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 (1)중에서

1937년 7월 7일 중국 관내의 로구교라는 다리에서 한방의 총소리가 울리였다.

정세도 어수선하던 때이라 사람들은 한밤중에 울린 이 총소리 역시 흔히 들어오던 총소리로 생각하였지 별로 심중히 대하지 않았다. 누구도 이 총소리가 근 3,000일동안이나 중국땅을 피바다에 잠그고 대전의 소용돌이속에 세계를 휘몰아넣는 전주곡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다.

일인즉 이렇게 되였다. 이날 일제는 군사연습중에 있던 병사 한명이 실종되였다는 구실로 완평현성에 대한 수색을 무리하게 요구해나섰다. 이것을 발단으로 충돌이 야기되였다. 일제는 송철원의 중국군 29군이 저항해나서자 로구교를 점령하고 베이징을 포위하였다.

이 사건은 하나의 우발적인 충돌이였던것만큼 현지교섭으로도 얼마든지 해결할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도발의 구실을 찾고있던 군부의 압력밑에 일본 고노에내각은 7월 11일 일본에 있는 사단들의 중국파견을 각의에서 결정하였으며 말로는 군사적충돌의 불확대를 떠들면서도 실제로는 이 별치 않은 사건을 중일전쟁을 확대하는 구실로 리용하였다. 8월 13일에 일제는 벌써 상해를 공격하는데 이르렀다. 로구교에서 울린 총성은 드디여 일제의 중국침략전쟁으로 번져지게 되였다.

중일전쟁의 발발로 조성된 새로운 정세는 주동적이며 적극적인 전략전술을 세울것을 요구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앞으로 이 전쟁이 어떻게 번져지며 조선혁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것인가, 조선혁명가들은 이에 어떤 태도와 방법으로 대처해나갈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줄곧 사색을 거듭하시였다. 그때 적지 않은 대원들과 지휘관들은 전쟁의 확대가 조선혁명에 불리한 영향을 미치게 될것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성된 복잡한 정세를 령활하게 리용하면 화를 복으로 전환시킬수 있다는 각도에서 정세를 평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중일전쟁을 도발한 일제가 초기에는 비록 일시적인 우세를 차지할수 있지만 전쟁의 부정의성, 자국내의 모순과 리권쟁탈을 위한 제국주의렬강들사이의 모순,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불가피하게 초래될 병력부족과 전략물자의 고갈, 날로 심화되는 국제적고립 등으로 반드시 멸망하고야만다고 굳게 믿으시였다. 그리하여 그이께서는 중일전쟁은 우리 민족의 독립전쟁에 절망이 아니라 밝은 전망을 열어주고있다는것, 다시말하여 목적달성의 절호의 기회를 주고있다고 판단하시였다.

이로부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급변하는 정세에 주동적으로 대처하여 항일무장투쟁을 강화하고 전반적조선혁명을 새로운 앙양에로 이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적방침들을 세워가시였다.

주체26(1937)년 7월 중순 백두산밀영에서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 지휘성원들의 회의와 그해 8월 장백현 초수탄에서 소집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는 이 방략을 확정한 회의들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회의들에서 두만강, 압록강연안일대를 비롯한 광활한 지역에서 적배후교란작전을 벌리며 반일반전투쟁을 강화하고 전민항쟁준비를 다그칠데 대한 방침을 내놓으시였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백두산서남부일대와 국내에 더 많은 지하조직을 내오는것과 함께 조선인민혁명군의 정치공작소조들이 랑림산줄기를 리용하여 혁명근거지를 꾸리고 국내도처에 생산유격대와 로동자돌격대를 조직할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이 방침관철을 위한 구체적인 방도들에 대하여 천명하시였으며 이밖에 제기되는 일련의 문제들에 대하여서도 명확한 해답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배후교란작전을 크게 두가지 방향에서 벌려야 한다는데 대하여서도 언급하시였다. 그 하나는 랑림산줄기에 의거하여 밀영망을 꾸리고 국내도처에 생산유격대와 로동자돌격대를 조직하는 방법으로 전민항쟁의 군사적지반을 마련하며 국내에서 여러가지 형태의 대중투쟁을 통하여 일제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는것이였고 다른 하나는 유격전의 방법으로 일제침략군의 중국관내에로의 기동을 가로막고 그들의 전략작전을 파탄시키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백두산회의와 초수탄회의에서 제시하신 전략적방침은 중일전쟁발발로 하여 조성된 난국을 타개하고 역경을 순경에로 전환시키며 자주의 기치밑에 전반적조선혁명을 새롭게 앙양시킬수 있게 한 현명한 방침이였다.

초수탄회의에서는 새로운 전략적방침에 따라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을 부분적으로 개편하고 부대들의 활동지역을 실정에 맞게 분담하였으며 국내에 파견할 무장소조와 정치공작소조문제도 협의하였다.

