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 (3) 중에서

 

6.15공동선언의 혜택이 겨레의 피부에 와닿았다. 통일애국투사들, 비전향장기수들이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얼마나 바라고 기다렸던가. 준엄한 통일전구에 남편을 떠나보낸 안해들이, 아버지를 보낸 아들, 딸들이, 아들을 보낸 어머니들이 기다린 해와 달은 그 얼마였더냐.

날이 갈수록 분렬과 대결의 심연이 깊어만가는 속에서 비전향장기수들자신들은 살아서 다시 돌아가리라고 생각하지 못하였다. 아예 생각할수 없었다. 그러한 그들이 기다리는 혈육들의 곁으로, 조국의 품으로 정녕 돌아왔으니 그것은 전설이 아닌 현실이였다.

주체89(2000)년 9월 2일 분렬의 상징 판문점은 당과 군대, 정부의 간부들과 비전향장기수들의 가족들, 환영군중들로 붐비고있었다.

남조선에서 수십년세월 옥고를 당하면서도 전향하지 않은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들, 63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이 판문점의 중앙분리선을 넘어 기어이 사회주의조국의 품, 위대한 장군님의 품으로 돌아왔다.

꽃나이 청춘시절에 조국통일투쟁의 길에 나섰다가 인생의 황금시절을 감옥에 묻으면서도 혁명적지조를 지켜 끝까지 싸워이긴 그들이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로 떠받들려 당당히 돌아오는것이였다.

통일애국투사들의 귀환길은 혁명전사들에 대한 가장 숭고한 혁명적의리를 천품으로 지니고계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그들의 생존여부가 알려지기 시작한 1990년대초부터 통이 큰 작전을 펴시여 열어주신 길이였다. 주체82(1993)년 3월에 비전향장기수 리인모의 귀환을 성사시킴으로써 돌파구가 열려지게 되였다.

조미대결이 치렬하게 벌어지고있던 주체83(1994)년 2월 28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세계에 옥중투쟁을 하여 소문이 난 사람들이 있지만 남조선의 감옥에서 30년 또는 40년을 굴하지 않고 옥중투쟁으로 인생의 전부를 보낸 비전향장기수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30년, 40년 옥중투쟁을 하면서 전향하지 않은 혁명가들에 대한 이야기는 오직 우리 당에 의하여 교양육성된 혁명가들속에서만 나오고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결연하신 어조로 나는 남조선에 있는 비전향장기수들을 어떻게 하나 모두 데려올 결심을 하고있다, 나는 비전향장기수들을 데려오는 문제를 혁명의 길에서 우리 당을 받들어 싸운 동지들에 대한 혁명적의리로 여기며 혁명의 령도자가 전사들에게 베풀어야 할 고귀한 사랑으로 간주하고있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후 전선시찰의 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는 속에서도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들을 순간도 잊지 않으시고 그들의 건강과 귀환을 위해 수십여차의 간곡한 가르치심을 주시고 적극적인 조치도 다 취해주시였다.

주체86(1997)년 5월 남조선에 있는 비전향장기수 김인서가 34년간의 옥중투쟁과정에 얻은 병세의 악화로 고생하고있다는 보고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몹시 가슴아파하시면서 그의 건강회복에 필요한 고급약들을 배려하여주시였으며 그 약들이 어떻게 하나 본인에게 가닿도록 제반 조치들을 다 취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북에 처자가 있건 없건, 고향이 북이건 남이건 관계없이 공화국의 품에 안기기를 희망하는 통일애국투사들은 다 데려오도록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시면서 그들의 귀환투쟁이 세계적범위에서 힘있게 벌어지도록 하시였다.

그에 의하여 공화국의 사회단체들은 통일애국투사들의 조속한 귀환을 요구하여 성명과 담화를 련속 발표하였으며 그 실현을 위한 련대성을 호소하여 국제인권단체들과 기구들, 세계각국의 인권기구들과 정당, 단체들에 편지들을 보내였다.

한편 남조선과 해외동포들속에서도 편지보내기, 서명운동, 기자회견, 항의투쟁 등 다양한 형태의 귀환운동이 벌어졌으며 여기에 정의와 진리를 사랑하고 인권을 존중하는 국제사회계와 세계각국의 진보적인 정당, 단체들도 광범히 참가하였다. 그리하여 통일애국투사들의 귀환문제는 세계적으로 20세기 최대의 인권문제, 인도주의문제로 부각되게 되였다.

비전향장기수귀환투쟁을 정력적으로 이끌어오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세기가 교차되는 2000년에 이 문제를 빛나게 해결하시였다. 그해 1월 어느날 장군님께서는 남조선에 있는 비전향장기수모두를 빨리 데려올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리고 주체89(2000)년 6월의 력사적인 평양상봉시 북과 남사이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수없이 많았건만 장군님께서는 통일애국투사들의 귀환문제를 특별히 상정시키고 끝내 합의를 보시여 이 문제를 6.15북남공동선언의 중요한 조항의 하나로 명문화하여 내외에 엄숙히 선포하도록 하시였다.

