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 (1)중에서

조국광복회의 창립은 민족의 넋에 새로운 활력을 부어주고 삼천리 온 강토가 광복열망으로 끓어번지게 하였으며 민족단합의 기운을 더욱 고조시키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백두산근거지에 의거하여 온 민족을 조국광복회의 두리에 튼튼히 묶어세우기 위한 사업을 현명하게 령도하시였다.

조종의 산 백두산에서 민족재생의 종을 울려 조선사람모두가 애국에 눈을 뜨고 구국에 몸을 바치게 하자. 신념을 잃고 주저앉은 인민에게 우리가 용기를 주어 일으켜세우자! 민족리산의 흐름을 정지시키고 단결하여 조국에 들어가는 력사를 우리가 앞장서서 창조하자!… 이것이 그이께서 백두산으로 진출하실 때 지니시였던 의지이고 신념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광복회조직을 전국적, 전민족적범위에로 확대하기 위한 사업을 조선인민혁명군의 전체 성원들을 조국광복회에 받아들이는것으로부터 시작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광복회가 창립된 직후인 주체25(1936)년 5월 동강밀영에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 지휘관들과 대원들의 회의를 소집하시고 부대내 전체 지휘관들과 대원들을 조국광복회에 받아들이는 조치를 취하시였다. 그리고 그들이 전민을 반일민족통일전선에 묶어세우기 위한 투쟁에서 선전자가 되고 조직자가 되여야 한다고 고무의 말씀을 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조선인민혁명군안의 소대와 중대에는 조국광복회 분회와 지회가, 련대와 사단, 독립려단에는 각각 조국광복회 위원회들이 조직되게 되였으며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들과 대원들은 자기앞에 부과된 력사적사명감을 깊이 자각하고 각당, 각파, 각계각층 군중을 조국광복회조직에 묶어세우는 통일전선운동의 기수가 되였다. 미구에 이들은 조국광복회조직건설에서 주역을 담당하고 자신들이 하나하나의 불씨가 되여 만주대륙과 국내도처에서 통일전선운동의 열풍을 일으켜나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정치공작원들과 인민혁명군 대원들을 각지에 파견하시여 광범한 인민들속에 《조국광복회창립선언》과 10대강령을 널리 해설침투하도록 하시는 한편 장백, 무송을 비롯한 압록강연안 국경일대에 조국광복회 하부조직들을 내오도록 하시였다. 이 과정에 조국광복회 하부조직을 국내외의 넓은 지역에 광범히 확대해나갈수 있는 핵심력량도 마련하시고 귀중한 정치활동경험도 축적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혁명의 중심적령도거점인 백두산밀영이 창설된 후 조국광복회조직을 전국적범위에로 확대하기 위한 사업을 더욱 진공적으로 밀고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주체25(1936)년 10월 7일 장백현 곰의골밀영에서 진행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 및 정치공작원회의에서 하신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지금 우리앞에는 이미 달성한 성과를 공고히 하면서 남호두회의와 동강회의방침에 따라 조국광복회조직을 전국적, 전민족적범위에서 급속히 확대해나가야 할 중대한 임무가 나서고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광활한 지역에 조국광복회 하부조직을 내오고 그에 대한 지도체계를 확립할데 대한 문제, 대중정치사업을 힘있게 전개하며 조국광복회 하부조직을 확대하는 사업을 조선인민혁명군의 위력을 시위하는 군사활동과 밀접히 결부하여 진행할데 대한 문제, 당창건의 대중적지반을 튼튼히 축성하며 정치공작원들과 인민혁명군 대원들의 역할을 높일데 대한 문제 등 조국광복회조직을 전국적범위에로 확대하는데서 나서는 과업과 방도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6(1937)년 봄에 집필하신 고전적로작 《조선에서 광범한 군중의 반일운동을 어떻게 조직할것인가》를 비롯하여 여러 기회에 조국광복회조직을 확대강화하기 위한 투쟁에서 견지하여야 할 원칙적문제들에 대하여서도 명철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광복회조직을 확대강화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하는데서 시범단위를 먼저 꾸리고 그것을 모체로 하여 사방에 조직을 늘여나갈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이 방침에 따라 백두산을 직접 끼고있는 장백을 비롯한 서간도일대와 국내의 갑산, 삼수, 풍산지구가 그 대상지역으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치사상적으로 튼튼히 준비되고 지하사업경험이 풍부한 수많은 지휘관들과 대원들을 여러차례에 걸쳐 집중적으로 장백일대에 파견하시였으며 몸소 정치공작원들과 지하조직성원들에게 조국광복회조직을 늘여나가는 방법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고 그들의 사업을 세심히 지도해주시였다. 당시 신흥촌 촌장으로서 혁명활동에 몸담고있던 리제순도 그이의 뜨거운 사랑과 믿음, 고귀한 가르치심을 받아안으면서 조직건설의 어려운 과업을 용의주도하게 해나가는 능숙한 지하공작일군으로, 어떤 역경속에서도 혁명적신념과 정치적지조를 굽히지 않는 불굴의 투사로 성장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리제순을 처음 만나신것은 그이께서 백두산지구를 한바퀴 선회하고 밀영에 돌아오시였을 때인 주체25(1936)년 10월이였다.

