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 (3) 중에서

 

6. 15북남공동선언은 민족자주선언이다.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을 핵으로 하는 6. 15공동선언에는 주체성, 민족성이 관통되여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력사적인 6. 15공동선언을 리행하는 과정이 바로 선언의 이 기본정신이 구현되는 사업으로 되도록 이끄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외세에 의하여 민족이 갈라지고 북과 남에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가 존재하는 우리 나라에서 민족대단결과 조국통일의 기초로 될수 있는것은 민족성과 그로부터 흘러나오는 민족애, 민족자주정신이다.》

6. 15공동선언을 리행하기 위하여서는 선언에 있듯이 북과 남 당국사이의 회담을 비롯한 여러 갈래의 회담을 가지는것이 선차적문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앞으로 열리게 되는 회담들이 신의와 협력의 정신에서 실질적으로 문제를 타결하는 실리있는 회담으로 되도록 그 방향과 방도를 환히 밝혀주시였다.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가 있어 6. 15북남공동선언리행을 위한 첫 조치로서 주체89(2000)년 7월 29일부터 31일까지 제1차 북남상급회담이 서울에서 진행되였다. 력사적인 6. 15북남공동선언발표이후 그 리행을 위한 첫 회담인것만큼 그 의의가 자못 컸다.

상급회담이 진정으로 6. 15북남공동선언을 리행하기 위한데로 지향되여야 다른 모든 회담들이 성과적으로 진행될수 있는 담보가 마련될수 있었다.

북남공동선언의 리행을 바라는 겨레의 념원과 새로운 시대적요구에 맞게 북남회담을 운영해나갈데 대한 우리의 원칙적인 노력에 의하여 회담을 북남공동선언의 합의사항을 리행하는 회담으로, 불신과 론쟁으로 일관되던 과거의 낡은 타성에서 벗어나 신의와 협력의 정신에서 문제를 타결하는 회담으로, 실질적으로 결실을 맺는 회담으로 만들데 대한 원칙적문제들에서 합의가 이루어지게 되였다. 그리하여 상급회담뿐아니라 북과 남사이에 진행될 여러 갈래의 회담들을 6. 15북남공동선언리행에로 지향시켜 실속있게 전개해나갈수 있는 담보가 마련되게 되였다.

이러한 성과에 토대하여 그해 8월 29일부터 9월 1일까지 평양에서 제2차 북남상급회담이 열렸다. 회담에서는 이해안에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교환사업을 두차례 더 진행할데 대한 문제, 조선반도의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쌍방 군사당국자들의 회담을 조속한 시일내에 가지도록 건의할데 대한 문제, 경제협력을 확대발전시키기 위한 제도적담보를 마련할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북남관계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을 우리 민족끼리 풀어나가는데 합의하였다.

특히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9월 1일 평양에 온 북남상급회담 남측수석대표를 접견해주시였다.

남측수석대표는 력사적인 평양상봉때 위대한 장군님을 가까이에서 뵈옵고 서울에 돌아가 어느 초청간담회에서 강연을 하면서 정중히 《김정일장군》이라는 존칭을 써서 화제를 모았는가 하면 앞으로 김정일장군과 나눈 대화 그리고 옆에서 본것에 기초해서 대북사업을 추진해갈것이라는 립장을 지면에 밝힌바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그를 만나시고 공동선언의 정신에 맞게 북남관계를 발전시키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밝혀주시였으며 그를 위하여 조찬도 마련해주시고 기념사진도 찍어주시는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상급회담과 함께 북과 남사이의 인도주의적문제들도 뜨거운 아량을 가지고 원만히 해결해나가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주체89(2000)년 6월과 9월 여러차례의 적십자회담이 진행되여 북과 남사이에 인도주의적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실제적인 조치들이 취해졌으며 8월과 11월 두차례에 걸쳐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교환사업이 진행되였다. 오래동안 생사조차 모르고 헤여져 살아야 했던 혈육들사이의 감격적인 상봉을 계기로 우리 민족은 헤여져 살수 없는 하나의 겨레임을 다시금 확인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6. 15북남공동선언리행에서 언론이 노는 역할을 깊이 헤아리시고 남조선언론과의 사업에 큰 관심을 돌리시였다.

