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 (1)중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은 단순한 군사집단이 아니라 정치와 군사를 다같이 중시하는 혁명군대였다. 이러한 혁명군대가 무장투쟁, 인민들과의 사업, 통일전선사업, 적군와해사업 등 자기앞에 맡겨진 어렵고도 숭고한 사명과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튼튼히 준비되여있어야 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의 모든 성원들을 문무를 겸비한 펄펄나는 싸움군, 유능한 정치일군들로 육성하기 위한 힘있는 수단은 학습이였다.

일찌기 학습이 가지는 의의와 중요성을 깊이 헤아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하신 첫 시기부터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학습은 첫째가는 의무이다.》라는 구호를 제시하시고 간고한 투쟁속에서도 항상 학습에 일차적인 의의를 부여하시였으며 학습을 강화하기 위한 여러가지 대책도 취해주시였다.

중국동북지방의 몽강현에 펼쳐져있는 광대한 밀림의 바다 동쪽에 위치하고있는 마당거우, 바로 여기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위대한 수령님의 직접적인 발기와 지도밑에 주체26(1937)년 11월 하순부터 이듬해 3월 하순까지 집중적인 동기군정학습을 진행하였다.

사실 일제와의 피어린 전투로 밤이 새고 날이 밝는 엄혹한 시기에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4개월동안이나 군정학습을 진행한다는것은 보통상식을 가지고서는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였다. 이것은 유격전의 력사는 물론 인류전쟁사의 그 어느 갈피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전무후무한 일이였다.

4개월간의 군정학습, 이것은 혁명승리에 대한 필승의 신념과 락관, 무비의 담력과 배짱을 지니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만이 펴실수 있는 대담무쌍한 작전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마당거우에서의 군정학습을 조직하신것은 몇가지 절박한 사정과도 관련되여있었다. 중일전쟁을 도발한 일제가 중국관내의 넓은 땅덩어리를 어렵지 않게 먹어치우자 당시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일제가 동양천지를 다 삼키는줄 알고 맥을 놓기 시작하였다. 부분적인 현상이기는 하지만 혁명군대오안에서도 동요분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한편 국제당의 간판을 달고 나도는 이러저러한 로선도 사람들속에 혼란을 일으키고있었다. 국제당에 앉아있던 좌경모험주의자들이 내려먹인 열하원정로선이 조중 두 나라 혁명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있었고 조선혁명의 성격과 맞지도 않는 《조선공산당행동강령》이 나돌아 일부 사람들속에 부정적영향을 미치고있었다.

이런 형편에서 시급히 군정학습을 조직하여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들과 대원들에게 조선혁명의 자주로선에 관한 지식부터 똑바로 심어주지 않는다면 주체적혁명력량을 강화할수 없을뿐아니라 혁명의 자주로선도 끝까지 배심있게 틀어쥐고나갈수 없었다.

군정학습은 또한 국내와 백두산서남부일대에서 수많이 입대한 신입대원들을 정치군사적으로 단련시키고 지휘관들의 능력을 높여 선군혁명무장력의 전투력을 더욱 강화해나가기 위해서도 절실히 필요하였다.

이러한 요구로부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강에서의 군정학습이 있은 때로부터 불과 몇달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장기간에 걸치는 군정학습을 조직하시였던것이다.

그리하여 마당거우의 울창한 밀림속에서는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들과 대원들을 군사정치적으로 더욱 튼튼히 준비시키기 위한 《군정대학》이 운영되게 되였다.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마당거우밀영에 집결시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정학습을 시작하기에 앞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를 소집하시고 그해 겨울동안에 매개 병사, 지휘관들이 도달해야 할 학습목표를 정해주시였다. 그리고 부대별, 조직별, 학습반별 회의들에서 학습을 잘할데 대한 결의를 다지도록 하는 한편 병실마다 《학습도 전투다!》,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학습은 첫째가는 의무이다.》라는 구호도 큼직하게 써붙이게 하시였다.

마당거우밀영에서의 군정학습은 정치학습을 위주로 하면서 여기에 군사훈련을 배합하여 진행되였다.

