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중에서

   

반일인민유격대가 정규적무력체계를 갖춘 조선인민혁명군으로 통합개편된 이후 항일무장대오는 급속히 확대발전하였다. 일제는 유격전의 거점인 유격구역들을 초토화하고 항일무장대오를 초창기에 말살하려 혈안이 되여 날뛰였으나 조선인민혁명군대렬은 눈덩이 굴리듯 나날이 커지기만 하였다.

일찌기 어린시절부터 손에 총을 잡고 일제격멸의 전장을 누비시려는 꿈을 키워오신 김정숙녀사께서는 근거지방위전을 비롯한 조선인민혁명군의 정치군사활동에 참가하시면서 혁명의 무기를 틀어잡아야 할 절박성을 그 어느때보다 깊이 절감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따라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날부터 반혁명적폭력에는 혁명적폭력으로 맞서싸워야만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고 혁명승리를 이룩할수 있다는 위대한 수령님의 총대중시사상을 심장으로 체득하시고 수령님께서 조직령도하시는 조선인민혁명군대오에서 싸우는것을 혁명전사의 고귀한 삶을 빛내이는 가장 성스러운 일로 간주하여오신 김정숙녀사이시였다.

자신의 생활체험과 혁명실천을 통하여 혁명투쟁에서 총대가 기본이라는 총대혁명원리를 심장으로 체득하신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기 위한 정신적, 군사적준비에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근거지를 사수하기 위한 전투들에서 불굴의 투지와 뛰여난 군사적지략, 높은 사격술을 체득하시였으며 아동단사업과 공청사업을 지도하시면서 수많은 군중을 투쟁에로 불러일으키는 과정에 능숙한 군중정치사업방법과 경험을 소유하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입대를 앞두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작성하신 「유격대동작」과 조선인민혁명군의 성격과 사명, 전략전술을 상세히 연구하시였으며 그것을 실천에 적용하기에 노력하시며 입대준비를 빈틈없이 갖추어나가시였다.

마침내 그렇듯 바라마지 않던 력사적인 날이 왔다.

주체24(1935)년 9월 18일 불요불굴의 녀성혁명가 김정숙녀사께서는 안도현 처창즈에서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시였다.

처창즈의 하늘가에 높이 휘날리는 붉은기앞에서 김정숙녀장군께서는 희생된 동지들의 피와 념원, 온 민족의 부탁이 담겨져있는 혁명의 무기, 계급의 총을 수여받으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총을 굳게 틀어잡으시며 엄숙한 맹세를 다지시였다.

『나는 혁명선렬들의 피가 스며있고 인민들의 조국광복념원이 어리여있는 이 총을 잡고 김일성장군님께 끝까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이 총 한자루를 백자루로 알고 잡으며 이 총알 한발을 백발로 알고 원쑤를 쏘겠습니다.』

이날 김정숙녀장군께서는 크나큰 영광과 긍지에 넘쳐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혁명이 승리하는 날까지 이 총을 손에서 놓지 않겠습니다.

김일성장군님을 모시고 이 총을 메고 조국으로 개선하겠습니다.』

김정숙녀사의 조선인민혁명군 입대, 그것은 10대 초반의 어리신 소녀의 몸으로 혁명의 길에 나서시여 녀성혁명가의 풍모를 갖추어오신 김정숙녀사의 혁명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 고결한 헌신과 희생성의 발현이 안아온 응당한 귀결이였다. 그것은 녀사께서 조선을 위해 싸우라 하신 아버님의 유언을 받아안는 자리에서 스스로 결심하고 선택하신 인생의 좌표였으며 빼앗긴 조국과 망국의 한을 품은 이 나라 인민들의 구원의 부름에 대한 화답이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심으로써 위대한 수령님의 선군혁명령도를 받드는 항일무장투쟁의 제1선위치에 서게 되시였다.

이때부터 「항일의 녀성영웅」, 「선군혁명의 녀장군」으로서의 김정숙녀사의 빛나는 위훈의 력사가 펼쳐지게 되였다.

혁명의 총 한자루를 백자루로 알고 잡으며 총알 한발을 백발로 알고 원쑤를 쏘아눕히겠다는 김정숙녀장군의 맹세는 입대후 첫 전투때부터 실천으로 옮겨졌다.