주체89(2000)년 8월 5일부터 12일까지 남조선의 주요신문, 방송회사 사장, 총국장들과 관계자들로 구성된 큰 규모의 언론사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하였다.

력사적인 평양상봉기간 이미 남조선의 언론사대표단이 평양에 오도록 하신 장군님께서는 그들이 평양방문기간에 동포애의 뜨거운 정과 우리 인민의 고상한 정신도덕적풍모를 그대로 느낄수 있도록 그들과의 사업에서 나서는 문제들을 세심히 가르쳐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대표단의 일정에서 백두산지구참관에 특별한 의의를 부여하시고 그들에게 특별비행기까지 내주도록 하시였다. 남조선의 《중앙일보》사장이 방문기간에 생일을 맞게 된다는것을 아시고는 그에게 성의껏 생일상을 차려주도록 하시는 은정도 베풀어주시였다.

8월 12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남조선언론사대표단을 만나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평양을 방문한 그들을 열렬히 환영하시고 따뜻한 담화를 나누시였으며 오찬도 마련해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담화와 오찬회석상에서 우리 민족이 당하여온 수난에 찬 분렬의 력사를 회고하시면서 높은 민족적자존심을 가지고 새 천년대의 요구에 맞게 민족앞에 나서는 력사적과제를 풀어나가며 민족공동의 리익을 도모하고 북남관계를 새롭게 발전시키기 위한 귀중한 말씀을 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6. 15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 북과 남의 제반 관계가 민족적화해와 단합, 조국통일에 리롭게 발전하고있는데 대하여 만족을 표시하시고 공동선언을 리행하는데서 북과 남의 언론기관들과 언론사들이 자기의 책임과 임무를 다하여야 할것이라고 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북과 남의 언론인들이 지난날 같은 민족이면서도 서로 대결하고 불신하던 낡은 타성에서 벗어나 공동선언을 리행하는데 도움이 되고 인민들의 의사에 맞는 언론활동을 적극 벌려야 할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누구든지 6. 15공동선언을 지지환영하고 통일위업을 실현하는데 나선다면 여당이건 야당이건 관계없이 그리고 과거는 물론 어제의 실언도 불문에 붙이고 함께 손잡고 나갈것이라고 확언하시였다.

남조선의 언론사대표들은 철의 론리와 민족애가 자자구구 흘러넘치는 장군님의 말씀을 뜨거운 감동속에 경청하였다. 그들은 접견을 받는 전기간 서로 교대적으로 그이의 말씀을 기록하였다.

오찬회석상에서 하신 장군님의 말씀은 그 다음날인 8월 13일 남조선신문들의 옹근 두면에 일제히 편집되였다. 이것은 남조선언론사상 전례없는 일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남조선언론사 대표단성원들을 접견하실 때 그들이 관심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명철한 해명을 주시였는데 말씀 한마디한마디가 그들에게는 너무도 놀랍고 경탄스러웠다. 어떤 복잡한 문제에도 막힘이 없으시였고 마디마디에 심오한 철학이 담겨져있었다.

특히 허물없이 언론사대표단성원들과 잔을 찧으시고 사진도 찍어주시고, 오랜 친구처럼 그들의 팔을 끼고 다정히 걷기도 하시고, 막역한 사이처럼 격식없이 롱도 하시고, 대표단성원들이 관심하는 문제들에 때로는 단마디로 명백하게, 때로는 해학적인 표현을 섞어가며 누구에게나 가슴후련하게 명쾌한 답변을 주시는 장군님은 말그대로 《천하를 얻고 천하를 움직이시는 멋진 지도자》이시였다.

