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중에서

  

주체21(1932)년 여름부터 주체22(1933)년초까지 두만강 연안의 넓은 지역에는 많은 유격구역들이 창설되였다.

연길현에도 왕우구, 해란구, 석인구, 삼도만, 위자구 등지에 유격구역들이 꾸려지게 되였다.

일제침략자들은 인민혁명정부가 세워지고 인민적시책들이 실시되고있는 인민의 새세상인 유격근거지-해방지구를 그 요람기에 없애려고 단말마적인 발악을 하였다. 일제는 유격근거지를 《동양평화의 암》이라고 하면서 1933년초부터 유격구역들에 대한 경제적봉쇄와 함께 전면적인 《초토화작전》을 감행하였다. 조선강점군 《간도파견대》와 위만군, 경찰부대, 무장자위단 등 수만명의 병력과 함께 박격포, 비행대까지 유격근거지들에 대한 《토벌》작전에 동원되였다. 연길현의 유격구역들을 《토벌》하는데만도 수천명의 적들이 동원되였다.

유격구역을 일제의 침공으로부터 보위하는것은 출발의 첫 자욱을 뗀 항일무장투쟁의 확대발전과 전반적조선혁명의 운명과 관련되는 중요한 문제로 나섰다.

일제놈들이 《위공》작전에서 노리고있는것이 방대한 병력을 집중하여 유격구역들을 전면적으로 포위하고 장기적인 《토벌》로 《완전소멸》하는데 있었던것만큼 유격구역들에서 총을 잡고 싸울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원쑤들을 물리치는 전투에 떨쳐나서야 하였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반군사조직들을 확대강화하고 유격구역들을 요새화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유격구역에서는 유격대를 정치군사적으로 장성발전시킬뿐아니라 적위대, 소년선봉대 등 반군사조직들을 확대강화하고 전체 인민들을 무장시켜 유격근거지를 보위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유격대를 군사적으로 강화하고 근거지인민들을 무장시키며 유격구역을 요새화할데 대한 방침은 전인민적규모에서 전개되는 항일혁명전쟁의 성격과 필연적요구를 전면적으로 반영한 독창적인 방침이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유격구역보위방침을 관철하기 위하여 정력적인 활동을 벌리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부암유격구역에 오신 첫날부터 소년선봉대원들을 비롯한 유격구역인민들을 유격구보위를 위한 투쟁에로 적극 불러일으키시는 한편 자신이 유격구역방어전투에 앞장서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주체22(1933)년 2월 초순 부암유격구역 인민들과 소년선봉대원들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여러분들은 적들과 싸워이기지 못하면 내가 죽고 자식들이 죽게 된다는것을 명심하고 우리의 세상인 유격구를 끝까지 사수하기 위하여 죽기를 각오하고 싸움에 나서야 합니다.》

김정숙녀사께서는 반군사조직인 반일자위대의 전투력을 높이는데 깊은 주목을 돌리시고 왕우구유격구역의 반일자위대와 삼도만유격구역의 반일자위대를 찾으시여서 유격대에서 총을 가져다줄것만을 바라고있는 그들에게 유격근거지의 전체 인민들을 무장시킬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방침을 해설해주시면서 무기를 자체의 힘으로 해결해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또한 소년선봉대원들이 적들의 《토벌》로부터 유격구역을 사수하기 위한 싸움에 적극 참가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이 군사훈련과 군사지식습득을 위한 학습을 열심히 하고 싸움준비에 적극 나서도록 이끌어주시였다.

한편 김정숙녀사께서는 부암동골에 주둔하고있는 반일인민유격대와 함께 근거지방어전투에 참가하시였다.

2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김정숙녀사께서는 소년선봉대원들과 함께 산에서 나무를 하시였다. 그런데 갑자기 팔도구방향에서 적들이 달려든다는 련락을 받게 되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곧 소년선봉대원들을 동골 서쪽산에 오르게 하시고 자신께서는 그달음으로 마을에 내려가시여 어린이들과 인민들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오시였다.