정치학습의 기본문제는 혁명에서 자주성을 견지하는 문제와 혁명적신념문제,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에 관한 문제들로서 중일전쟁발발후 조성된 엄혹한 정세의 요구를 반영한것들이였다.

마당거우군정학습에서 주되는 학습교재로 리용된것은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임무》를 비롯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집필하신 불후의 고전적로작들이였다.

불후의 고전적로작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임무》로 말하면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체26(1937)년 가을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거느리시고 장백, 림강, 몽강현일대에서 적배후교란작전을 벌리시던 시기 전투와 행군의 여가시간에 집필하시여 그해 11월 10일 무송현 양목정자밀영에서 조선인민혁명군 대내기관지 《서광》에 발표하신 론문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후날 항일혁명투쟁사를 연구하는 일군들에게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우선 인민혁명군 지휘관들과 대원들에게 조선혁명의 자주로선에 관한 지식부터 똑바로 심어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였습니다.

내가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임무>라는 론문을 쓰고 그것을 교재로 하여 집중적인 정치학습을 조직했던 리유의 하나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나는 그 론문에서 조선혁명의 성격과 당면임무를 또다시 서술하고 조선혁명을 자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조선공산주의자들의 과업을 제시하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고전적로작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임무》에서 이미 카륜회의에서 제시되고 그후 여러해에 걸치는 항일혁명투쟁행정에 그 정당성이 남김없이 확증된 조선혁명에 관한 주체적인 로선과 방침을 일반화하고 집대성하시였다.

로작에는 조선혁명의 반제반봉건민주주의적성격과 임무, 동력과 대상,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을 통하여 해결하여야 할 과업과 조선혁명가들앞에 나서는 당면한 임무에 이르기까지 조선혁명의 성과적수행을 위하여 일관하게 틀어쥐고나가야 할 전략전술적 및 방법론적문제들이 전면적으로 밝혀져있었다.

로작은 또한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자기앞에 나선 혁명임무를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견지하여야 할 근본립장에 대하여서도 명백히 밝히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이에 대하여 로작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자주적립장은 자기 나라 인민의 힘을 믿고 자체의 힘으로 자기 나라 혁명을 책임적으로 끝까지 수행하려는 공산주의자들의 근본립장이다. 혁명투쟁에서 자주적립장을 확고히 견지하여야만 자기 나라 실정에 부합되는 혁명로선과 방침을 세우고 그를 철저히 옹호관철해나갈수 있으며 어떠한 난관과 시련속에서도 자기 나라 혁명을 위하여 끝까지 싸워나갈수 있다.》

이렇듯 불후의 고전적로작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임무》는 조선혁명가들이 복잡한 환경속에서도 항일혁명투쟁을 힘있게 벌려나갈수 있게 하는 원칙적립장과 투쟁과업을 뚜렷이 밝혀준것으로 하여 발표되자마자 조선인민혁명군 전체 부대와 혁명조직들에 배포되여 인민혁명군 성원들과 인민들을 주체적인 혁명로선으로 무장시키기 위한 필독문헌으로 되였으며 마당거우군정학습의 주되는 교재로 리용되게 되였다.