대표단의 한 성원이 경애하는 장군님께 통일시기가 언제쯤 될것 같은가 하는 물음을 아뢰였을 때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즉석에서 그건 북과 남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우리가 어떻게 결심하고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치는가에 따라서 통일은 이제 당장이라도 실현될수 있는 문제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6. 15북남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인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이 지니고있는 힘의 위력에 대하여 하시는 뜻깊은 말씀에 만장은 숭엄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정녕 그래서 평양을 방문하였던 남녘동포들과 해외동포들은 《북의 공기를 호흡하느라면 사대주의와 식민지사관, 렬등감이 없어지고 당당해진다. 우리 민족의 자존심이고 자긍심이라 할수 있는 고구려의 힘찬 대륙기질과 개척정신, 용감성이 민족의 위대한 아들 김정일장군님의 온몸에서 세차게 뿜어진다.》고 말하였고 남조선의 한 잡지도 《민족을 우선시하고 민족자존을 국책으로 내세우는것을 보면 김정일최고사령관은 리지적인 현대정치가이면서도 민족주의자라는것만은 틀림없다.》라고 쓰지않았던가.

언제나 민족의 리익을 첫자리에 놓으시고 말씀 한마디 하시여도 민족의 넋과 향취가 넘쳐나는 말씀을 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우러를수록 남조선의 언론인들은 흘러가는 한초한초가 아까왔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선군정치에 대해서도 대표단성원들이 자주적관점에서 리해할수 있도록 명답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의 힘의 원천으로는 두가지가 있다, 첫째가 일심단결이고 두번째가 군력이다, 군력이 있어야 외국과의 관계를 자주적립장에서 풀어나갈수 있다, 다른 나라와 친해도 군력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외세에 롱락당한 리조말엽의 대원군이나 민비신세가 될수 있다고 일깨워주시였다.

힘이 약했던탓에 사대의 길을 걷다가 끝내는 외세에 나라까지 통채로 빼앗기지 않으면 안되였던 망국의 비극이 다시는 이 땅에서 재현되지 않고 북과 남의 우리 겨레가 선군의 혜택속에서 당당히 큰소리를 치며 어깨를 쭉 펴고 살게 하시려는 뜻깊은 말씀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민족사의 불행한 과거를 누구보다 가슴아프게 여기시기에 언론사대표단성원들에게 우리 민족번영의 무기이며 방도인 선군정치에 대하여 통속적으로 이야기해주신것이다.

남조선언론사대표단성원들은 탁월한 식견과 안목, 비범한 지략과 능동자재한 언변과 포옹력으로 말씀을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완전히 매혹되였다. 대표단의 한 성원은 김정일국방위원장님께서 오찬회장에 들어서시니 드넓은 방이 더욱 밝아지는것만 같았다, 나는 그때 백두산에서 본 해돋이가 생각났다고 하면서 자기의 솔직한 심정을 터놓았다.

정녕 언론사대표단성원들에게 있어서 경애하는 장군님은 순간에 온넋이 끌리는 매혹의 지도자, 리상형의 령도자이시였다. 아시는것이 너무 많아서 놀라왔고 판단력과 림기응변이 너무 능하시여 경탄스러웠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남조선언론사대표단을 만나주신것은 그들부터가 북에 대한 이지러진 관점을 바로세우고 6. 15북남공동선언리행에서 언론인의 본분을 지켜나가도록 하는데서 전환적계기로 되였다.

언론사대표단의 평양방문이후 남조선언론인들속에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인상을 적극 소개선전하고 련북을 지향하는 언론활동이 전례없이 강화되였다.

주체89(2000)년 남조선언론계는   20세기의 특기할 사변을 마련하신 장군님의 위인상에 매혹되여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영상사진들을 전례없이 많이 모시였는데 남조선의 주요신문 11종과 잡지 14종만 봐도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영상사진을 총 1 030상을 모시였다.

남조선의 《경향신문》(2000년 12월 21일부)과 잡지 《시사져널》은 경애하는 장군님을 《2000년 올해의 인물》로 전례없이 추대발표하였다.

