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 (3) 중에서

 

 

 이전 쏘련이 붕괴된 후 미국은 《유일초대국》으로 자처하면서 국제무대에서 전횡과 폭거를 감행하였다. 미국은 정치, 경제적으로 세계를 예속화하고 군사적으로 모든 나라들을 통제하여 행성을 《미국화》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의 오만무례한 패권주의적전횡과 폭거는 선군의 조국인 우리 공화국앞에서는 통할수 없었다.

우리 공화국은 미국과 단독으로 당당히 맞서 나라의 자주권과 존엄을 고수하였다. 우리는 미제의 집요한 고립압살과 군사적침략책동을 선군의 위력으로 짓부셔버렸으며 국제무대에서 발언권과 영향력을 비상히 높였다. 이것은 반미자주적인 나라들에는 신심과 용기를 북돋아주었고 우리를 멀리하던 나라들이 정책을 수정하여 우리와의 관계정상화에로 돌아서게 한 중요한 요인으로 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이제는 우리 나라가 무시할수 없는 나라로 되였습니다. 우리 나라는 선군정치의 조국이기때문에 지금 큰 나라이건 작은 나라이건 우리와 관계를 좋게 가지려 하고있습니다.》

공화국의 대외적권위가 나날이 높아가고있는데 대하여 유럽의 한 이름있는 조선문제전문가는 자기의 글에서 이렇게 썼다.

《1990년대 중엽부터 오늘까지 조선에서 3대기적이 일어났다.

첫째로, 국제정치무대에서 완전히 없어질번 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명실공히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국가로 우뚝 솟은것,

둘째로, 조선인민이 죽음의 나락을 딛고 올라서서 강성대국건설에로 나가고있는것,

셋째로, 지난 시기 북조선을 죽이겠다고 덤벼든 미국과 서방나라들이 이 나라에 화해의 손을 내민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불패의 선군정치로 더욱 높아가는 공화국의 대외적권위에 맞게 아직 국가관계가 없는 나라들과 외교관계를 맺고 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을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특히 우리 나라의 지리적조건에 맞게 아시아태평양지역 나라들과의 관계를 확대발전시키는데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온 나라가 대국상을 겪고있던 주체83 (1994)년 11월 7일 우리와 오래전에 국가관계가 설정되였으나 지금까지 25년동안 림시중단상태에 놓여있던 오스트랄리아와의 관계를 재개하기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릴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주체86(1997)년 3월 27일 또다시 이 나라와의 관계를 재개하기 위한 사업정형을 료해하시고 오스트랄리아와 외교관계를 정상화하고 경제관계를 활발히 발전시켜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리하여 주체88(1999)년 5월 8일 우리 나라와 오스트랄리아련방정부는 자주성의 호상존중, 내정불간섭, 평화와 호혜의 원칙에서 두 나라사이의 친선협조관계를 다시 재개할데 대한 합의를 이룩하였다.

오스트랄리아뿐아니라 필리핀과 쿠웨이트 등 여러 나라들과 국가관계를 맺기 위한 활동이 활발히 진행되여 주체89(2000)년 7월에는 필리핀과 대사급외교관계를 설정할데 대한 합의문건이 발표되게 되였다. 또한 주체86(1997)년  10월 2일에는 말레이시아와 직항로개설에 대한 합의서가 채택되였고 주체89(2000)년 3월 16일에는 두 나라사이에 무사증제를 실시할데 대한 협정문이 체결되게 되였다.

이 모든것은 우리 공화국의 대외적권위를 더욱 높여나갈수 있게 하는 의의있는 계기들로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국제정세의 추이에 맞게 아시아태평양지역 나라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것과 함께 아세안지역연단을 통한 대외활동을 적극 벌리도록 하시였다.

아세안지역연단은 랭전이 종식된 변화된 정세하에서 아세안참가국들과 주변 대국들사이에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방도문제에 대하여 서로 의견교환을 진행할 목적으로 주체83(1994)년 7월에 조직된 비상설적인 정부적협의연단으로서 이 지역의 자주적발전과 평화와 안전보장에서 긍정적작용을 하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이 연단이 발족한 첫시기에 벌써 앞으로 우리 나라가 이 연단에 참가하여 활동하기 위한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나갈데 대하여 밝혀주시면서 그 실현을 위한 적극적인 대외활동을 벌리도록 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우리 나라 대표단이 주요아세안나라들을 방문하여 우리 나라 정세를 통보해주면서 자주적이고 평화로우며 번영하는 새 아시아를 건설하는데서 아시아나라들사이의 단결과 협조를 강화해나갈데 대한 공화국의 립장을 알려주도록 하시였다. 그후에도 이 지역 나라들에 우리 대표단을 파견하시여 아세안지역연단회의에서 우리 나라 문제가 토의될 때 성원국들이 공정한 립장을 취하도록 하시였으며 서방의 압력과 간섭에 이 나라들이 자주적으로 맞서나가고있는데 대하여 지지해주고 우리 나라가 자주적인 정책을 실시하여 이룩한 성과와 경험들을 나누도록 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공화국이 아세안지역연단에 가입할수 있는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게 되였으며 주체89(2000)년 7월 타이에서 진행된 아세안지역연단 제7차회의에서 공화국의 이 연단가입이 최종결정되였다.

특히 아세안성원국 10개 나라를 포함하여 중국, 로씨야, 미국, 일본 등 모두 20여개 나라와 유럽동맹이 참가한 이 회의에 공화국대표단이 참가하여 세계적인 파문을 일으켰다.

