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 (1)중에서

 

 

조선혁명가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반일공동전선을 형성할데 대한 방침을 높이 받들고 1930년대 전반기 중국혁명가들과 단결하여 그들이 지도하는 혁명적무장부대들과 반일공동투쟁을 힘있게 벌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키우신 조선인민혁명군의 유능한 정치군사간부들을 남북만의 광활한 지역에서 활동하고있는 중국인항일무장부대들에 파견하시여 그들을 적극 도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와 함께 중국인항일무장부대들이 어려운 처지에 놓일 때마다 그들의 군사정치활동을 도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3(1934)년 8월 하순 왕청현 요영구에서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에서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여 일제의 위공작전을 최종적으로 격파하기 위한 작전적방침을 제시하시고 북만에로의 원정을 진행하기로 하시였으며 이어 9월 중순 요영구에서 제1차 북만원정을 위한 군사정치일군들의 협의회를 소집하시였다. 협의회에서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북만원정을 성과적으로 보장할데 대한 문제가 토의되였다.

이 시기 북만의 중국인무장부대 지휘관 주보중이 련락원을 보내여 방조를 요청해왔다. 북만의 녕안지구에서 활동하고있던 중국인무장부대는 적의 《토벌》공세로 하여 악전고투하면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있었다. 당시 일제는 조선인민혁명군의 하기공세에 의하여 심대한 타격을 받게 되자 장기특별치안공작을 기도하면서 《토벌》대강이란것을 만들어놓고 동만과 북만일대에서 활동하는 항일무장부대들에 대한 전면적인 《토벌》작전에 달라붙었다. 이러한 정세하에서 아직 창건초기였고 유격전에 생소한 이곳 무장부대는 적들과 힘겨운 전투를 벌리면서 위대한 수령님께 지원하여주실것을 제기하여왔던것이다.

중국혁명가들의 요청에 응하는것은 중국인민들과의 반일공동전선을 강화하는것으로 될뿐아니라 멀리 북만일대에서 유격활동을 벌리고있는 조선혁명가들을 돕는것으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두만강연안유격구의 형편이 적들의 《최종토벌》공세로 하여 류례없이 간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제기에 응하는것을 신성한 국제주의적의무로 여기시고 회의후 북만원정준비를 다그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원정준비를 끝마친 부대에 새 총과 군복을 공급하게 하신 다음 주체23(1934)년 10월 하순 170여명의 북만원정대를 친솔하시고 뒤틀라즈를 출발하여 로야령을 넘기 시작하시였다. 북만지방은 10월 하순이면 벌써 강이 얼기 시작하는 계절로서 로야령의 깊은 산속에는 눈이 쌓이고 찬바람이 휘몰아쳤다. 원정대는 사나운 설한풍이 행군길을 막아나서는 로야령을 톺아올라 다음날 녕안현 횡도하자부근에 다달았다.

원정대가 이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이웃부락에 있던 일본군《토벌대》가 불의에 달려들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령활한 지휘에 따라 원정대는 이날 전투에서 달려드는 일제침략군놈들을 거의 다 소멸하고 수많은 무기와 탄약을 로획하였다. 횡도하자부근전투는 원정부대가 북만땅에 들어와 진행한 첫 전투로서 적들에게 일대 혼란과 공포를 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날 팔도하자의 산막에서 20∼30명의 대원들을 데리고 병치료를 하고있는 주보중을 만나 허심탄회한 담화를 하시였다.

이날 주보중은 녕안반일유격대의 탄생이 순탄치 않았다고 하면서 그 경위에 대하여 위대한 수령님께 말씀드리였다. 녕안반일유격대는 주보중이 라자구를 떠날 때 데리고 온 20명가량의 반일병사와 김해산이 지휘하는 조선사람들로 구성된 유격대가 련합하고 그후 2도하자지방에서 활동하던 평남양(리형박)부대와 통합을 실현하였으나 지휘관들의 군사정치적자질이 낮고 경험이 부족한데다가 대오의 통일이 이루어지지 못하고있었다. 그리고 특히 반일부대와의 관계를 잘 풀지 못하여 합법적활동을 하지 못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보중을 비롯한 녕안지구 일군들과의 담화를 통하여 이 지구에서의 투쟁실태를 세세히 료해하신데 기초하여 북만의 유격대지휘관들에게 일제의 책동과 조성된 혁명정세, 유격전의 기본원칙과 당면한 투쟁방도, 유격전쟁에서 적용하여야 할 다양한 전법들과 조선인민혁명군의 투쟁경험들을 구체적으로 해설해주시면서 무장투쟁을 강화발전시킴에 있어서 지침으로 될 방도들을 제시하여주시였다. 그러시고나서 북만혁명이 안고있는 여러가지 고충을 풀수 있는 돌파구는 인민들속으로 들어가는것이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보중과 하신 담화는 만주일대에서의 항일무장투쟁의 장래발전과 조중인민의 반일공동투쟁의 확대강화발전에서 실로 중대한 의의를 가지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이때를 회고하여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와 주보중과의 상봉은 우리의 항일무장투쟁사에서 새로운 장을 상징하는 하나의 사변이였다. 이 상봉을 시발점으로 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은 중국인공산주의자들이 령솔하는 유격부대들과의 전면적인 공동투쟁의 길에 들어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에서 국제당 만주특파원 오평과 조선혁명에 대한 조선혁명가들의 자주적립장과 주체적로선, 두만강연안유격구창설과 그 방위전에서 얻은 경험을 비롯한 일련의 문제들을 가지고 폭넓은 담화를 하시였다. 이것은 차후 조선혁명과 관련한 국제당의 견해와 립장을 바로세우는데서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북만유격대와의 공동행동을 통하여 실천적모범으로 그들의 전투력을 높여주기 위한 사업을 정력적으로 벌리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주체23(1934)년 11월 하순 원정대를 이끄시고 경박호반의 석두하에서 조중혁명가들의 형제적우의와 국제주의의 위력을 시위하는 공동투쟁의 첫 총성을 울리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 원정부대의 맹렬한 군사정치활동에 커다란 불안을 느낀 일제는 급히 《토벌대》 200여명을 북호두를 따라 은밀히 진출시켜 석두하에 진출한 원정부대를 불의에 타격하려고 기도하였다.

