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 (1)중에서

일제침략자들은 위공작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보다 방대한 무력을 유격구주변에 들이밀고 전례없는 큰 규모의 《토벌》을 획책하여나섰다. 적들은 침략무력을 유격구주변에 대대적으로 집중하면서 증강된 병력으로 유격구를 장기간 포위하고 모든 유격구역들과 조선인민혁명군의 각 부대들을 고립분산시켜 각개격파하려고 시도하였다. 일제는 또한 군사적공세에 사상적공세를 배합하면서 조선인민혁명군을 내부로부터 와해시켜보려고 어리석게 책동하였다.

적들의 이러한 발악적공세에 대처하여 조선인민혁명군앞에는 새로운 군사전략으로 적의 기도를 분쇄하고 군사활동에서 주도권을 계속 확고히 견지하는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업으로 제기되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이와 관련한 새로운 전략적대책을 세우기 위하여 주체24(1935)년 3월 21일부터 27일까지사이에 왕청현 요영구에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를 소집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유격구를 해산하고 광활한 지대에로 진출할데 대하여》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변화된 혁명정세와 항일무장투쟁의 요구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신데 기초하여 두만강연안에 창설되였던 유격구를 해산하고 광활한 지대에로 진출할데 대한 새로운 전략적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추호의 동요도 없이 조성된 정세와 혁명임무에 맞게 유격구를 해산하고 광활한 지대에로 진출하는 새로운 전략적임무를 성과적으로 수행하여야 하겠습니다.》

그이께서는 조성된 정세는 인민혁명군으로 하여금 제한된 지역의 유격구를 떠나 보다 광활한 지대에로 진출하여 대규모적인 유격전을 조직전개할것을 요구하고있다고 하시면서 조성된 오늘의 정세하에서 《유격구사수》를 주장하는것은 겉보기에는 혁명적인것 같으나 실은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는것과 같은 무모한 행동이며 혁명발전의 요구를 무시하는 그릇된 견해라고 지적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유격구를 해산하고 광활한 지대에로 진출할데 대한 전략적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구체적인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우선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만주의 광활한 지역과 북부조선일대에 진출하여 대규모적이고 기동적인 유격활동을 벌려 적들에게 커다란 정치군사적타격을 주는 한편 장성강화된 조선인민혁명군의 위력을 과시하며 도처에서 광범한 군중을 대상하여 조직정치사업을 힘있게 전개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또한 유격구를 해산하는 사업을 실무적사업으로가 아니라 정치사업으로, 새로운 전략적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혁명사업으로 진행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유격구인민들속에서 해설선전사업을 광범히 전개하여 그들로 하여금 유격구해산에 대한 옳은 리해를 가지고 이 사업에 적극 동원되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그리고 유격구의 군중들가운데서 적위대, 반일자위대, 돌격대, 소년선봉대와 같은 반군사조직을 비롯한 혁명조직들에서 교양되고 단련된 청소년들을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시켜 광활한 지대에로 진출하게 될 인민혁명군의 력량을 더욱 확대강화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또한 유격근거지에서 각성되고 교양된 혁명군중들을 적통치구역에 파견하여 그곳 인민들에게 혁명적영향을 주고 적구인민들을 각종 반일투쟁에 힘있게 불러일으키도록 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회의에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전략적로선에 따라 두만강연안유격구를 발전적으로 해산하고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을 조선과 만주의 광활한 지대에 진출시켜 무장투쟁을 더욱 확대강화할것을 결정하였다.

요영구회의는 다홍왜회의와 더불어 조선혁명의 자주로선을 확고히 고수하며 조선혁명에서 주체를 세워나가는데서 또 하나의 리정표로 되였으며 조선인민혁명군이 유격구를 사수하기 위한 전략적방어로부터 전략적공격의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는 전환적계기로 되였다.

요영구회의후 유격구들에서는 유격구해산사업이 벌어졌다.

유격구를 해산하는 사업에서는 여러가지 난관이 제기되였다. 두만강연안유격구를 해산한다는것을 탐지한 일제는 군대와 인민이 유격구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군사적봉쇄를 강화하는 한편 교활하게도 적색구역의 철페는 무장투쟁의 종말을 의미하며 유격구를 해산하는것은 곧 유격운동을 포기하는것으로 된다는 식으로 여론을 오도하면서 군중의 동요를 야기시키기 위한 사상공세를 각방으로 벌리였다. 유격구해산과 관련하여 각이한 해석과 판단들이 유격구에 떠돌고있는데다가 적의 선무공작대가 퍼뜨리는 류언비어까지 나돌아 유격구에는 혼란상태가 조성되였다. 적들의 이런 책동은 유격구해산에서 첫째가는 난관으로 되였다.