그해 10월 일제는 중무장한 1만여명의 대병력과 비행기까지 동원하여 처창즈유격구역에 대한 전례없는 대「토벌」을 감행하였다.

당시 처창즈에 있던 부대의 기본력량은 돈화, 화전일대에 진출하고 유격구역에는 불과 100여명의 유격대원들과 반일자위대, 청년의용군밖에 없었다. 지휘부에서는 수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비할바없이 우세한 적을 막아내기 위한 방도가 서지 않아 모대기고있었다.

지휘성원들이 신심을 가지지 못하다보니 전투위치를 차지한 일부 대원들도 이 적은 인원으로 과연 우리가 적과 싸워이길수 있겠는가고 우려를 금치 못했다.

그러나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반드시 싸워이겨야 한다는 확고한 립장을 지니고계시였다.

그이께서는 대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였다.

지금 형편은 수적으로나 무장장비에서 적에 비하여 우리가 매우 불리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처창즈유격구를 지켜내야 합니다. 우리가 만단의 싸움준비를 갖추고 결사의 각오를 가지고 적들과 싸운다면 능히 유격구를 지켜낼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동무들은 승리의 신심이 없이 적들의 수적우세에 겁을 먹고 근심만 하고있습니다. 우리는 겁부터 먹고 앉아서 걱정만 할것이 아니라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지형지물을 잘 리용하여 적들을 단매에 족칠 생각을 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차지하고있는 방어구역일대의 자연지리적조건은 적들이 공격하기에는 불리하고 우리가 방어하기에는 매우 유리합니다. 동무들, 저기에 고동하와 깎아지른듯 한 절벽이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잘 리용하면 적들이 아무리 많이 달려들어도 무서울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경기관총만 한정 걸어놓으면 놈들이 어떻게 저 다리를 건너오겠습니까. 김일성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우리가 이런 자연지형지물을 잘 리용한다면 수천명이 아니라 그보다 더 많은 적이 덤벼들어도 두려울것이 없습니다.…

전투는 이른아침부터 시작되였다.

적들은 하늘에 비행기를 띄우고 포까지 쏘면서 달려들었다.

물론 예견하지 못한바는 아니였으나 막상 까마귀떼처럼 달려드는 적들을 보자 전투를 지휘해야 할 지휘관들과 대원들도 위구심에 사로잡히게 되였다.

바로 이런 때 전투정황을 예리하게 살펴보고계시던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적장교놈들을 골라 쏘아잡아 적들의 지휘체계를 마비시키기도 하시고 고동하다리목에 「토벌대」의 무리를 몰아넣고 집중화력을 들씌워 눈깜짝할 사이에 적들을 요정내기도 하시며 전투를 능숙하게 지휘하시였다.

다음날 전투에서도 녀장군께서는 필사적으로 발악하는 적대오의 후미를 타격하고 앞대가리를 잘라버리는 방법으로 놈들에게 혼란을 조성하도록 하시여 처창즈유격구역방어전투승리에 크게 기여하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전투들에서 뛰여난 군사적예지와 용맹을 남김없이 발휘하시였을뿐아니라 누구보다 총대를 열렬히 사랑하시고 귀중히 여기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사령부에서 취한 조치에 따라 주체24(1935)년 11월초 처창즈유격구역이 해산되자 아동단원들을 이끄시고 부대와 함께 내도산방향으로 진출하게 되시였다.

어느날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내도산으로 가는 행군길에서 한 신입대원이 전투에서 범한 과오를 두고 준절히 타이르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였다.

