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 (1)중에서

강력한 정치적력량을 마련하는것은 조선혁명의 주체로선을 관철하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사업이였다.

이 사업은 각계각층의 광범한 애국력량을 반일민족통일전선의 기치밑에 굳게 묶어세우고 강력한 당조직망을 건설하여 전반적항일혁명을 일대 앙양에로 이끌어나가기 위한 사업으로서 백두산에서 펼쳐지는 모든 정치적, 군사적활동의 성과를 좌우하는 관건적인 고리라고 할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당조직망건설은 선차적으로 진행하여야 할 긴급한 사업이였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자기의 독자적인 당을 가지려는 조선혁명가들의 념원을 실현하기 위한 만단의 준비사업이기도 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수행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언제나 선군의 립장에서 보고 대하시면서 당건설사업도 총대에 의거하여 추진시키시였다.

당조직건설사업을 성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그 주도적력량이 있어야 한다. 주도적력량이 준비되지 못하면 당건설사업이 원만히 진행될수 없다. 이것은 당건설의 운명과 관련되는 중대한 문제였다. 어느 계급, 어느 집단을 당조직건설의 주도적력량으로 내세우고 어떻게 그를 준비시킬것인가. 당시 국제로동운동안에서는 로동계급만이 당건설의 주도적력량으로 된다는 견해가 하나의 법칙처럼 되여있었고 누구도 부정할수 없는 절대적인것으로 공인되고있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렇게 보시지 않으시였다. 그이께서는 혁명의 주도적력량을 규정하는 문제가 생산수단과 국가주권에 대한 소유관계에 의하여 결정되는것이 아니라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수행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주체적관점으로부터 조선인민혁명군을 당건설의 주도적력량으로 내세우시였다.

그것은 조선인민혁명군이 혁명성과 조직성, 단결력과 규률성에 있어서나 이룩한 업적과 훌륭한 전통으로 보나 모든 면에서 당건설사업을 책임지고 진행해나갈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갖추고있었기때문이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이야말로 당건설사업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밀고나갈수 있는 강력한 집단이였다.

이로부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조직건설사업을 진행함에 있어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안의 당조직을 확대하는데 선차적인 주목을 돌리시였다. 그이께서는 새로 조직되는 중대들에는 새로 당세포를 내오고 개편하는 중대에는 그에 맞게 당세포를 조직하고 세포지도기관을 선거하도록 하시였으며 기층당조직을 꾸린 기초우에서 새로 편성된 련대들에 련대당위원회를 내오도록 하신데 이어 사단당위원회를 조직하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주력부대뿐아니라 조선인민혁명군 4사와 5사, 독립려단들에도 소대에는 당분조, 중대에는 당세포, 련대와 려단에는 련대당위원회와 려단당위원회, 사단에는 사단당위원회를 조직하시고 모든 당조직들이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에 복종하는 정연한 조직지도체계를 세워나가시였다. 그리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은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의 통일적지도밑에 전국적범위에서 당창건의 조직사상적준비를 줄기차게 이끌어나가는 당건설의 주도적력량으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더 잘 수행해나갈수 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국내에서 당조직확대사업과 당창건준비사업,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을 통일적으로 지도하는 지역적당지도기관을 먼저 내오도록 하시였다. 그것은 국내에서 분산적으로 활동하는 애국지사들과 공산주의자들을 하나의 력량으로 결속하고 그들사이에 직접적련계를 이루게 하자고 해도 그렇고 전국적범위에서 당조직건설과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을 바로 지도하자고 해도 지역적당지도기관이 있어야 하기때문이였다.

국내에 지역적당지도기관을 내오는데서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로 나선것은 조선인민혁명군과 련계를 가지고 그 지도밑에 국내혁명과 당조직건설사업을 추진시켜나갈 견실한 혁명가들을 찾아내는것이였다.

이를 위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내 여러곳에 파견된 정치공작원들과 소부대들이 군중정치선전사업을 적극 벌리면서 지방의 핵심들을 료해장악하고 료해장악된 핵심들이 조선인민혁명군과 조직적련계를 맺도록 하시였다. 박달도 그러한 핵심들중의 한사람이였다. 그는 자기들자신의 힘으로 지방적인 테두리에서나마 운동을 벌려보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갑산공작위원회라는 조직을 뭇고 싸우고있었다. 그의 이러한 투쟁자료를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혁명투사 권영벽을 통하여 박달에게 친히 다음과 같은 친서를 보내시였다.