정황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경박호일대의 지형조건으로 보아 적들이 얼어붙은 경박호를 건너올것이라는것과 놈들이 석두하부락으로 공격하려면 반드시 부락의 북쪽고지에 기여오르리라는것을 예견하시고 부대를 북쪽고지에 배치하시였다.

수령님께서 예견하신대로 일제침략군은 원정부대가 석두하에 주둔해있는줄 알고 부락북쪽고지를 차지한 다음 거기로부터 마을로 공격하려고 시도하면서 경박호기슭으로 접근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목표가 명백히 드러나고 직접 조준사격을 할수 있는 100m 거리에 적들이 접근하였을 때 사격명령을 내리시였다.

순간 멸적의 총탄이 일제히 적들에게 집중되였다. 적들은 무리로 쓰러졌다. 대원들은 드세찬 집중사격에 얻어맞아 갈팡질팡하는 놈들에게 련속적인 집중화력을 들이대여 한놈의 적도 남겨놓지 않고 모조리 소멸하였다.

이날 전투에서 원정부대는 200여명의 일제침략군을 소멸하고 3정의 기관총을 비롯한 100여정의 무기를 로획하는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다. 원정부대는 련이어 방신구부근에서 달려오는 일제침략군에게 다시한번 드센 타격을 안기였다. 이러한 때 북만원정부대의 전승소식을 듣고 녕안반일유격대 대장인 평남양이 40명가량의 대원들을 인솔하고 주보중이 보낸 전령병의 안내로 부대를 찾아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남양부대와 함께 신안진부근에서 2개 대대의 정안군을 요정내시고 뒤이어 한 반일부대와의 협동작전으로 대해랑하강변에서 다른 정안군부대를 족치시였으며 팔도하자골의 로전가에서 정안군 기병중대와 보병중대를 타격하시였다. 이런 혁혁한 전과로 하여 위축되였던 반일부대들이 련이어 수령님을 찾아와 원정대에 합류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원정과정에 마창일대에서 활동하는 채세영반일부대와 일제침략군 13려단의 공격에 갈팡질팡하는 강애민반일부대, 삼도하자일대에서 활동하는 반일부대와 만나 그들이 반일련합전선에 확고히 들어서게 하시였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령도로 그후 북만에서 녕안반일유격대를 기간으로 하여 동북인민혁명군 제5군이 건설될수 있었으며 대부분의 반일부대들이 그 산하에 들어갔다. 결과 녕안지구에서 활동하던 중국혁명가들이 그처럼 모대기던 고충이 풀리고 무장투쟁은 활발히 벌어지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4(1935)년 6월부터 주체25(1936)년 2월까지 사이에  진행하신 제2차 북만원정때에도 항일무장부대들과의 공동작전을 령활무쌍하게 조직진행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나날 주보중을 비롯한 중국인무장부대지휘관들과 다시금 상봉하시여 공동전선실현에서 나서는 문제들을 환히 밝혀주시고 적과의 싸움에서 창조된 유격전술의 제 원칙과 경험, 부대관리방법 등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작전적구상과 두 나라 혁명가들의 공동의 노력으로 북만의 광활한 지역에서는 크고작은 련합작전이 활발히 전개되였다.

북만일대에 진출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중국인항일무장부대들과 련합작전을 벌려 녕안현 산동툰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으며 그후에 진행한 청구자, 남천문, 말리거우, 로두구, 신흥툰, 류채구 등지에서 수많은 대소전투들을 벌려 적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이무렵인 주체24(1935)년 가을 국제당은 만주지방에서 항일무장력의 공동작전을 보다 적극화할 목적밑에 위대한 수령님께 제2군과 제5군의 협동작전을 위한 합동지휘부의 정치위원 겸 위하부대 사령관의 중책을 위임하였다. 이것은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높은 존경과 기대의 표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제2군과 제5군의 합동지휘부 정치위원 겸 위하부대 사령관의 중책을 지니시고 북만일대에서 수많은 전투를 벌리시여 조중 두 나라 무장력의 련합작전을 보다 높은 단계에로 이끌어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나날 몸소 인민들속에 들어가시여 연설도 하시고 때로는 중국민요로 사람들을 감화시켜 북만인민들을 반일항전에로 불러일으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처럼 중국혁명가들이 지도하는 항일무장부대들과 반제공동전선을 빛나게 실현하심으로써 만주지역에서의 항일무장투쟁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이끌어올리시였으며 우리 혁명의 국제적련대성을 비할바없이 강화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