한것이나 다름없소. 기어이 뒤쫓아가서 꽁무니에 적을 달고와야겠소. 모두 나의 뒤를 따르시오.》 하고는 싸창을 빼들고 천신만고하여 톺아온 길을 수십리나 되돌아가서 적의 숙영지를 치고는 기어이 적을 뒤에 달고 왔다. 그후부터 7련대는 적이 따라오지 않으면 되돌아가서 한두번씩 성화를 먹이군 하였는데 그럴 때면 적《토벌대》들이 코꿴 송아지처럼 졸졸 련대를 따라왔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오직 사령부의 안녕을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가며 헌신한 오중흡7련대장을 그리도 못 잊어하시며 이렇게 회고하시였다.

《오중흡은 이런 사람이였습니다. 그는 가슴에 큼직한 불덩어리를 안고 싸워온 사람이였습니다. 무슨 불덩어리였는가 하면 혁명에 대한 열정이였습니다. 그 열정의 핵이 다름아닌 자기 사령관에 대한 충실성이였습니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 끝없이 충직했던 오중흡련대장은 주체28(1939)년 12월에 있은 륙과송전투에서 장렬한 최후를 마치였다.

뜻밖의 비보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너무도 절통하시여 오중흡을 죽인 놈이 어디에 있는가? 오중흡을 죽인 놈들은 용서할수가 없다고 웨치시며 적병실쪽으로 달려가시였다. 제일 아끼고 사랑하던 지휘관을 잃으신 상실의 아픔이 그리도 크시여 격하신 심정을 누를길 없으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투후 숙영지로 가는 도중 추도모임을 여시고 몸소 추도사를 하시였다. 비분의 눈물을 흘리시며 추도사를 읽어가시는 그이의 음성은 절통함과 애석함으로 마디마디 떨리시였다. 여기저기에서 북받치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흐느낌이 터져나오는 가운데 추도가가 돈화의 수림속으로 비장하게 울려퍼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추도모임이 끝나자 대원들에게 오중흡동무는 비록 우리의 곁을 떠났으나 그의 열렬한 혁명정신은 영원히 살아있을것이라고 하시면서 더 큰 승리를 쟁취하고 조선혁명을 반드시 완성하기 위하여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참으로 오중흡7련대의 모든 지휘관들과 대원들은 가장 준엄했던 시기 수령결사옹위의 전형을 창조한 열혈투사들이였다. 이들과 같은 참다운 혁명가들이 있었기에 력사에 류례없이 간고했던 고난의 행군은 승리적으로 결속될수 있었다. 수령결사옹위의 성스러운 길에서 오중흡7련대가 발휘한 가지가지의 미담들은 하나의 위대한 서사시가 되여 항일무장투쟁사를 빛나게 장식하였으며 그들이 지녔던 수령결사옹위의 숭고한 정신세계는 오늘 선군혁명무장력이 지니고있는 가장 중요한 정신적특질로 되고있다.

오늘도 오중흡7련대는 영원한 수령결사옹위의 일선부대의 모습으로 선군혁명무장력의 맨 앞장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