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 (1)중에서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하고 전반적조선혁명을 일대 앙양에로 끌어올리자면 중심적령도거점인 백두산밀영과 함께 국내혁명운동에 대한 지도를 더욱 심화시킬수 있는 지역적령도거점이 있어야 하였다. 그래야 국내혁명운동에 대한 지도를 인민대중속에 깊이 접근시키고 그 기동성도 충분히 보장할수 있었다.

지역적령도거점을 꾸리는것은 국내에서 활동하는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와 소조, 정치공작원들의 군사정치활동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절실히 필요하였다. 지역적령도거점이 있어야 소부대, 소조들이 그에 의거하여 군사정치활동을 힘있게 벌릴수 있고 군사활동준비와 휴식, 후방물자의 보장문제도 현지에서 원만히 해결할수 있었다. 이것은 곧 국내에 건설되는 비밀근거지를 통해 국내혁명운동에 대한 지도가 실현되게 된다는것을 의미하였다.

이러한 요구를 과학적으로 통찰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백두산근거지를 창설하신 다음 지체없이 지역적령도거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비밀근거지들을 국내깊이에로 확대하기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주체26(1937)년 3월 서강에서 진행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에서 하신 연설에서 이렇게 가르치시였다.

《우리는 북부조선일대를 군사적으로 제압하고 백두산근거지를 랑림산맥일대에로 확대함으로써 여기에 의거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중심으로 한 전반적인 조선혁명을 일대 앙양에로 이끌어야 하겠습니다.》

비밀근거지들을 국내깊이에로 확대함으로써 전반적인 조선혁명을 일대 앙양에로 이끌어올릴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신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이 방침은 백두산근거지의 창설로 조성된 유리한 환경에 맞게 전반적조선혁명을 더욱 힘있게 전진시켜나갈수 있게 하는 가장 과학적이고도 적극적인 방침이였다.

그이께서는 서강회의를 비롯한 여러 회의들에서 국내에 비밀근거지들을 창설할 지대들과 비밀근거지들의 규모 등에 대하여서도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이렇듯 비밀근거지들을 국내에로 확대하는데서 나서는 모든 문제들에 대한 완벽한 해답을 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정력적으로 령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내도처에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들과 정치공작원들을 파견하시여 여러가지 형식의 비밀근거지들을 수많이 꾸리도록 하시는 한편 몸소 주력부대성원들을 친솔하시고 여러차례에 걸쳐 후창, 풍산, 랑림, 부전, 신흥, 양덕지구를 비롯한 국내깊이에까지 들어가시여 지역적령도거점을 마련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추동하시였다.

신흥지구와 양덕지구에 진출하시여 국내종심깊이에 강력한 혁명의 보루를 쌓으신 위대한 수령님의 활동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도 우리 인민들속에 하나의 전설처럼 전해지고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신흥지구비밀근거지의 중심밀영인 뒤덕봉밀영에 도착하신것은 주체26(1937)년 9월이였다. 그이께서 신흥지구로 나오신것은 이 일대에 꾸려진 비밀근거지들과 혁명조직들을 더욱 튼튼히 다짐으로써 여기에 강력한 혁명의 보루를 쌓기 위해서였다.

부전령산줄기의 끝에 자리잡고있는 신흥지구비밀근거지는 지역적령도거점을 꾸리기에 아주 유리한 곳에 위치하고있었다.

지리적으로 볼 때 백두산줄기와 직접 잇닿아있는 부전령산줄기는 북쪽의 후치령으로부터 남쪽의 대바위산에 이르기까지 350여리 구간에 해발 1,500여m가 훨씬 넘는 산봉우리들을 끼고있고 그뒤에 해발 1,400여m나 되는 부전고원과 장진고원의 대산림지대를 안고있는 천험의 요새였다. 뒤덕봉밀영이 꾸려진 곳의 지형만 보더라도 뒤에는 천고의 밀림이 있는 높은 산줄기가 있고 앞에는 가파로운 벼랑이 있어 어떤 적들도 접어들 엄두를 내지 못할 곳이였다. 신흥지구비밀근거지는 함흥, 흥남, 홍원, 단천, 북청 등 여러 지역들과 련결되여있어 동해안의 중요지대들에도 자유롭게 침투할수 있었다.

비밀근거지주변의 주민구성도 좋았다. 주민의 90%이상을 이루고있는 로동자, 농민들은 일제와 매판자본가, 지주들의 착취와 압박을 뼈에 사무치에 체험한 사람들로서 반일감정이 아주 높았다.

어느모로 보나 신흥지구비밀근거지는 지역적령도거점을 꾸리기에 적합한 곳이였다. 그러므로 이 일대를 잘 꾸리는것은 장차 중부조선을 장악하는 발판을 다지는것으로 되였다.

