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중에서

   

언제인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의 모습을 그려보시며 이런 말씀을 하시였다.

어머님께서는 일찌기 어리신 나이에 조선의 광복을 위하여 손에 총을 잡고 싸웠습니다. 나는 항일혁명투사들로부터 어머님의 투쟁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어머님은 한몸의 위험을 무릅쓰시고 백두산의 산발들과 압록강을 넘나드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혁명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시여 조국광복의 위업을 이룩하는데 크게 기여하시였습니다. 지난 항일무장투쟁시기 어머님은 끝없는 충성심과 높은 사격술로 위대한 수령님을 정치사상적으로 옹호보위하시였습니다. 항일무장투쟁시기 어머님을 항일유격대원들은 백두산의 녀장수라고 부르며 존경하였고 우리 인민들은 자랑스러운 조선의 딸이라고 높이 칭송하였습니다.…

항일혁명투사들이 김정숙어머님을 백두산의 녀장수라고 부른 그 호칭속에는 바로 자신의 실천적모범으로 그들을 영웅적위훈에로 불러일으키신 김정숙녀장군의 높은 군인적기질과 전투정신이 비껴있다.

주체25(1936)년 2월 남호두회의에서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국경일대에 새로운 형태의 유격근거지를 창설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국경지대에로 진출하며 이 일대에서 군사정치활동을 힘있게 벌리도록 하시였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이 시기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직지휘하신 수많은 전투들에 참가하시여 백두산의 녀장군으로서의 뛰여난 군사적지략과 용맹을 떨치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 위대한 수령님의 지휘밑에 진행된 전투에 처음으로 참가하신것은 주체25(1936)년 6월 16일에 있은 로령전투였다.

위만군가운데서도 가장 악질적인 《정안군》이 로령을 통과한다는 정보를 입수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부대를 로령의 유리한 계선에 은밀히 배치하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녀대원들을 데리고 4중대와 함께 길에서 100m가량 떨어진 고지비탈면에 매복하시였다.

아침 6시경 망원초에서 적들이 나타났다는 신호가 왔다. 잠시후 약 2개 중대가량의 적들이 매복권안으로 기여들기 시작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들이 매복권안에 완전히 들어서자 사격명령을 내리시였다. 부대의 일제사격이 시작되였다. 불시에 타격을 받은 적들은 미처 대응도 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침착한 명중사격으로 적들을 련이어 거꾸러뜨리고 바위틈에 숨으려던 놈까지 쏘아눕히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적들에게 숨돌릴 틈을 주지 않고 부대에 돌격명령을 내리시였다. 모든 대원들이 총창을 비껴들고 적진속으로 돌입하였다. 한창 육박전투가 벌어질 때 한무리의 적들이 고지비탈면으로 도망치려다가 김정숙녀장군을 비롯한 녀대원들과 맞다들었다. 원래 악질적인 《정안군》놈들인데다가 상대가 연약한 녀자들이라고 얕본 놈들은 총창을 꼬나들고 달려들었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연거퍼 달려드는 정안군놈들을 총창으로 찌르고 총탁으로 후려치면서 놈들을 요정내시였다. 녀장군을 따라 녀대원들도 육박전투에 뛰여들었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녀성의 몸으로 육박전에 서슴없이 뛰여드시여 용감하게 적들을 무찌르고 혁명동지들을 구원하심으로써 대원들을 경탄시키시였으며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평가를 받으시였다.

로령전투에 이어 7월 10일에 있은 시난차전투때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전술적의도에 대한 깊은 파악으로 대원들을 감동시키시였다.

시난차는 300호가량 되는 비교적 큰 집단부락이였는데 통나무로 두세길되는 울타리를 둘러친 부락의 한복판에 위만경찰분서와 적병영이 도사리고있었다. 부대가 차지한 초가산에서는 시난차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였다.