난관은 또한 유격구해산에 대한 리해를 바로가지지 못하고 그릇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것이였다. 유격구를 해산하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의견을 담은 진정서를 수령님께 올리는 로인도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4(1935)년 3월말 요영구에서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 일군들과 각지 당조직책임일군들의 협의회를 소집하시고 유격구해산사업을 정치적으로 옳게 지도하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우수한 당일군들과 군사정치간부들로 특파원들을 임명하시고 유격구들에 파견하시여 해설선전사업을 진행하게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어 그해 4월 중순 요영구에서 열린 군민련환대회에 몸소 참석하시여 뜻깊은 연설을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연설에서 유격구해산의 절박성과 정당성을 다시금 해설해주시고 유격구가 해산되는것과 관련하여 인민들의 이동방법과 투쟁방향에 대하여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그러시고는 그 어디에 가든지 혁명승리를 확신하고 조국해방의 그날을 앞당기기 위한 투쟁에 모든것을 다 바칠것을 호소하시였다. 연설이 끝나자 대회참가자들은 한결같이 《일제를 타도하라!》, 《조선인민혁명군 만세!》를 목청껏 부르면서 열광적인 환호를 올리였다.

각 유격구들에 내려간 특파원들도 인민들이 유격구해산에 대한 옳은 인식을 가지도록 해설설복하였다. 꾸준한 설복과 여러차례의 회의를 통하여 유격구해산에 대한 옳은 리해를 가진 유격구인민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혁명의 한길을 따라 억세게 싸워나갈 굳은 결의들을 다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유격구해산사업을 군사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몸소 주체24(1935)년 4월 요영구유격구에 달려드는 적《토벌대》놈들을 소멸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유격구해산사업은 주체24(1935)년 5월에 시작하여 그해 11월초 처창즈유격구역의 해산을 마감으로 완료되였다.

유격구해산사업을 성과적으로 마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을 이끄시고 광활한 지대에로 진출하여 적극적인 군사정치활동을 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미 요영구회의에서 광활한 지대에로 진출하는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의 활동지역과 력량편성, 임무 등을 밝히시고 주력부대가 북만에로의 원정(2차북만원정)을 단행할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수령님께서 또다시 북만원정을 하시게 된것은 북만일대에서 활동하고있는 조선혁명가들과의 련계를 밀접히 하고 그들과의 전면적인 협력을 실현하는 한편 1차북만원정을 통하여 이루어놓은 북만의 중국혁명가들과의 전투적동맹을 공고히 하고 그들과의 공동투쟁을 더욱 강화하자는데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북만원정을 단행하시기에 앞서 로흑산전투와 태평구전투를 조직지휘하시였다. 몇달전에 라자구에서 멀지 않은 사도구마을에서 정안군놈들의 만행으로 마을이 초토화되고 인민들이 무참히 학살당하는 참변이 벌어졌었다. 이 소식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로흑산의 정안군부대와 라자구의 위만군부대를 그대로 두고서는 이 일대 인민들의 안전을 보장할수도 없고 조선인민혁명군이 북만원정을 무난히 치를수도 없다고 판단하시고 부대를 이끄시고 대낮에 태평구에 행군해가시여 사도구참변의 희생자들에 대한 추도식을 엄숙히 거행하신 다음 그들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하여 주체24(1935)년 6월 중순 로흑산전투를 진행하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은 기묘한 유인매복전으로 로흑산의 왕보만에 주둔하고있던 악질적인 정안군 100여명을 소멸하고 박격포, 중기관총, 경기관총을 비롯한 많은 무기들과 포탄, 탄약, 군마를 로획하는 빛나는 전과를 올렸다. 로흑산전투는 조선인민혁명군이 광활한 지대에로 진출하면서 대부대로 장성강화된 위력을 처음으로 시위한 전투였다. 로흑산에서 정안군이 녹아나자 적들은 관동군, 위만군, 경찰, 자위단, 철도경비대 등의 대병력을 동원하여 태평구로 공격해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6월 20일 태평구뒤산에 부대들을 전개하시고 배를 타고 대화소포강을 도하하는 적들에게 로획한 박격포로 사격을 가하여 배를 박산내게 하시였다. 혼비백산한 적들은 강도하를 단념하고 황급히 달아나고말았다.

