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 (1)중에서

  

만주대륙의 명승지 경박호의 남쪽호반에는 남호두로 불리우는 자그마한 마을이 있다. 이 마을 근방에는 경박호로 흘러드는 소자지하라는 물줄기가 있는데 그 상류쪽 깊은 계곡의 어느 한 산탁에 낡은 귀틀집 두채가 있었다. 그중의 한채를 우리 력사가들은 《소자지하의 귀틀집》이라고 부른다. 조선혁명의 분수령이 마련된 력사의 집이다.

선군의 기치밑에 닻을 올린 조선혁명은 193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자기 발전의 새로운 단계를 맞이하게 되였다. 항일대전의 포성이 울린 때로부터 어언 4년, 일제격멸의 치렬한 투쟁속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을 주도적력량으로 하는 혁명의 주체적력량은 군사정치적으로 크게 장성하였다. 혁명대렬의 통일단결이 강화되였으며 무장투쟁의 대중적지반도 튼튼히 꾸려졌다. 특히 민족배타주의와 종파사대주의를 반대하는 투쟁속에서 조선혁명의 자주성이 확고히 고수되였다.

급변하는 국내외의 정세 또한 반일민족해방투쟁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고있음을 예고하고있었다.

유럽대륙에서는 파시즘의 위험성이 날로 증대되는 가운데 많은 나라들에서 음산하고 불안스러운 정치적변동이 일어나고있었으며 파쑈들의 무력간섭으로 하여 에스빠냐내전이 국제적인 성격을 띤 열전으로 번져지고있었다. 인류의 머리우에는 새 전쟁의 먹구름이 몰려오고있었다.

동방에서는 일본렬도가 새 전쟁의 온상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력사에 《2. 26사건》으로 기록된 청년장교들의 무장반란은 일본의 파쑈화, 군부독재에 의한 군국주의체계확립이 얼마나 엄중한 단계에 이르렀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일본군부계층들간의 알륵의 산물로 평가되고있는 이 무장반란은 진압되였지만 이를 계기로 일본의 군국화는 시시각각으로 촉진되였고 일본 소장파군부집단의 해외침략론은 현실화되기 시작하였다. 실지로 일본은 그때로부터 1년반도 못되여 중일전쟁을 도발하고 보다 큰 침략의 길로 줄달음쳤다.

일본의 파쑈화는 식민지조선을 더욱더 질식시켰다. 조선반도에서는 모든 민족적인것을 말살하고 모든 형태의 반일운동과 반일적요소들에 대한 광란적인 탄압소동이 벌어졌다. 조선말을 하고 흰옷을 입는것, 《히노마루》게양과 신사참배를 하지 않는것, 《황국신민의 서사》를 외우지 않는것, 지어 게다를 신지 않는것까지도 반일, 반역, 반국가행위로 범죄시되고 가혹한 탄압의 대상이 되였다.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파쑈통치는 우리 민족의 반일감정과 반일기운을 더욱 격화시켰다.

이 모든것은 반일민족해방투쟁을 일대 앙양에로 이끌어나갈수 있는 주객관적조건이 성숙되였음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파란과 역경을 헤쳐온 항일혁명앞에는 분명 전환의 시기가 도래하고있었다.

전환기 조선혁명을 어떻게 이끌어나갈것인가, 조국과 민족이 제기하고있는 당면한 력사적과제를 해결하기 위하여서는 어떠한 대책들을 취해야 하겠는가, 초미의 문제로 나선것은 옳바른 전략적로선을 제시하는것이였다.

이러한 때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2차북만원정을 마치시고 녕안현 남호두로 향하시였다. 천재적예지와 비범한 안목으로 조성된 정세와 혁명발전의 요구를 깊이 통찰하신 그이께서는 그곳에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를 여시고 반일민족해방투쟁을 일대 앙양에로 이끌어올리기 위한 새로운 전략적로선을 제시하실 결심이시였다. 남호두를 회의장소로 택하신것은 요영구회의의 결정에 따라 국제당에 제소할 문제들을 가지고 국제당 제7차대회가 진행되는 모스크바로 떠나간 일행을 그곳에서 만나기로 되여있었기때문이였다.

남호두에로의 행군은 참으로 간고하였다. 행군전기간 검질기게 달라붙는 적들과의 가렬한 전투가 계속된데다가 혹심한 추위는 좀처럼 수그러들줄 몰랐다. 절기를 따지면 봄이 시작된셈이였지만 사나운 대륙풍은 행군대오의 앞길을 모질게도 가로막았다. 그 서슬에 밀림속 여기저기서 참나무, 박달나무들이 얼어터지였다.

