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 (3) 중에서

 

 

 저물어가는 20세기와 더불어 미국은 저들이 집요하게 추구해온 대조선적대시정책의 파산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랭전이  종식된 후 미국은 저들 지배하의 1극화된 《새 세계질서》를 세우기 위한 관건적고리의 하나를 사회주의조선을 없애버리는데 두고 반공화국책동에 더욱 열을 올렸다. 특히 민족의 대국상과 거듭되는 자연재해로 하여 류례없는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하고있을 때 미국은 이를 절호의 기회로 삼고 공화국을 정치적으로 고립시키고 경제적으로 질식시키며 군사적으로 압살하려고 획책하였다.

조미핵대결에서 패배하고 《조선의 조기붕괴설》이 파산되자 미국은 《작전계획 5027》, 《작전계획 5027-98》 등 조선침략전쟁계획들을 짜놓고 수많은 침략무력들과 첨단전쟁장비들을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 끌어들이면서 정세를 전쟁접경에로 몰아갔다.

그러나 그때마다 굴복한것은 미국이였다. 조선은 미국의 강권앞에 굴복한것이 아니라 초강경으로 맞서면서 미국의 책동을 걸음마다 파탄시켰다.

미국은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있었다. 자료에 의하면 미국은 1999년까지 2050여기의 대륙간탄도미싸일과 3,500여기의 잠수함발사탄도미싸일, 350여기의 해상발사순항미싸일, 1500여기의 공중발사순항미싸일을 비롯하여 전략핵미싸일만도 근 1만 500여기나 보유하였고 핵폭탄도 3075개나 가지고있었다고 한다. 이밖에도 100여척에 달하는 전략핵잠수함, 공격형잠수함들과 250여대에 달하는 각종 장거리전략폭격기들 그리고 핵무기를 적재할수 있는 수천대의 전투폭격기들을 가지고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힘》도 백승의 선군령장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펼치시는 선군정치의 위력앞에서 맥을 추지 못했다.

이와 관련하여 유럽의 한 통신은 《요즘 세계무대를 둘러보면 미국을 한손에 거머쥐고 좌지우지하는것은 김정일최고사령관밖에 없다. 그러고보면 김정일최고사령관은 <무쇠마치>이고 클린톤은 <가공소재>라고 해야 할것이다. … 조선의 무쇠마치가 미국소재를 마음대로 두들겨때려 가공하고있다.》라고 하며 조선을 찬양하고 미국을 조소하였다.

세계는 자주냐 예속이냐, 반미냐 굴종이냐 하는 치렬한 조미대결전이 벌어졌던 20세기를 보내면서 선군정치의 불패의 위력과 정의와 진리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력사의 철리를 다시금 깊이 새겨안게 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는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미제국주의자들과의 대결에서 반드시 승리할것입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승리에 대한 확신에 토대하여 대미외교공세를 주동적으로 벌려나가시였다.

주체89(2000)년 10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특사로 미국을 공식방문하였다.

공화국을 적대시하던 미국이 문을 열어 장군님의 특사를 받아들이고 특사가 조선인민군 차수의 군복차림으로 워싱톤의 한복판에 당당히 나타난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에 대한 미국의 환대는 세계를 더욱 놀라게 하였다.

미국은 특사를 국가수반급으로 환대하였다. 베이징에서 워싱톤, 워싱톤에서 베이징까지 특사일행의 안전을 위하여 무장한 경호원들을 동행시켰고 아무런 비행장수속절차도 거치지 않고 통과시켰다. 특사일행을 위해 대통령이 리용하는 승용차와 선후발차를 포함하여 수많은 승용차를 동원시켰는가 하면 국가수반들이 드는것으로 유명한 특급호텔을 제공하였다.

환영연회도 미행정부와 의회, 워싱톤의 외교관들과 조선반도문제전문가, 기업가 등 180여명이 참석하여 국가수반환영행사처럼 진행하였다. 이날 행사를 위해 미국무성은 참가대상들에게 초청장을 보내는데 그치지 않고 일일이 전화를 걸어 꼭 참석해줄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연회장에는 미륙군군악단이 동원되여 분위기를 더욱 돋구었다. 미국의 조선반도문제연구소들과 대학들에서는 특사일행을 초청하기 위한 치렬한 경쟁까지 벌렸다.