대원들은 지난날의 경험을 보아 성시습격은 밤에 있을것으로 생각하였다. 한 대원은 성문앞에서 거들먹거리는 적보초놈을 내려다보며 《오늘 밤엔 네놈의 운명도 끝장이다.》하고 익살까지 피웠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전투가 왜 밤에 있을것으로 생각하는가고 물으시였다. 그 대원은 성시습격은 밤에 해야 불의성을 보장할수 있고 불의성이 없이는 성벽과 포대에 의지해있는 병영을 답새기기 어렵다고 하면서 그것을 자신이 참가한 여러차례의 전투경험으로 《론증》하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의 천변만화한 군사적전법과 작전적의도를 누구보다 먼저 깊이 파악하신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대원들에게 아무리 성시습격전투라도 불의성만 보장할수 있다면 합리적인 다른 시간을 택할수도 있다고 깨우쳐주시고 장군님의 신묘한 전법을 받들어 본때있게 싸울데 대하여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드디여 김일성장군님의 공격명령이 하달되였다. 적들이 밤에는 성문을 닫아걸고 신경을 잔뜩 도사리고있지만 낮에는 성문을 열어놓고 태평스럽게 무기소제나 한다는 약점을 리용하여 대낮에 불의적인 기습으로 시난차를 점령할데 대한 명령이였다. 그때 대원들은 약속이라도 한듯 김정숙녀장군께로 눈길을 모았다. 그이의 예측대로이기때문이였다.

시난차전투는 불과 20∼30분사이에 완전한 승리로 끝났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련이어 진행된 서강전투에서도 김일성장군님의 작전적의도를 누구보다 먼저 깊이 파악하시고 그것을 정확히 관철하도록 대원들을 이끌어주시였다.

적들은 서강에 가장 악질적인 부대를 주둔시켜 통제지역으로 관할하고있었는데 병영주변에는 아름드리나무들로 세길이나 되는 성을 둘러치고 성 네귀에는 포대까지 구축해놓았다. 그중 두곳은 망루를 겸한 2층포대였고 두곳은 지하설비를 갖춘 포대였다. 이뿐아니라 부락을 둘러싼 통나무짬으로도 사격을 할수 있게 만들고 그 둘레에 깊은 물홈까지 파놓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집된 정찰자료에 근거하여 서강의 적을 화공전술과 화력타격, 함화공세로 일격에 소멸할것을 결심하시고 화공도구로서 목회탄을 만들도록 하시였다.

목회탄은 나무를 태운 재를 천으로 싸서 쇠줄로 동여맨 다음 가시를 달아서 석유에 잠그어 만든것이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목회탄을 만들고있는 대원들을 찾으시여 목회탄에 가시가 적은것을 보시고 가시가 적으면 물매가 급한 지붕에 걸리지 않고 떨어지게 될것이며 그렇게 되면 위대한 수령님의 작전적의도를 옳게 관철할수 없다고 하시면서 가시를 더 많이, 더 길게 달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그날 저녁 보슬비가 내려 적들의 병영지붕이 젖는 예상치 않은 정황이 조성되였으나 방화조가 던진 목회탄에 의하여 적병영은 완전히 불바다로 되였다. 그리하여 적 1개 련대를 녹여내고 전투에서 완전한 승리를 이룩할수 있었다.

주체25(1936)년 8월 17일 김일성장군님께서 직접 지휘하신 무송현성전투는 항일의 녀성영웅으로서의 김정숙녀장군의 위상이 더욱 높이 떨쳐진 전투였다.

무송현성은 백두산서북부일대에서의 적의 가장 큰 군사요충지였으며 《동변도치안숙정》의 중심거점의 하나였다. 여기에는 관동군, 위만군, 경찰대 등 수많은 무력과 실전에서 단련되였다고 하는 시참으로 악명높은 다까하시의 정예부대도 주둔하고있었다.

무송현성전투에는 만순, 점산호, 오의성의 제1지대 등 여러 반일부대들도 함께 참가하였다. 무송현성전투는 새벽 2시에 시작되였다.