이 간고한 행군길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반일민족해방투쟁을 일대 앙양에로 이끌어올리기 위한 새로운 전략적구상을 하나하나 무르익혀가시였다. 어쩌다 있게 되는 우등불가의 휴식참에도 그이께서는 정력적인 사색과 탐구를 중단하지 않으시였다.

이때 그이께서 사색과 탐구의 중심에 놓으신 문제는 백두산을 타고앉아 무장투쟁을 국내깊이에로 확대하며 우리 민족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고 민족자체의 힘으로 조국을 해방하기 위한 전민항쟁준비를 다그치는것이였다.

도탄에 빠진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구원하실 불타는 일념을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행군대오가 예정된 장소에 도착한 후에도 앞으로 천명하실 방침들을 확정하기 위한 불면불휴의 사색과 탐구를 끊임없이 이어가시였다. 그러던중 그이께서는 국제당 제7차대회에 참가했던 위증민(당시 만주성당 파견원)으로부터 국제당에 제소되였던 문제들에 대한 국제당의 립장을 전해듣게 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국제당에 제소하시였던 기본문제는 현상적으로는 《민생단》문제였으나 내용적으로는 조선혁명의 주체성에 대한 문제라고 할수 있었다. 다시말하여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조선혁명의 구호를 들고 싸우는것이 정당한가 정당하지 않은가, 합법적인가 비합법적인가, 국제당의 1국1당제원칙에 모순되는가 모순되지 않는가 하는것이였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것이였지만 당시에는 국제당이 엄연히 존재하고 1국1당제원칙이 불가역적인것으로 되고있던 조건에서 이 문제는 매우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였다. 더우기 국제당이 어떤 태도로 나오겠는가 하는것은 누구도 짐작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문제들을 제기하실 때 벌써 조선혁명을 직접 책임지고 수행하려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의 립장을 국제당이 반드시 지지할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계시였다. 그이의 이러한 확신은 국제당에 제소된 문제들이 어느모로 보나 혁명적원칙과 혁명의 리익에 부합된다는 변함없는 믿음과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여 새로운 로선을 추구하고있던 국제당의 실태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에 기초한것이였다.

과연 결과는 그이께서 확신하신 그대로였다. 국제당이 조선혁명가들이 제기한 모든 문제들이 정당하다는 결론을 짓고 그를 지지하여 중대한 지시까지 내리였던것이다. 가장 중요한것은 조선혁명에 대한 조선공산주의자들의 권리와 책임을 국제당이 전적으로 인정한것이였다.

이러한 사실을 전달받으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총대로 개척하고 전진시켜오신 주체혁명위업과 자주적인 로선의 정당성에 대한 확신을 더욱 굳게 가지게 되시였다.

드디여 《소자지하의 귀틀집》에서는 주체25(1936)년 2월 27일부터 3월 3일까지 력사적인 남호두회의가 열리였다.

회의에는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들과 함께 위증민을 비롯한 중국인 군정간부들도 참가하였다. 위증민은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조선혁명을 직접 책임지고 수행하는것은 누구에게도 양보할수 없는 신성한 권리라는것과 반《민생단》투쟁에서의 좌경적오유와 관련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취하신 원칙적립장이 정당하다는것을 국제당이 인정하고 전적으로 지지찬동하였다는데 대하여 정식 통보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회의에서 《반일민족해방투쟁의 강화발전을 위한 공산주의자들의 임무》라는 력사적인 보고를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보고에서 먼저 1930년대 전반기 두만강연안에서 전개해온 군사정치활동경험을 총화하시고 반일민족해방투쟁을 더욱 강화발전시키기 위한 전략적과업과 그 수행을 위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무엇보다도 현단계에서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투쟁을 일대 앙양에로 이끌어올리기 위하여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국경지대와 백두산지구에로 진출시키며 투쟁무대를 점차 국내에로 확대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이것은 당시 조성된 정세와 혁명발전의 요구를 정확히 반영한 과학적인 방침이였다.

극악한 식민지파쑈통치밑에서 신음하는 민족에게 희망과 신심을 안겨주기 위해서도 그렇고 국내에서의 반일투쟁에 대한 지도를 더 능동적으로 하자고 해도 결정적으로 무장투쟁의 무대를 국경지대와 국내에로 옮겨야 하였다. 그렇지 않고 몇마디의 말과 호소로써는 아무것도 해결할수 없었다. 총대, 오직 총대만이 모든 문제를 성과적으로 해결할수 있는 최상의 무기였고 방책이였다.

항일무장대오를 백두산과 국내에로! 이것은 견결한 자주정신과 총대중시, 군사중시사상의 체현자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만이 내놓으실수 있는 현명한 방침이였다.

