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 중에서

능숙한 지하공작원이신 김정숙녀장군께서는 혁명임무수행에 무한히 충직하시였으며 혁명의 리익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도천리와 신파를 거점으로 지하공작활동을 벌리시던 시기에 혁명가는 생명보다 귀중한 조직을 위하여 어떻게 살며 싸워야 하는가를 실천적모범으로 보여주시였다.

주체26(1937)년 8월초 어느날 도천리부녀회원들이 신파에 가서 유격대에 보낼 등사기와 등사원지, 기름을 사가지고 금방 김정숙녀장군께서 계시는 집으로 들어섰는데 뜻밖에도 《정안군》놈들이 마을에 불시에 달려들었다.

조선인민혁명군을 《토벌》한다고 개싸다니듯 하다가 혁명군의 된벼락을 얻어맞고 악이 오를대로 오른 《정안군》놈들은 저들의 본성그대로 집집을 뒤지며 로략질을 해대였다.

정황은 매우 위급하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그 위급한 순간에도 당황하여 어쩔바를 몰라하는 부녀회원들에게 가져온 물건은 얼른 헛간에 감추고 모두 방안에 들어가 노래를 부르며 놀라고 하시였다.

하지만 녀인들은 방안에 들어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좀처럼 노래를 부르지 못하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 《십진가》를 선창하여서야 그들도 따라부르며 좀 진정되였다.

이때 7∼8명의 《정안군》놈들이 집으로 쓸어들어왔다. 놈들은 노래를 그만두게 하고는 집안팎을 샅샅이 뒤지였다. 그러다가 헛간에서 감추어놓은 종이뭉치를 들춰냈다.

중대장놈은 그것을 보자 당장 낯색이 험악해지더니 권총을 뽑아들고 이 집이 《공산당》집이다, 집주인이 누구냐, 당장 나서지 않으면 몽땅 체포해가겠다고 날뛰였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김정숙녀장군께서 《내가 이 집주인이다.》라고 하시며 나서시였다.

그러자 중대장놈은 어머님을 마당가운데서 걸어보라고 하였다. 그 순간 어머님께서는 놈들이 산에서 싸우던 사람들은 걸음새를 보고도 안다고 하던 생각이 나서 일부러 다르게 걸으시였다.

중대장놈은 머리를 기웃거리더니 무작정 졸병놈에게 체포하라고 손짓하였다.

그때 부녀회원들이 《량인》이라고 하며 막아나서자 중대장놈은 종이뭉치를 내휘두르며 이것이 증거가 아닌가고 날뛰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그놈에게 그 종이는 구장이 《주민대장》을 만들려고 구해온 종이라고 하시였다.

그바람에 말문이 막힌 중대장놈은 낑낑 갑자르더니 그런데 왜 이 집 헛간에 감추었는가고 물었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웃으시며 그거야 언제 공산군이 내려올지 모르는 곳이기때문에 구장이 안전한 우리 집에 건사해두라고 해서 잘 건사하느라 그랬다고 하시였다.

그러나 검질긴 중대장놈은 좀 더 따져봐야겠다고 하며 끝내 체포하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부녀회원들을 돌아보시며 죄가 없으니 곧 돌아올것이라고 하시면서 내가 없더라도 노래를 부르며 전처럼 재미있게 놀라고 말씀하시였다. 김정숙녀장군의 이 말씀은 의기를 잃지 말고 더욱 힘을 내여 투쟁을 계속하라는 고무의 말씀이시였고 그것은 또한 어떤 일이 있어도 비밀을 지킬것이니 절대 안심하라는 뜻깊은 말씀이기도 하시였다.

그날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정안군》려단지휘부가 있는 요방자로 호송되여가시였다.

혁명의 길은 적과의 피어린 투쟁의 련속이였다.

적탄이 비발치는 격전장에서 용맹을 떨치시였던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원쑤놈들의 고문실에서 싸우게 되시였다.

놈들은 《공산군녀자》를 체포했다고 하면서 김정숙녀장군에게서 지하혁명조직이나 조선인민혁명군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처음부터 거품을 물고 날뛰였다.