《3. 북과 남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장기수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문제를 조속히 풀어나가기로 하였다.》

그러나 남측은 6.15공동선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8.15송환약속을 위반하는데로 나갔다. 원래 6.15평양상봉때에는 8.15에 즈음하여 비전향장기수송환과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교환사업을 동시에 하는것으로 합의되였었다. 그런데 그후 남측에서 8.15에 즈음하여 비전향장기수송환은 못하겠다고 하면서 먼저 8월에는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교환만 하고 비전향장기수송환은 9월에 하자고 제기해왔다. 북과 남이 공동선언에 수표한것이 불과 한달도 못되는데 이렇게 약속을 어기는것은 6.15공동선언을 희석시키려는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와 관련하여 장군님께서는 남측에서 자꾸 그렇게 나오면 공동선언을 파기한것으로 간주하겠다고 언명하시였다. 바빠맞은 남측은 9월초의 송환을 무조건 담보한다고 하지 않을수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6.15공동선언의 리행이라는 대국적안목으로부터 9월초의 송환문제를 받아들이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6월 30일 재미녀류기자와 하신 담화에서 이러한 내용을 밝히시면서 우리는 남측에 할수 있는껏 다 양보해보려 한다시며 6.15공동선언리행과 비전향장기수들을 무조건 데려오실 의지를 피력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국해방전쟁승리 47돐을 맞는 주체89(2000)년 7월 27일 일군들에게 남조선에 있는 비전향장기수 60여명을 9월에 데려오게 된다는데 대하여 알려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그들은 수십년동안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신념과 의지를 굽히지 않은것으로 하여 떳떳하게 사회주의조국의 품에 안기게 되였습니다. 비전향장기수들을 다 데려오고 <고난의 행군>, 강행군도 끝내자는것이 나의 결심입니다.》

통일애국투사들을 다 데려다가 그들모두에게 수십년세월 그처럼 바라던 조선로동당원의 정치적생명도 빛내주고 여생도 행복하게 해주며 온 세상이 보란듯이 내세워주시려는 장군님의 확고한 결심이 어린 말씀을 받아안는 일군들의 눈앞에는 한달전의 일이 떠올랐다.

력사적인 평양상봉이 있은 때로부터 10여일남짓이 지난 6월 28일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통일애국투사들은 물론 그들모두를 기다리는 인민들의 가슴마다에 확신을 안겨주시는 다음과 같은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우리는 수령님과 당을 믿고 수십년동안 형언할수 없는 악형과 박해속에서도 혁명적지조를 지켜온 비전향장기수들을 모두 데려와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입니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인간으로서 최악의 고통을 당하면서도 30∼40년동안 지조를 지킨다는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전향하겠다는 말 한마디만 하면 감옥살이고통을 면할수 있었지만 비전향장기수들은 그 어떤 유혹이나 강압에도 굴하지 않았다고 크나큰 믿음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이날 그이께서는 비전향장기수들을 한꺼번에 수십명이나 데려오는것은 지금까지의 력사에 있어본적이 없는 일이며 오직 우리 나라에서만 있을수 있는 일이라고, 비전향장기수들을 데려오면 최상으로 우대해주며 그들을 높이 내세우고 자랑하여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렇듯 숭고한 혁명적동지애가 있어 63명의 통일애국투사들의 집단귀환이라는 세계적인 사변이 이 땅에 펼쳐지게 되였다. 40여년전 미국에서 체포된 이전 쏘련의 한 정보일군을 쏘련령공에서 격추된 미국간첩비행기 비행사와 교환한 사실이 세계의 언론계를 들끓게 한바 있다. 이에 비해볼 때 63명 통일애국투사들이 아무런 부대조건도 없이 집단적으로 귀환한것은 말그대로 력사에 있어본적이 없는 대정치사변이였다.

세계를 경탄시킨 이 기적은 6.15북남공동선언의 위대한 생활력을 보여주는 인류사적쾌거였다. 그것은 혁명전사 한사람한사람을 귀중히 여기고 그들의 운명을 끝까지 책임지고 보살펴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혁명적동지애와 의리의 세계가 펼친 20세기 사랑의 혁명전설이였다.

온 겨레가 환호성을 올리며 통일애국투사들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오로지 당과 수령만을 굳게 믿고 검은 머리 백발이 되도록 혁명적신념을 끝까지 지킨 조국의 미더운 아들들을 맞이한 판문점의 환영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였다.

당과 군대, 국가의 지도간부들이 조국의 품에 안긴 그들을 뜨겁게 맞이하였다. 그 자리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인 인민무력부장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동지들이 당과 혁명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을 지니고 불변의 신념과 불굴의 의지로 통일애국위업에 한생을 다 바쳐 투쟁하다가 오늘 승리자가 되여 돌아온데 대하여 매우 만족해하시면서 동지들을 열렬히 축하하도록 하시였다고 말하였다.