이 방침관철을 위하여 그이께서는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있는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국경일대에 새로운 유격근거지를 창설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백두산대산림지대에 조선인민혁명군이 의거하여 활동할수 있는 밀영망을 형성하고 그 주변지역 인민들을 조직화하여 반유격구형태의 유격근거지를 꾸릴데 대하여 밝히시였다. 또한 그이께서는 무장투쟁을 적극적으로 조직전개하여야 하며 이를 위하여 나서는 당면한 문제는 항일무장대오를 확대강화하는것이라고 하시면서 특히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튼튼히 꾸리는것이 선차적인 과업으로 나선다는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그리고 조선인민혁명군부대가 국경지대에로 진출한다고 하여 중국인민의 항일무장부대들과의 공동투쟁을 약화시켜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항일련합군의 이름으로 중국공산주의자들과 항일무장투쟁을 공동으로 전개함으로써 조중인민의 반일혁명투쟁을 적극 발전시켜나갈데 대하여서도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보고에서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을 새로운 단계에로 확대발전시킬데 대한 방침도 제시하시였다.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을 더욱 확대발전시키는것은 각계층 애국력량을 반일의 기치밑에 광범히 결속하여 민족자체의 힘으로 나라의 해방과 독립을 이룩할수 있게 하는 중요한 방도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을 새로운 단계에로 발전시키는것이 조성된 정세의 요구로 보나 각국 공산당들이 반파쑈인민전선을 결성할데 대한 국제공산당 제7차대회의 호소에 비추어보나 미룰수 없는 절박한 과업으로 나서고있다는데 대하여 강조하시면서 상설적인 통일전선조직체를 내올데 대한 문제,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을 항일무장투쟁과의 긴밀한 련계속에서 조직전개하며 공청을 발전적으로 해산하고 광범한 애국청년들을 망라시킬수 있는 조선반일청년동맹을 조직하는 문제 등 그 구체적방도들에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창건준비사업을 전국적범위에서 강력히 전개할데 대한 방침을 밝히시였다.

그이께서는 당조직을 부단히 확대하고 당조직들에 대한 지도체계를 철저히 세워야 한다고 하시면서 당창건의 조직적골간을 튼튼히 꾸릴데 대하여, 혁명대오의 사상적순결성을 철저히 보장하며 당창건의 대중적지반을 축성하기 위한 투쟁을 더욱 강력히 전개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보고를 마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자기 인민의 힘을 믿고 그들에게 튼튼히 의거하여 전체 조선인민을 반일조국광복전선에 한결같이 조직동원한다면 능히 일제를 격멸하고 조국해방의 최후승리를 달성할수 있을것이라는 확신을 표명하시였다.

그이께서 보고에서 제시하신 전략적방침들에는 주체이자 애국이라는 그이의 철저한 자주적립장과 애국애족의 정신이 력력히 맥박치고있었다.

회의참가자들은 확고한 주체적립장과 조국과 민족에 대한 무한한 헌신성, 뛰여난 통찰력과 강철의 의지로 항일대전을 새로운 앙양에로 이끌어가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을 우러르며 끝없는 격정과 환희에 휩싸였다. 그들은 보고에 이어 진행된 토론에 앞을 다투어 참가하여 그이께서 내놓으신 전략적방침들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와 찬동을 표시하였다.

이처럼 혁명승리에 대한 필승의 신념과 락관이 차넘치는속에 근 한주일동안 진행된 남호두회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전략적방침을 만장일치로 채택하고 성과적으로 결속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그때를 회고하시면서 남호두회의의 력사적의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남호두회의를 분기점으로 하여 조선혁명은 새로운 앙양기를 맞게 되였다. 그런 의미에서 남호두회의는 1930년대 전반기와 1930년대 후반기를 구획짓는 조선혁명의 분수령이라고 할수 있다. 남호두회의에서 채택된 결정으로 하여 조선공산주의자들은 항일무장투쟁을 중심으로 하는 전반적조선혁명을 더욱 높은 단계에로 발전시킬수 있는 새로운 리정표를 가지게 되였다.》

남호두회의에서 채택된 결정으로 하여 조선혁명가들은 선군의 기치밑에 항일대전을 일대 앙양에로 이끌어나갈수 있는 새로운 리정표를 가지게 되였다. 이 회의에서 채택된 일련의 결정들은 그이후 여러 단계의 혁명에서 조선의 혁명가들이 주체적립장을 튼튼히 견지하고 어떤 역경속에서나 그것을 민족의 첫째가는 생명으로 변함없이 틀어쥐고나갈수 있게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를 결속하신 후 남호두회의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강습과 당정치일군회의를 조직하시고 남호두회의의 기본정신을 반영한 구호 《조국에 무보를 뻗치고 군호를 올리자!》를 제시하시였다.

선군의 기치밑에 닻을 올린 항일대전은 바야흐로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