이밖에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비롯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불면불휴의 사색과 탐구, 로고가 깃들어있는 여러 로작들도 중요한 학습교재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학습반도 매 대원들의 지식수준에서의 차이를 충분히 고려하여 자습반과 식자반으로 나누어 조직해주시였다. 그리고 자습반에는 중대장, 정치지도원, 소대장, 당세포비서이상 일군들과 일정하게 정치리론적으로 준비된 대원들을 망라시켜 두 단계로 나누어 학습을 하도록 하시였으며 식자반에는 신대원들과 정치리론수준이 비교적 낮은 대원들을 망라시켜 문헌들에 대한 강의를 위주로 하고 이에 토론을 배합하는 방법으로 학습을 진행하도록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이와 함께 글을 모르는 대원들을 위하여 학습호조를 따로 내오는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학습강사들의 강의수준을 높이는데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그이께서는 학습강사들이 작성한 강의제강도 보아주시고 강의참관도 하시였으며 몸소 강의에 출연하시여 깨우쳐주는 교수교양의 실천적모범을 보여주기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원들이 학습에 취미를 붙이며 강의받은 내용을 충분히 리해할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조단위로 론쟁의 분위기속에서 토론하는 방법, 문답식학습방법, 개별담당하여 가르쳐주는 방법,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리해시키는 방법, 노래를 통하여 배운 내용을 공고히 하는 방법 등 여러가지 형식의 다양한 학습방법을 적용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와 함께 대원들에게 글을 짓게 하는 방법도 널리 적용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대원들에게 《나는 백발백중의 명사수가 되겠다》, 《규률은 왜 지켜야 하는가?》, 《국내인민들을 어떻게 일떠세울것인가?》와 같은 제목을 주어 2∼3일에 한번씩 글을 짓게 하시고 그것을 전체 성원들앞에서 발표하도록 하시였으며 그들이 쓴 글들을 하나하나 다듬어주시여 대내신문 《종소리》를 비롯한 출판물들에도 싣도록 하시였다. 그럴 때면 글을 쓴 대원은 물론 부대전체가 기쁨으로 흥성거리였으며 그 과정에 대원들의 학습열의는 더욱 끓어번지게 되였다.

이리하여 군정학습을 시작한 때로부터 전반적인 대원들의 학습열의와 정치사상적수준은 눈에 띄게 높아갔다.

그러나 모든 대원들이 처음부터 학습에 열성적으로 참가한것은 아니였다. 군정학습이 시작되자 일부 신입대원들속에서는 군사훈련에만 참가하고 정치상학에는 잘 참가하지 않으려는 편향이 나타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친히 이러한 대원들을 만나 그들의 학습정형을 알아보시며 혁명을 하자면 왜 학습을 잘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알기 쉽게 차근차근 일깨워주시였다. 군정학습에 참가한 신입대원들속에는 제 이름 석자도 쓸줄 모르는 까막눈이였지만 그것을 전혀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있을뿐아니라 오히려 글은 잘 모르지만 싸움은 남보다 더 잘할수 있다고 큰소리를 치면서 학습을 잘하지 않고있던 한 대원이 있었다.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부르시여 학습담화를 하시던 도중 앞에 서있는 고로쇠나무를 가리키시며 그에게 저 나무는 어디에 쓰면 좋겠는가고 물으시였다. 어려서부터 궂은일 마른일을 다 해본 그는 인츰 도끼자루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였다. 그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다시 송아지를 길러 부림소를 만들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고 물으시였다. 이번에도 그는 코뚜레를 꿰야 한다고 서슴없이 말씀드리는것이였다. 실농군인 그는 그런데서는 막히는것이 하나도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대답을 아주 잘했다, 동무가 농사를 지어보았으니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야 그런 리치를 알겠는가, 혁명사업에서도 꼭같은 리치가 작용한다, 무엇이 어디에 필요하며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잘 아는 사람이라야 혁명을 잘할수 있다, 모르고서는 고로쇠나무를 보고도 그것이 훌륭한 도끼자루감이라는것을 알수 없다, 적을 많이 잡는 묘리를 모르는 사람은 적을 많이 잡을수 없다, 총만 가지고서는 적을 이길수 없다고 차근차근 일깨워주시였다. 그이의 말씀에 자기의 잘못을 크게 뉘우친 그 신입대원은 새로운 결심을 다지고 그후부터 정치학습에 남다른 열성을 가지고 참가하였다.

그이께서 이날에 하신 말씀은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있던 다른 신입대원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각이 그릇된것임을 깨닫고 머리를 싸매고 학습에 달라붙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한 신입대원만은 그렇지 못하였다. 그는 동무들이 학습을 하라고 충고를 주면 머리타발을 하면서 학습을 게을리하고있었다. 그러면서도 홍범도장군도 자기와 같은 무식쟁이였지만 독립군대장노릇을 잘했는데 글을 몰라 혁명을 못한다는게 무슨 소린가고 반박하군 하였다.