그이께서는 리제순과 담화하시는 과정에 그가 필요한 지식과 방법만 배우면 장차 훌륭한 지하조직활동가로 될수 있겠다고 보시고 그에게 장백지구에 조국광복회조직을 꾸리는 사업을 맡기기로 결심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제순 한사람을 위한 강습을 조직하시고 조선혁명의 로선과 성격, 전략전술에 대한 강의는 자신께서 직접 맡아하시였다. 《조국광복회10대강령》과 창립선언, 규약에 대한 해설강의, 국제당사강의는 여러명의 유능한 강사들이 번갈아가며 하였다. 이것은 전례없는 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습을 받고 돌아가게 된 자리에서 단 한번만이라도 군복을 입어봤으면 하는 리제순의 청을 기꺼이 들어주시여 그를 정식으로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시키시였다.

그이의 뜨거운 사랑과 크나큰 신임에 고무된 리제순은 《저는 쌀 한말을 지고 왔다가 몇섬이나 되는 혁명적량식을 지고 갑니다. 이 은혜를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맡은 지역안의 조선사람들이 사는 모든 마을마다에 조국광복회조직을 내올 결의를 다지였다.

그로부터 얼마후인 주체25(1936)년 가을 리제순은 조국광복회 신흥촌지회를 조직하였으며 불과 반년도 못되는 사이에 장백현 상강구 전지역을 조밀한 지하조직망으로 뒤덮어놓았다. 련이어 중강구, 하강구 등 장백현안의 모든 지역들에 조국광복회 구위원회들이 나옴으로써 주체26(1937)년 초에 리제순을 책임자로 하는 조국광복회 장백현위원회가 조직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와 그이의 직접적인 지도와 가르치심을 받은 수많은 정치공작원들, 지하조직성원들의 적극적인 활동에 의하여 장백일대는 짧은 기간에 조국광복회조직망으로 뒤덮이고 이 일대 인민들의 혁명적열의는 비상히 높아져 모두가 조선인민혁명군을 도와 조국광복전선에 한결같이 떨쳐나서게 되였다. 결과 서간도일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구상하신대로 반일민족통일전선을 확대발전시키는 강력한 거점으로 전변되게 되였다.