우리 군대와 인민이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총화하고 사회주의승리자의 대축전으로 성대히 경축하고있던 당창건 55돐이 되는 뜻깊은 주체89(2000)년 10월 10일, 특사는 당시 미국대통령 클린톤을 만나 경애하는 장군님의 친서와 조미관계를 개선할데 대한 그이의 의사를 전달하였다. 원래 미국은 가까운 동맹국의 대통령특사라도 대통령이 만나주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장군님의 특사만은 례외라고 하면서 무조건 만나주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친서를 정중히 일어서서 받은 미국대통령 클린톤은 친서부터 읽어본 다음에야 담화를 시작하였다. 그는 시간이 지났다는 의례원들의 신호에도 불구하고 특사의 발언을 주의깊게 끝까지 들었다. 클린톤은 장군님에 대한 경의의 감정을 여러모로 표시하면서 예정한 담화시간도 훨씬 초과하여 담화를 하였다.

특사일행은 방문기간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을 비롯한 미행정부의 고위인물들을 만나 조미관계를 개선하고 동북아시아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문제들에 대하여 폭넓고 심도있는 의견교환을 진행하였다. 특히 미국방장관은 장군님의 특사일행을 만나기 위하여 유럽행각도중 워싱톤으로 되돌아왔다. 그리하여 조미관계력사상 처음으로 두 나라사이의 고위급군부회담이 미국땅에서 진행되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특사일행의 미국방문결과 공화국에 대한 미국의 적대시정책포기, 공화국의 자주권인정, 공화국과의 관계개선의지 등을 확약한 조미공동콤뮤니케가 발표되였다. 거기에는 장군님을 만나뵙기 위하여 력사상 처음으로 미국대통령이 공화국을 방문한다는것과 그 준비사업을 위해 국무장관이 공화국에 온다는것을 특별히 명기하였다.

옛날 리조봉건정부와 미국사이의 첫 조약인 1882년의 불평등적인 《조미조약》체결때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현상을 보여주는 일이였다.

그때 리조봉건정부는 자기 대표도 내세우지 못하고 청나라의 북양대신 리홍장을 대신 내세워 미해군제독 슈벨트와 협상을 하게 하였고 그들이 조약을 작성, 결정하였다. 그러다나니 《조약》은 어느 조항 하나도 리조봉건정부의 요구대로 되지 않고 미국과 청나라의 의사에 따라 체결된 불평등하고 치욕적인 조약으로 되였다.

위인을 모시지 못한탓에 외국과의 조약에도 자기 대표를 내세울수 없었던 민족, 강한 군대를 가지지 못한것으로 하여 20세기초 미국대통령 루즈벨트가 조선사람들은 자기 나라의 방어를 위해서 손가락 하나 쳐들지 못하는 민족이라고 심히 모독해도 눈 한번 흘기지 못하던 우리 민족이였다.

민족을 상징하는 모든것을 송두리채 빼앗기고 세상에서 빛마저 잃었던 어제날의 약소민족이 오늘은 천하제일의 선군령장을 모시여 《세계유일초대국》이라고 뽐내는 미국도 어쩌지 못하고 우리에게 굽어든것이다.

이 경이로운 현실을 놓고 미국의 조선반도문제전문가들은 《참으로 놀랍다》면서 감탄을 금치 못해하였으며 남조선의 《한겨레》신문은 《가만히 앉아있어도 모두들 평양으로 찾아오게 되여있다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호언이 빈말이 아니게 되여가는셈이다. 따지고보면 미싸일과 핵을 무기로 <세계유일의 강대국>인 미국과 밀고 당기기를 하는 나라는 북밖에 없다.》, 《미국, 일본, 중국, 로씨야 등 주변 4강국이 <한>반도에서의 상황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있는 시점에 북의 외교주도권은 분명 놀라운 측면이 있다.》고 경탄을 표시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특사의 미국방문에 이어 10월 23일 미국무장관 알브라이트가 국무성과 국방성의 고위관리들을 망라한 200여명 규모의 대표단을 데리고 평양을 방문하였다.

