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 (1)중에서

  

항일대전의 일대 앙양을 위한 새 진군이 시작되였다.

이 력사의 진군길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 푸셔야 할 일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무장대오의 확대강화, 상설적인 통일전선체의 조직, 당창건준비사업 추진 등 수많은 어렵고 중대한 문제들이 시급한 실천을 기다리고있었다. 무엇부터 진행할것인가, 천리길도 첫걸음으로 시작된다고 시작을 어떻게 떼는가가 중요하였다.

총대로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실 철석의 신념과 의지를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제기된 모든 문제들이 다 중요하였지만 항일무장대오를 확대강화하는것으로부터 항일대전의 일대 앙양을 위한 력사적진군의 첫 자욱을 새겨가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의 새 사단도 바로 그 길에서 태여났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구상하고계시던 새 사단은 군사적성격의 사단만이 아니였다. 새 사단은 군사활동과 함께 백두산으로 나가 국내도처에 당조직망도 확대하고 여러 형태의 반일조직을 통하여 전체 조선인민을 반일항전에로 이끌어나가야 할 정치군대로서의 새로운 임무와 면모를 갖추어야 하였다. 물론 이러한 임무는 다른 사단들도 수행해야 하였지만 그중에서도 모든 부대들의 앞장에서 선구자적역할을 수행하여야 할 주력사단이 있어야 하였다. 다시말하여 그이께서 조직하시려는 새 사단은 조선혁명의 기관차역할을 담당수행하여야 할 강유력한 주력부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새 사단편성의 구상을 안으시고 남호두 소자지하를 떠나 백두산지구에로의 행군길에 오르신것은 주체25(1936)년 3월 중순이였다. 그이께서는 백두산에로의 직선행로가 아니라 북상행군을 하여 액목현 청구자와 관지밀영에 들려 그곳에 있는 전우들에게 남호두회의결정을 알려주시고 지휘관들과 대원들을 북만부대들에 파견하신 다음 돈화-안도현경의 미혼진에 이르시였다. 한두번 다녀간 사람도 향방을 잡지 못해 헤맨다는 심심산골, 누구나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할수 없는 혼미의 세계에 빠져든다고 하여 미혼진으로 불리우는 이곳에는 조선인민혁명군 독립1사 제1련대의 후방밀영이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 미혼진밀영에서 인민혁명군부대들의 개편문제를 토의하고 새로 조직되는 사단들과 려단의 활동지대를 결정하기 위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를 소집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회의에서 1930년대 전반기에 진행된 무장투쟁의 거대한 성과에 기초하여 항일혁명전쟁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이끌어올리기 위한 적극적이고 대담한 군사적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인민혁명군부대들의 전투력을 높이고 그 활동지대를 넓히며 백두산지구를 비롯한 국내외 도처에서 적에 대한 일대 군사적공세를 취할수 있도록 조선인민혁명군 대오를 새로운 규모로 장성강화할데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기하시였다. 회의참가자들은 그이께서 내놓으신 방안이 항일무장력발전에서 전환을 가져오게 될 획기적방안이라고 하면서 이에 대한 열광적인 지지를 표시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방안에 따라 회의에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전투력량을 종전의 2개 사단으로부터 3개사단, 1개 독립려단으로 대폭 확대할데 대한 결정이 채택되였으며 이에 기초하여 부대들의 활동구역이 분담되였다. 그에 따라 1개 사단은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압록강국경연안 일대에서, 다른 1개 사단은 무송, 안도, 림강일대에서, 또 다른 1개 사단은 간도와 북만일대에서 각각 활동하기로 하였으며 새로 편성되는 독립려단은 북만주지방에서 류동작전을 하다가 점차 압록강연안에 진출하여 국경일대에 출몰하는 적들을 제압하기로 하였다. 이것은 실로 짧은 시일안에 전격적인 방법으로 인민혁명군의 전투력을 급속히 확대강화하기 위한 전투적인 조치였다. 회의에서는 이밖에도 항일대전을 일대 앙양에로 이끌어올리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들이 토의결정되였다.

미혼진회의를 성과적으로 결속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부대를 친솔하시고 새 사단의 골간으로 될 조선인민혁명군 독립1사 제2련대가 있는 무송현 마안산지구로 향하시였다. 미혼진에로의 행군때와 마찬가지로 마안산지구에로의 행군로정도 험난한 로정이였다. 20명도 안되는 적은 인원으로 구성된 행군대오는 몇배나 되는 적들과 치렬한 전투를 벌리면서 한치한치 전진하였다. 어떤 날에는 서너번씩 전투를 치르어야 하였다.

하지만 행군대오는 조금도 굴함없이 막아서는 난관을 뚫고 앞으로만 전진하였으니 그 불굴의 힘의 원천은 위대한 수령님의 대원들에 대한 한없이 뜨거운 사랑과 탁월한 령군술, 비상한 혁명적전개력에 있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치신 절세의 위인의 숭고한 헌신과 로고에 있었다.