이 사실을 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보내는 편지를 한장 쓰시여 전령병에게 전하게 하시고 누구도 그 편지를 읽어주지 못하게 하시였다. 그이의 편지를 받은 그 신입대원은 당황하여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며 읽어달라고 부탁하였으나 동무들은 이 구실 저 구실 붙여가면서 그의 청을 들어주지 않는것이였다. 안달이 난 그가 이 소대에서 저 소대에로 또 이 중대에서 저 중대에로 발이 닳도록 돌아다니며 편지를 읽어달라고 빌붙었지만 누구도 그 편지를 보아주지 않았다. 결국 그는 하는수없이 편지를 들고 위대한 수령님을 찾아와 거기에 적혀있는 사연을 읽어달라는 청을 드리게 되였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어 거기에 씌여져있는 과업은 수행할수 없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쩔바를 몰라 쩔쩔매는 그에게 보라, 동무가 글을 모르다나니 사령관이 준 과업을 집행할수 없게 되였다, 만약 적구에 나가 활동할 때 그런 편지를 받고도 읽지 못하여 명령을 집행하지 못하게 되였다면 어떻게 되였겠는가고 엄하게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을 듣고난 그 대원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자기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쳤다. 그때부터 그는 학습에서 남다른 열성을 내였으며 후날 아주 유식하고 능력있는 군정간부로 자라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정학습의 나날 군사학습에도 많은 품을 들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사상학의 중심을 주체적인 유격전법들이 종합되여있는 《유격대동작》《유격대상식》을 완전히 소화시키는데 두시고 지휘성원들은 전술학습에 주력하게 하시였으며 대원들은 사격훈련과 제식훈련을 기본으로 하면서 실기를 련마해나가도록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군사상학과정안에 유격전술과 함께 정규군전술도 포함시켜 동시에 학습하도록 하시였다. 그 목적은 적을 전술적측면에서 더 깊이 파악하게 하고 장차 해방된 조국에서의 정규군건설이라는 큰 과제를 앞에 둔 조건에서 그에 필요한 지식을 체득시키자는데 있었다.

그이께서는 자주 야외에서 실전의 분위기를 조성해놓고 지휘관들의 전술연구모임을 조직하시였으며 평대원들에게도 전술학습을 시키시였다. 그리고 신입대원들에게 지도를 보는 방법과 지북침에 의한 방위판정법도 배워주도록 하시고 청강전자전투와 정안툰전투 등 여러 전투도 조직하시여 군사상학에서 배운 지식을 더 잘 다져나갈수 있게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정학습기간 대원들의 문화적소양을 높이고 부대관리와 생활문화를 개선하는데도 큰 힘을 넣으시였다. 그이께서는 특히 주력부대안에서 전투력이 제일 강한 핵심중대인 7련대 4중대를 시범단위로 꾸리시고 그 모범을 따라배우기 위한 지휘관들의 방식상학까지 조직하심으로써 모든 중대들에서 혁신이 일어나게 하시였다.

이렇듯 마당거우에서의 군정학습은 위대한 수령님의 정력적이고 세심한 지도밑에 제정된 학습과정안을 마치고 성과적으로 끝났다.

학습기간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그 면모를 새롭게 일신하였다. 학습을 통하여 전체 지휘관들과 대원들은 주체적인 혁명로선과 전략전술로 더욱 철저히 무장하고 확고한 자주적립장을 가지게 되였으며 백전백승의 유격전술과 전법을 깊이 체득함으로써 높은 군사정치적자질을 갖춘 유능한 지휘성원으로, 펄펄 나는 싸움군들로 자라나게 되였다.

참으로 마당거우에서의 동기군정학습은 선군혁명무장력의 군사정치적자질을 한계단 높이고 지난날 학교문전에도 가보지 못하고 제 이름조차 쓸줄 모르던 수많은 로동자, 농민출신의 대원들을 견결한 혁명투사로, 조선혁명의 믿음직한 골간들로 키운 밀림속의 《군정대학》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