남조선의 주요신문들과 잡지들이 북남합의서발표 이전인 3월 한달동안에 우리와 관련한 기사를 평균 7. 5건(사설은 평균 3. 5건)을 실었다면 언론사대표단의 평양방문이후인 9월과 10월에는 사설만 해도 한달에 평균 10건으로서 3일에 한번정도로 실었으며 기타 시론, 론평 등은 거의 매일 싣다싶이 하였다.

남조선언론들의 이러한 동향과 관련하여 우익보수세력들속에서는 《친북언론으로 전향했다.》, 《남의 정부기관지인지 북의 정부기관지인지 분간할수 없다.》는 아우성까지 터져나왔다.

통일애국위업실현에 나선 사람이라면 정견과 주의주장에 관계없이 다 안아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89 (2000)년 추석을 맞으며 남조선의 각계 인사들에게 칠보산의 특산물인 첫물 송이버섯을 보내주시는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끊임없는 선군혁명령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느날 인민군군인들이 칠보산에서 첫물 송이버섯을 많이 땄다는 보고를 받으시였다.

조선의 명산 칠보산의 송이버섯은 그 맛과 향기가 독특한것으로 하여 예로부터 유명하였다. 하기에 남조선당국자의 부인도 력사적인 평양상봉시 국방위원회명의로 차린 오찬석상에 나온 송이버섯료리를 보고 귀한것이라고 부러워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때 평양에 온 모든 남측귀빈들에게 칠보산에서 나는 첫물 송이버섯을 선물로 보내주겠다고 하시였으며 제2차 북남상급회담 대표로 왔던 《통일부장관》에게도 추석때 수뇌회담수행원들과 언론사대표들에게 송이버섯을 선물하겠다고 또다시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그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추석을 맞으며 남조선사람들이 민족의 향취를 느끼게 하고 우리의 마음도 전하게 해야 한다고 하시며 송이버섯을 보내주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조선인민군 대장이 주체89(2000)년 9월 11일 사랑의 송이버섯을 비행기에 싣고 분렬의 장벽을 넘어 서울로 나가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임에 의하여 국방위원회를 대표하는 조선인민군 대장이 남녘의 평양상봉 수행원들과 언론사대표단성원들, 《현대그룹》 정주영명예회장일행 등 267명에게 1인당 10kg의 송이버섯을 전달하였으며 그밖에 평양에 와보지 못한 64명의 각계 인사들에게도 똑같이 송이버섯을 정중히 전달하였다.

조선인민군 대장의 선물송이버섯 전달, 그것은 장군님의 민족에 대한 사랑이 위대한 선군사랑임을 뜻하는것이였으며 장군님의 선군총대야말로 애국애족의 총대임을 보여주는 참으로 의미깊은 화폭이였다. 그것은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대로 조국통일을 이룩하시려는 장군님의 드팀없는 의지의 발현이였고 남녘동포들에게 민족의 향취를 느끼게 하시려는 그이의 숭고한 동포애의 정이 담겨진 위대한 사랑의 정화였다.

추석을 맞으며 민족의 향취 그윽한 첫물 송이버섯을 받아안은 남조선의 각계 인사들은 그 송이마다에 슴배여있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고결한 인정미와 하늘같은 겨레사랑, 민족사랑의 정이 알알하게 닿아와 고마움을 금치 못해하였다. 송이버섯을 보내주시여도 한두번 맛보는 정도가 아니라 한지함씩 통채로 안겨주시는 큰 도량이 그대로 장군님의 모습으로 안겨와 가슴 후덥게 하였다. 하기에 지난 시기 반공일선에서 우리를 적대시하여온 야당총재도 장군님의 정과 덕을 무심히 받아들일수만 없어 그이께 감사의 표시로 전례없이 선물을 삼가 올리였다.

주체89(2000)년 9월 30일 금강산지구를 현지지도하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모신 자리에서 《현대아산》 정몽헌회장은 장군님께 추석때 저희들에게 너무 좋은 송이버섯을 보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인사를 받으시며 송이버섯이 남쪽에 가는 기간에 선도가 떨어지지 않았는가고 걱정하시였다. 그러자 정몽헌회장과 일행은 선도가 기가 막히게 좋았다고, 향기가 그대로 있었다고, 송이버섯상자를 보니 역시 칠보산의 송이버섯이였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씀올리였다.