그때 소년선봉대원들과 인민들이 오른 곳은 유격대원들이 자리를 차지한 지점에서 얼마간 떨어진 산릉선이였다.

바로 그 릉선 서쪽코숭이의 눈속에 유격대원들이 매복하여 적《토벌대》놈들을 일격에 소멸할 전투태세를 갖추고있었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유격대지휘관들과 토의하고 소년선봉대원들도 싸울 준비를 하게 하시였다.

평시에 천리길도 단숨에 달려갈수 있도록 육체적으로, 군사적으로 튼튼히 준비해온 소년선봉대원들의 기세는 높았다.

이윽고 적들은 예견했던대로 유격대가 차지한 앞계선으로 밀려들기 시작하였다. 총창을 번쩍거리며 밀려오는품이 적게 쳐도 100놈은 실히 됨직하였다.

놈들이 가까이 접근하자 때를 기다린듯 유격대가 차지한 계선에서 야무진 한방의 총소리가 울리였다. 련이어 보총과 렵총쏘는 소리가 터졌다.

유격대원들의 집중사격에 놈들은 련속 너부러졌다. 불의의 타격에 넋을 잃은 적들은 살구멍을 찾지 못해 헤덤비면서 헛총질만 하였다.

그 광경을 내려다보시던 김정숙녀사께서는 소년선봉대원들에게 구호와 노래를 부르자고 하시였다. 그리하여 소년선봉대원들은 녀사의 선창에 따라 산판이 찌렁찌렁 울리게 구호를 부르고 혁명가요도 힘차게 불렀다. 소년선봉대원들이 부르는 구호와 혁명가요에 고무된 유격대원들은 기세를 올려 더욱 통쾌하게 적들을 족쳐댔다.

그런데 한동안 정신을 잃고 헤매던 한무리의 적들이 대렬을 수습하여가지고 유격대의 진지를 에돌아 소년선봉대원들과 인민들이 차지한 릉선기슭으로 달려들었다.

그러자 총 한자루 없는 군중은 당황하여 덤비며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때 김정숙녀사께서는 《동무들! 흩어져서는 안됩니다. 모두다 돌을 굴립시다. 우리의 돌벼락은 놈들의 총탄보다 더 위력합니다.》라고 웨치시며 대오를 수습하시였다.

소년선봉대원들은 김정숙녀사의 가르치심대로 곳곳에 쌓아놓았던 돌무지들을 차지하였다.

녀사께서는 놈들이 경사가 가장 급한 산중턱에 이르자 돌을 굴리라고 신호하시였다. 그 신호에 따라 소년선봉대원들과 인민들은 일시에 산릉선에 쌓아놓았던 돌무지들과 바위돌들을 내리굴리기 시작하였다.

쏟아져내리는 돌사태에 급해맞은 적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가 돌에 맞아 곤두박히기도 하고 돌을 가슴에 안은채 죽어너부러지기도 하였다. 온 골짜기에 적들의 비명소리가 차고넘치였다.

결국 놈들의 측면공격은 김정숙녀사께서 지도하시는 소년선봉대원들의 투쟁으로 하여 좌절되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급히 소년선봉대원들을 데리고 달려 내려가시여 보병총만 하여도 8자루나 걷어가지고 올라오시였다.

녀사께서는 지체없이 총을 잘 쏘는 동무들을 골라 유격대진지로 달려드는 적들을 소멸하기 위한 사격을 하도록 하시였다.

소년선봉대원들과 인민들의 드높은 기세에 더욱 힘을 얻은 유격대원들은 살아남은 적들에게 련속 명중탄을 안기였다.

끝내 적들은 숱한 주검과 부상당한 놈들을 끌고 제 소굴로 돌아가고말았다. 전투는 유격대와 근거지인민들의 빛나는 승리로 끝났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어려운 전투정황속에서도 역경을 순경으로 전환시킬줄 아는 근거지방위의 용감한 기수이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주체22(1933)년 12월 하순에 진행된 유격구역방어전투때에도 기민한 정황판단으로 전투를 승리적으로 결속하는데 크게 기여하시였다.