놈들은 가죽채찍을 휘두르며 참기 어려운 갖가지 고문을 하였다.

한번 유격대원으로 보거나 그 련루자로 보기만 하면 현지총살도 서슴없이 감행하는 야만같은 《정안군》놈들이였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그렇게 하려 하지 않았다. 이번의 《혐의자》는 틀림없이 량민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거물급의 지하공작원이라고 생각한 놈들은 악형만 들이대면 사령부의 비밀을 알아낼수 있을것이라고 타산하였던것이다.

적들이 미쳐날뛸 때마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변함없이 모른다고 하시며 놈들에게 공포를 안기시였다.

놈들은 밤에 낮을 이어 고문을 계속하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사령부의 안전과 조직의 비밀을 위해서라면 생명도 아낌없이 바치리라 마음다지시였다.

어찌다 적들이 제풀에 지쳐서 물러가야 선잠이라도 드시였는데 그럴 때는 혹시 몽롱한 의식속에서 헛소리라도 낼가봐 손수건을 찢어 자신의 혀밑에 넣으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놈들의 감방속에서도 언제나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로운 모습을 그리시며 매일매일 자신의 투쟁을 총화하시였다.

감방문틈으로 비쳐드는 달빛은 비장한 결의를 다지시는 김정숙녀장군의 숭엄한 얼굴을 비쳐주고있었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마음이 여간만 괴롭지 않으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임무를 주시던 때를 생각하고계시였다.

사령부천막가에서 멀리까지 바래주시고도 오래오래 한자리에 서시여 손을 흔들어주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영상을 우러르니 수령님께서 주신 혁명임무를 다하지 못한채 철창속에 갇힌 몸이 된 괴로움이 녀사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였다. 한 일보다 못한 일이 더 많고 못다하신 일을 마저 하실 기회가 더는 차례지지 않게 된것이 못내 아쉬우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조직의 비밀을 지켜내고 혁명의 사령부를 보위하며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전사된 영예를 더럽히지 않으리라 굳게 마음다지시였다.

놈들의 고문은 매일 계속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한 《정안군》놈이 김정숙녀장군앞에 나타나 류창한 조선말로 자기는 한때 조선사람과 한마을에서 산 일이 있기때문에 조선사람들을 동정하는 《량심적인 인간》이라고 지껄이면서 《지금 일본지도관이 출장가고 없는데 조직선만 대주면 부려단장에게 보고하고 잘 토의해서 석방하게 하겠다.》고 하였다. 계속하여 그놈은 《한창 피여나는 꽃나이에 그 무서운 고문을 당하다가 죽을수도 있는데 사람이 죽고서야 볼게 있는가, 아는대로 말하면 내가 보증서겠으니 나의 말을 명심해들어야 한다.》고 제법 그럴듯이 사탕발린 말을 하였다. 그러면서 순순히 응하지 않으면 《정안군》이 틀림없이 당신을 사형할것이라는 위협까지 덧붙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도 적들이 혁명군공작원을 체포했다고 떠들어댄 이상 공작원이라는 대답을 받아내기 전에는 결코 물러서지 않을것이므로 자신의 희생을 각오하여야 한다는것을 잘 알고계시였다.

(놈들은 이제 나를 사형대에 끌어낼것이다. 하지만 장군님을 위하여, 혁명을 위하여 바치는 삶은 아깝지 않다. 사령부와 조직의 비밀을 끝까지 지켜싸우자!)

이렇게 결심하신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자신의 희생을 각오하고 조직에 보내는 편지를 쓰시였다.

《안심하십시오.

나는 죽을것입니다. 그러나 조직은 살것입니다. 나의 재산의 전부인 2원을 보냅니다. 조직의 자금으로 써주십시오.》

사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요방자에 잡혀가 감금당했을 때 얼마든지 탈출하실수도 있었다. 그러나 녀장군께서는 결코 그 길을 택하지 않으시였다.