신흥지구가 이토록 전략상 중요한 지역인것으로 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들과 정치공작원들을 이 일대에 파견하시여 비밀근거지와 조직망을 건설하도록 하시였으며 몸소 사선을 헤치시고 현지에까지 나오신것이였다.

꿈결에도 그리던 김일성장군님을 뵙게 되여 무한한 감격과 기쁨에 넘쳐있는 소부대성원들을 일일이 포옹해주신 그이께서는 그동안의 사업정형을 료해하시고 유리한 지역에 밀영들을 더 많이 건설할데 대한 문제, 밀영들을 소부대와 소조, 정치공작원들의 활동에 적합하게 꾸릴데 대한 문제, 근거지주변 마을들을 혁명화할데 대한 문제, 밀영들의 비밀을 철저히 보장할데 대한 문제 등 앞으로의 활동방향과 과업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이곳 소부대의 사업을 지도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련이어 신흥지구의 여러곳에 꾸려진 밀영들과 조직망들을 튼튼히 꾸리며 광범한 대중을 혁명화하기 위한 사업을 정력적으로 진행하시였다. 각지에서 활동하고있던 정치공작원들과 혁명조직책임자들에게 지침으로 삼아야 할 귀중한 가르치심도 주시고 대마직으로 만든 로동복차림으로 신흥탄광로동자들을 만나시여 그들의 마음속 고충도 풀어주시였으며 수수한 농가에 들리시여 생활형편도 료해하시면서 광범한 대중을 반일성전에로 불러일으키시였다.

신흥지구에 나와계시는 동안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일대의 삼밭산에서 조선인민혁명군 정치공작원 및 지하혁명조직책임자회의를 소집하시고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국내혁명투쟁을 더욱 앙양시키는데서 나서는 과업과 방도들도 뚜렷이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신흥지구일대에서 진행하신 정력적인 활동을 계기로 이 일대를 강력한 혁명의 보루로 꾸리기 위한 사업에서는 커다란 성과들이 이룩되였다.

그이께서 다녀가신 후 신흥지구비밀근거지에는 뒤덕봉밀영, 백역산밀영, 두무봉밀영, 불개미재밀영 등 여러곳에 건설된 밀영들이 서로 밀접히 련결된 밀영망이 튼튼히 형성되였으며 탄광마을, 장골, 서나골, 동오골 등지를 비롯한 여러곳에 련락소들이 꾸려지게 되였다. 그리고 흥남, 함흥, 홍원, 함주를 비롯한 동해안일대에서는 조국광복회 조직망이 급속히 확대강화되고 로조와 농조를 혁명적으로 개건하는 사업이 전격적으로 벌어졌으며 당조직의 령도적기능이 비할바없이 강화되였다. 하여 신흥지구비밀근거지는 중부조선을 장악하기 위한 발판으로, 지역적령도거점으로 튼튼히 다져지게 되였다.

양덕지구 역시 신흥지구와 함께 중부조선일대를 장악하는데서 전략적의의가 큰 지역이였다.

주체27(1938)년 8월 하순, 두번째로 신흥지구에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획하셨던 일을 성과적으로 끝마치셨을 때였다. 경위중대원들이 서둘러 돌아갈 준비를 하고있는데 그이께서는 뜻밖에도 양덕지구에 나가보시겠다고 하시는것이였다. 일행은 그이의 신변이 념려되여 그곳에 소부대가 파견된지도 오래지 않았는데 다음기회에 들리자고 말씀올리였다. 양덕지구에는 주체26(1937)년 7월에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가 파견되여갔으므로 그들이 완전히 자리를 잡자면 시간이 좀더 걸릴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앞으로 국내깊이에서 무장투쟁을 확대강화하기 위해서는 중부조선을 타고앉아야 하는데 그러자면 북대봉산줄기의 양덕지구를 확고히 장악하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아무래도 신흥지구에 나왔던김에 한번 현지를 다녀오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그리하여 일행은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양덕지구로 향하게 되였다. 행군도중 그이께서는 우리가 양덕으로 가는것은 그곳의 자연지리적환경과 근거지들을 현지에서 직접 보고 주변일대의 인민들을 묶어세워 그곳을 반유격구형태로 튼튼히 꾸려 중부조선의 모든 혁명조직들과 무장부대들을 통일적으로 장악지도할 혁명활동의 거점으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하시면서 양덕지구진출목적에 대하여 다시금 강조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곳에 파견된 소부대동무들이 1년남짓한 기간에 그러한 준비를 갖추어놓았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 중요한 일을 지체할수 있겠는가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그제서야 일행은 그이께서 예견되여있는 로정을 바꾸어 양덕으로 가자고 하신 깊은 뜻을 알게 되였다.