방금전에 있은 일제「토벌대」와의 조우전에서 나무가지에 걸려 벗겨진 총을 내버린채 전투장을 리탈한 동무의 행동은 대단히 잘못되였습니다. 적과의 전투에서 겁을 먹고 전투장을 리탈한것도 혁명군대원으로서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총을 버린것은 더욱 엄중합니다. 혁명군대원이 총을 버린다는것은 싸움을 하지 않겠다는것이나 같습니다. 총을 가진 적과는 총을 가지고 싸워야 합니다. 총이 없이는 적과의 싸움에서 이길수 없을뿐아니라 자기 생명도 지켜낼수 없습니다.…

그러시면서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총은 우리 혁명군에게 있어서 생명과 같다고,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이 메고있는 하나하나의 총은 혁명동지들의 피와 목숨으로 바꾼 혁명의 무기라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이 말씀은 신입대원에게 하신 단순한 훈시나 지적이 아니라 김정숙녀장군께서 지니신 신념의 토로였고 웨침이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이렇게 총을 자기의 생명처럼 여기시였으며 총이자 조국해방이고 총이자 민족의 운명이라는 혁명의 원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계시였다. 하기에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언제나 총을 눈동자와 같이 사랑하시였으며 행군의 쉴참에도 손에서 총을 놓지 않으시고 사격훈련에 전심하시였다.

하여 이 시기에 벌써 김정숙녀장군의 명사격술은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부대는 11월말에 안도현 내도산에 도착하였다.

내도산은 백두산이 서남쪽으로 바라보이는 밀림지대에 솟아있는 산이였다. 이 산밑에 70여호가량 되는 내도산부락이 자리잡고있었다.

이 마을에서 부대는 적극적인 정치공작을 벌리였다.

국경가까이에 있는 내도산에 조선인민혁명군이 진출하여 군사정치활동을 벌리고있는데 극도의 불안과 공포를 느낀 일제는 1936년 1월 가장 악질적인 「신선대」와 일제침략군 박격포중대를 포함한 일만군경 800여명의 병력으로 내도산마을에 대한 「토벌」을 감행하였다.

전투는 치렬하게 진행되였다.

적들은 수적우세를 믿고 수많은 주검을 내면서도 계속 공격해왔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적들의 공격을 몇차례 물리치면서 방어만 해가지고는 전투의 주도권을 쥘수 없다는것을 꿰뚫어보시고 적의 대병력을 피동에 몰아넣고 족쳐버릴 기묘한 전술적안을 내놓으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 내놓으신 전술적안은 내도산의 동쪽과 남쪽고지들에서 일시에 숱한 우등불을 지펴올려 적들에게 위치를 로출시킨 다음 유리한 위치에 매복해있다가 불의에 족쳐버리는것이였다.

이것은 적들의 무모한 공격전술을 역리용하여 순식간에 무리죽음을 안길수 있는 기발한 착상이였으며 공포에 떠는 적의 심리까지 꿰뚫어보고 내놓으신 묘안이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전투가 가장 치렬하게 벌어지는 고지돌출부에 나가 적들에게 련속 명중탄을 안기시였다. 400m가량 떨어진 산밑에서는 장교놈이 졸병들을 연신 돌격에로 내몰고있었다.

증오에 넘친 눈길로 적장교놈을 쏘아보시던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단방에 그놈을 쓰러뜨리시였다.

이날 전투에서 총탄 한발에 적병 한놈씩 어김없이 거꾸러뜨리시는 김정숙녀장군의 뛰여난 사격술을 목격하게 된 한 독립군출신의 로인은 자기도 총을 잡고 싸울 때에 철알을 둬섬은 잘 쏘아보았지만 이처럼 한방에 한놈씩 거꾸러뜨리는 명사수는 한번도 본 일이 없다고 하면서 『과시 녀걸이요!』라고 감탄을 금치 못해하였다.

김정숙녀장군의 기발한 전술적방안과 뛰여난 사격술, 희생적인 투쟁 그리고 인민혁명군대원들과 인민들의 영웅적투쟁에 의하여 적들은 300여구의 시체를 남기고 퇴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이처럼 전투정황에 따라 약한 고리를 신속정확히 포착하시고 그것을 리용하여 적을 수세와 혼란에 빠뜨리고 불리한 정황도 유리하게 전환시키며 역경도 순경으로 전환시키는 뛰여난 군사적지략을 보여주시였다.

혁명의 총을 잡고 처창즈유격구역방어전투, 내도산전투 등에서 발휘하신 김정숙녀장군의 군사적슬기와 용감성은 빨찌산녀장군전설로 인민들속에 널리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한생을 혁명의 군복을 입고 총대로 불바다 혈전만리를 헤쳐온 백두의 녀장군 김정숙녀사의 위대한 군인의 력사는 이렇게 시작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