이날 김정숙녀사께서는 연길현 반일인민유격대의 1중대와 함께 부암유격구역 남쪽봉우리에 기여든 적들을 소멸하는 전투에 참가하시였다.

적들은 불의에 산우에 나타나 기관총을 쏘아대면서 달려들었는데 력량상 대비가 엄청난데다가 지형상으로도 불리한 형편이다보니 유격대는 놈들을 맞받아싸울 처지가 못되였다.

1중대는 이 위급한 사태에서 벗어나려고 재빨리 옆으로 빠지면서 남쪽낭떠러지에 난 홈채기쪽으로 달려갔다.

적들도 좌우릉선을 타고 유격대를 포위할 기세로 밀려내려왔다.

몇분만 더 우물거리면 커다란 손실을 당할수 있는 매우 불리하고 위급한 정황이였다.

모두가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기만 하였다.

바로 이 순간 유격대와 함께 행동하시던 김정숙녀사께서는 예리하게 적정을 살피고 기민하게 주변 지형지물을 바라보시더니 바위에 의지하여 민첩하게 몸을 숨기시며 모두 그렇게 하라고 소리치시였다.

좌우릉선을 타고 내려오던 적들은 유격대가 바위뒤에 몸을 숨기고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고 바닥을 향해 냅다 달려내려갔다.

김정숙녀사의 기발한 착상에 의하여 위기를 면한 중대는 적들이 지나가자 곧 그 릉선을 차지하고 전투의 주도권을 틀어쥐게 되였다.

낭떠러지바닥에서 유격대가 간 곳을 찾지 못하게 되자 적들은 다시금 유격대가 차지한 릉선으로 기여오르려고 하였다.

바로 그때 김정숙녀사께서는 가지고 다니시던 《연길폭탄》에 불을 달아 놈들에게로 힘껏 던지시였다.

굉장한 폭음이 울리며 수많은 적들이 쓰러졌다.

이것을 신호로 유격대원들의 일제사격이 시작되였다.

불리한 처지에 빠진 적들에게 련속 명중탄을 퍼붓는 유격대의 화력앞에서 적들은 무리로 쓰러지고 전투는 유격대의 승리로 결속되였다.

유격대원들은 전투후 저저마다 불리한 전투정황을 한순간에 역전시켜 수많은 적들을 쓸어눕히고 전투승리를 보장할수 있게 하신 김정숙녀사의 기발한 착상과 용감한 전투행동을 두고 근거지의 녀장군감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후에도 근거지방어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소년선봉대원들과 아동단원들을 이끄시고 인민들과 함께 전호도 파고 불비속을 뚫고 탄약과 끓인 물도 나르면서 반일인민유격대를 적극 도우시였으며 총을 잡고 전투에도 참가하시였다.

근거지방어전투의 나날 김정숙녀사께서는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 그리고 커다란 슬픔도 불굴의 의지로 이겨나가시였다.

주체67(1978)년 1월 28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김정숙녀사를 형상한 소설의 한 장면을 깊이있게 분석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어머님에게 있어서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희생된것은 비극의 절정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동생 기송이 희생되였을 때 어머님께서는 악독한 원쑤와 싸우려는 사람이라면 눈물을 고이는대로 쏟을것이 아니라 그 눈물을 가슴에 한동이씩 채우고 싸워야 한다는 내면독백을 하는데 이 말은 무심히 대할수 없는 말입니다. 어머님의 이 말씀에는 준엄한 혁명의 진리가 담겨져있습니다.》

어머님의 가슴이 그 얼마나 원쑤에 대한 증오심으로 세차게 끓어번졌는가를 보여주는 그 심리묘사는 철저히 력사적사실에 기초한것이였다.

주체22(1933)년 12월 김정숙녀사께서는 혁명조직으로부터 적들의 《토벌》에 대처하여 장재촌지역의 군중을 삼도만쪽으로 이동시킬데 대한 임무를 받으시였다.