해방직후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집에 찾아온 옛 도천리의 전우들과 담화하시면서 그때의 자신의 심정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사실 보초 하나쯤 제끼고 내뛰는거야 아무것도 아니지요. 그렇지만 그렇게는 못하겠더군요. 제가 갇혀있던 집의 늙은 내외의 가긍한 정상을 생각하면 어떻게 보초를 제끼고 달아날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들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내가 여기서 도망가기는 쉽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빠져나가면 이 집 늙은이들은 어떻게 되고 나를 좋은 녀자라고 보증해나선 정구장은 어떻게 되고 도천리의 지하조직과 인민들은 또 얼마나 큰 피해와 시달림을 당하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니 내 한몸이 희생되더라도 조직을 지켜내고 인민을 지켜내야 하겠다는 각오가 생기였습니다. 저는 그날 밤 편안한 마음으로 그 집 웃방에서 잠을 잤습니다. 일신을 바치려고 마음먹으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두려운것도 없고 주저할것도 없었습니다.》

김정숙녀장군의 불굴의 신념과 의지가 담긴 편지, 연필로 또박또박 씌여진 그 편지는 녀장군께서 갇혀있는 집 로파의 손을 거쳐 그 옆집에 전달되고 다시 정동철을 거쳐 조직에 전하여졌다.

적들에게 체포된 김정숙녀장군의 신변을 념려하여 불안에 모대기던 지하조직원들은 그이께서 보내신 편지를 받고 모두 눈물을 흘리며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편지를 읽고난 그들은 김정숙녀장군께서 사령부와 혁명조직의 안전을 위하여 장렬한 최후를 각오하고계신다는것을 직감하였다.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김정숙녀장군을 보호하고 구원해내지 못하는 자책감으로 가슴을 치며 목숨을 내걸고라도 기어이 구원해내자고 결의들을 다지였다.

그리하여 조직에서는 조국광복회 회원들인 《유지》들 몇명으로 지방대표단을 구성해가지고 위문하는 형식으로 《정안군》려단지휘부에 찾아갔다.

《정안군》려단지휘부에 들어간 지방대표들은 부려단장놈에게 가지고 간 삶은 닭과 술을 내놓으면서 엄옥순은 무산에서 살길을 찾아 도천리에 온 《량민》이라고 하면서 석방시켜줄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면서 그놈을 춰주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부려단장놈은 기분이 좋아서 인민혁명군의 항일구국사상에 대해서는 자기도 민족적립장에서 볼 때 옳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의 대세가 그렇지 못하다고 하면서 자기도 김일성장군님의 항일구국사상에 동감하고있다는것을 은근히 내비치는것이였다.

그놈의 이 말은 당시 이 지방이 조선인민혁명군의 활동지역인것만큼 지방대표들을 통하여 조중인민이 모두다 우러러받드는 전설적영웅이신 김일성장군님께 자기의 조그마한 《민족적량심》이라도 전달되게 함으로써 자기들을 치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였다.

그놈이 그렇게까지 나오게 된데는 또한 김정숙녀장군께서 위대한 수령님의 적군와해사업방침을 높이 받들고 이곳에 오신 첫날부터 적극적인 투쟁을 벌려온 결과에서 오는것이기도 하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이곳에 오시자부터 위만군의 동향을 예리하게 살피시면서 부려단장놈을 비롯한 위만군병사들에게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으로 된 《괴뢰만주구국군장병들에게 주는 글》 등 편지와 격문을 이미 여러차례 보내시여 그놈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으시였던것이다.

면담은 적지 않은 시간에 걸쳐 진행되였다.

부려단장놈은 면담을 통하여 수색과정에 나타난 종이가 《주민대장》을 만들려던것이라는 김정숙녀장군의 말씀과 지방대표들의 말이 일치하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리하여 종이문제를 가지고 김정숙녀장군을 공작원이라고 단정할수 없게 되였다.

도천리조직원들의 구출투쟁은 마침내 은을 내였다. 《정안군》부대에서는 부대이동을 구실로 김정숙녀장군을 14도구경찰서로 이송하였다.