이렇듯 격변하는 정세에 주동적으로 대처해나가기 위한 전략적방침을 제시하시고 구체적인 대책까지 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6(1937)년 8월 12일 장백-림강현경의 어느 한 산릉선에서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 및 병사대회를 소집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대회에서 하신 력사적인 연설 《일제의 대륙침략전쟁을 저지파탄시키고 조국광복의 위업을 앞당기자》에서 조선인민혁명군앞에 나선 과업들을 다시금 구체적으로 밝히시였으며 그 관철을 위한 투쟁에서 전체 지휘관, 병사들이 혁명적자각과 높은 책임감을 가지고 자기의 군사정치적임무를 훌륭히 수행하리라는 확신을 표명하시였다.

대회를 통하여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들과 대원들의 혁명적열의를 불러일으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배후교란작전을 령활하게 조직지휘하시였다.

주체26(1937)년 8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하혁명조직으로부터 《토벌》에 내몰린 산림경찰대의 큰 집단이 장백현 신방자 북쪽의 등판길로 지나가게 된다는 통보를 받으시고 매복전으로 순식간에 적 200여명을 살상포로하는 전과를 이룩하시였다. 그후 그이께서는 쌍산자부근전투를 조직지휘하시여 이동하는 적 160여명을 소멸하시고 일제의 군수물자수송에 커다란 타격을 주시였다.

이 시기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받들고 림강, 통화, 류하, 몽강 등지로 떠나간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도 적극적인 류동작전과 배합작전으로 거듭 전과를 올리였다. 그들은 지어 해륜과 심양철도연선에까지 진출하여 적의 배후를 크게 타격하였다. 함흥, 흥남, 원산 등 국내깊이에 진출한 소부대와 정치공작소조들은 도처에서 적들의 손발을 묶어놓았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와 직접적인 지휘밑에 조선과 만주에서 정치군사활동과 배후교란작전이 맹렬히 벌어짐으로써 《일격론》, 《단기종전론》을 떠들며 중국을 단숨에 먹어보려던 일제는 장기전에 말려들어가게 되였다. 이에 따라 조선인민혁명군의 적배후교란작전도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6(1937)년 9월 중순 림강현 신태자밀영에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 지휘관회의를 여시고 그동안의 적배후교란작전을 총화하신 다음 국내에서의 배후교란작전을 적극화하며 적의 군수수송체계, 특히 무기와 탄약운반을 파탄시킬데 대한 당면과업을 제시하시였다.

그이의 작전적구상에 따라 적의 배후를 끊임없이 교란하기 위한 전투들이 도처에서 련이어 진행되였다.

휘남현성전투는 이 시기에 진행된 대표적인 전투들중의 하나였다. 휘남현성은 벌판가운데 자리잡고있는 성시로서 적의 대부대들이 주둔하고있는 몽강, 조양진, 류하, 화전 등의 도시들로 통하는 도로와 통신시설들이 매우 발달되여있는 요충지였다. 적들은 중무기로 장비한 병력이 배치되여있고 여러가지 방어시설들도 갖추어놓은 이 도시를 《난공불락》이라고 하면서 이곳을 항일무장투쟁을 압살하기 위한 중요한 《토벌》거점으로 삼고있었다. 현성안에는 일본지도관이 지휘하는 위만군과 경찰대, 자위단 등 250명가량의 병력이 있었으며 현성주변에도 수많은 적들이 배치되여있었다. 그뿐아니라 현성은 그 주변일대에 파견되여있는 위만군부대들의 후방기지인것으로 하여 성안에 2개의 큰 군수품창고까지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휘남현성에 대한 진공이 여러모로 불리한 점이 있지만 이곳이 적배후교란작전의 타격대상으로 적합하다고 보시고 현성을 공격하기로 결심하시였다.

그이의 전투계획에 따라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120리길을 강행군하여 주체26(1937)년 10월 25일 밤 12시경에 휘남현성부근에 도착하였다.

정찰자료에 반영된 그대로 현성은 높이 약 2.5m의 성벽으로 둘러싸여있었는데 그우에는 2중철조망이 늘여져있었고 성벽두리에는 너비 약 4m, 깊이 3m가량 되는 물홈이 있었다.

이튿날 새벽 선발대임무를 맡은 한 습격조가 널판자로 물홈을 건너 순찰을 도는 적들을 감쪽같이 처단하고 성문을 열어제꼈다. 때를 같이하여 모든 습격조들이 토성의 네귀에 축성되여있는 포대를 제압하면서 현성의 동, 서, 남쪽의 세 방향에서 일제히 성안에 돌입하였다.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던 적들은 불의의 습격에 여지없이 녹아나고 현성은 순식간에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의 손에 장악되였다.