100여명의 군중을 두 대렬로 갈라서 안전하게 이동시킬것을 결심하신 김정숙녀사께서는 선두대렬을 이끄시고 장재촌을 떠나시였다. 그런데 뒤에 떠난 대렬이 한창 서쪽 산을 톺아오르고있을 때 100여명의 왜놈《토벌대》가 그들을 발견하고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적의 기관총이 등뒤에서 짖어대고 총탄이 발치에 날아와박히는데 이동하는 군중과 《토벌대》놈들과의 거리는 점점 좁아졌다. 군중전체가 적들에게 참살당할 위험이 닥쳐왔다.

바로 이때 장재촌의 서북쪽 사슴페봉우리에서 유격대돌격나팔소리가 울려퍼지였다.

그 나팔소리는 유격대가 아니라 팔구아동단 분단장이며 아동단나팔수인 김기송동생이 부는 나팔소리였다. 조직으로부터 적정을 살필 임무를 받고 사슴페봉우리로 오르다가 위급한 정황을 목격하신 김기송동생은 적들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려 위험에 처한 인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유격대돌격나팔을 부시였던것이다.

갑자기 울려퍼지는 유격대돌격나팔소리에 적들은 공포와 혼란에 빠졌다. 《토벌대》놈들은 일제히 총구를 사슴페봉우리쪽으로 돌리였다. 김기송동생에게로 총탄이 비발치듯 날아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리를 옮겨가며 계속 나팔을 불었다. 적들은 나팔소리가 나는 곳으로 몰켜가며 더욱 미친듯이 총탄을 퍼부었다.

한순간 나팔소리가 멎었다. 김기송동생은 원쑤의 흉탄을 맞고 눈우에 쓰러졌다. 당년 열두살 너무도 짧은 한생이였다.

다음날 유격대원들과 인민들, 아동단원들의 참가하에 추도식이 거행되였다.

추도모임에서 김정숙녀사께서는 솟구치는 눈물을 삼키시며 말씀하시였다.

《우리 기송이는 희생되였으나 적의 <토벌>로부터 구원된 열, 백의 기송이가 혁명을 위해, 조국의 광복을 위해 희생된 기송이의 몫까지 합쳐 싸울것이며 광복된 조국땅으로 돌아갈 날은 반드시 올것입니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조용히 누워있는, 그렇게도 담차고 의젓한 동생을 향해 말씀하시였다.

《내 동생 기송아! 너는 혁명을 위하여 한몸 바쳤구나. 너는 조국의 아들답게, 혁명의 아들답게 싸웠구나. 누나는 그것이 기뻐서 운다.

이 울음을 증오로 바꾸고 네 몫을 나의 몫에 합치여 원쑤를 쳐부시겠다.

내 귀여운 동생아, 고이 잠들어라.》

혁명이란 정녕 이렇듯 가슴저미는 희생을 동반해야만 하는것인가. 아버님과 어머님, 형님 그리고 이번에는 동생마저 잃었으니 녀사께서는 인간이 겪을수 있는 상실의 아픔이란 아픔을 너무도 일찌기 그리고 가혹하게 겪으신것이다.

허지만 피를 흘리면서도 혁명을 하여야 했다. 일제의 총칼에 맞아 쓰러지거나 굶주려 쓰러지면서도 빼앗긴 조국을 찾아야 했다.

녀사의 가슴에서는 복수의 피가 끓어번졌다. 복수하리라, 사랑하는 부모형제의 피값을 천백배로 받아내리라!

일제의 총에 맞고 칼에 맞아 무참히 숨진 수천만 겨레의 피값을 기어이 받아내리라!

이렇게 마음다지신 김정숙녀사께서는 슬픔과 아픔을 증오로 이겨내시며 결연히 일어서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며칠후 사랑하는 동생이 목숨으로 구출한 혁명군중을 이끄시고 사방대로 떠나시였다.