조직에서는 석방문제를 놓고 심중히 토론한 끝에 정동철에게 13도구경찰서장과 담판할 과업을 주었다.

당시 《구장》 정동철과 《결의형제》를 뭇고있던 13도구 경찰서장은 혁명군의 령활무쌍한 군사활동에 겁을 먹고 늘 기를 펴지 못하고있었으며 일본놈들에 대한 불만도 품고있었다. 이러한 약점을 깊이 알고있던 정동철은 그를 만나 에두르지 않고 지금 감금되여있는 엄옥순녀성은 김일성장군님께서 파견하신 공작원이다, 그이를 구출하는데 힘써야겠다, 그러니 우선 14도구에서 당신이 관할하는 13도구로 이송하도록 하라고 직방 들이댔다. 14도구경찰서는 한급 높은 1급 경찰서인 13도구경찰서에 종속되여있어 이송시키는 문제는 어렵지 않게 해결되였다. 그러나 13도구경찰서장은 차후 상급에서 문제시하는 경우 책임을 회피할 증빙문건을 남겨두기 위해 500명의 주민들의 도장을 찍은 《량민보증서》를 작성하여가지고 오면 김정숙녀장군을 《량민》으로 인정하고 석방시키겠다고 하였다.

500명분의 량민보증서 작성, 그것은 실로 하늘에서 별을 따다 바치라는것만치나 실행하기 어려운 요구였다. 도대체 《역적》이나 《공비》로 지목된 《불온분자》를 량민으로 인정하는 보증서에는 아무나 함부로 손지장을 누르려 하지 않는것이 보편적인 군중심리였던것이다.

그런데 경찰서장의 예상을 뒤집어놓은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정동철이 경찰서장이 요구하는 량민보증서를 가지고 나타난것이였다.

500명의 도장과 지장이 주런이 찍혀있는 량민보증서, 그것을 보는 순간 경찰서장은 눈알이 튀여나올 지경으로 놀랐다.

200여호밖에 안되는 도천리마을에 그렇게 많은 지하조직원이 있을수도 없었다. 아무리 조직이 발동되였다 해도 조직원보다 몇배나 더 많은 그 숱한 비조직원들이 모두 남의 풍에 떠서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보증서에 함부로 도장을 누를수는 없었을것이였다.

그것은 보통상식으로는 상상할수 없는 하나의 기적이였다.

경찰서장은 더는 어쩔수가 없어 김정숙녀장군을 석방시키고야말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후날 이 사실에 대하여 회고하시면서 그 뭇사람들로 하여금 량민보증서에 서슴없이 도장을 누르게 할수 있은것은 김정숙에 대한 인민들의 다함없는 사랑이였고 지지였다고, 달리 말하여 강권이나 금권보다도 더 위력한 인민의 절대적신뢰와 지지가 그런 기적을 낳게 한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나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인민을 위해 자기를 깡그리 바치지 않는 사람은 위기일발의 순간에 인민의 진정한 도움을 받을수가 없다. 김정숙은 인민에게 사랑을 바친것만큼 자기가 그처럼 아끼고 품어준 인민들로부터 응당한 보답을 받은것이다. 그러고보면 500명의 인장이 찍힌 량민보증서는 그가 인민의 참된 충복임을 증명하는 영원한 증서라고도 해야 할것이다.》

결국 김정숙녀장군에 대한 적들의 체포사건은 녀장군의 인민성을 보여준 량민보증서사건으로 결속된셈이였다. 김정숙녀장군께 있어서는 영웅성이자 인민성이였고 인민성이자 영웅성이였다. 여기에 인민을 위한 헌신적인 사랑의 전설로 인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신뢰의 기적을 낳게 하신 김정숙녀장군의 특출한 풍모가 있는것이다.

실로 김정숙녀장군께서 적들에게 체포되시였던 그 준엄한 기간은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끝없는 충직성과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한 참다운 혁명가의 빛나는 투쟁의 나날이였으며 생명보다 조직을 더 귀중히 여기신 그이의 철석같은 신념과 혁명적지조를 남김없이 보여준 투쟁의 나날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