조국광복회조직들은 서간도뿐아니라 왕청, 훈춘, 연길을 비롯한 동만의 여러 현과 반석, 화전, 통화, 즙안, 몽강, 환인, 관전, 휘남 등 남만의 여러 도시들과 농촌들 그리고 방정, 통화, 발리, 탕원, 요하, 녕안, 밀산을 비롯한 북만의 여러 현들에서도 튼튼히 뿌리를 내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광복회 조직건설사업에서 주되는 목표를 2천만 조선동포들이 사는 국내에 두시였다. 그이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영향이 쉽게 미칠수 있는 북부국경지대의 압록강연안에서부터 시작하여 국내 종심깊이에로 조직을 확대해나가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유능한 정치공작원들을 북부국경일대와 국내각지에 파견하시는 한편 박달을 비롯한 국내혁명가들을 만나시여 광범한 반일애국력량을 조국광복전선에 묶어세우는데서 나서는 원칙적문제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주체25(1936)년 12월 곰의골밀영에서 박달과 담화를 나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광복회 명칭이나 10대강령의 일부 조항들에 대하여 옳바른 리해를 가지지 못하고있는 그에게 범민족적인 통일전선조직체의 명칭에 조국이라는 표현을 쓴 리유에 대하여, 조국광복회조직을 해당 지역의 형편과 대중의 각성정도에 따라 여러가지 명칭으로 내올수 있으며 어용단체들에도 뚫고들어가 거기에 소속된 사람들을 혁명화하여 조국광복회의 창립선언정신에 맞게 단체의 성격을 점차적으로 변경시켜야 한다는데 대하여 차근차근 일깨워주시였다.

계속하시여 그이께서는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에게 있어서 민족해방보다 더 큰 대의가 없다는것을 다시한번 강조하시고나서 민족을 떠난 공산주의운동이란 있을수 없으며 또 그런 공산주의운동은 필요도 없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우리가 말하는 민족의 개념속에는 로동자, 농민뿐아니라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창조적로동을 사랑하고 해방된 조국의 미래를 사랑하는 각계각층 군중이 다 포함되여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민족총동원의 기준이며 조국광복회 입회기준입니다. 우리는 이런 기준에 기초하여 조선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동원할수 있는 사람은 다 동원해야 합니다. 외세에 의해서가 아니라 민족자체의 힘으로 나라의 독립을 이룩해야 하며 또 이룩할수 있다는 자주독립사상에 기초한 민족의 총동원만이 조선의 운명을 칠성판에서 건져낼수 있습니다.》

숭고한 민족애와 민족자주정신으로 일관된 그이의 이 말씀을 삶과 투쟁의 좌우명으로 받아안은 박달은 그후 자기가 책임자로 있던 갑산공작위원회를 조국광복회 국내하부조직인 조선민족해방동맹으로 개편하고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동맹의 강령으로 채택하였다. 산하에 수십개의 조국광복회 하부조직들을 가지고있던 조선민족해방동맹은 조국광복회조직을 국내에로 확대시키는 하나의 발진기지로 되였다. 혁명에 큰뜻을 품고 나섰지만 갈길을 몰라 모색하던 수많은 국내의 혁명가들도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안고 용기백배하여 조국광복전선을 형성하기 위한 투쟁마당에 뛰여들어 큰 기여를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광복회조직망이 신파, 갑산, 삼수, 풍산을 비롯한 북부국경일대의 여러 지역에로 급속히 뻗어나가는데 맞게 조직을 전국도처에로 확대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들을 세우시였으며 청진, 함흥, 원산을 비롯한 중요공업지구들과 농촌지대들에 조선인민혁명군 정치공작소조들과 정치공작원들을 수많이 파견하시였다. 그리고 몸소 사선을 헤치시고 신흥과 양덕을 비롯한 국내깊이에까지 진출하시여 현지에서 국내혁명운동과 조국광복회조직을 확대하기 위한 사업을 지도하시였다.

그리하여 함경남북도는 물론 평안남북도, 황해도, 강원도와 남부조선일대를 포괄하는 전국각지에서 반일회, 구국회, 광복회 등 각이한 명칭의 조국광복회 하부조직들이 급속히 확대되였으며 북청지구위원회를 비롯하여 각급 조직들이 조직되여 정연한 조직체계가 확립되여갔다. 지어 바다건너 일본땅의 도꾜와 교또, 오사까와 혹가이도에도 조국광복회가 조직되였다.

사상과 리념, 정견과 신앙, 사회적처지가 서로 다른 각계각층의 광범한 사람들이 조국광복회조직에 망라되였다.

