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중에서

  

김정숙녀사께서는 주체23(1934)년 10월 삼도만 능지영에 있는 연길현 공청위원회로 소환되시였다. 녀사께서는 현공청위원회에서 주로 내부사업과 함께 적구공청조직들의 사업을 맡아보시였다.

당시 동만의 유격구역들에서는 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이 일으킨 극좌적인 반《민생단》투쟁바람이 살벌하게 몰아치고있었다.

원래 유격구역에 들어와 혁명사업에 참가한 사람들은 누구라없이 적들이 아무리 발악적으로 《토벌》을 들이대고 경제봉쇄정책을 써도 곤난에 굴할줄 모르는 사람들이였으며 혁명의 창창한 미래를 내다보며 랑만에 넘쳐 사는 참된 혁명전사들이였다. 그런데 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북만원정을 떠나신 기회를 리용하여 조선의 참다운 혁명가들과 근거지인민들을 《민생단》으로 몰아 박해하고 지어는 무참히 살해하는 참극을 벌려놓았다. 사람들은 너무도 공기가 험악한 판이여서 억울한 루명을 쓰는 동지들에 대하여 속으로만 가슴을 칠뿐 눈짓 한번, 말 한마디 마음놓고 하지 못하고있었다.

더우기 엄중한것은 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이 민족해방을 이룩하려는 조선혁명가들의 요구를 《민생단》의 《민족자치》의 구호와 같은것이라고 하면서 나라의 독립을 위한 조선혁명가들의 투쟁을 《민생단》의 활동으로 규정한것이였다. 그리하여 수많은 조선의 견실한 혁명가들을 《민생단》으로 몰아 마구 처단하였다.

이것은 조선혁명가들의 주체적립장을 거세하며 조선혁명의 주체적력량을 허물려는 일제의 간계에 따른 매우 위험한 행위였다.

그러므로 당시 종파사대주의자들의 반《민생단》투쟁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하는것은 조선혁명의 운명과 관련되는 매우 심각한 문제로 되였다. 조선혁명을 위기에서 구원하느냐 마느냐 하는 사활적인 문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견실한 조선혁명가들을 덮어놓고 《민생단》으로 몰아 가차없이 처형하는 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의 엄중한 해독행위를 반대하여 원칙적이고도 희생적인 투쟁을 벌리시였다.

이미 지난해 봄에 녀사께서는 그릇되게 진행되는 반《민생단》투쟁에 맞서싸운 경험을 가지고계시였다. 주체22(1933)년 봄 어느날 부암지구에서는 《민생단》을 《심판》하는 군중모임이 있었는데 《민생단》으로 처형당하게 된 사람은 녀성공청원 최희숙이였다. 혐의자료는 그가 근거지생활이 곤난하다고 《불평》을 하였다는것이였다.

군중들은 최희숙에게 억울한 루명을 씌우려는 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의 행동을 보면서 반발심으로 술렁거리였으나 그 누구도 녀공청원이 《민생단》이 아니라고 보증해나서지는 못하였다. 그것은 그가 결코 《민생단》일수 없다는것을 잘 알고있었으나 《민생단》련루자로 몰릴가봐 감히 입을 열지 못하였던것이다.

그때 김정숙녀사께서 결연히 연단에 나가 그를 옹호해나서시였다.

녀사께서는 먼저 혁명에 충실하였던 그의 투쟁경력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신 다음 최희숙동무가 혁명에 끝없이 충실한 동무라고 생각한다, 말 한마디를 가지고 어떻게 혁명동지를 《민생단》이라고 단언할수 있겠는가, 만일 우리가 혁명에 충실한 동무들을 《민생단》으로 몰아죽인다면 좋아할것은 적들밖에 없을것이라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그러자 군중들이 일제히 호응해나섰다. 심판석에 앉았던 배타주의자들도 더는 어쩌지 못하고 최희숙을 무죄로 선언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후 최희숙은 조선인민혁명군 대오에서 잘 싸웠으며 적들에게 체포되여 두눈을 잃고서도 《나에게는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고 소리높이 웨쳐 조선혁명가들의 불굴의 의지와 혁명절개를 온 세상에 과시하였다.

비록 평범한 녀성공청일군이였으나 한몸을 결연히 내대시여 벌리신 김정숙녀사의 투쟁은 군중으로 하여금 동요를 버리고 반《민생단》투쟁에 대한 옳은 안목을 가질수 있게 하는데서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1년이 지난 이때에 와서는 사태가 더 험악해졌다. 그 어떤 론리정연한 변호도 유력한 증거도 소용없었다. 《민생단》혐의자들을 조금이라도 옹호하거나 도와주면 즉시 《민생단》으로 처형당해야 하는 실정이였다.