신흥을 떠나 여러날만에 양덕지구비밀근거지의 남대봉밀영에 도착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부대성원들과 그이의 부르심을 받고 서부조선, 중부조선일대에서 달려온 혁명조직대표들을 만나시여 뜨거운 인사를 나누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날 각 지역에서 온 조직대표들과의 담화를 통하여 구체적인 실태를 료해하시고나서 다음날 아침 남대봉밀영에서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 소조, 정치공작원 및 지하혁명조직책임자회의를 여시였다.

그이께서는 회의에서 항일무장투쟁을 국내깊이에로 확대해나가는데서 양덕, 덕천지구가 차지하는 중요성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국내깊이에서 무장투쟁준비를 강화하기 위한 과업과 그 수행방도들을 전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그이께서는 특히 중부조선일대에서 무장투쟁을 힘있게 벌리기 위하여 양덕, 덕천지구에 창설된 비밀근거지를 지역적령도거점으로, 조선인민혁명군의 작전기지, 활동기지, 후방기지로 튼튼히 꾸릴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계속하여 그이께서는 비밀근거지주변 인민들을 혁명화하고 탄광과 광산, 림산로동자들을 비롯한 각계층 인민들을 조국광복회조직에 받아들여 주체적혁명력량을 튼튼히 꾸릴데 대하여, 생산유격대와 로동자돌격대, 로농무장대를 비롯한 반군사조직들을 조직하고 확대하여 전민항쟁준비를 잘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회의참가자들은 총검의 숲을 헤치고 국내깊이 나오시여 투쟁의 앞길을 밝혀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며 끝없는 감격에 휩싸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를 마치신 후 남대봉밀영으로부터 100여리나 떨어져있는 북대봉밀영으로 떠나시였다. 그런데 남대봉을 떠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그이를 모신 일행은 행군도중에 맞다들린 숯구이막에 들리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숯구이로동자들과 허물없이 자리를 같이하시고 그들이 살아가는 형편을 상세히 알아보시고나서 조선민족은 힘을 합쳐 일제를 반대하여 싸워야 한다고 하시면서 조선인민혁명군이 왜놈들을 족치고있는 이야기도 해주시고 《조국광복회10대강령》의 내용도 알기 쉽게 해설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서 세상리치를 깨닫고 앞으로 살아갈 방도까지 알게 된 로동자들은 앞날에 대한 희망을 안고 조선독립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적극 도와나서겠다고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기에서 100여명의 로동자들에게 혁명의 불씨를 안겨주시고 북대봉밀영에 도착하시여 이 지구에서 활동하던 소부대지휘성원들에게 남대봉회의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도들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양덕, 덕천지구를 반유격구형태로 전환시켜 최후공격작전시기 이 지구가 중부 및 서부지역에 조직된 반군사조직과 무장대들의 활동거점으로 되게 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양덕지구비밀근거지를 거점으로 하여 북대봉산줄기, 묘향산줄기, 청룡산줄기, 구월산줄기의 유리한 곳에 지구비밀근거지들을 꾸리며 나아가서 아호비령산줄기, 태백산줄기에도 비밀근거지들을 꾸리고 남부조선지역에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 소부대의 활동방향과 진출로정, 군중정치활동방법과 습격파괴활동의 내용에 이르기까지 소부대활동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들에 대하여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역적령도거점축성의 나날에 신흥지구와 양덕지구에서 진행하신 정력적인 활동은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에 새기신 또 하나의 불멸의 화폭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신흥과 양덕을 비롯한 국내 여러곳에 진출하신 소식은 비밀근거지창설을 위해 각지에 파견된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들과 정치공작원들의 투쟁을 힘있게 고무추동하였다. 그들은 백두산근거지와 련계를 취하는데 유리하고 군사정치활동을 벌려나갈 대상지와 접근되여있으며 비밀이 담보될수 있는 곳들에 수많은 밀영과 련락소들을 꾸려놓았다.

그리하여 북부조선일대의 창평, 풍산, 후창, 후치령, 랑림, 부전, 신흥, 위원, 창성, 오가산지구와 중부조선일대의 덕천, 양덕, 안주, 평성, 구월산, 신평, 곡산, 토산, 판교, 태백산줄기지구, 남부조선일대의 지리산지구를 비롯한 중요지대들에 비밀근거지들이 꾸려지게 되였다.

이 비밀근거지들은 백두산밀영에 자리잡은 조선혁명의 사령부의 통일적인 지도밑에 해당 지역에서 벌어지는 무장투쟁과 당조직건설사업, 조국광복회운동과 여러가지 형태의 반일대중투쟁, 전민항쟁준비사업 등을 성과적으로 보장하는 지역적령도거점, 조선인민혁명군부대들의 활동기지, 작전기지, 후방기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백두산근거지가 창설된데 이어 국내도처에 비밀근거지들이 꾸려짐으로써 항일무장투쟁을 주류로 하는 조선혁명은 전국적판도에서 발전할수 있는 탄력성있는 자기의 튼튼한 보루를 가지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