공격명령이 하달되자 주공방향을 담당한 7련대는 동산포대에 은밀히 접근하여 총 한방 쏘지 않고 적들을 감쪽같이 포로하고 포대를 장악하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손에 싸창을 드시고 계속 련대와 함께 소남문방향으로 진격하시였다. 성안의 적들은 그때에야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이 진격한다는것을 알고 일체 무력을 총동원하여 완강히 저항해나섰다.

전투가 오랜 시간 계속될것을 예견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정숙녀장군을 부르시여 7명의 녀대원들을 데리고 동산포대 가까이에 있는 잘루목을 차지하고 식사준비를 하면서 그곳을 지킬데 대한 임무를 주시였다. 잘루목은 적들로부터 빼앗은 동산포대를 지키는데서 매우 중요한 지점이였을뿐아니라 시내에 돌입한 부대들이 산으로 철수하는 경우에도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통로였다. 따라서 이 길목을 잘 지키는가 못 지키는가 하는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안전과 부대의 차후행동에 큰 영향을 미칠수 있었다.

첫눈에 잘루목이 차지하는 이렇듯 중요한 의의를 간파하신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녀대원들을 이끄시고 재빨리 잘루목을 차지한 다음 그곳을 지키기 위한 전투조직을 하시고 곧 아침식사준비를 하시였다.

이때 무송현성을 동쪽과 북쪽에서 공격하던 반일부대들이 적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치자 제멋대로 퇴각하는 바람에 그쪽에 있던 적의 병력이 소남문쪽으로 쏠리게 되였다. 소남문포대를 점령하기 위한 싸움은 예상외로 치렬해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유인전술로 적들을 성밖으로 끌어내다 소멸할것을 결심하시고 부대를 동산과 소마록구릉선으로 철수시키시였다.

아니나다를가 적들은 일제히 성문을 열고 쏟아져나왔다. 그런데 그중 한개 소대의 적들이 잘루목을 차지해보려고 은밀히 접근해왔다.

지형을 잘 아는 놈들이 철수하는 부대를 우회하여 잘루목을 먼저 장악하려는 시도가 분명하였다. 만약 적들이 잘루목을 차지한다면 퇴로를 차단당한 부대는 적의 포위에 들게 되고 소남문가까이에 자리잡은 사령부가 돌이킬수 없는 위험에 처할수 있었다.

정황은 매우 위급해졌다.

이 위급한 순간에 녀대원들앞에 나서신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녀대원들에게 잘루목은 우리 부대가 적들로부터 빼앗은 동산포대를 지키는데서 매우 중요한 지점일뿐아니라 무송시내에 돌입한 부대들의 철수를 보장하는데서 중요한 곳에 위치하고있다고, 우리가 잘루목을 지키는가 못 지키는가 하는것은 소남문가까이에 위치한 사령부의 안전을 보장하는데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지체없이 녀대원들을 결사전에로 불러일으키시였다.

량손에 싸창을 억세게 틀어쥐신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지금 적들이 우리가 차지하고있는 앞계선에 은밀히 접근해와서 전투태세를 갖추느라 서두르고있습니다, 적들을 그대로 놔둔다면 사령관동지의 작전적의도를 실현할수 없는것은 물론 사령부와 전부대에 돌이킬수 없는 위험이 조성될수 있습니다, 우리모두 죽음을 각오하고 결사전을 벌립시다, 사령부의 안전을 목숨으로 사수합시다라고 웨치시며 적기관총수놈을 단방에 쏘아눕히시였다.

잘루목전투는 이렇게 시작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산의 중심돌출부인 잘루목에서 울린 총소리를 들으시던 그때의 심정에 대하여 이렇게 회고하시였다.