《조국을 사랑하며 일제를 반대하여 싸우는 국내의 애국자동무들 앞
 

국내에서 간악한 일제원쑤들과 싸우는 동무들!

우리는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무장을 들고 만주광야에서 일만군경들과 싸우고있습니다.

우리는 동무들과 손을 굳게 잡고 모든 힘을 합쳐서 일제를 반대하며 조국을 광복시키는 투쟁을 진행할것을 충심으로부터 원합니다.

나는 우리의 대표를 직접 동무들에게 파견하오니 서로 만나서 사심없는 토론들을 교환하여주시기 바랍니다.

경례

김 일 성》

위대한 수령님의 친서를 받아안은 박달은 감격과 흥분을 금치 못해하면서 곧 그이를 만나뵙게 해줄것을 제기하였다.

그로부터 얼마후인 주체25(1936)년 12월 하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곰의골밀영에서 박달과 뜻깊은 상봉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박달을 통하여 국내형편과 갑산지방의 운동실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시고 그에게 당창건사업을 비롯하여 국내혁명가들의 활동에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으며 그가 잘못 생각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알기 쉽게 일깨워주기도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우리 나라에서 당조직을 내오더라도 국제당의 승인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고 하는 그에게 혁명이란 워낙 자기가 하고싶어서 하는 일이지 그 누구의 지령이나 승인을 받고 하는 일이 아니다, 국내에 당조직을 내오는데서는 승인이고 비준이고 하는 문제자체가 설정될수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자주권에 속하는 문제이다라고 하시면서 당조직건설에서 자주적립장을 확고히 견지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그이께서 그와의 담화과정에 중요하게 언급하신것은 국내에 조직되는 당조직의 소속에 관한 문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알고싶어하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국내의 당조직들은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에 소속되고 또 그 위원회의 지도를 받게 될것입니다. 조선에 공산당이 없는 현재의 특수한 상황에서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는 조선혁명전반에 대한 령도적기능을 담당한 참모부의 역할을 하고있습니다. 우리 당위원회의 활동은 무력에 의해 튼튼히 보호되고있습니다.》

계속하시여 그이께서는 적들의 마수에 걸려들지 않은것은 오직 무력의 담보를 받고있는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뿐이라고 하시면서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가 조선혁명의 참모부적역할을 감당하게 된것은 우리 나라 공산주의운동발전의 필연적귀결이라는데 대하여, 앞으로 조직될 지역적당지도기관이 조선인민혁명군의 군사적보호를 받게 될것이라는데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밖에 지역적당지도기관의 조직과 관련된 실무적문제와 국내당공작위원회가 수행하여야 할 기능에 대하여서도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하신 말씀은 박달뿐아니라 전체 국내혁명가들에게 커다란 힘과 용기를 안겨주었으며 투쟁의 앞길을 밝혀주는 전투적강령으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5(1936)년 12월 31일 장백현 곰의골밀영에서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회의를 소집하시고 국내당공작위원회를 결성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책임자로 하고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 일군과 박달을 위원으로 하는 국내당공작위원회는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의 지도밑에 국내에서 혁명투쟁을 통일적으로 지도하고 국내당조직건설사업을 맡아보는 지역적당지도기관이였다.

국내당공작위원회가 결성됨으로써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자주적인 당창건방침을 확고히 고수하며 국내에서 당조직건설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갈수 있는 확고한 담보가 마련되게 되였다.

이에 기초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국적범위에서 당조직을 확대하기 위한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시키시였다.

그이께서는 주체26(1937)년 5월 20일 박달을 비롯한 국내혁명가들을 또다시 부르시여 기층당조직으로서의 역할과 함께 국내당조직건설을 위한 모체조직으로서의 역할도 동시에 수행해야 할 사명을 지닌 국내당소조를 무어주시였으며 5월 하순에는 국내당공작위원회 제2차회의를 소집하시고 국내당조직건설사업에서 나서는 과업들을 다시금 명백히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민구성도 좋고 유격활동에 편리한 웅심깊은 자연지리적조건을 가진 삼수, 갑산일대를 국내당조직건설의 원종장으로 꾸리고 거기서 당조직건설사업을 맡아 수행할 핵심들을 수많이 키워내도록 하는 현명한 조치를 취하시였다.