마안산을 향한 행군대오가 소사하등판이 바라보이는 곳을 지날 때였다. 흘러간 일들을 추억하시며 련련히 뻗은 산봉우리들을 더듬으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시야에는 어느덧 선군혁명무력의 창건을 선포하셨던 소사하등판이 안겨왔다. 그 등판에서 얼마간 내려가면 양지바른 산기슭에 어머님의 묘소가 있었다. 떼장이 듬성듬성 어설프게 얹혀있는 어머님의 묘에 고별의 눈물을 뿌리며 토기점골을 떠나신지도 4년이 되여오고있었다.

불현듯 어머님의 묘소를 찾아가 잠간만이라도 심중의 이야기를 나누고싶으신 충동이 그이의 가슴을 세차게 흔들어놓았다. 아마 그때가 청명을 앞둔 절기여서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더 강렬해지셨을것이다. 그이께서는 일행이 떠난줄도 모르시고 그냥 그곳에 서계시다가 왜 산을 내리지 않으시는가고 묻는 전령병의 목소리를 들으시고야 명상에서 깨여나시였다. 그제서야 위대한 수령님의 심중을 알게 된 지휘관들과 대원들이 잠간만이라도 시간을 내여 어머님의 묘소를 찾으실것을 거듭 간청하였지만 그이께서는 끝내 그들의 청을 들어주지 않으시였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머님께 이렇게 마음속 인사를 드리시며 산을 내리시였다.

(어머니, 갈길이 너무도 총총해서 토기점골에는 들리지 못합니다. 사시장철 찬눈과 찬비에 젖고계시는 어머니의 분묘에 흙 한줌 덮어드리지 못하고 풀 한번 깎아드리지 못한채 안도땅을 밟고보니 송구스러운 마음 이를데 없습니다. 그동안 아우들 건사도 잘하지 못했습니다. 철주는 지난해에 전사했다는데 그 유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조선혁명앞에는 창창한 대로가 열려졌습니다. 이제 마안산에 나가면 큼직한 사단을 하나 꾸리자고 합니다. 그 부대를 거느리고 백두산을 타고앉아 본때있는 싸움판을 벌리겠습니다. 나라를 다시 찾지 못하면 어머니의 유언대로 묘소곁에도 찾아가지 않겠습니다. 믿고 기다려주십시오. 기어이 조국을 되찾고 어머니를 만경대로 모셔가겠습니다.)

위대한 수령님도 인간이시였다. 인간중의 참인간이시기에 누구보다도 어머님을 사랑하시였고 누구보다도 그리워하시였다. 항일대전의 준엄한 나날 언제 한번 잊으신적이 없는 어머님이시였다.

그러나 새 사단을 편성하는것이 한시도 미룰수 없는 시대적과제였기에, 조국과 민족의 운명이 너무도 귀중하고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이 그리도 강렬하셨기에 그이께서는 지척에 어머님의 묘소를 두시고도 결연히 마안산에로의 행군길을 이어가시였던것이다.

이렇듯 가슴뜨거운 이야기를 로정마다에 수놓아가며 행군대오는 마침내 마안산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에서 뜻밖의 일에 부닥치게 되시였다.

새 사단의 골간으로 삼으려 하셨던 2련대가 교하방면으로 원정을 떠나고 없다는것이였다. 더 놀라운것은 100여명이나 되는 성원들이 《민생단》혐의를 받고 전투대오에서 떨어져있다는 이곳 정치일군의 말이였다. 그는 《자백서》, 《진술서》, 《심문조서》 등 《증빙문건》들이라고 하는 커다란 문서보따리까지 내놓는것이였다.

《민생단》이 허구라는 절규가 동만땅을 진감한지도 오래고 더우기 반《민생단》투쟁에서 엄중한 좌경적실책을 범하였다는 국제당의 지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생단》의 이름을 건 광대놀음이 계속 벌어지고있다는것은 실로 상상밖의 일이였다. 이미 다홍왜와 요영구회의들에서 최종적인 해결을 본 반《민생단》투쟁에서의 좌경적편향이 이곳에서는 아직까지 극복되지 못하고있었던것이다.

사태가 심각함을 절감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체없이 《민생단》혐의자들을 전부 데려오게 하시는 한편 《증빙문건》들에 대한 검토를 시작하시였다. 밤새워 문서장들을 번져가실수록 그이께서는 차츰 더 깊은 미궁속으로 빠져드는것 같으시였다. 어마어마한 죄상들이 너무도 생동하게 기록되여있었던것이다. 그이께서는 보시던 문서장들을 덮어버리시였다. 도무지 믿을수가 없으시였다.