로흑산전투와 태평구전투를 통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의 북만원정준비를 끝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왕청과 훈춘련대의 일부 중대들과 청년의용군으로 원정부대를 편성하시고 북만원정의 길에 오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친솔밑에 6월 하순 인민들의 열렬한 환송을 받으며 태평구를 출발한 북만원정부대는 로야령의 험준한 산발을 넘어 7월 하순 북만땅인 녕안현 산동툰지방에 이르렀다. 그때 동만에서 《고려홍군》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수백명의 위만군과 경찰대로 편성된 혼성기마대가 산동툰으로 공격해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현지정황과 지형조건을 료해하신 다음 마을인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적들을 맞받아나가 전방 150∼200m 계선까지 적들을 바싹 접근시키고 일제히 불벼락을 안기게 하시였다. 기세등등해서 달려들던 적들은 치렬한 공방전끝에 숱한 시체를 남기고 달아나고말았다. 이 전투에서 적들은 얼마나 혼쌀이 났던지 그후 《고려홍군》이란 말만 들어도 벌벌 떨었으며 감히 조선인민혁명군에 접어들지 못하였다. 적들은 성문밖으로 나오지 못하였으며 지어 조선인민혁명군이 편지 한장을 써보내도 식량, 기름, 신발을 비롯한 군용필수품들을 보내주군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전투를 통하여 북만의 항일무장부대들의 전투적사기와 기세를 부쩍 돋구어주시였으며 8월 하순 경박호를 건너 액목지구에 진출하시여 청구자전투, 남천문부근전투, 관지부근 류채구전투를 비롯하여 이르는 곳마다에서 령활한 전법으로 적들에게 섬멸적타격을 가하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 원정부대에 무리로 녹아난 적들은 완전히 넋을 잃고 온갖 추태를 다 부렸는데 《관희극》과 《활극》에 대한 이야기도 바로 이때에 있었던 실화이다. 《관희극》이란 청구자전투에서 겨우 살아남은 두 일제침략군놈이 숨을 곳을 찾다가 한 농가의 뜨락에 관이 놓여있는것을 보고 서로 먼저 거기에 들어가 숨겠다고 싸움질을 한 이야기이고 《활극》이란 관지부근전투에서 얼이 빠진 일본수비대 기관총수가 밤중에 정신착란을 일으켜 《공산군이다!》 하고 고함을 지르며 기관총을 마구 휘둘러 제편놈들을 수많이 죽였는데 이에 놀란 또 한놈이 정신이 나가 옷을 홀딱 벗어던진채 《공산군, 공산군!》 하면서 대낮이 될 때까지 온 거리바닥을 뛰여다닌 이야기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북만의 광활한 지대에 진출하시여 적극적인 군사활동으로 적들을 격멸소탕하시는 한편 생동한 대중정치사업으로 이곳 인민들에게 혁명적영향을 주어 반일투쟁의 불길이 더욱 세차게 타번지게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원정부대를 이끄시고 액목지방의 어느 한 중국인부락에 이르시였을 때였다. 무모한 8.1폭동의 후과로 이 지방은 인민들속에 반공풍조가 뿌리깊이 박혀있어 북만의 여러 무장부대들이 좀처럼 발을 붙이지 못하고있는 곳이였다. 대다수의 부락사람들은 《홍호자》(공산비적)가 왔다고 하면서 아이들까지 데리고 인가에서 달아나버렸으며 남아있던 로약자들도 집에 숨어서 밖에 나오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을 소학교마당에 풍금을 내다놓게 하시고 몸소 풍금을 타시며 대원들과 함께 길림시절에 부르시던 중국민요 《소무가》와 양귀비의 노래를 부르시였다. 이 두 노래는 중국인민의 애국주의적사상감정을 잘 반영하고있는것으로 하여 중국의 근로민중이 특별히 즐겨부르는 노래들이였다.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이 노래를 절절하게 부르자 숨어있던 마을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이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앞에서 중국말로 류창하게 반일연설을 하시면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조중인민은 모두다 항일대전에 떨쳐나서자고 호소하시였다. 그이의 연설을 듣고서야 마을사람들은 곁을 주면서 《고려홍군》은 비적도 아니고 마적도 아니다, 《고려홍군》은 진짜 애국적인 혁명군이며 신사멋쟁이군대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때부터 이곳 중국인민들은 조선인민혁명군을 적극 도와나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2차북만원정을 통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의 군사정치적위력을 널리 떨치게 하시는 한편 북만의 조선혁명가들과 중국혁명가들의 무장부대들과의 전투적뉴대를 더욱 공고히 하시였다. 그리하여 북만일대에서 반일무장력이 한층 강화되여 항일무장투쟁의 불길이 더욱 세차게 타번지게 되였다.

이 시기 북부조선일대와 두만강연안일대, 남만방향으로 진출한 조선인민혁명군의 다른 부대들도 적극적인 공세로 적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참으로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유격구해산후 조선인민혁명군을 광활한 지대에로 진출시켜 군사정치활동을 적극 벌리도록 하심으로써 항일무장투쟁을 중심으로 한 전반적조선혁명은 새롭게 앙양될수 있는 전환적국면을 맞이하게 되였다.