조선인민혁명군 부대의 정치일군들과 대원들은 《김일성장군 만세!》를 목청껏 부르며 거리에 달려나온 인민들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 중일전쟁발발에 대처하여 제시하신 전략전술적방침도 해설해주고 각종 격문도 곳곳에 붙이면서 힘있는 정치활동을 진행하였다. 전투를 성과적으로 치른 부대는 로획물자운반을 자원해나선 약 300명의 인민들과 함께 지체없이 철수한 다음 해룡, 반석, 몽강 등 방면에서 밀려오는 일본군과 위만군의 증원부대들을 다시한번 호되게 타격하여 전과를 확대하였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께서 진행하신 령활한 군사작전과 대중정치활동으로 하여 침략전쟁확대에 광분하던 일제의 후방은 크게 뒤흔들리게 되였으며 《남만의 치안은 확보되였다.》, 《유격대는 완전히 소멸되였다.》고 떠들던 일제의 선전이 완전한 허위였다는것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배후교란작전을 승리에로 이끌어나가시던 시기 전민항쟁준비를 다그치기 위한 사업도 힘있게 밀고나가시였다.

힘을 길렀다가 때가 오면 조선인민혁명군의 군사작전에 전민항쟁을 배합하는 방법으로 조국해방의 위업을 이룩하시려는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오래전부터 무르익혀오신 구상이였다.

이미 백두산회의와 초수탄회의에서 전민항쟁준비를 다그치는것을 중요한 방침의 하나로 제시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관철을 위하여 《전체 조선동포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발표하시였다.

주체26(1937)년 9월에 발표되였다고 하여 9월호소문이라고 하는 이 호소문에서 그이께서는 크게 두가지 문제에 의의를 부여하시였다. 그것은 중일전쟁과 조선혁명과의 호상관계에 대한 옳은 인식을 줌으로써 조선인민이 신념을 잃지 않고 반일투쟁을 강화해나가도록 하는 문제와 전민항쟁준비의 전략적방도를 밝혀주는 문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호소문에서 조성된 정세는 일제의 멸망을 촉진시키고 조국광복의 력사적위업을 성취하기 위한 투쟁을 더욱 강력히 전개할것을 요구하고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호소하시였다.

《애국의 피가 끓는 동포형제들! 일제의 가혹한 파쑈적폭압과 식민지략탈책동으로 인한 우리 겨레의 피눈물나는 참상과 처지를 두고 어찌 한탄만 하고있을수 있겠는가. 나라잃은 민족의 설음을 통탄만 하지 말고 일제침략자들을 타도하기 위하여 결연히 일어나 싸워야 한다.

오랜 세월 와신상담하면서 일제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싸워온 우리 동포들은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모두다 항일대전에 떨쳐나서자.》

민족의 가슴마다에 애국의 넋을 심어주고 신심과 용기를 북돋아준 9월의 호소문은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 종교인, 량심적인 자산가들을 비롯하여 나라를 구원하려는 모든 조선동포들을 거족적인 반일투쟁에로 불러일으킨 전민항쟁호소문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체 조선동포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발표하신데 이어 수많은 소부대들과 정치공작원들을 국내에 파견하시여 전략적의의를 가지는 큰 산줄기들에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의 활동기지, 작전기지, 후방기지인 동시에 전민항쟁과 반일애국투쟁에 대한 지도를 진행하는데서 거점으로 될수 있는 비밀근거지들을 꾸리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부대들과 정치공작원들을 국내에 파견하시였을뿐아니라 몸소 국내깊이에까지 진출하시여 전민항쟁준비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해주시였다.

그이께서 주체26(1937)년 9월과 주체27(1938)년 8월을 비롯하여 여러차례에 걸쳐 국내 신흥과 풍산지구, 양덕지구에로 진출하신것도 바로 전민항쟁준비의 돌파구를 열어주시기 위해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진행하신 국내진출은 중일전쟁에 대처한 전략적방침과 9월호소문에서 밝힌 전민항쟁방침의 전략적의도를 국내인민들속에 깊이 침투시키고 그 관철을 위한 투쟁을 적극 벌려 전반적조선혁명을 일대 앙양에로 이끌어올리는데서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

그이께서 국내를 다녀가신 후 부전, 함흥, 흥남, 원산, 단천, 풍산, 신흥을 비롯한 국내각지에서는 전민항쟁세력이 우후죽순처럼 자라나고 전민항쟁준비는 급속히 추진되였다.

실로 중일전쟁의 발발이라는 급변하는 정세속에서 이룩된 이 모든 성과들은 언제나 맞받아나가는 전략으로 조성된 난국을 타개하고 화를 복으로, 역경을 순경으로 전환시켜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령도가 가져온 빛나는 결실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압록강과 두만강일대에서 조직진행하신 적극적인 군사정치활동은 중일전쟁을 도발한 일제의 뒤통수를 호되게 후려쳤으며 조선혁명전반을 새로운 앙양에로 이끌어올릴수 있는 넓은 길을 열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