이에 대하여 일본의 《마이니찌신붕》은 《중요의제도 무색해진다? 북조선의 다각외교 주목을 독차지》라는 표제아래 《아세안지역연단에 처음으로 참가하는 북조선대표단은 활발한 다각외교를 전개하고있다. 지역분쟁 등 아세안외무상회의 중요의제가 무색해질 정도로 아세안에 있어서는 북조선에 <행랑방을 빌려주고 몸까지 빼앗긴>듯 한 느낌이다.》라고 평했으며 로씨야의 이따르-따쓰통신은 《… 북조선대표단에 대한 관심은 이 나라가 아세안지역연단회의에 처음으로 참가하기때문만이 아니다. 우선 조선반도가 의연 행성에서 <열점>의 하나로 되여있고 지역과 세계의 안정 및 안전문제의 토의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참여없이는 완전하고 효과적인것으로 될수 없기때문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교는 타이에서 그야말로 자기의 위력과 두각을 나타내고있다.》라고 보도하였다. 홍콩의 《극동경제주보》는 《아세안을 구원해준 북조선》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아세안을 무의미한 기구로 락인될번 한 처지에서 구원해준것은 아세안지역연단회의에 북조선이 처음으로 참가한 사실이였다. 이 사실로 하여 올해의 아세안각료급회의는 세계적인 관심을 끌게 되였으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티나사이의 평화협정을 타결하느라고 분망하게 뛰여다니던 미국무장관까지 회의장에 나타나게 되였다.》라고 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유럽을 비롯한 서방나라들과의 관계를 발전시켜 우리 혁명과 조국통일위업수행의 유리한 국제적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대외활동을 적극적으로 벌려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주체83(1994)년 11월 7일 유럽나라들과의 사업정형을 료해하신 장군님께서는 이날 이 지역 나라들의 동향을 하나하나 분석해주시고 이 나라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것이 우리 혁명발전에 미치는 의의와 중요성에 대하여 깨우쳐주시면서 우리는 서유럽나라들과의 관계를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당시 미국의 믿음직한 동맹국으로서 사회주의를 반대하고 공화국을 고립압살하는데 앞장섰던 서유럽나라들에서는 동서랭전구도가 무너진 후 점차 미국의 지배권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길로 나가려는 경향을 보여주어 세계의 이목을 끌고있었다.

특히 서유럽나라들은 남들 같으면 열백번도 더 쓰러졌을 그 어려운 속에서도 자기의 령도자의 두리에 일심단결하여 선군정치로 미국의 대조선고립압살정책에 당당히 맞서나가는 공화국의 모습을 보면서 조선식사회주의의 공고성과 불패성, 선군정치의 위대성에 대하여 더 잘 알게 되였다. 공화국과 만나는것 자체를 꺼려하던 이 나라들은 공화국과의 관계개선에 적극 나서면서 지난날 적용해오던 제재조치들을 완화하는 등 이전시기와 다른 동향을 보이였으며 공화국이 련이어 자연재해를 입은것과 관련하여 주동적인 정부적협조를 제공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변화된 환경에 맞게 이 나라들과의 사업을 적극화하도록 하시면서 여러차례에 걸쳐 그 구체적인 방도들을 환히 밝혀주시였다.

그리하여 이딸리아와 영국과의 사업이 강화되였으며 주체89(2000)년 1월 4일 이딸리아와의 외교관계가 수립되고 7월에는 로마에 공화국대사관이 개설되여 대서방외교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되게 되였다.

이에 대하여 각국의 출판물들은 한결같이 《북조선지도부의 대서방정책의 승리》, 《북조선대외정책의 승리》라고 대서특필하였다.

뒤이어 도이췰란드, 영국, 네데를란드를 비롯한 유럽동맹나라들이 대조선정책을 수정하여 공화국과 외교관계를 맺을 립장을 표명하자 서유럽의 많은 정치가들과 외교관들은 《북조선의 고립은 과거의 일로 되였다.》, 《조선반도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의 평가를 기준으로 삼던 때는 지나갔다.》, 《북조선과의 선린우호관계를 발전시켜나가는것은 시대적요구이다.》라고 하면서 대조선정책을 수정하는 길에 들어섰다.

이러한 정세흐름을 타고 그해 12월 12일에는 서유럽에서 미국의 제일가는 동맹국이라고 하는 영국과의 외교관계가 수립되였다. 공화국과 국가관계를 수립하는 나라들이 날로 늘어나고있는데 대하여 서방의 언론들은 《북조선고립에 동조했던 잘못된 과거에 대한 반성》, 《국제정치에서 차지하는 북조선의 지위에 대한 머리숙임》이라고 하면서 미국의 국제적인 《대조선포위환》과 《봉쇄》에 구멍이 뚫리고 공화국의 대외적권위가 높아지고있음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2000년 12월 21일 로씨야신문 《쁘라우다》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딸리아, 오스트랄리아, 필리핀과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카나다, 프랑스, 도이췰란드를 비롯한 서방나라들사이의 국가관계수립을 위한 적극적인 활동의 징조들이 눈에 띄게 나타나고있다. 이것은 미국이 그렇게 많은 공수를 들인 북조선에 대한 봉쇄가 허물어지고있다는것을 의미한다.》라고 했으며 공화국을 헐뜯는데 앞장섰던 유럽의 한 신문은 《북조선은 능숙한 외교와 군력으로 서방이 조선반도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만들고 그 대가로 막대한 경제적리득을 따내고있다.》라고 보도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펼치시는 필승불패의 선군정치가 있어 공화국은 준엄한 시련의 시기에도 미국의 《대조선포위환》을 부셔버리며 세계 수많은 나라들과 국가관계를 맺을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