나는 불안을 느끼며 걸음을 멈추었다, 아군의 주퇴각방향이 동산이라는것을 탐지한 적들은 잘루목을 앞질러 차지하고 우리 지휘부와 주력부대를 량쪽에서 타격하려고 시도하는것 같았다, 잘루목에서는 총소리가 더 자지러지게 들려왔다, 우리의 녀대원들이 적의 대부대와 치렬한 화력전을 벌리고있는것이 분명하였다, 나는 전령병을 시켜 잘루목의 형편을 알아오게 하였다, 전령병은 사령부의 안전을 위하여 잘루목을 피로써 지켜내겠다는 김확실, 김정숙동무들의 결의를 받아가지고 돌아왔다고 말씀하시였다.

김정숙녀장군을 비롯한 녀대원들은 일제히 적들에게 명중탄을 안기였다.

뜻밖에 잘루목으로부터 불의적인 타격을 받은 적들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헛총질만 하다가 조선인민혁명군이 몇명 안된다는것을 눈치챈듯 일시에 소리를 지르며 돌격해왔다. 가까이에 다가온 적들에게 수류탄이 날아갔다. 적들도 악착스럽게 달려들었다. 잘루목을 누가 차지하는가에 따라 전투의 운명이 좌우된다는것을 적들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적의 총탄은 김정숙녀장군의 몸가까이에 우박치듯 날아왔다. 적탄이 귀뿌리를 스치는 위험한 순간에도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오직 사령부의 안전에 대해서만 생각하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싸창을 량손에 틀어쥐시고 연방 명중탄을 퍼부으시였다. 적의 총탄이 비오듯 날아왔으나 김정숙녀장군께서는 기관총사격을 하듯이 싸창으로 10여명의 적을 쓸어눕히시였다.

《사령부를 목숨으로 사수하자!》

김정숙녀장군께서 심장으로 웨치시는 호소에 큰 힘을 얻은 녀대원들은 적들에게 명중탄을 안기며 무자비하게 족쳤다. 녀대원들을 지휘하시면서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나무뒤에 숨어서 긴 칼을 빼여들고 졸병놈들을 돌격에로 내몰던 적장교놈을 단방에 쏘아눕히시였다.

이러는 사이에 잘루목으로 철수하던 조선인민혁명군의 7련대 4중대가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받고 녀대원들을 지원하여 적들을 익측으로부터 강하게 타격하였다. 그사이에 부대주력은 무사히 철수하여 매복진을 폈고 추격해나온 다까하시정예부대를 전멸시켰다.

적들의 공포는 극도에 달하였다. 무송현성전투의 상황은 즉시 관동군사령부에 보고되였다. 신경비행장에서는 폭탄과 탄약을 만재한 군용기들이 떠올랐으며 통화, 환인, 사평가 등지에서는 증원부대들과 지어 중강진수비대까지 긴급출동을 하였다. 그러나 증원부대들이 무송현성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다까하시부대가 전멸된 때였다. 적비행기들은 파괴된 동산포대와 주민가옥들에 눈먼 폭탄을 퍼붓다가 돌아가고말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후날 무송현성전투때 김정숙녀장군께서 싸창을 량손에 틀어쥐시고 기관총으로 련발사격하듯이 순식간에 십여명의 적을 쓸어눕힌 위훈을 회고하시면서 그때 김정숙동무가 잘루목을 지켜내지 못했더라면 우리는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했을것이라고 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아주 이악한 녀성혁명가였습니다. 혁명임무수행에서 그만큼 이악하고 그만큼 충실한 녀성혁명가는 없었습니다.》

이처럼 김정숙녀장군께서 무송현성전투에서 보여주신 수령결사옹위의 숭고한 모범, 무비의 담력과 용맹은 항일대전의 력사에 자랑스러운 한페지를 새겨놓았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그후에도 장백현 대덕수전투, 소덕수전투, 동강전투, 룡천리부근전투, 20도구 2종점전투 등 백두산일대를 장악하기 위한 수많은 전투들에서 빛나는 위훈을 세우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지휘밑에 진행된 이 시기의 전투들에서 보여준 남다른 군사적예지와 대담성, 용감성으로 하여 《항일의 녀성영웅》, 《백두의 녀장군》으로 칭송받으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