그러나 김정숙녀사께서는 참다운 혁명가들을 《민생단》으로 몰아 살해하며 혁명대렬안에 불신과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하고있는것을 보고 침묵을 지키고계실수 없었다.

어느날 김정숙녀사께서는 현공청에서 적구사업을 맡아보고있는 한 녀공청원을 만나신 자리에서 요즘 유격구에서 《민생단》혐의자라고 하여 군중심판대에 오른 사람들을 보면 거의다 적들과 용감히 싸우던 사람들인데 그들이 정말 《민생단》이라고 생각되는가고 물으시였다.

《민생단》혐의자를 동정만 하여도 《민생단》으로 몰리는 살벌한 환경에서 이렇게 《민생단》혐의자를 취급하는 《군중심판》에 대하여 내놓고 말씀하시니 녀공청원은 겁이 더럭 나서 아무 대답도 못하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분명 여기에는 그 어떤 음흉한 작간이 있는것 같다고 하시면서 반《민생단》투쟁에 대하여 우리 공청원들이 경각성을 높이자고 말씀하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공청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시였을 때뿐아니라 공청회의를 하거나 집체적으로 모이는 기회에도 반《민생단》투쟁과 관련하여 원칙적인 립장과 태도를 가질데 대하여 강조하군 하시였다.

그때 삼도만 동거우에는 30명정도의 반일자위대원들이 있었는데 그 대부분이 공청원들이였다.

그들은 배타주의자들로부터 《민생단》련루자라는 감투를 쓰고있어 항상 위축된채 우울하게 생활하였다.

그들을 찾아가신 김정숙녀사께서는 혁명의 길은 간고하고 우여곡절도 많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싸우다가 적들에게 체포될수도 있고 나쁜놈들에 의해 《민생단》으로 몰릴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두려워 혁명의 길에서 물러설 우리가 아닙니다, 김일성장군님을 따라 혁명의 길에 나선 우리 조선의 혁명가들은 죽을지언정 혁명적원칙과 혁명적지조를 끝까지 지켜나갈것입니다라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참으로 신념을 주고 힘을 주는 말씀이였다.

공청원들은 김정숙녀사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기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 하는것을 깊이 자각하게 되였다.

녀사의 말씀이 끝나자 한 공청원이 김정숙녀사께 이런 말씀을 드리였다.

《김정숙동지! 고맙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공청조직의 그 믿음을 잊지 않고 죽는 순간까지 김일성장군님께 충실하겠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혁명적원칙과 지조만은 굽히지 않겠습니다.》

그후 동거우반일자위대원들은 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이 아무리 《민생단》으로 몰려고 해도 놈들의 강박에 절대로 굽혀들지 않고 잘 싸웠다.

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은 김정숙녀사께서 동거우반일자위대원들을 찾아가신것을 편협한 민족주의의 표현으로 몰아대면서 그들을 더는 찾아가지 말라고 강박해나섰다.

김정숙녀사께서는 단호한 어조로 공청일군인 내가 왜 그 청년들을 멀리하겠는가, 같은 조선사람이라고 해서 그들을 가까이 하는것을 《편협한 민족주의자》라고 한다면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야말로 편견에 사로잡힌 편협한자들이다, 내가 그 동무들을 믿는것은 그들이 단순히 조선사람이래서가 아니다, 그들을 보라, 그들은 오직 혁명을 하겠다는 불타는 열정을 가지고 혁명의 길에 나서서 누구보다 충실하게, 용감하게 싸우는 청년들이다, 그들을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겠는가고 날카롭게 면박을 주시였다.

그후 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은 더욱 신경을 도사리며 사소한 트집이라도 잡아보려고 감시의 눈총을 돌렸다. 그러나 모든 일거일동에 빈틈이 없고 대중의 두터운 사랑과 신망을 받으시는 김정숙녀사에게만은 함부로 《민생단》혐의를 씌우지 못하였다.

당시 삼도만유격구역 능지영에는 《민생단》혐의자들을 감금한 《감방》이 있었다.

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은 《민생단》련루자들은 굶어죽어도 아까울것이 없다고 하면서 그들에게 음식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자신께서 드셔야 할 밥도 그들에게 몰래 주시고 통신처에서 일하는 녀성공청원을 일깨워주어 그와 함께 먹을것과 필요한 약품을 구해서 《감방》에 들여보내시였다. 녀사의 희생적인 노력으로 하여 《감방》안의 동지들은 굶어죽거나 앓아죽는 위험으로부터 구원될수 있었다. 그들은 발각되면 영낙없이 《민생단》으로 처형당할 이 위험한 일을 하는것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였다.