사방대에서 녀사께서는 자신의 슬픔과 아픔은 마음속깊이 묻어두고 혁명군중의 식량을 해결하는 사업에 모든 심혈을 다 바치시였다. 인민들과 함께 눈속을 헤치며 마른 버섯과 참취, 풀뿌리를 캐고 떨어진 잣송이들을 주으시였으며 공청원들을 이끄시고 적구에 내려가 식량을 여러차례 해결해오시였다. 사방대에 모여온 혁명군중이 이해 겨울을 이겨내고 혁명의 길을 계속 걸어나갈수 있게 된데는 자신께 가해진 뼈아픈 슬픔보다 근거지를 사수하고 혁명군중을 구원하여야 한다는 높은 사명감과 필승의 신념을 안으시고 투쟁하신 김정숙녀사의 불굴의 희생정신과 노력이 크게 깃들어있었다.

일제놈들의 《동기토벌작전》을 짓부실데 대한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명령에 따라 적배후기습작전을 벌리게 되였을 때 김정숙녀사께서는 적구로 들어가는 소부대에 참가하여 안내자이면서 척후병, 정찰병의 역할을 수행하시였다.

소부대가 구도구에 들어갔을 때 김정숙녀사께서는 적들의 군수물자수송정형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심으로써 유격대가 매복전으로 물자를 호송하는 적들을 생포하고 많은 군수물자를 로획할수 있게 하시였다. 또한 적들의 《토벌》거점의 하나인 팔도구에 대한 정찰을 면밀히 하심으로써 유격대가 경찰분서에 대한 통쾌한 습격전투를 벌릴수 있게 하시였다. 그리고 북독교봉일대에서 몇개 부락《자위단》의 동태를 알아내시여 유격대가 일시에 놈들을 들이치고 수많은 무기와 탄약을 로획할수 있게 하시였다.

주체23(1934)년 3월 9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왕청현 마촌에서 진행된 반일인민유격대 군사정치간부회의에서 반일인민유격대를 조선인민혁명군으로 개편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고 3월부터 5월사이의 짧은 기간에 반일인민유격대를 조선인민혁명군으로 개편하는 력사적조치를 취하시였다.

각 현에 조직되여있던 유격부대들은 하나의 통일적인 군조직체계에 소속되여 대규모적인 유격활동을 벌려나갈수 있는 혁명무력으로 장성강화되게 되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유격구역인민들에게 반일인민유격대가 조선인민혁명군으로 개편된것이 가지는 의의를 적극 해설선전하시였으며 그것을 경축하는 행사때에는 여러가지 중요한 행사일정을 맡아 훌륭히 수행하시였다. 낮에는 아동단사열식훈련을 지도하시고 저녁에는 연예대공연을 지도하시였으며 남들이 다 자는 밤에는 또 밤대로 강연제강을 준비하시였다. 그리하여 4월 연길현 삼도만유격구역 능지영에서 진행된 경축행사때에 있은 아동단원들의 사열식과 연예공연 그리고 《조국을 찾기 위한 빛나는 투쟁》이라는 제목으로 된 강연은 군민의 한결같은 절찬을 받았다.

일신상의 모진 슬픔을 가슴속에 묻어두시고 잠시의 휴식도 없이 오직 혁명사업에 전념하시는 녀사를 두고 사람들은 《혁명을 위해 이 세상에 태여난 사람》이라고 말하였다.

이처럼 유격근거지를 튼튼히 꾸리고 사수하기 위한 투쟁의 나날 김정숙녀사께서는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벌써 훌륭한 청년전위, 뛰여난 정치활동가, 미래의 녀장군으로서의 풍모를 남김없이 보여주시였다.

유격근거지를 튼튼히 꾸리고 사수하기 위한 투쟁에서 발휘하신 김정숙녀사의 끝없는 헌신성과 고결한 혁명가적품성, 높은 군사적자질은 자신을 혁명의 길에 내세워주신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다함없는 존경과 흠모, 수령님께서 이끄시는 혁명의 한길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려는 숭고한 인생관에 바탕을 두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