그들가운데는 위대한 수령님의 민족대단결사상과 고매한 풍모에 매혹되여 반일민족통일전선의 기치아래 떨쳐나선 천도교의 교인들도 있었다. 일찌기 애국애족의 민족대단결사상으로 애국적종교인들이 나아갈 앞길도 환히 밝혀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5(1936)년 11월 백두산지구 비밀근거지의 밀영에서 박인진도정을 비롯한 천도교대표들을 만나주시였다.

그들에게 조국광복회창립의 목적과 10대강령, 우리 나라 민족해방투쟁의 전망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저녁에 도정과 담화를 계속하시다가 전령병을 시켜 맑은 물 한그릇을 떠오게 하시고는 박도정에게 청수봉전시간이 되였다고 알려주시였다.(천도교에서는 놋그릇에 청수를 떠서 모시는것을 청수봉전이라고 하는데 단 하루도 어길수 없는 법도로 되고있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있는 그에게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성지의 물인데 놋그릇대신 법랑그릇에 담아오게 해서 안되였습니다. 놋그릇이 아니라고 나무람마시고 도정님, 어서 청수를 모시십시오.》라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박도정이 손님으로서의 례절을 지켜 굳이 사양하자 그이께서는 《조국광복회10대강령》에도 인륜적평등과 신앙의 자유보장을 밝히고있는데 평시의 법도를 단 한번만이라도 소홀히 하게 되면 우리가 오히려 미안하지 않느냐고 하시면서 그에게 청수봉전을 거듭 권하시였다.

그날 숙연한 감정을 금치 못하며 청수봉전을 치르고난 박인진도정은 물 한모금을 마시고나서 《백두산곡의 청수가 참 별맛입니다. 우리 나라 조종이 마시던 물로 청수봉전을 하였으니 오늘 저녁일은 평생 두고 잊지 못하겠습니다. 장군과 같은 무인이 우리 교의 법도를 이처럼 존중해주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습니다. 정말 감개무량합니다.》라고 말씀드리였다. 그리고는 불쑥 위대한 수령님께 우리가 《한울님》을 숭상하듯이 장군도 숭상하는 대상이 있는가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고 문의하였다.

그의 이 질문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는 인민을 하늘처럼 여겨왔고 인민을 하느님처럼 섬겨오고있다, 나의 하느님은 다름아닌 인민이다, 세상에 인민대중처럼 전지전능하고 위력한 힘을 가진 존재는 없다, 그래서 나는 《이민위천》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있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러자 박인진도정은 백두산에 온 보람이 있다고 하면서 때늦기는 하지만 진짜 《한울님》이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를 이제야 알게 되였다고 의미심장하게 말씀드리는것이였다. 며칠후 밀영에서 돌아간 박인진도정은 천도교인들을 조국광복회에 인입하기 위한 사업을 정력적으로 진행하였다. 그후 일제경찰에 검속되였을 때에는 끝까지 자기의 지조를 굽히지 않았으며 림종의 시각이 다가오자 김장군이 건재하고 혁명군이 백두산에 건재하는 한 우리 백의동포들은 반드시 동틀 날을 맞이하게 될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절세의 위인에 대한 끝없는 매혹과 흠모는 이렇게 한생을 교직에 몸담아온 종교인을 애국자로, 불굴의 투사로 되게 하였던것이다. 박인진도정뿐아니라 각이한 사상과 경력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애국, 애족, 애민의 사상과 한없이 고결한 인간애에 매혹되여 조국광복회조직에 결속되였다. 그 수는 조국광복회가 창립된 후 불과 몇달동안에 무려 수십만명을 헤아렸다.

수난에 찬 우리 민족의 해방투쟁사에 특기할 이 놀라운 사변은 전적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높으신 권위와 그이께서 발표하신 《조국광복회10대강령》의 정당성으로 하여 이루어진것이였으며 그이의 숭고한 풍모와 인덕이 가져온 빛나는 결실이였다.

백두산기슭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조국광복회건설운동은 만주전역과 삼천리 방방곡곡에 료원의 불길처럼 거세차게 번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