어느날 김정숙녀사께서 몇명의 녀동무들과 함께 식사준비를 하시는데 갑자기 적들이 달려들었다.

총탄이 우박치듯 하는 속에서 펄펄 끓는 죽가마를 머리에 이고 산에 오르신 김정숙녀사께서는 전투가 끝나자 유격대원들에게로 다가가 한사발씩의 죽그릇을 안겨주시였다.

그런데 《감방》문을 마스고 산에 올라와 유격대원들과 함께 전투를 치른 《민생단》혐의자들은 죽 한그릇때문에 동무들마저 《민생단》에 걸려들게 하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자리를 피하려 하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동무들은 절대로 《민생단》일수 없다고 하시면서 그들한테 죽그릇을 안겨주시고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동무들이 신념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이 사실을 아시면 몹시 가슴아파하실것입니다. 이제 장군님께서 이 엄중한 사태를 바로잡으실것입니다. 그러니 신념을 잃지 말고 끝까지 혁명할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그들은 매일같이 위험을 무릅쓰고 고무의 손길을 보내준분이 바로 김정숙녀사이시였음을 알게 되였다.

뜨거운 눈물을 삼키며 죽그릇을 받아들던 그들은 소스라쳐 놀랐다.

끓는 죽가마를 이고 오시느라 김정숙녀사의 머리는 절반이나 그을려있었던것이다.

김정숙녀사께서는 머리가 좀 덴걸 가지고 뭘 그러느냐고 하시면서 죽을 어서 들라고 거듭 권하시였다.

그들은 김정숙녀사의 이 뜨거운 말씀에 눈물을 흘리면서 억천만번 죽더라도 조선혁명을 위해 한몸바쳐 싸울것을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후일 김정숙녀사의 소행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회고하시였다.

《나는 림춘추, 김정필, 박수환을 비롯한 연길출신의 대원들에게서 반<민생단>태풍이 온 동만을 휩쓸던 시기 능지영에서 옥고를 치르고있던 <민생단>혐의자들에게 매일같이 먹을것을 가만가만 날라다준 어린 처녀가 있었는데 바로 그 처녀의 덕에 억울하게 갇혔던 수난자들이 굶어죽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여러번 들었다. 그 어린 처녀가 김정숙이였다는것이다.》

김정숙녀사께서 반《민생단》광풍을 맞받아 원칙적인 투쟁을 벌리실 때 녀사께서 유격대 지휘성원이거나 현당의 책임적인 지위에 계신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김정숙녀사께서는 진실한 조선의 혁명가들을 덮어놓고 《민생단》으로 몰아 가차없이 처단하는 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의 책동이 위대한 수령님의 뜻과 어긋나는것이라는것을 예리한 안목으로 꿰뚫어보시고 원칙적이고도 희생적인 투쟁을 벌리시였던것이다.

반《민생단》광풍을 맞받아나가시며 김정숙녀사께서 보여주신 숭고한 사상정신적풍모는 견결한 혁명적원칙성이였다.

혁명적원칙성은 혁명투쟁의 본성적요구이며 혁명가가 지녀야 할 필수적품성이다.

죽을지언정 혁명적원칙을 양보하지도 저버리지도 말아야 한다는것은 김정숙녀사께서 지니신 삶과 투쟁의 드팀없는 신조였다.

사실 근거지의 책임적인 직책에 앉아있던 배타주의자들, 종파사대주의자들과 맞서 투쟁한다는것은 누구나 다 할수 있는 일이 아니였다.

혁명의 리익을 위해서는 물과 불속에라도 서슴없이 뛰여들 각오를 안고사신 김정숙녀사께서만이 벌리실수 있는 대용단이였고 결사적인 투쟁이였다.

반《민생단》광풍을 맞받아나가시며 김정숙녀사께서 보여주신 숭고한 사상정신적풍모는 또한 불보다도 뜨거운 혁명적동지애였다.

김정숙녀사께서 지니신 혁명적동지애는 동지들에 대한 뜨거운 믿음과 동지들을 위한 자기희생성으로 일관되여있었다.

혁명동지들에 대한 김정숙녀사의 믿음은 어떤 불리한 정황속에서도 외면과 배반을 모르는 가장 진실하고 변함없는 믿음이였다.

오해와 억울한 루명을 쓰고 생사기로에 서있는 동지들을 보증하고 도와나선 김정숙녀사의 숭고한 동지적사랑과 믿음은 그후 혁명적의리와 신념을 지켜 한목숨 서슴없이 바친 수많은 투사들을 배출하게 한 사상정신적힘의 원천으로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