전국적, 전민족적범위에서 진행되는 당조직건설사업에 필요한 인원을 다 보장하자면 적어도 한개 련대인원만 한 정치일군들이 있어야 하였다. 그렇다고 조선인민혁명군이 군사활동을 미루고 정치활동만 할수는 없었다. 이러한 난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가장 좋은 방도가 바로 원종장을 꾸리는것이였다. 원종장을 설정하게 되면 적은 인원만 원종장을 꾸리는데 돌리게 되므로 무장투쟁을 뒤전에 놓는 현상을 극복하고 원종장에서 교양육성된 핵심들이 다른 군이나 다른 도로 활동선을 뻗쳐나감으로써 당조직건설을 계속 힘있게 밀고나갈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삼수, 갑산일대에 정치공작원들을 파견하시여 그들이 핵심들을 장악하고 육성하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벌리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짧은 기간에 당소조들이 조직됨으로써 당조직건설사업과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을 확대발전시킬수 있는 튼튼한 거점들이 마련되였다. 이 거점들에서 교양육성된 핵심들은 린접군과 린접도를 거쳐 중부와 남부조선일대에까지 파견되여 당조직을 꾸릴수 있는 튼튼한 토대들을 쌓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조직을 국내의 넓은 지역에 확대하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주체26(1937)년 여름과 가을에 국내 당조직건설사업을 방조할 사명을 지닌 북선정치공작대를 국내에 파견하시는 조치도 취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당사업경험이 풍부한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들과 우수한 대원들, 정치공작원들로 북선정치공작대를 조직해주시고 그들에게 활동할 구역까지 일일이 맡겨주시였다.

공작대성원들은 동해안으로부터 서해안일대에 이르는 공작지들에 나가 분산되여 활동하는 혁명가들과 핵심군중을 장악하여 교양하면서 당조직들을 국내의 넓은 지역에 끊임없이 확대해갔다. 이들의 활동에 의해 신파, 풍산, 랑림, 부전, 신흥, 북청, 리원, 단천 등 여러 지역들에 당조직들이 나오게 되였으며 그 규모는 북부조선일대의 령역을 벗어나 서울을 비롯한 중부조선일대와 경상도와 전라도 경계에까지 이르렀으며 제주도와 현해탄을 넘어 일본땅에까지 확대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내에서 당조직건설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가시는 동시에 장백지구를 중심으로 한 백두산서남부와 동북부일대에서 당조직을 확대하기 위한 사업을 활발히 추진시키시였다.

이미 주체25(1936)년 3월 하순 두만강연안일대에서의 당조직건설사업을 통일적으로 장악지도하는 지역적당지도기관인 동만당공작위원회를 조직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련이어 주체26(1937)년 2월 횡산밀영에서 진행된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회의에서 장백현당위원회를 결성하시였으며 준비된 정치공작원들과 소부대들을 남만일대에 파견하심으로써 남만의 조선인거주지역들에서도 당조직건설사업이 활발히 벌어지도록 하시였다.

이로써 국내에는 물론 만주의 모든 조선인지역들에 지역적당지도기관들이 결성되고 그 산하에 구당과 당소조들이 조직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이처럼 전국적판도와 전민족적범위에서 당조직건설사업이 추진됨으로써 분산적으로 활동하던 혁명가들이 조직적으로 결속되고 전반적조선혁명에 대한 당적령도가 더욱 강화되게 되였다. 모든 당조직들이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의 통일적인 지도밑에 움직이는 전국적, 전민족적범위의 강력한 당조직체계가 세워짐으로써 비록 당중앙을 선포하지 않았지만 전반적조선혁명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유일적령도가 확고히 실현되게 되였으며 당창건의 조직사상적기초축성사업에서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나게 되였다.

이것은 조선인민혁명군이 백두산을 타고앉은 후 거둔 일대 정치적승리였다. 이 커다란 성과는 혁명적무장력을 주도적력량으로 내세우시고 총대의 위력으로 당조직건설사업을 추진시켜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선군령도가 안아온 빛나는 결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