일반적으로 외교관계가 없는 나라들사이에는 고위당국자들이 래왕하지 않는것이 관례이다. 그러나 미국은 외교관계가 없는것은 물론 서로 총부리를 맞대고있는 공화국에 국무장관을 보내왔으며 그것도 대통령의 방문을 준비하기 위해 특별히 보내왔다.

미국무장관은 금수산기념궁전을 방문하여 스스로 어버이수령님께 허리를 굽혀 정중히 인사를 올리는것으로부터 자기의 방문일정을 시작하였다.

미국무장관일행이 공화국을 방문하고 직접 어버이수령님의 령전을 찾아 인사를 드린 그자체가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의 밑뿌리가 뒤흔들리고있으며 장군님의 선군정치앞에서 미국이 흰기를 들었다는것을 보여주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미국무장관일행을 접견하시고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문제인 위성발사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평화적인 과학연구를 위해 위성을 쏴올렸는데 무얼 그렇게 떠는가, 미국이 우리와 사이좋게 지내겠다고 하면 근심할 필요가 없다, 미국이 선의의 마음을 먹고 나온다면 우리도 미국의 우려를 해소시켜줄수 있다고 하시면서 정통을 찔러 문제해결책을 즉석에서 명쾌하게 제시해주시였다.

장군님께서 천리혜안의 통찰력과 비범한 예지로 조미관계문제, 국제문제, 미싸일문제 등에 대하여 단번에 즉시적으로 결론을 주시자 알브라이트는 격정을 금치 못해하였다.

브로치로 자기의 마음을 표현한다는 그는 처음에 미국의 강대성을 시위한다는 의미에서 미국 성조기모양의 브로치를 달았다가 존경과 사랑을 표시한다는 심장모양의것으로 바꾸어달고 경애하는 장군님을 만나뵈왔다. 그것은 그대로 장군님을 대하는 그의 인식변화의 표시라 할수 있었다.

그는 자기의 기자회견발언내용까지도 미리 장군님께 직접 말씀드려 동의를 받아 그대로 하였다. 하기에 대표단의 한 성원은 《알브라이트는 김정일위원장께 완전히 반했다.》고 실토하였다.

미국무장관일행은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백전백승 조선로동당》을 관람하면서 《ㅌ.ㄷ》를 시원으로 하여 주체형의 혁명적당을 창건하시고 필승불패의 당으로 다져오신 김일성주석의 불멸의 령도업적과 준엄한 폭풍우속에서도 우리 당을 어버이수령님의 당으로 강화발전시켜오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위대한 업적, 선군의 기치따라 주체의 사회주의강성대국건설에 일떠선 당과 군대와 인민의 일심단결된 불패의 위력에 대하여 더욱 똑똑히 알게 되였다.

알브라이트는 미국으로 돌아가 대통령에게 제출한 보고서에서 총체적으로 북조선령도자는 정치, 경제, 문화, 군사, 외교 등 광범한 모든 문제들에서 리론이 명백하고 신심이 확고하며 대범하고 주도세밀한 매우 다재다능한 령도자이시라는것을 밝혔다고 한다.

그의 평양방문을 주시하던 서방의 한 신문은 《클린톤행정부는 북조선의 요구를 군말없이 받아들였다. 평양은 전쟁을 하지 않고도 승리하였다.》고 평했으며 남조선의 한 신문은 그의 평양방문소식을 전하면서 《북은 미국을 변화시켜 사회주의체제에 도움을 주는  <친구>로 만드는 기적을 창조하고있다.》고 보도하였다.

참으로 미국이 아직 국가관계도 없는 우리 나라에 국무장관을 보내오고 대통령까지 찾아올 의향을 표시한것은 우리 공화국의 국제적지위에 대한 인정과 대조선정책변화를 의미하는것이였다. 이것이야말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펼치시는 선군정치, 선군외교의 위대한 승리였다. 그것은 미국이 선군조선앞에 명실공히 흰기를 들고나선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