그러던중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생단》혐의자들이 밀영귀틀집에 도착하였다는 보고를 받게 되시였다. 그이께서 귀틀집에 들어서시였을 때 거기에는 람루하기 이를데 없는 사람들이 꽉 들어차있었다. 통신원의 련락을 받고 한달음에 그 먼길을 달려온 그들이였건만 모두가 머리를 푹 수그리였을뿐 경례를 붙이는 사람도, 영접보고를 하는 사람도 없었다. 정적과 침묵만이 무겁게 방안을 감돌고있을뿐이였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을 가슴아프게 바라보시던 그이께서는 이윽고 갈리신 음성으로 그동안 고생이 막심했겠다고 하시면서 《민생단》혐의문서장들을 보았는데 동무들이 스스로 속심을 툭 털어놓고 두려워하지 말고 눈치를 보지도 말고 솔직하게 말해보라고 열렬히 호소하시였다.

그런데 눈물을 쏟고 가슴을 두드리며 절대로 《민생단》이 아니라고 절규하기를 내심 기대하시였던 그들에게서 나온 대답은 천만뜻밖에도 문서장에 씌여진 내용들이 모두 옳다는것이였다.

귀틀집을 나서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숲속을 거니시며 중세기의 종교형벌을 방불케 하는 악형을 당하면서도, 사형선고앞에서도 《모른다!》는 한마디의 말로 자기가 한일도 안했다고 대답할 투사들이 같은 공산주의자들앞에서 안한 일도 했다고 대답하며 아닌것도 옳다고 하는 까닭이 어디에 있겠는가를 곰곰히 생각해보시였다.

지난 시기 반《민생단》투쟁이 남긴 교훈적인 실례들을 돌이켜보신 그이께서는 같은 목적을 위해 싸우는 동지들한테서 받는 억울한 오해와 불신, 이것이야말로 100여명의 빨찌산장정들을 극단적인 절망과 자포자기에로 몰아넣은 근원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시였다.

절망에 빠진 그들을 구원하자면 불신의 올가미로 되고있는 부당한 《민생단》혐의를 벗겨주고 그 올가미를 흔적도 없이 제거해버려야 하였다. 오해와 불신으로 얼어든 그들의 가슴에 뜨거운 사랑과 믿음을 안겨주어야 하였다.

다시금 《민생단》혐의자들에게로 돌아오신 그이께서는 여기 있는 동무들은 모두 나의 전우로 될수 없는 친일역적들이며 반동들이라고 말하고있다, 나는 그 말을 믿을수 없다, 동무들이 《민생단》에 들었을것 같으면 일본사람들한테나 갈것이지 무엇때문에 제대로 입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면서 고생스럽게 지내겠는가, 과연 동무들이 음산한 만주광야 빙천설지에서 풍찬로숙해온것은 일본의 개가 되여 자기의 혈육들과 동지들을 해치기 위해서였는가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순간 대원들의 가슴에는 격랑이 일기 시작하였다. 그이의 사랑과 믿음이 어린 말씀을 받아안고 그들은 저마다 《민생단》이 아니라고 하면서 참고 참아오던 오열을 터뜨리기 시작하였다. 오랜 시간에 걸쳐 그들의 하소연을 다 들어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는 《민생단》이 아니라는 동무들의 말을 믿는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이 시각부터 동무들을 그토록 괴롭혀왔던 <민생단>혐의가 완전히 무효하다는것을 언명하는 동시에 동무들 모두가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대오에 들어섰다는것을 선포한다.》

장내에 격정의 파도가 설레이는 가운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당 한복판에 《민생단》문서보따리를 쌓아놓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 저주로운 문서장들에 불을 지르시였다. 불길이 타오르자 온 마당이 울음바다가 되였다. 대원들이 흘리는 눈물, 그것은 재생의 삶을 안겨주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감사의 눈물이였으며 끝까지 그이만을 믿고 따르려는 맹세의 눈물이였다. 《민생단》문서보따리를 불태워버린것은 혁명동지들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사랑, 불의에 대한 비타협적인 투쟁정신을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만이 내리실수 있는 대용단이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께서 편성하시려던 새 사단은 2련대를 모체로 하여 조직하려던 처음의 계획과는 달리 불신의 《민생단》문서장들을 한줌의 재로 날려보내는 불길속에서 태여났다. 새 사단이 태여났다는 소문이 삽시에 퍼지자 여러곳에서 사기를 잃고 위축되여있던 소부대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마안산지구로 찾아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찾아온 그들로써 련대들과 중대들을 편성하시였다. 그리고 장기간의 무장투쟁속에서 단련되고 검열된 성원들을 지휘관들로 선발배치하시였으며 대오안에 당조직과 반일청년동맹조직도 내오시였다. 이렇게 주체25(1936)년 4월 조선인민혁명군 새 사단이 태여나게 되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강부근에서 사령부직속 녀성중대를 조직하시였으며 마안산출신의 아동단원들과 서간도에서 찾아온 아동들로 소년중대도 조직하시였다.

새 사단의 탄생, 실로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신 비범한 주체적안목과 천재적예지, 열화와 같은 동지적사랑과 믿음이 낳은 고귀한 결실이였으며 선군혁명령도로 조국해방위업을 앞당겨 완성하는데서 새로운 계기로 되는 력사적사변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