비전향장기수들은 거의 한생을 철창속에 갇혀있으면서도 눈물을 보일줄 몰랐던 통일의 영웅, 강철의 인간들이였다. 사형장으로 나가는 사랑하는 동지들과 영결하면서도 오열과 피눈물을 씹어삼키며 결사의 노래를 불렀던 그들이였다. 그러나 애타게 그리던 경애하는 장군님의 품에 안긴 그들의 얼굴마다에는 기쁨과 감격, 고마움에 젖은 뜨거운것이 흘러내리였다.

통일애국투사들은 어버이수령님의 한평생의 숭고한 통일의지가 어려있는 판문점 친필비앞에서 수령님과 장군님에 대한 흠모의 정을 담아 삼가 인사를 드리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만세!》,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 만세!》를 목청껏 불렀다.

개성에서 평양에 이르는 수백리 연도의 이르는 곳마다에 환영의 꽃바다가 펼쳐졌다. 평양시민모두가 거리에 떨쳐나와 승리자의 월계관을 쓰고 영웅이 되여 돌아오는 그들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그들을 태운 자동차행렬이 환영의 꽃바다, 춤바다를 헤치며 영웅거리와 잇닿은 전승광장에 들어서자 장엄한 대오를 이룬 조선인민군 륙해공군장병들이 뜨겁게 맞이하였다.

통일애국투사들, 그들은 군인들이였다. 군기앞에서 당과 수령을 위하여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 다 바쳐 싸우겠다는 선서를 하고 조국의 통일독립을 위하여 한몸바쳐 싸워온 로병들이였다. 혁명에 대한 배반을 모르고 원쑤들에게는 추호의 용서도 없는 무자비한 총대처럼 혁명의 길에서 다진 맹세를 끝까지 지켜 변심이 없이 싸워왔기에 그들은 수십년간의 감옥살이속에서도 자기의 령도자와 뜻과 숨결을 같이하는 선군혁명동지의 혈연적련계를 이어올수 있었다.

정의의 애국성전에 떨쳐나 영웅적으로 싸우고 돌아온 군인선배들을 맞이한 인민군장병들은 전군 장병들의 심정을 담아 전승광장이 떠나갈듯 환호성을 올리고 그들에게 숭고한 경의를 표시하였다. 인민군장병들의 뜨거운 환영과 마음속 경례에 손을 흔들며 답례를 보내고 또 보내는 통일애국투사들의 가슴속에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선군정치를 지성다해 받들어나갈 굳은 결의가 가득차올랐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통일애국투사들을 영광의 단상에 높이 내세워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조국의 품에 안긴 그들을 위하여 성대한 축하연과 평양시환영군중대회를 마련해주시였으며 그들모두에게 조국통일상과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해주시였다. 그리고 수십년세월 옥중에서 다 해진 홑겹의 수의만을 걸치고 인간이하의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살아온 그들에게 계절에 따르는 고급옷류들과 신발, 모자, 생활필수품에 이르기까지 일식으로 갖추어주시고 병마에 시달려온 그들의 건강을 특별히 념려하시여 그들을 치료할 전문병원도 정해주시고 그들에게 고급약재, 귀중한 보약들을 거듭 보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통일애국투사들이 조국의 아름다운 산천과 약동하는 현실을 마음껏 보고 즐기도록 해주시고 한날한시에 최상의 생활조건이 훌륭하게 갖추어진 궁궐같은 고급살림집들을 배려해주시였으며 그들에게 생일상도 차려주시였다. 통일애국투사들이 생활에서 아무런 불편도 느끼지 않고 세상에서 제일 복된 삶을 누리게 해주시려는 장군님의 사랑의 세계는 실로 끝이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수십년간의 감옥살이끝에 얻은 불치의 병으로 세상을 떠난 비전향장기수의 운명을 두고 몹시 가슴아파하시면서 그의 령전에 자신의 명의로 된 화환을 보내주시였으며 애국렬사릉에 안장하도록 크나큰 은정을 돌려주시여 영생의 언덕에 높이 내세워주시였다. 모진 고문으로 하여 페인이 되였던 육체를 장군님의 품속에서 청춘으로 회복한 《총각할아버지》들에게 사랑의 결혼식상도 차려주도록 하시였다.

남쪽에서 《먹방인생》, 《인간페기품》으로 천대받던 자기들을 행복의 최절정에 내세워주신 그 은정이 너무도 고마와 한 통일애국투사부부는 그이께 갓 태여난 자기들의 애기이름을 지어주실것을 소청드리는 편지를 올렸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몸소 사랑의 친필서한을 보내주시였다.

《온 나라 인민들의 축복속에 태여난 애기이름을 축복이라고 지어줍시다.

                                         김 정 일

    2002. 7. 23.》

이 친필서한은 군인들과 인민들을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혁명령도를 받들어 부강조국건설과 조국통일위업에 더욱 힘있게 떨쳐나서도록 고무추동하였다.

진정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품은 력사의 갈피속에 묻힐번 한 사람들의 운명도 책임지고 구원해주시고 그들의 후대들에게도 어버이의 사랑을 부어주시는 위대한 은덕의 보금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