《현대》의 한 관계자는 장군님께서 보내주신것이라고 하면서 송이버섯을 은박지에 싸서 《현대아산》 직원 100명에게 다 나누어주었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자신한테만 인사할것이 아니라고 하시며 우리 국방위원회 일군들이 그 임무를 수행했다고, 군대를 동원해서 그 송이버섯을 준비했다고 군대를 내세우시였다. 그러시고는 우리 군대동무들이 그 송이버섯이 남쪽에 간다니 포장을 잘하느라고 해서 보냈는데 어떻게 되였는지 모르겠다고 또다시 동포애의 정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남조선의 각지에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은정을 전하는 칠보산송이버섯전설이 생겨나 널리 전해지였다.

남조선의 언론들은 《맛있다, 칠보산송이버섯》 등의 제목으로 송이버섯에 깃든 뜨거운 사연을 대서특필하였다. 남녘동포들은 칠보산송이버섯이야말로 특유의 향과 맛, 섬세한 섬유질을 가진 최고식품으로서 내외에 《가을의 미각》이라고 소개될만큼 명품이라는것, 칠보산은 《함북의 금강》으로 불리우는 명산이라는것, 북에서는 이미 1976년에 이 산을 《자연보호구》로 정하였다는것,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옛날에는 5대명산(백두산, 묘향산, 오가산, 금강산, 구월산)을 꼽았지만 로동당시대에는 6대명산을 꼽고 칠보산을 단연 첫자리에 놓아도 손색이 없을것 같다고 높이 평가하시였다는것 등 저저마다 칠보산송이버섯과 칠보산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임에 의하여 조선인민군 대장과 함께 서울에 간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은 남측의 관계자들과 북남간에 제기되는 현안문제들에 대하여 폭넓게 의견을 교환하고 9월 14일 북남공동보도문을 발표하였다.

공동보도문에는 북측 인민무력부장과 남측 《국방부장관》사이의 회담을 개최하는 문제,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생사 및 주소확인과 이들의 서신교환 그리고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 추가교환문제, 북남사이의 경제협력을 활성화시키는데서 나서는 문제, 서해선 철도 및 도로련결을 위한 착공식개최문제, 경제고찰단의 파견문제, 림진강수해방지 공동조사문제 등의 내용들이 들어있었다.

온 남녘땅은 공동보도문의 발표로 다시한번 통일열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6. 15북남공동선언의 성과적리행을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신 민족애의 최고화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가 있어 북남관계에서는 련이어 새로운 장들이 펼쳐지게 되였다.

주체89(2000)년 9월 25일부터 26일까지 제주도에서 6. 15북남공동선언의 리행을 군사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북남군사당국자들사이에 부장급회담이 개최되였다. 회담에서 쌍방은 6. 15북남공동선언이 채택된 이후 그 리행을 위한 사업들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있는 환경속에서 필요한 군사적보장사업을 따라세울것을 절실히 요구하고있다는데 견해를 같이하였다.

그러면서 북남수뇌분들이 합의한 6. 15북남공동선언리행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민간인들의 래왕과 교류, 협력을 보장하는데서 나서는 군사적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적극 협력해나가기로 합의하였다. 이 합의에 따라 그해 11월 28일부터 12월 21일까지 3차례의 북남군사실무회담이 진행되였으며 북과 남을 련결하는 철도와 도로작업과 관련하여 철도와 도로가 지나가는 일정한 구역을 북남관리구역으로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문제들을 토의하였다.

북과 남사이에 펼쳐진 협력교류의 새로운 현실은 6. 15북남공동선언의 거대한 생활력이 안아온 자주통일시대의 새 모습이였다.

애국, 애족, 애민의 한없이 넓으신 도량을 지니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렇듯 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대결과 긴장, 불신만이 존재하던 북남사이에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마련되고 조국통일의 앞길에는 밝은 전망이 열리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